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전생 (Isekai)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나는 죽었다.

선명한 의식과는 다르게, 내 육체는 심장을 멈추고 차갑게 식어갔다. 고층 빌딩 옥상, 강풍이 몰아치는 그곳에서 나는 마지막 퍼즐 조각을 맞춰내고 있었다. 놈은 완벽한 밀실 살인을 계획했다고 자부했겠지만, 내 눈에는 그의 얄팍한 트릭이 투명하게 보였다. 하지만 그 순간,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린 간판 조각은 내가 살아있는 한, 어떤 난제도 풀어낼 수 있을 거라는 오만을 보기 좋게 부숴버렸다.

시야가 암전되고, 모든 감각이 사라졌다. 허무하고, 고요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다.

“…젠장.”

내 입에서 터져 나온 건 낯선 목소리였다. 잔뜩 갈라진, 어딘가 가늘고 여린 목소리. 눈앞에는 화려한 천장이 펼쳐져 있었다. 금실로 수놓인 휘장, 거대한 샹들리에, 창밖으로는 본 적 없는 건축물들이 뾰족하게 솟아 있었다. 푹신한 침대에 파묻힌 몸을 겨우 일으키자, 가느다란 손이 시야에 들어왔다. 창백하고 섬세한 손이었다. 내 손이 아니었다.

“이게… 대체….”

혼란스러웠다. 분명 나는 죽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살아있었다. 게다가 내 몸이 아니었다.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파편적인 이미지들. ‘엘리안 드 레아’. 낯선 이름과 낯선 얼굴들이 떠올랐다. 이 몸의 주인이었던 소년의 잔상들. 이 세계는 내가 알던 그 어떤 곳과도 달랐다. 마법과 귀족, 봉건 제도. 중세 유럽풍의 판타지 세계였다. 믿을 수 없었지만, 내 감각은 모든 것을 사실로 증명하고 있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하인이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그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침대에 기어올랐다.

“도련님! 정신이 드셨어요? 오, 신이시여… 열흘 동안 의식 없이 누워 계셔서 모두들 포기했었는데….”

하인은 징징거리며 내 손을 붙잡고 부벼댔다. 그의 눈물과 떨리는 손은 이 몸의 주인이 얼마나 위독했는지 짐작하게 했다. 그리고 나의 이 급작스러운 ‘정신 회복’이 그들에게는 기적처럼 보일 터였다.

“내가… 누구라고?”
“예? 도련님은 엘리안 드 레아 도련님이시지요! 저희 레아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이십니다!”

엘리안 드 레아. 귀족의 아들. 병약해서 거의 방에만 틀어박혀 지냈고, 최근에는 원인 모를 열병에 시달렸다고 했다. 아마 그 열병이 이 몸의 원래 주인을 삼켜버리고, 나를 불러들인 계기가 되었겠지.

정신을 차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이 집안의 집사에게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세계는 ‘아르테미스’라는 여신이 창조했고, 마나가 흐르는 신비로운 대륙에서 여러 왕국이 공존하며 번영하고 있었다. 내가 속한 ‘에르반 왕국’은 가장 강력한 세력 중 하나이며, 레아 가문은 왕가에 충성하는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이었다. 이 몸의 아버지는 에르반 왕국의 변경 백작이었고, 현재는 영지에서 국경 수비를 맡고 있다고 했다.

“도련님께서 건강을 회복하신 것은 천만다행이지만… 좋지 않은 소식이 있습니다.”
집사의 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며칠 전, 폰 크라우스 백작 저택에서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폰 크라우스 백작. 이 세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들은 이름이었다. 막대한 부를 쌓았지만, 그만큼 탐욕스럽고 잔인한 성정으로 악명 높았던 인물.

“폰 크라우스 백작이… 살해당했습니다.”

내 귀가 쫑긋 섰다. 살인 사건. 낯선 세계에서 들었지만, 어딘가 익숙하고, 동시에 짜릿한 단어였다.

“문제는… 사건 현장이 완벽한 밀실이었다는 점입니다.”
집사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백작은 자신의 서재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목에는 깊은 자상이 있었고, 방은 안에서 굳게 잠겨 있었습니다. 창문은 모두 빗장이 걸려 있었고, 굴뚝조차 성인 남자가 드나들 수 없는 좁은 구조였다고 합니다.”

밀실 살인.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아니 죽었다고 생각했던 본능이 서서히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었다가, 다시 뜨겁게 끓어오르는 듯했다. 이 알 수 없는 세계에서, 내가 왜 다시 눈을 떴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왕실 수사대가 현장을 조사했지만,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하고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백작의 저택은 현재 혼돈 그 자체입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틀거렸지만, 묘한 힘이 내 발을 이끌었다.
“젠장, 이런 건 참을 수 없군.”
“도련님?”
“가자, 집사. 폰 크라우스 백작의 저택으로.”
나는 낯선 옷을 걸쳐 입으며 말했다.
“천재 탐정의 화려한 복귀전을 치를 시간이군.”

***

폰 크라우스 백작의 저택은 우울한 회색빛 석조 건물이었다. 대문 앞에는 왕실 수사대의 문장이 박힌 마차가 서 있었고, 무장한 기사들이 삼엄하게 경계를 서고 있었다. 저택 내부로 들어서자, 혼돈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하인들은 웅성거리고 있었고, 수사관들은 서류 더미에 파묻혀 있거나 벽을 긁어대며 혹시 모를 비밀 통로를 찾고 있었다.

“도련님, 갑자기 어인 일로… 아직 몸이 완전치 않으십니다.”
집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팔을 잡았다. 나는 그의 손을 뿌리쳤다.
“걱정 마, 집사. 오히려 이 사건이 내 몸을 더 빨리 회복시켜 줄 걸세. 내 머리가 움직이면 몸도 따라 움직이게 되어 있지.”

사건을 담당하는 수사관은 ‘가론’이라는 이름의 중년 남성이었다. 그는 피곤에 절은 얼굴로 서류를 뒤적이다가, 내가 다가가자 짜증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누구시오? 여기는 출입이 통제된 구역이오.”
“레아 가문의 엘리안입니다. 사건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어서 왔습니다.”
내 말에 가론 수사관의 눈이 가늘어졌다.
“레아 가문의 도련님? 당신이? 소문으로는 침대에 꼼짝 못 한다더니… 여하튼, 어린 도련님이 호기심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오. 돌아가시오.”

그는 나를 어린애 취급했다. 하긴, 이 몸은 10대 후반 정도로 보였다. 병약하다는 소문까지 겹쳤으니, 믿음이 가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돌아가라고 하기 전에, 내가 어떤 질문을 할지라도 들어볼 생각은 없으신가?”
내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오랜만에 느끼는 이 날카로운 감각. 마치 마른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내 뇌는 이미 사건의 조각들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흥, 질문? 해보시오. 어차피 소용없겠지만.”
“좋소. 그렇다면, 현장은 어디지? 폰 크라우스 백작의 서재인가?”
“그렇소. 저 복도 끝, 가장 안쪽에 있는 방이오.”

나는 곧장 서재로 향했다. 문 앞에는 경비병들이 지키고 서 있었다. 문은 육중한 참나무로 만들어져 있었고, 강력한 잠금장치와 쇠빗장이 굳게 걸려 있었다.
“모두 안에서 잠겨 있었습니다. 저희가 도착했을 때, 문을 부수고 들어갔죠.” 경비병 중 한 명이 설명했다.

서재 안으로 들어서자, 역한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바닥에는 붉은 얼룩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고, 가구들은 흐트러져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폰 크라우스 백작의 시신이 누워 있었을 자리에 핏자국만이 비극을 웅변하고 있었다.

“백작의 시신은 이미 영안실로 옮겨졌습니다. 목에는 단검에 의한 깊은 자상이 있었습니다.” 가론 수사관이 뒤따라 들어오며 말했다.
“시신 발견 당시의 상태는? 정확한 위치와 자세, 그리고 주변의 물건들.”
“시신은… 책상 옆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손에는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았고, 몸은 경직되어 있었죠. 책상 위에는 서류들과 잉크병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습니다. 특별한 것은 없었습니다.”

나는 천천히 방을 둘러봤다.
벽에는 키 높은 책장들이 늘어서 있었고, 창문은 두 개였다. 창문에는 모두 두꺼운 쇠빗장이 채워져 있었다. 나는 창문으로 다가가 빗장을 확인했다. 꼼꼼하게 잠겨 있었다. 내부에서만 잠글 수 있는 구조였다.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

다음으로 굴뚝을 살폈다. 굴뚝은 너무 좁아서 어린아이조차 통과하기 어려워 보였다. 그리고 굴뚝 안쪽에는 그을음이 잔뜩 묻어 있었고, 어떤 흔적도 없었다. 완벽한 밀실.

“도련님, 보셨죠? 이 방은 어디로도 드나들 수 없는 밀실입니다. 범인은 백작을 죽인 후, 공기처럼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죠.” 가론 수사관이 한숨을 쉬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방 안을 맴돌았다. 바닥의 핏자국, 흐트러진 서류, 책상 위에 놓인 깃펜, 그리고… 갓 태운 듯한 촛농이 굳어 있는 양초 하나.

내 눈은 다른 수사관들이 놓쳤던 미세한 흔적들을 포착했다.
책상 모서리에 아주 희미하게 남은 긁힌 자국.
바닥의 마루 틈새에 박힌 아주 작은, 미세한 조각.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거대한 샹들리에가 중앙에 매달려 있었다. 샹들리에의 쇠사슬 중 하나가 다른 것보다 아주 미세하게 느슨해져 있는 것 같았다.

“사건 발생 시각은 언제였습니까?” 내가 물었다.
“어제 자정 무렵으로 추정됩니다. 백작의 침실은 서재와 멀리 떨어져 있었고, 하인들도 그때쯤이면 모두 잠들어 있을 시간이었죠. 아침에 하인이 백작을 깨우러 왔다가 발견했습니다.”
“그렇군.”

나는 서재 문을 다시 한 번 살폈다. 육중한 나무 문. 그리고 안쪽에서 굳게 걸려 있던 쇠빗장.

“가론 수사관님.”
“예?”
“이 방은… 외부에서 봉쇄된 밀실이 아닙니다.”
내 말에 가론 수사관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도련님?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창문도 마찬가지였소!”
“맞습니다.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창문도 안에서 굳게 닫혀 있었죠.” 나는 그의 말을 그대로 되돌려주었다.
“오히려, 이 방은… 내부에서 만들어진 완벽한 연극입니다.”

가론 수사관과 다른 경비병들의 얼굴에 의문이 가득 찼다.
“내부에서 만들어진 연극이라니… 대체 무슨 뜻이오?”

나는 피식 웃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이 지적인 희열.
“범인은 이 방 안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백작을 살해한 뒤, 이 방을 밀실로 위장하고 유유히 빠져나갔습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나는 손가락으로 샹들리에의 느슨한 쇠사슬을 가리켰다. 그리고 책상 모서리의 긁힌 자국, 바닥의 미세한 조각까지.
“이것들은 모두… 범인이 사용한 트릭의 흔적이죠.”

내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내가 가리키는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했다.

나는 다시 한번 폰 크라우스 백작이 쓰러져 있던 자리의 핏자국을 내려다봤다.
백작의 시신이 발견된 위치, 목의 자상, 그리고 촛불.

“폰 크라우스 백작은 칼에 찔린 직후 바로 사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죽기 직전, 그는 범인을 완벽하게 가두어 버리는, 의외의 행동을 했죠.”
내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지금 이 밀실은… 범인이 스스로 만든 감옥입니다. 문제는, 그 감옥의 문을 어떻게 열었느냐는 것이겠죠.”
나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흥미롭군. 아주 흥미로워.”
이 낯선 세계에서 나의 첫 번째 밀실 살인이 지금, 막을 열었다. 그리고 나는 이미, 그 막 뒤의 그림자를 보고 있었다.
범인은 누구인가? 그리고 어떻게 이 밀실을 만들고 탈출했을까?
나의 심장은 다시 힘차게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