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카나의 불청객, 지하의 속삭임
### 1장: 이상한 벽장과 얼음 황태자
아르카나 마법 학원, 고풍스러운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으로 석양의 마지막 주황빛이 쏟아져 들어오던 시간. 여느 때라면 일찌감치 기숙사로 돌아가거나 교정 벤치에 앉아 연인과 마법으로 피운 꽃을 주고받았을 법한 낭만적인 풍경 속에서, 한설아는 교내 훈련장 깊숙한 곳의 낡은 연습실에 홀로 남아 있었다.
“후으읍, 하아… 집중, 집중!”
손바닥 위에 간신히 띄워 올린 불꽃 구슬은 위태롭게 흔들렸다. 탁구공만 한 크기인데도 수시로 자기주장이 강해져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글거림의 강도를 바꾸거나, 아예 ‘펑’ 하고 작은 폭발을 일으키며 연기가 되어 사라져 버리곤 했다. 벌써 오늘만 세 번째 실패였다. 이번에도 설아의 미간을 잔뜩 찌푸리게 하더니, 갑자기 실내 온도조절장치가 고장 난 듯 후끈한 열기를 내뿜으며 천장까지 솟아오를 기세였다.
“안 돼! 이번 주까지 안정화 마법 못 끝내면… 보충 수업이 아니라, 학점 미달로 이번 학기에도 또 F라고!”
설아는 비명을 지르며 손을 휘저었다. 불꽃은 그녀의 의지에 반항하듯 더 활활 타올랐다. 급기야 벽에 걸린 낡은 훈련용 포스터 끝을 그슬리기 시작하자, 설아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다.
“젠장, 마법봉을 써야 하나? 아냐, 교수님은 맨손으로 완벽하게 제어하라고 하셨는데…!”
그때였다. 연습실 문이 ‘쾅’ 하고 열리며 한 줄기 냉기가 훅 끼쳐 들어왔다. 그 냉기에 반응한 불꽃이 갑자기 ‘쉬이익’ 소리를 내며 작게 쪼그라들었다. 설아는 순간적인 온도 변화에 멍하니 문 쪽을 바라봤다.
문가에 서 있는 그림자는 완벽하게 조각된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은빛 머리카락은 창밖의 달빛을 받아 신비롭게 반짝였고, 차가운 푸른 눈동자는 마치 심해의 얼음처럼 어떤 감정의 동요도 읽을 수 없었다. 아르카나 마법 학원 학생이라면 모를 리 없는 인물. 수석이자 학생회장, 차기 학원장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마법 천재, 강태인. 그는 설아에게는 ‘절대 접근 금지’의 존재,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인, 이른바 ‘얼음 황태자’였다.
“한설아 학생.”
그의 목소리는 깔끔하고 낮았지만, 설아의 귀에는 칼날처럼 날카롭게 박혔다. 그는 흐트러짐 없는 학원 제복 차림으로, 불꽃 때문에 그슬린 포스터를 한 번, 그리고 불꽃을 간신히 쥐고 있는 설아의 손을 한 번, 마지막으로 그녀의 엉망진창인 얼굴을 한 번씩 훑어봤다. 설아는 그 시선에 저도 모르게 움찔하며 손바닥 안의 불꽃을 서둘러 꺼트렸다. 작은 연기가 ‘푸쉬쉭’ 하고 피어오르고 나서야 그는 입을 열었다.
“밤늦게까지 남아있는 것은 좋으나, 학원 비품을 훼손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그의 말은 팩트였고, 그만큼 차가웠다. 설아는 고개를 푹 숙였다. 변명할 여지도 없었다. 겨우 C학점을 면해보려던 노력이 매번 이런식이었다.
“죄송합니다, 강태인 선배님. 곧 정리하고 나가겠습니다.”
태인은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연습실을 한 바퀴 둘러봤다. 그의 시선이 바닥에 흥건히 고인 물웅덩이(아까 수속성 마법 연습의 부산물이었다), 그리고 책상 위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실패한 마법진 스케치와 비실거리는 불꽃 결정 조각들을 스쳐 지나갔다. 설아는 그의 완벽주의적 성격이 이 난장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상상하며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이러다간 학원 전체가 불타거나, 아니면 침수될 것 같군요.”
태인의 나지막한 중얼거림은 설아의 심장을 꿰뚫었다. 비수와 같았다. 그녀의 얼굴은 화르륵 타올랐다.
“저, 저는… 그렇게 서툰 마법사는 아닙니다! 단지… 제 마법이 좀, 제멋대로일 뿐이라고요!”
“제멋대로인 마법은 위험합니다. 특히 이곳 아르카나에서는.”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아무런 미련 없이 연습실 문을 닫고 나갔다. ‘쾅’ 하는 소리는 설아의 귀에 ‘넌 안 돼’라는 비웃음처럼 들렸다. 설아는 주저앉아 머리를 쥐어뜯었다. 강태인. 그는 그녀에게 좌절과 동시에 설명할 수 없는 승부욕을 안겨주는 존재였다. 그래, 그 완벽주의자 얼음 황태자에게 ‘제멋대로’ 마법사라는 낙인을 찍히고 싶지 않았다.
결국, 연습실이 아닌 다른 곳을 찾아야 했다. 아무도 없는 곳, 그녀의 마법이 아무리 날뛰어도 피해를 주지 않을 곳. 그리고 동시에, 아무도 그녀의 처참한 실패를 보지 않을 곳.
그녀는 한참을 학원 건물 이곳저곳을 헤매다, 거의 사용되지 않는 듯한 서쪽 별관의 낡은 도서관 구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반 학생들에게는 거의 공개되지 않는 금지 구역에 가까운 곳이었다. 어쩌면 그곳에서 고대의 마법에 관한 조용한 서적이라도 찾아볼 수 있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별관의 퀴퀴하고 습한 공기가 그녀를 맞이했다. 오래된 종이 냄새와 먼지 냄새가 뒤섞여 코끝을 찔렀다.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을 조심스럽게 밟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책장들은 키를 훌쩍 넘는 높이로 끝없이 이어져 있었고, 대부분은 손때 한 번 타지 않은 듯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녀는 마법 이론서들을 뒤적이다가, 문득 손끝에 닿는 이상한 감각에 멈칫했다. 분명히 나무 재질의 책장이었지만, 어떤 부분은 유난히 차갑고, 아주 미세하게 마법적인 공명이 느껴졌다. 마치 거대한 에너지가 그 너머에 갇혀있는 듯한, 약하지만 분명한 진동이었다.
“…이게 뭐지?”
설아는 호기심에 이끌려 손바닥으로 그 부분을 더듬었다. 차가운 기운은 책장 하나를 따라 쭉 이어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이 책장은 다른 책장들과 달리 벽과 완전히 밀착되어 있지 않았다. 아주 희미한 틈이 있었다. 그녀는 손톱으로 그 틈을 긁어보았다. 그리고 확신했다. 이것은 벽이 아니었다.
‘벽장인가? 아니면… 숨겨진 문?’
낡고 해진 고서들을 밀어내자, 얇은 판이 드러났다. 그리고 판의 중앙에는 손잡이처럼 보이는 것이 있었는데, 언뜻 보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가까이서 보니 정교하게 새겨진 마법 문양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단순한 손잡이가 아니라, 일종의 봉인 마법이 걸려있는 장치 같았다.
설아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 많고 엉뚱한 구석이 있었던 그녀는 ‘금지된 것’이라는 말에 오히려 더 강한 충동을 느끼는 타입이었다. 물론 그녀의 성적이 그걸 뒷받침해주지 못해 번번이 사고로 이어졌지만.
그녀는 조심스럽게 마법 문양에 손을 댔다. 차가운 기운이 손끝을 타고 온몸으로 퍼지는 듯했다. 아주 미세하게 손잡이 같은 것이 꿈틀거렸다. 마치 생물처럼.
‘이 문양…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기억을 더듬어보려 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직 ‘이걸 열어봐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조심스럽게 마법 에너지를 흘려보냈다. 마법 문양이 활성화되자, ‘철컥’ 하는 오래된 기계음이 울리며 판이 안쪽으로 밀려 들어갔다.
그 뒤로 드러난 것은 어둡고 축축한 통로였다. 코를 찌르는 곰팡이 냄새와 함께,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 마치 쇠사슬이 부딪히는 소리 같기도 하고, 낮게 으르렁거리는 짐승 소리 같기도 했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어…?”
겁이 덜컥 났지만, 발걸음은 이미 통로 안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서 작은 빛 구슬이 피어올라 어둠을 밝혔다. 계단은 끊임없이 아래로 이어져 있었다. 마치 학원 지하 깊숙한 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때였다. 아래에서부터 섬뜩한 오한이 뼈 속까지 스며드는 듯한 마법적 압력이 느껴졌다. 너무나도 강력하고 이질적인 마력. 단순한 봉인 마법의 잔여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생생했다.
설아는 발걸음을 멈추고 빛 구슬을 더 멀리 던져보았다. 빛이 닿은 곳은 거대한 철문이었다. 고대 마법으로 단단히 봉인된 듯, 문 전체에 복잡한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철문 틈새로, 아주 미세하게 붉은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 붉은빛은 마치 살아있는 피처럼 꿈틀거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듣는 순간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기이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한 울음소리가 아니었다. 짐승의 포효 같기도 하고, 고통받는 인간의 비명 같기도 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였다.
설아는 심장이 발끝까지 쿵 하고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몸이 굳어버렸다. 그때, 그녀의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설아 학생.”
돌아볼 틈도 없이, 차가운 손이 그녀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그녀의 손에서 피어났던 빛 구슬은 ‘팟’ 하고 터져 버렸고, 다시금 통로는 어둠 속에 잠겼다. 끔찍한 울음소리가 붉은빛과 함께 철문 너머에서 더욱 크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그녀는 강태인의 푸른 눈동자 속에서 그 어떤 때보다도 강렬한 경고를 읽었다.
“당신은, 절대 이곳에 발을 들여서는 안 됐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낮고 위협적이었다. 그리고 그의 손은, 마치 그녀를 어디론가 던져버릴 듯이 강하게 어깨를 쥐고 있었다. 설아는 공포에 질려 숨을 헐떡였다.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것은, 단순한 호기심으로 열어서는 안 되는 ‘끔찍한 금기’에 대한 직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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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장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