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 호러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칠흑의 첨탑은 언제나 숨통을 조이는 칼날 같았다. 첨탑을 중심으로 한 제국의 수도 ‘아르카눔’은 거대한 묘지나 다름없었다. 거대한 황제의 초상화가 거리를 지배했고, 잿빛 하늘은 언제나 희미한 피 냄새를 머금고 있었다.

한새는 허름한 뒷골목의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긴 채, ‘수확 의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쨍한 햇살 대신 희뿌연 안개만이 내려앉은 거리, 제국의 근위병들이 거대한 수레를 끌고 천천히 이동했다. 수레 위에는 핏기 하나 없는 젊은이들의 시체가 무수히 쌓여 있었다. 그들의 눈은 공허하게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고, 입술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굳어 있었다. 육체는 온전했지만, 그들의 영혼은 이미 오래전에 뽑혀 나간 듯했다.

“저 개자식들…”

한새의 목소리는 분노와 슬픔으로 갈라졌다. 두 주 전, 그의 여동생도 저 수레에 실려 갔다. 제국은 정기적으로 ‘영혼의 수확’이라는 이름으로 시민들을 끌고 갔다. 그들은 제국의 위대한 마법을 유지하기 위한 ‘제물’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새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단지 황제와 그의 추악한 귀족들이 그들의 썩어 문드러진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비참한 수단에 불과했다.

수레를 따라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두려움에 질린 눈빛, 절망으로 가득 찬 시선. 누구도 감히 소리 내어 울지 못했다. 소리라도 내는 순간, 근위병들의 붉은 눈이 섬광처럼 번뜩이며 그 자리에서 목숨을 앗아갈 테니까. 제국의 검은 마법은 사람들의 의지뿐 아니라, 그들의 감정마저도 짓눌러 버렸다.

한새는 자신의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피가 맺혔지만, 통증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오직 하나의 감정만이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증오. 칠흑의 첨탑을 향한, 제국을 향한,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추악한 행위를 향한 맹렬한 증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자, 한새는 그림자 속에 몸을 녹이며 익숙한 은신처로 향했다. 낡은 하수구 아래, 진흙과 곰팡이 냄새가 뒤섞인 비밀 통로를 지나자 작은 공간이 나타났다. 희미한 촛불 아래, 세 개의 그림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늦었군, 한새.”

굵직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강림이었다. 한때 제국의 유능한 병사였으나, ‘수확 의식’의 진실을 깨닫고 제국을 등진 사내. 그의 얼굴은 깊은 주름과 굳은 의지로 가득했다. 그의 곁에는 강림과는 대조적으로 앳된 얼굴의 유나가 앉아 있었다. 유나의 눈은 여전히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아마도 오늘 또 누군가의 비명을 들었을 것이다. 마지막은 늘 고서적 더미에 파묻혀 지내는 지혜였다. 그녀는 언제나 무언가를 읽고 있었고, 그 고요함 속에서도 날카로운 통찰력을 뿜어냈다.

“미안하다. 수확 의식 때문에…” 한새는 앉으며 말했다. “오늘도 처참했어. 평소보다 더 많은 이들이 끌려갔고, 그들의 눈은… 정말 비어 있었어.”

유나는 흐느끼는 소리를 참으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우리 오빠도 저렇게… 저렇게 됐을까?”

강림이 유나의 어깨를 토닥였다. “유나, 마음 다잡아. 우리는 슬퍼할 시간조차 사치다. 그들에게 대항할 방법을 찾아야 해.”

“방법이라니? 칼이나 활 따위로 저 마법을 깨부술 수 있다고 생각하나?” 한새의 목소리에는 비관적인 색채가 짙게 드리웠다. “황제는 우리의 영혼을 먹고, 우리의 삶을 갉아먹는다. 저 칠흑의 첨탑은 우리의 피와 눈물로 만들어진 괴물이야.”

“그래서 우리는 알아야 해. 저 마법의 근원이 무엇인지.” 지혜가 조용히 말했다. 그녀의 손에는 낡고 해진 양피지 두루마리가 들려 있었다. “나는 이틀 밤낮으로 옛 문헌들을 뒤졌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지.”

세 사람의 시선이 지혜에게로 향했다.

“제국의 역사는 우리가 아는 것과 달라. 초대 황제는 위대한 영웅이 아니었어. 그는 심연의 존재와 계약을 맺었어.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권능을 대가로, 이 땅의 생명력과 인간의 영혼을 바치기로 한 거지.”

지혜의 말에 한새의 심장이 싸늘하게 식었다. “심연의 존재… 그게 대체 뭐야?”

“정확히는 알 수 없어. 그저 ‘어둠의 계약자’, ‘무형의 포식자’ 등으로 불릴 뿐. 하지만 그 존재는 황제에게 힘을 주었고, 황제는 그 힘으로 제국을 세웠어. 그리고 우리가 겪는 ‘수확 의식’은 단순한 제물이 아니야. 그것은 계약을 갱신하고, 그 존재에게 계속해서 우리의 영혼을 바치는 행위야.”

강림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 “그럼… 황제가 단순한 폭군이 아니라, 저 어둠의 존재의 대리인이라는 말인가?”

“그보다 더 깊이 연결되어 있을 거야. 황제는 이미 그 존재와 하나가 되어가고 있을지도 몰라. 제국의 마법은 우리의 영혼을 빨아들여 심연의 존재에게 바치고, 그 대가로 황제는 더 강력한 힘과 영생을 얻는 거지.” 지혜는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최근에 퍼지는 ‘공허병’에 대한 기록도 발견했어. 영혼이 직접 뽑히지 않아도, 심연의 존재의 그림자가 짙어지면 사람들의 의지가 약해지고, 결국 살아있는 송장처럼 변해버린다고 했어. 마치 이 세계 자체가 천천히… 오염되는 것처럼.”

한새는 눈을 감았다. 공허병. 그는 이미 그런 사람들을 여러 번 보았다. 멀쩡히 살아 있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아무런 의지 없이 움직이는 사람들. 그것이 단순한 절망 때문이 아니었다니.

“이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한 이야기군.” 강림의 목소리에는 경악이 서려 있었다. “우리가 싸우는 것은 단순한 황제가 아니었어. 그럼 어떻게 해야 저 심연의 존재를 막을 수 있지?”

지혜는 양피지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고대 문헌에는 ‘어둠의 계약’을 끊을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 기록되어 있어. 바로, 계약이 이루어진 ‘장소’에서 ‘심연의 표식’을 파괴하는 것.”

“계약이 이루어진 장소… 칠흑의 첨탑 말인가?” 유나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첨탑의 가장 깊은 곳, 황제의 옥좌 아래에는 ‘심연의 제단’이 숨겨져 있을 거야. 그곳에 심연의 존재와 연결된 표식이 있을 테고. 그걸 파괴해야 해.” 지혜의 눈빛은 결연했다. “하지만… 그곳은 황제의 심장과도 같은 곳. 가장 강력한 마법으로 봉인되어 있을 거야. 우리가 감히 접근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침묵이 흘렀다. 칠흑의 첨탑. 그곳은 제국의 모든 힘이 응축된 요새였다. 그곳에 발을 들이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알았다. 첨탑이 무너지지 않으면, 그들 모두가 천천히 영혼을 잃고 공허한 시체가 될 것이라는 것을.

“죽을 각오를 해야 하는군.” 강림이 먼저 침묵을 깼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촛불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차피 이렇게 사느니, 싸우다 죽는 게 낫다. 적어도 우리 후손들은 이 지옥을 물려받지 않을 테니.”

한새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지만, 그의 눈빛은 더 이상 절망으로 가득 차 있지 않았다. 오히려 섬뜩하리만큼 차가운 결의가 깃들어 있었다.

“난 갈 거야.” 한새가 말했다. “첨탑으로. 내 여동생과, 이 땅의 모든 영혼을 위해. 그 심연의 표식이라는 것을 내가 파괴하겠어.”

유나는 불안한 눈빛으로 한새를 바라봤다. “하지만… 어떻게? 그곳은 철통같은 방어야.”

“방법은 찾아야지. 내가 미끼가 되든, 아니면 다른 길을 찾든.” 한새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그림자가 촛불에 길게 늘어졌다. “지혜, 너는 그 심연의 표식이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약점이 있는지 더 찾아봐 줘. 강림, 당신은 우리가 첨탑에 접근할 수 있는 경로를 찾아야 해. 난… 이 거미줄 같은 제국의 감시망을 뚫고, 가장 깊은 곳으로 침투할 방법을 찾을게.”

그의 말은 마치 심연의 밑바닥에서 울려 퍼지는 메아리 같았다. 희망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순수한 증오와 복수심으로 가득 찬 결의였다. 그들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어둠에 잠긴 수도 아르카눔, 그 심장부에 자리한 칠흑의 첨탑은 이제 단순한 요새가 아니라, 그들을 삼키려는 거대한 입과 같았다. 그리고 그들은 그 입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바깥에서는 다시 희미한 피 냄새가 바람을 타고 불어왔다. 멀리서, 칠흑의 첨탑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마법의 빛이 밤하늘을 섬뜩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것은 제국의 존재를 알리는 동시에, 그들이 맞서 싸워야 할 거대한 공포의 증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