대체 역사물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어둠이 지배하는 시간, 잿골 마을을 감싸고 있던 침묵은 차가운 강철의 삐걱거리는 소리와 병사들의 거친 숨소리에 깨어지고 있었다. 희미한 달빛 아래, 흑철 제국의 거대한 수송대가 거친 흙길을 따라 느리게 움직였다. 겹겹이 쌓인 곡식 자루들을 가득 실은 수레들이 여섯 대. 그 뒤를 이어 무장한 병사들이 삼엄한 경계를 섰다.

“저 염병할 놈들이… 저만큼이나 쌓아두고도 우리에게는 썩은 감자 하나 주지 않아.”

돌 틈에 몸을 숨긴 채 수송대를 노려보던 한 사내의 입에서 거친 숨과 함께 중얼거림이 터져 나왔다.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는 그의 눈에는 굶주림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잿골 마을의 스물 남짓한 사내들이 모두 이와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새벽 그림자의 일원이자, 연우의 사람들이었다.

“진정해, 동필. 아직 때가 아니야.”

가장 앞서 몸을 낮추고 있던 연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눈은 달빛을 받아 번득이는 제국 병사들의 갑옷과 그들이 든 창끝을 훑고 있었다. 연우의 얼굴은 흙먼지로 얼룩져 있었지만, 또렷한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손짓 하나로 모든 이들을 제어했다. 굶주림과 고통 속에서, 그들이 마지막으로 붙잡은 희망, 연우였다.

제국은 끊임없이 공물을 요구했다. 피 같은 세금과 끝없는 부역. 한때 풍요로웠던 잿골은 이제 황무지가 되어 버렸다. 아이들은 뼈만 앙상하게 남았고, 어른들은 희망 없는 눈으로 땅만 보았다. 그렇게 죽어가던 이들에게 연우는 속삭였다. ‘빼앗긴 것을 되찾아야 한다’고. 그리고 그들은 연우의 목소리를 따랐다.

“곧이다. 저 개자식들이 협곡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그림자가 될 것이다.”

연우의 곁에 웅크려 앉아 있던 건장한 사내, ‘두목’은 묵직한 도끼를 고쳐 쥐며 말했다. 두목은 연우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이자, 마을의 모든 이들이 믿고 따르는 노련한 사냥꾼이었다. 그의 얼굴은 세월의 풍파를 맞아 거칠었지만, 지금은 강렬한 의지로 빛나고 있었다.

수송대는 마침내 좁은 협곡 어귀에 다다랐다. 양쪽으로 치솟은 기암괴석들은 달빛조차 삼켜버릴 듯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곳은 제국 병사들에게는 으스스한 지점이었지만, 새벽 그림자에게는 완벽한 매복 지점이었다.

“준비.”

연우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어둠을 갈랐다. 숨죽인 사내들의 눈빛이 일제히 빛났다.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죽음을 각오한 이들의 결의가 공기 중에 팽팽하게 흘렀다.

선두 수레가 협곡의 가장 좁은 목을 통과하는 순간, 연우가 손을 번쩍 들었다.

“돌격!”

그의 외침과 동시에, 사방에서 수십 개의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미리 설치해 둔 밧줄과 돌멩이 함정이 동시에 작동했다.

“크아악!”

“매복이다! 적습이다!”

선두에 섰던 병사들이 혼란에 빠져 비명을 질렀다. 밧줄에 걸려 넘어지는 자, 위에서 쏟아지는 돌에 머리를 맞는 자, 아수라장이 되었다. 연우는 마치 맹수처럼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제국 병사에게서 빼앗은 허름한 단검이었지만, 그 움직임은 숙련된 암살자 같았다.

“연우님, 이쪽입니다!”

두목이 커다란 도끼를 휘둘러 병사의 방패를 박살 내며 길을 텄다. 연우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비집고 들어가, 눈앞의 병사에게 칼을 찔러 넣었다. 병사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으며 쓰러졌다. 그의 시야에 비친 것은, 굶주린 이리의 눈빛을 한 연우의 얼굴이었다.

수송대의 호위 병력은 겨우 스무 명 남짓. 하지만 새벽 그림자 또한 잘 훈련된 병사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대부분 농사짓던 평범한 농부이자 사냥꾼, 아니면 광산에서 돌을 캐던 광부들이었다. 그들이 가진 것은 오직 절박함과 복수심, 그리고 연우를 향한 맹목적인 믿음뿐이었다.

그러나 그 절박함이 무서운 힘을 발휘했다. 배고픔에 시달리던 그들은 제국 병사들의 잘 훈련된 검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덤벼들었다. 쇠 갈고리로 갑옷을 벗겨내고, 몽둥이로 투구를 부쉈다. 동필은 나무 지게 작대기로 병사의 무릎을 가격한 뒤, 쓰러진 병사의 단검을 빼앗아 목을 베었다. 그의 얼굴은 피로 물들어 있었지만, 그의 눈은 살아 있었다. 드디어 저항하고 있다는 생동감으로.

“앞으로! 멈추지 마라! 이 곡식은 우리의 것이다!”

연우의 목소리가 전장을 휘감았다. 그의 지휘 아래, 새벽 그림자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선두의 혼란을 틈타 수레를 묶은 고삐를 끊어 버리고, 후미의 병사들이 전열을 갖추기 전에 맹렬히 공격했다.

제국 병사들의 사기는 순식간에 꺾였다. 그들은 굶주림에 미친 듯이 덤벼드는 평민들의 눈빛에 공포를 느꼈다. 평소라면 손쉽게 제압했을 이들이 아니었다. 죽음도 불사하는 그들의 기세는 감히 막을 수 없을 정도였다.

“퇴각하라! 물러서라!”

수송대장이 비명을 지르며 몇 남지 않은 병사들을 이끌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등 뒤로 억눌렸던 평민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해냈다! 우리가 해냈어!”

“곡식이다! 곡식이야!”

쓰러진 병사들의 시체 위로, 새벽 그림자의 일원들이 찢어진 갑옷을 벗겨내고 쓰러진 수레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곡식 자루들이 뜯겨져 나가고, 뽀얀 곡물이 쏟아져 나왔다. 누군가는 두 손 가득 곡물을 움켜쥐고 울먹였고, 또 누군가는 그 자리에서 날것의 곡물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들의 얼굴은 흙과 피로 얼룩져 있었지만, 그 눈빛은 환희로 가득 차 있었다.

연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전투는 끝났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이 작은 승리는 시작에 불과했다. 제국은 이 정도 약탈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터였다. 아니, 오히려 더욱 가혹한 보복을 가해올 것이 분명했다.

“두목, 서둘러 곡식을 챙기고 부상자를 돌봐야 합니다. 해 뜨기 전까지 이곳을 떠야 해요.”

“알았다, 연우야. 네 덕분에 다들 살았다. 정말이지… 기적 같은 일이야.”

두목이 연우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그의 눈에는 존경과 감격이 서려 있었다.

연우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많은 별들이 반짝였다. 저 별들 중 어딘가에, 흑철 제국의 심장이 있을 터였다. 저 거대한 어둠을 몰아내고 새벽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그러나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굶주림에 허덕이는 동료들의 얼굴, 그리고 그들의 눈에 비친 희망의 빛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 작은 승리가, 언젠가 거대한 제국의 심장을 관통할 불씨가 되리라. 연우는 그렇게 믿었다. 그의 심장 속에서, 뜨거운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