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나 학원, 증기 기관의 웅장한 심장 소리가 시계탑의 정교한 톱니바퀴와 함께 밤하늘에 울려 퍼지는 곳. 고도로 훈련된 마법사들과 기계공학자들이 모여 시대의 첨단 마법 공학을 탐구하는, 세상의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배움의 전당이었다. 하지만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 또한 짙어지는 법. 리안은 그 그림자의 존재를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있었다.
“리안, 네 차례야. A-117 아크로스 동력 코어 해제 공식을 완성하라고. 멍하니 있지 말고.”
교수님의 목소리가 리안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눈앞의 칠판에는 복잡한 룬 문자와 기어 조합도가 뒤섞인 마법 공학 문제가 빼곡했다. 하지만 리안의 시선은 창밖을 향해 있었다. 밤하늘을 수놓은 아르카나 학원의 불빛들, 그 아래로 아득하게 펼쳐진 거대한 증기 파이프라인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자동 인형들의 실루엣. 그 모든 웅장함 아래, 뭔가 깊숙이 감춰진 비밀이 도사리고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예감이 리안의 심장을 자꾸만 자극했다.
“리안!”
“아, 네! 교수님!”
화들짝 놀라며 펜을 든 리안의 옆구리를 세라가 쿡 찔렀다. 세라는 리안과 동갑내기 친구로, 학원 내에서도 손꼽히는 룬 마법 이론 전문가였다. 그녀의 깔끔하게 묶어 올린 머리카락 아래로 반짝이는 증기 안경이 늘 그녀의 진지함을 대변했다.
“또 딴생각했지? 이러다 졸업도 못 하겠다 너.”
세라의 잔소리에도 리안은 그저 씨익 웃어 보였다.
“별거 아니야. 그냥 학원의 저 아래쪽은 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서.”
“아래쪽? 설마 ‘감마 구역’ 말하는 거야? 거긴 학원의 폐기물 처리장이잖아. 괜히 이상한 데 관심 두지 마.”
세라는 질색하며 손을 저었다. 감마 구역. 학원 내에서 가장 깊고, 가장 폐쇄적인 구역. 아무도 그곳에 대해 자세히 말하려 하지 않았고, 심지어 학원 지도를 봐도 그 구역은 단순히 ‘제한 구역’으로만 표시되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폐기물 처리장이라기엔 너무나 삼엄한 보안, 그리고 가끔씩 들려오는 이상한 소문들이 리안의 호기심을 부추겼다.
수업이 끝나고, 늘 그렇듯 리안과 세라는 함께 기숙사로 향했다. 복도를 지나는 길, 고학년 선배 몇몇의 대화가 리안의 귀를 잡아챘다.
“어제 야간 순찰 돌다가 감마 구역 쪽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어.”
“또 그 얘기야? 그냥 낡은 증기 파이프 소리겠지.”
“아니야. 뭔가… 기계적인 울음소리 같았어. 마치 생명체 같은… 게다가 어제 밤늦게 아르카나 공방 쪽 연구원들이 잔뜩 장비를 싣고 감마 구역으로 내려가는 걸 봤다니까.”
“쉬잇! 함부로 떠들지 마. 감마 구역 얘기는 자칫하면 퇴학 사유가 될 수도 있어. 선배들 중에도 그곳을 파고들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선배들의 목소리는 이내 뚝 끊겼다. 리안은 세라와 눈을 마주쳤다. 세라의 표정에도 어렴풋한 불안감이 서려 있었다.
“봐. 내가 뭐랬어. 그냥 폐기물 처리장이 아니라니까?” 리안의 눈이 반짝였다. “궁금하지 않아? 대체 저 아래에 뭐가 있길래 그렇게 감추려 하는지?”
세라는 한숨을 쉬었다. “안 그래도 요즘 학원 분위기가 이상해. 평소보다 자동 인형 순찰대도 늘어났고, 도서관의 열람 제한 구역도 더 많아졌어. 그런데 굳이 우리가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잖아?”
“하지만 아르카나의 빛나는 지성 아래 숨겨진 진짜 진실이라면? 그걸 모른 척 지나칠 수는 없어. 어쩌면… 위대한 발견일 수도 있잖아?”
리안의 눈빛에 장난기가 섞였지만, 그 속에는 진심 어린 탐구심이 빛나고 있었다. 세라는 리안의 이런 면모를 잘 알고 있었다. 한번 꽂히면 물불 안 가리는 성격.
“하… 알았어, 알았어. 너 혼자 가면 더 큰 사고 칠 게 뻔하니까. 대신 내가 계획을 짠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철수하는 거야.”
세라의 말에 리안은 활짝 웃었다. “역시 세라! 너 없으면 난 아무것도 못 해.”
—
그날 밤늦게, 모든 기숙사가 고요에 잠들었을 무렵, 리안과 세라는 각자의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학원 지하의 오래된 유지보수 통로 입구 앞에 섰다. 세라의 손에는 학원 도면이 홀로그램으로 떠다니는 소형 마법 시계와 몇 가지 해제용 룬 도구가 들려 있었다. 리안은 허리춤에 휴대용 조명탄과 소형 만능 기어 렌치를 챙겼다.
“이곳은 예전에 폐쇄된 증기 배관 통로야. 도면상으로는 더 이상 연결된 곳이 없다고 되어있지만… 학원 지하 건축물은 계속 확장되어 왔어. 분명 어딘가 이어지는 곳이 있을 거야.”
세라가 손전등을 비추자, 녹슨 철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굳게 잠긴 자물쇠에는 오래된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리안이 렌치를 꺼내 들려 하자 세라가 그를 말렸다.
“안 돼. 물리적인 충격은 경보를 울릴 수도 있어. 룬 마법으로 해제해야지.”
세라는 자물쇠에 손을 얹고 조심스럽게 고대 룬 문자를 새겨 넣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끝에서 푸른빛이 번쩍이더니, 이내 자물쇠가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풀렸다.
“역시 세라!”
리안이 감탄사를 내뱉자 세라가 콧방귀를 뀌었다. “자, 가자. 조용히.”
철문이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열리자, 안에서는 차갑고 습한 공기가 훅 끼쳐왔다. 오래된 금속 냄새와 함께 알 수 없는 기름 냄새가 섞여 있었다. 리안이 휴대용 조명탄을 작동시키자, 작은 에테르 불꽃이 어둠을 밝혔다.
통로는 좁고 미로 같았다. 낡은 증기 파이프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고, 가끔씩 ‘쉬이익’ 하고 증기가 새는 소리가 섬뜩하게 들렸다. 리안과 세라는 발소리를 죽이며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통로의 끝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동시에, 낮게 울리는 웅장한 기계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단순한 파이프 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거대한 심장이 뛰는 듯한, 규칙적이면서도 묘하게 불길한 박동이었다.
“이 소리… 전에 들었던 적이 없어.” 세라의 목소리에 긴장감이 서렸다.
“더 깊이 내려가는 것 같아. 분명 학원 지하실보다도 더 아래일 거야.”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빛이 새어 나오는 틈새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낡은 철문이 있었다. 하지만 이전의 자물쇠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정교하고 복잡한 보안 장치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황동과 강철로 이루어진 거대한 문은 고대 룬 문자로 가득했고, 그 룬 문자들은 미세하게 푸른빛을 내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이제 단순한 기계음이 아니었다. ‘철컥… 징징… 욱…’ 무언가가 힘겹게 움직이는 소리, 그리고 낮게 깔린 기계적인 신음소리가 섞여 들렸다. 마치 거대한 생명체가 고통받는 듯한, 소름 끼치는 소리였다.
세라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봉인 룬이야. 학원의 어떤 자료에도 이런 종류의 룬은 없어. 너무나도… 원시적이면서도 강력해.”
그녀가 룬에 손을 대자, 갑자기 문에서 강력한 정전기가 튀어 올랐다. 세라가 작게 비명을 지르며 손을 거두었다.
“이건… 우리가 건드릴 수 있는 게 아니야.”
하지만 리안의 눈은 그 문에 홀린 듯 고정되어 있었다. 문 옆에는 낡은 제어판이 있었다.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지만, 그중 몇몇 버튼은 최근에 만진 듯 깨끗했다. 그리고 제어판 위에는 낡은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누군가 급하게 쓴 듯한, 갈겨 쓴 글씨.
**”경고: 동력원 불안정. 자가 수복 기능 저하.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경우, 학원 전체의 에테르 흐름이 역류할 위험이 있습니다. 서둘러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동력원? 학원의 에테르 흐름? 리안과 세라는 서로를 바라봤다. 아르카나 학원의 모든 마법 공학은 학원 지하 깊숙한 곳에 위치한 ‘에테르 저장고’에서 공급되는 순수한 에테르를 동력원으로 삼는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 경고문은 마치 그 동력원이 단순한 저장고가 아닌, 무언가 ‘살아있는’ 존재처럼 느껴지게 했다.
그때였다. 웅장한 기계음과 함께 들려오던 신음소리가 갑자기 거칠어졌다. ‘크르르릉… 쾅!’ 하는 격렬한 소리가 문 너머에서 울려 퍼졌다. 문을 감싸고 있던 룬들이 미친 듯이 번쩍이기 시작했고, 통로 전체가 흔들렸다. 천장에서 흙먼지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안 돼! 이대로 있다간 통로가 무너질 거야!” 세라가 리안의 팔을 잡아끌었다. “도망쳐야 해!”
하지만 리안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거대한 철문, 그 너머에서 들려오는 기계적인 울부짖음. 그리고 낡은 경고문. 이 모든 것이 거대한 퍼즐 조각처럼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학원의 모든 영광과 빛이, 저 문 너머의 ‘무언가’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이라면?
‘쾅! 쾅!’
문이 안쪽에서 찢어발겨질 듯 격렬하게 흔들렸다. 룬 문자들이 불안정하게 깜빡였다. 그리고 그 거대한 문틈 사이로, 아주 잠시,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붉은 기계 눈동자 같은 섬광이 비쳤다. 이어진 것은 금속이 긁히는 듯한 소름 끼치는 비명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기계 소리가 아니었다. 고통받는 존재의 절규였다.
리안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곳은 단순한 폐기물 처리장도, 일반적인 에테르 저장고도 아니었다. 학원 지하 깊숙한 곳에는, 아르카나 학원 전체를 지탱하는 끔찍한 금기가 잠들어 있었다.
“리안! 어서!”
세라의 다급한 외침에 리안은 마침내 정신을 차렸다. 그가 도망치기 위해 몸을 돌리는 순간, 문 너머에서 다시 한번 섬광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섬광과 함께, 짧은 순간이지만 거대한 철문 틈새로 기괴한 형태의 그림자가 비쳤다.
인간의 팔과 흡사하지만 수많은 기어와 증기 파이프로 이루어진, 거대한 기계 장치와 유기체가 뒤섞인 듯한 형상. 그것이 마치 문을 부수려는 듯 격렬하게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형상의 중심에서, 붉고 강렬한 빛을 뿜는 하나의 눈동자가 리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 눈동자는 고통과 분노, 그리고 지독한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리안은 그 눈동자를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의 심장이 불안하게 요동쳤다. 아르카나 학원의 심장부에 숨겨진 진실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한 것이었다.
“우린… 뭘 발견한 거지, 세라…?”
리안의 목소리는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세라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고, 눈은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뒤에서 문이 굉음과 함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황급히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금기가 그들을 향해 깨어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