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시간여행)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균열의 시작

강민준은 차가운 금속 손잡이를 잡았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무게감이 손에 감겼다. 심장이 고요하게 울렸다. 복잡한 기계음으로 가득 찬 이 서버실은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이선우의 파멸을 잇는 교차로였다. 어둠 속에서 푸른빛을 깜빡이는 수많은 인디케이터들이 마치 그의 재림을 축하하는 불꽃처럼 느껴졌다.

그는 능숙하게 장갑 낀 손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키스킨 아래에서 묵직하게 눌리는 감각은 현실감을 더해주었다. 불과 몇 초 만에 보안망이 뚫리고, 그의 눈앞에는 이선우가 지난 5년간 공들여 쌓아 올린 가상의 성채, ‘넥서스’의 핵심 데이터베이스가 활짝 열렸다. 입술 끝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이선우, 네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그게 내가 꿈꾸던 단 하나의 낙원이다.”

그가 중얼거렸다. 낮은 목소리였지만, 서버실을 가득 메운 팬 소음 속에서도 또렷하게 울리는 듯했다. 민준의 눈은 칠흑 같았고, 그 안에는 끓어오르는 증오와 차가운 이성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섬세하게, 그러나 거침없이 데이터를 조작하고 파편화시켰다. 단순한 삭제가 아니었다. 넥서스 프로젝트의 핵심 기술이었던 ‘분산형 AI’의 소스 코드와 연결된 다른 프로젝트들의 데이터를 정교하게 뒤틀어놓는 작업이었다. 마치 심장에 기생충을 심듯, 서서히 갉아먹을 독을 주입하는 과정이었다.

몇 분 후, 모든 작업이 완료되었다. 흔적은 남기지 않았다. 아니, 흔적처럼 보이는 교란된 정보를 수없이 뿌려놓았다. 아무리 뛰어난 보안 전문가라도 진실에 도달하기까지는 한참을 헤맬 터였다. 그 혼란 속에서 이선우는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민준은 USB를 뽑아 주머니에 넣었다. 뒤를 돌아 서버실을 나섰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그림자처럼 건물 지하를 벗어났다. 차가운 밤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서울의 야경은 여전히 번쩍였다. 수많은 불빛들 아래, 이선우는 아직도 자신이 왕국의 주인인 줄 알겠지.

* * *

다음 날 아침, 이선우는 비서실장의 다급한 전화에 잠이 깼다. 눈을 비비며 전화를 받은 그의 얼굴은 삽시간에 굳어졌다.

“뭐라고? 넥서스 서버에 이상 징후가 감지됐다고? 지금 장난해? 어제까지 멀쩡했잖아!”
“아니, 이선우 이사님. 단순히 이상 징후가 아니라… 메인 서버와 백업 서버 간의 데이터 불일치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현재 긴급 점검 중인데, 원인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다급함을 넘어 절망에 가까웠다. 선우는 벌떡 일어나 침대에서 내려섰다. 잠이 확 달아났다. 넥서스 프로젝트는 그가 지난 5년 동안 모든 것을 바친 역작이었다. 강민준, 그 망할 자식이 죽고 난 후, 오롯이 자신의 손으로 일궈낸 성공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상 징후라니?

“지금 당장 본사로 갈 테니, 최고 기술 책임자랑 보안 팀장 전부 대기시켜! 빌어먹을!”

그는 격렬하게 전화를 끊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창밖으로 떠오르는 아침 해가 왜 이리도 불길하게 느껴지는지. 불과 몇 년 전, 그는 강민준의 뒤에서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2인자였다. 하지만 민준이 죽고, 그의 기술과 인맥을 고스란히 흡수하면서 이선우는 비로소 빛을 봤다. 자신에게 굴복하지 않던 민준의 오만함과 재능을 질투하고, 결국은 그를 밀어버렸던 그 순간의 쾌감은 아직도 생생했다.

*그래, 그게 내 선택이었어. 네가 사라져야 내가 뜰 수 있었지.*

하지만 지금, 그 모든 것이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젠장… 설마… 강민준 그 자식의 잔재가 아직 남아있는 건가?”

혼란스러운 머릿속에 불현듯 떠오른 이름에 선우는 몸서리를 쳤다. 그는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 * *

민준은 아침 뉴스를 보며 식사를 했다. TV에서는 넥서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선우의 회사가 기술적인 문제로 주가가 급락하고 있다는 속보가 흘러나왔다. 기자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넥서스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민준은 태연하게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시작됐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어제 그가 심어놓은 독은 이제 막 퍼지기 시작한 참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오류처럼 보이겠지만, 그 오류를 파고들수록 이선우는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게 될 터였다. 넥서스의 핵심 기술인 분산형 AI는 치명적인 결함에 직면할 것이고, 그것은 모든 관련 프로젝트에 도미노처럼 영향을 미칠 것이다.

“형, 요즘 일찍도 다니고, 뉴스도 보고… 갑자기 부지런해졌네?”

늦잠을 자다 일어난 여동생 강수진이 하품을 하며 식탁에 앉았다. 그녀는 민준의 유일한 혈육이자, 그가 다시 시간을 되돌린 이유 중 하나였다. 전생에서 수진은 오빠의 죽음 이후 충격으로 병약해져 결국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이번 생에서는 절대 그 꼴을 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응, 신경 쓸 일이 좀 있어서.”
“무슨 일인데? 너무 무리하지 마. 오빠 요새 안색이 좀 안 좋아 보여.”

수진의 걱정스러운 눈빛이 민준의 얼굴을 스쳤다. 그는 애써 미소 지었다.

“괜찮아. 다 잘될 거야.”

괜찮을 리 없었다. 아직 복수의 길은 멀었다. 이선우에게 갚아줄 고통은 산더미처럼 남아있었다. 수진은 그의 말을 믿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토스트를 입에 넣었다. 그 순진한 얼굴을 보며 민준은 다시금 다짐했다. 이선우, 네가 나에게서 빼앗아간 모든 것을 되찾을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한 고통을 돌려줄 것이다.

점심 무렵, 민준은 선우의 회사로 향했다. 그는 지금 그 회사에서 평범한 개발자로 위장하고 있었다. 회귀 후, 그는 이선우가 자신을 제거하기 전의 시점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다. 자신이 죽음을 맞이했던 그 날과 같은 상황을 만들되, 결과는 정반대가 되도록.

사무실은 예상대로 어수선했다. 이선우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고, 팀원들은 초조하게 모니터를 응시하거나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민준은 제 자리로 가 앉았다. 그때, 선우의 비서가 민준의 이름을 불렀다.

“강민준 씨, 이사님께서 잠깐 들어오라고 하십니다.”

민준은 올 것이 왔다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심장이 조용히, 그러나 강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 * *

이선우의 집무실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이선우는 넥타이를 풀고 머리를 흐트러뜨린 채 테이블에 놓인 태블릿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피곤함과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어제 밤샘 분석을 했는데, 문제가 더 심각합니다, 이사님. 단순히 데이터 불일치 수준이 아니에요. 핵심 알고리즘에 구조적인 결함이 발생한 것 같습니다. 외부 공격 흔적은 없는데… 마치 처음부터 존재했던 오류처럼 보입니다.”

CTO가 허탈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처음부터 존재했다고? 말도 안 돼! 우리가 몇 년을 개발했는데 그런 결함을 못 봤을 리가 없잖아! 다시 찾아봐! 무슨 해킹 흔적이라도 있을 거야!”

선우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그때, 민준이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섰다. 선우는 민준을 힐끗 보더니 다시 CTO에게 시선을 돌렸다.

“강민준 씨, 지금 자네가 맡은 부분은 문제없나?”

선우가 갑자기 민준에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 전생에서 선우는 민준의 재능을 늘 질투했다. 회귀 후, 민준은 과거의 자신처럼 선우를 자극하지 않도록 조용히 자신의 역량을 감추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뛰어난 능력은 감출 수 없는 것이었다.

“네, 이사님. 제가 담당하는 부분은 현재까지 이상 없습니다. 다만… 넥서스 전체 구조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원인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민준은 최대한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의 말은 선우의 신경을 더욱 긁었다. 민준의 뛰어난 분석력은 선우가 늘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그래… 네 말대로겠지. 자네는 넥서스 초창기부터 나와 함께 개발했던 핵심 멤버였으니까. 다른 사람들보다는 잘 알 거야. 이 문제, 어떻게 생각하나? 솔직히 말해봐.”

선우는 탁자를 손으로 짚고 민준을 노려봤다. 그의 눈빛은 도움을 청하면서도, 동시에 민준의 어떠한 비판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위협적이었다. 민준은 속으로 비웃었다. *이제야 내게 도움을 청하는군, 이선우. 하지만 내가 줄 도움은 오직 파멸뿐이다.*

“이사님, 넥서스 프로젝트는 지나치게 복잡한 분산형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초기 설계 단계부터 확장성을 염두에 두어 여러 기술을 융합했죠. 그런데 만약… 그 초기 설계 단계에서부터 아주 미세한, 하지만 치명적인 오류가 있었다면… 지금까지는 드러나지 않다가, 데이터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쌓이면서 임계점을 넘어 터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민준의 말은 논리적이었다. 그의 말에 CTO와 보안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듯한 가설이었다. 그리고 그 가설은, 이선우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할 초기 설계 단계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었다.

“말도 안 돼! 내가 직접 설계하고 검토했는데, 그런 오류가 있을 리가 없어!”

선우는 격렬하게 부정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불안하게 흔들렸다. 민준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정확히 그 지점을 노린 것이었다. 그가 심어놓은 독은 바로 초기 설계의 ‘미세한’ 오류였다. 완벽주의자였던 이선우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동시에 스스로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오류.

“이사님,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이겁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넥서스 프로젝트의 모든 코드를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처음부터 존재했던 실수를 찾아내야 합니다.”

민준은 차분하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냉정하고 객관적이었지만, 선우에게는 사형 선고처럼 들렸다. 모든 코드를 처음부터 다시 검토한다는 것은, 넥서스 프로젝트를 사실상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과 같았다. 천문학적인 시간과 비용이 들어갈 것이고, 그동안 회사는 파산할 위기에 처할 것이다.

“처음부터… 다시….”

이선우는 넋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그의 눈에는 절망이 비쳤다.

민준은 그 모습을 보며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아직 시작에 불과해, 이선우. 네가 나에게서 빼앗아간 모든 것을 되찾는 것은 물론, 네가 겪게 될 고통은 이제부터가 진짜다.* 그는 서류를 내려놓고 창밖을 응시했다. 멀리서도 도시에 드리워진 어둠이 보였다. 그 어둠 속에서, 이선우의 왕국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파괴의 시작은, 바로 강민준, 자신이었다.

복수의 칼날은 이제 막 이선우의 심장을 향해 깊숙이 박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