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협 (신선)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1장: 시작의 불씨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여명, 청암골은 묵직한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뼈를 에는 듯한 겨울 바람이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를 휘감아 돌며 날카로운 비명 같은 소리를 토해냈다. 황량한 들판 너머로 간간이 보이는 것은 얼어붙은 흙과 듬성듬성 솟아난 마른 풀뿐,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작은 마을은 거대한 제국의 변방에 위치한 수많은 촌락 중 하나였고, 삶은 언제나 가혹했으며, 지금은 더욱 그러했다.

강진우는 오두막 문간에 기대어 앉아 멀리 동이 터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몸은 지쳤지만, 정신은 칼날처럼 날카롭게 깨어 있었다. 그의 눈은 핏발이 서 있었고, 굳게 다문 입술은 그의 내면에 어떤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음을 짐작게 했다. 며칠 밤낮을 쉬지 않고 얼어붙은 밭을 갈아엎고, 눈 덮인 산을 헤치며 겨우 몇 줌의 약초와 마른 장작을 구해왔지만, 허기는 가시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자신을 갉아먹는 듯했다.

끼익, 진우의 등 뒤에서 낡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뼈만 남은 팔다리로 겨우 몸을 지탱하는 노모가 삐걱거리는 문을 붙잡고 힘없이 진우를 돌아보았다.

“진우야, 밤새 잠도 못 자고… 그러다 병이 난다.”

쉰 목소리에는 걱정과 함께 체념이 서려 있었다. 진우는 돌아보지 않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괜찮습니다, 어머니. 잠이 오지 않아서요.”

잠이 오지 않는 건 배고픔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젯밤, 이웃 마을에서 들려온 소식 때문이었다. 황제의 호위병들이 또다시 들이닥쳐 마을의 곡식을 모조리 걷어갔다는 소식. 남은 것이라곤 씨앗으로 쓸 몇 줌의 좁쌀뿐이었다고 했다. 이제 곧 청암골에도 닥쳐올 차례였다.

어머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다시 오두막 안으로 사라졌다. 진우는 이를 악물었다. 대체 언제까지 이 지옥 같은 삶이 계속되어야 하는가. 제국의 황금빛 궁정에서는 매일 밤 기름진 고기와 값비싼 술로 잔치를 벌일 터인데, 이곳 변방의 백성들은 풀뿌리조차 찾아 먹을 수 없어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신선들의 힘으로 세워졌다는 위대한 제국은, 이제 그 신선들의 이름을 더럽히는 악랄한 압제자로 변해 있었다.

해는 이미 중천에 떠오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멀리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들이 보였다. 진우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듯했다. 올 것이 왔다.

“호위병이다!”

누군가의 다급한 외침이 적막했던 마을에 비수처럼 박혔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황망히 움직이는 그림자들이 보였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고, 노인들은 공포에 질려 오두막 안으로 숨어들었다. 그러나 숨을 곳은 없었다. 호위병들은 매번 귀신같이 마을의 모든 것을 찾아냈다.

말발굽 소리가 진동하며 진우의 오두막 앞 넓은 마당으로 들이닥쳤다. 번쩍이는 갑옷과 창을 든 호위병들, 그 선두에는 기름진 배를 자랑하는 제국의 관리, 진명대(陣明大)가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거만함과 경멸이 가득했다. 그는 이 작은 촌락의 늙고 병든 자들을 보잘것없는 벌레처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천한 것들아! 감히 하늘 같은 황제 폐하의 세금을 미루려 드느냐! 당장 나와서 공물(貢物)을 바치지 못할까!”

진명대의 목소리는 쩌렁쩌렁 울리며 마을 사람들의 귓전을 때렸다. 그는 채찍을 휘둘러 흙바닥을 내리쳤다. “착! 착!” 하는 소리가 날 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움찔거리며 몸을 웅크렸다.

오두막에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기어 나왔다. 야윈 얼굴과 퀭한 눈빛, 비루먹은 옷차림은 그들이 얼마나 처절하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말해주었다. 그들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지만, 호위병들은 그나마 남아 있는 짚더미 속의 마른 곡식, 심지어 낡은 농기구까지도 샅샅이 뒤져 가져갔다.

“이게 전부입니까? 감히 황제 폐하를 기만하려 드느냐!”

진명대가 한 노인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노인은 파리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나으리… 정말 이것이 전부입니다. 지난달에 이미…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이제 씨앗으로 쓸 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러다간 내년에 심을 곡식조차 없어….”

노인의 말은 비굴한 변명처럼 들렸지만, 그 속에는 절박한 생존의 외침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진명대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그저 세금을 착복하려는 미천한 백성들의 꾀병으로 보일 뿐이었다.

“입 다물어라! 이 천한 것 같으니! 황제 폐하의 은혜로 목숨을 부지하는 주제에 감히 불평을 늘어놓는가! 네놈이 숨겨둔 곡식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믿느냐?”

진명대는 채찍을 들어 노인의 등을 후려쳤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노인은 휘청이며 쓰러졌다. 그의 등에는 붉은 채찍 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졌다. 노인은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흙바닥에 엎드렸다.

마을 사람들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미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었다. 저항해봤자 죽음뿐이라는 것을 그들은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진우는 달랐다. 그의 눈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이글거렸다. 노인의 등에서 흘러나오는 핏자국이 그의 눈에 선명하게 박혔다.

“멈춰라!”

낮게 으르렁거리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이내 우레와 같은 포효로 변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감히 우리 마을 사람들을 짐승처럼 다루는 것이냐!”

진우였다. 그의 발걸음이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섰다. 그의 두 눈은 진명대를 향해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뿜어냈다. 진우의 갑작스러운 외침에 모든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는 경악과 함께 희미한 희망, 그리고 더 큰 두려움이 스쳐 지나갔다. 진명대와 호위병들 역시 당황한 듯 그를 노려보았다.

“이 천한 놈이 감히 누구에게 고함을 치느냐! 당장 끌어내라!”

진명대의 호통과 함께 호위병 두 명이 진우에게 달려들었다. 진우는 순간적으로 몸을 날려 첫 번째 병사의 주먹을 피하고는 그의 팔을 잡아 비틀었다. 병사는 뼈가 부러지는 듯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두 번째 병사가 창을 휘둘렀지만, 진우는 재빨리 몸을 낮춰 피하고는 그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오랜 시간 척박한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다져진 진우의 몸은 단단했고, 그의 움직임은 투박하지만 맹렬했다. 호위병들은 진우가 이토록 저항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들의 눈에는 그는 그저 나약한 농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런 무엄한! 당장 이놈을 죽여라!”

진명대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남은 호위병들이 동시에 창을 들고 진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진우는 잠시 망설였다. 수십 명의 무장한 호위병들을 혼자서 상대할 수는 없었다. 그 순간, 그의 등 뒤에서 나지막하지만 서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멈춰라! 이 어리석은 자들아. 이 아이를 해치려 한다면, 너희들의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피가 너희들의 칼날 위에서 춤출 것이다.”

모두의 시선이 소리가 들린 곳으로 향했다. 한 노파가 지팡이에 의지한 채 흐트러진 백발을 휘날리며 서 있었다. 쭈글쭈글한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새겨져 있었지만, 그녀의 눈빛은 밤하늘의 별처럼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노파가 청암골의 가장 나이 많은 어르신인 ‘할머니’임을 알아보고 경외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잊혀진 옛 신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지만, 호위병들에게는 그저 미친 노파로 보일 뿐이었다.

“누구냐! 이 늙은 여자가 감히 황제 폐하의 명령을 거역하려 드느냐!”

진명대가 할머니를 향해 소리쳤지만, 할머니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빛은 오히려 더욱 깊고 날카로워졌다.

“나는 그저 이 땅의 오래된 영혼들이 전하는 경고를 전할 뿐이다. 너희는 이 아이에게서 너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불꽃을 건드렸다. 이 불꽃은 결국 너희 제국의 모든 것을 태워버릴 것이다.”

할머니의 말은 허공에 울려 퍼지며 기이한 파장을 만들어냈다. 진명대와 호위병들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미신이라 치부하려 해도, 노파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범상치 않았다. 그들은 잠시 주춤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진우는 쓰러진 노인을 일으켜 세워 자신의 뒤로 숨겼다.

“흥! 망령든 노파의 헛소리를 믿는단 말이냐! 모두 정신 차려라! 저놈들을 당장 처단하고 마을을 불태워라!”

진명대는 자신의 불안감을 감추기 위해 더욱 거칠게 명령했다. 호위병들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진우와 할머니를 향해 일제히 창을 겨누었다. 진우는 피할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대로 죽음을 맞이하든가, 아니면 여기서 모든 것을 걸고 싸우든가.

진우는 차가운 칼날 앞에서 숨을 고르며 눈을 감았다. 그의 심장 속에서는 방금 할머니가 말했던 ‘불꽃’이 거대한 파도처럼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히 분노가 아니었다. 억압받던 백성들의 절규, 조용히 스러져간 수많은 영혼들의 한이 응축된, 거대한 의지의 불꽃이었다.

진우는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혼란스럽거나 절망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비록 혼자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 청암골의 모든 이들의 염원을 짊어진 거대한 존재가 된 것 같았다.

“너희는 결코 우리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없다!”

진우의 목소리는 힘찼다. 그것은 단순한 외침이 아니었다. 거대한 제국의 심장을 향해 던져진, 작은 돌멩이였지만, 그 속에는 폭풍을 일으킬 잠재력을 가진 거대한 에너지가 담겨 있었다. 호위병들이 창을 들고 달려들었다. 진우는 망설임 없이 그들을 향해 몸을 던졌다. 마치 스스로 불꽃이 되어 잿더미가 될 것을 알면서도, 온 세상을 태워버릴 불씨가 되겠다는 듯이.

이것은 시작이었다. 길고 긴 밤의 서막. 그리고 어느 날, 거대한 제국을 집어삼킬, 작은 불씨의 탄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