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잊힌 별의 속삭임**
회색빛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도시의 가장자리에, 마치 숨 쉬듯 고요한 숲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니, 숲이라기보다는 거대한 공원에 가까웠다. 한세아는 그곳을 ‘도시의 폐’라고 불렀다. 매연으로 가득 찬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맑은 공기를 품어내는 곳. 찌든 일상에 지쳐갈 때마다, 그녀는 습관처럼 이곳을 찾았다.
세아는 오늘도 학원 수업을 마치고 그 폐, 아니 공원의 가장자리로 향했다. 다른 아이들이 PC방이나 노래방으로 몰려갈 때, 세아는 늘 사람들 발길이 뜸한 공원의 구석진 곳을 찾아 헤맸다. 그녀에게는 그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순간이었다. 복잡한 생각들, 답답한 일상, 그 모든 것에서 잠시 벗어나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시간.
“후으…”
깊은 한숨을 내쉬며 세아는 낡은 운동화로 낙엽을 밟았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왠지 모르게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햇살은 숲의 우거진 나뭇가지 사이를 뚫고 희미하게 쏟아져 내렸다. 마치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세아는 발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쪽 길은 처음 와보는 곳이었다. 평소에는 정비된 산책로를 따라 걸었지만, 오늘은 왠지 모르게 숲 안쪽으로 난 희미한 오솔길이 그녀의 발길을 잡아끌었다.
“이런 길이 있었네.”
아무도 다니지 않는 듯 덩굴과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길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만큼 좁고 험했지만, 왠지 모르게 강렬한 이끌림이 있었다. 마치 길 끝에 무언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세아는 망설임 없이 발을 내디뎠다. 나뭇가지에 걸려 넘어질 뻔한 것을 겨우 지탱하며 십 분쯤 걸었을까, 숲은 갑자기 끝을 알렸다.
오솔길의 끝에는 놀랍게도 작은 공터가 나타났다. 그 중심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낡은 석탑이 서 있었다. 석탑이라기보다는 이끼 낀 거대한 바위들이 불규칙하게 쌓여 올려진 제단 같은 모습이었다. 세아는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도시 한복판에 이런 곳이 숨어있을 줄이야.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
석탑의 가장 높은 곳에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돌멩이가 놓여 있었다. 여느 돌멩이와 다를 바 없이 투박하고 거친 모습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시선을 잡아끄는 묘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햇살이 그 돌멩이에 닿자, 순간적으로 아주 희미하게 푸른빛이 깜빡이는 듯했다. 세아는 홀린 듯 석탑으로 다가갔다. 차가운 이끼를 손으로 쓸어내며 조심스럽게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손에 닿는 순간,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오묘한 감촉이 손가락 끝을 타고 흘렀다. 그리고 눈을 감자마자, 그녀의 머릿속에 수많은 영상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어왔다.
*쿵, 쿵, 쿵…*
심장이 미친 듯이 울렸다. 마치 먼 옛날,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잊혀 있던 무언가가 깨어나는 듯한 울림이었다. 귓가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속삭임들이 웅웅거렸다. 오래된 언어 같기도 했고, 단순히 바람 소리 같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히, 무언가 존재했다.
눈을 뜨자, 손에 든 돌멩이가 놀랍도록 밝은 푸른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빛은 너무나 강렬해서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했다. 세아는 놀라서 돌멩이를 떨어뜨릴 뻔했지만, 왠지 모르게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마치 돌멩이가 그녀의 손에 딱 달라붙어버린 것처럼.
푸른빛이 그녀의 몸을 감쌌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 전율하는 듯한 느낌. 익숙한 세상이 한순간에 낯설게 변했다. 풀잎은 더욱 선명한 초록으로 빛났고, 하늘은 전에 본 적 없는 깊은 남색으로 물들었다. 나무들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처럼 속삭이는 것 같았다.
“이게… 뭐지?”
세아의 입에서 갈라진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공터의 공기가 일렁이는 듯했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동이 온 공간을 가득 채운 것처럼. 손에 든 돌멩이는 이제 더 이상 투박한 돌멩이가 아니었다. 마치 보석처럼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푸른빛은 더욱 강렬해져 이제 그녀의 눈동자에까지 스며드는 듯했다.
그때였다.
숲 저편에서 희미한 그림자가 일렁였다. 나무들 사이로 언뜻 비치는 검은 형체. 그것은 마치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공기 중에 싸늘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아름답던 푸른빛이 주는 경이로움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알 수 없는 공포가 세아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후욱—*
갑자기 차가운 바람이 그녀의 뺨을 스쳤다. 그림자는 더욱 선명해졌다. 그것은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 공터 주변을 맴돌았다. 세아는 숨을 죽였다.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저것은 자신을 향해 오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손에 든 이 돌멩이 때문에.
“젠장…”
세아는 작게 중얼거렸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마음은 강했지만, 이런 식의 비현실적인 일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손에 든 푸른 돌멩이, 마치 별의 눈물이라도 되는 양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고, 그녀의 심장은 걷잡을 수 없이 뛰고 있었다.
그림자가 한 발짝 더 공터 안으로 들어섰다. 희미하게 드러나는 형체는 인간이 아니었다. 거칠고 날카로운 손톱, 붉게 빛나는 눈동자.
“찾았다… 별의 눈물…”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가 숲에 울려 퍼졌다. 세아는 본능적으로 돌멩이를 꽉 움켜쥐었다. 그 순간, 손안의 돌멩이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파앗!*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그녀의 몸에서 무언가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뜨겁고 강렬한 힘이 온몸을 휘감았다. 이제 더 이상 두려움만이 아니었다. 알 수 없는 용기와 함께, 끓어오르는 생명력이 그녀의 온몸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세아는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그녀의 눈은 더 이상 평범한 검은색이 아니었다. 푸른 별빛이 희미하게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림자가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대로라면 분명 위험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세아는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끓어오르는 힘에 몸을 맡기고 싶었다.
“이게… 나인가?”
자신에게 묻는 듯한 나지막한 목소리가 세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 소리는 예전의 나약한 소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어딘가 단단하고, 강인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첫 번째 챕터, 그녀의 평범했던 일상은 그렇게 완전히 뒤바뀌었다. 이제 그녀는, 손에 든 ‘별의 눈물’과 함께 미지의 세계로 발을 내디뎌야 할 운명에 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