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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의 심장 요새, 제17화: 유리벽 너머의 그림자**

정적. 침묵은 늘 이지훈의 가장 친한 동반자였다. 비록 그의 등 뒤에서는 함선의 거대한 심장이 뛰는 듯한 미미한 진동과, 복도를 오가는 승무원들의 절제된 발소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이지훈에게 지금 가장 강렬한 소리는 오직 그 자신의 사고(思考)가 만들어내는 미세한 파열음뿐이었다.

“자네는 늘 이런 곳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군.”

강 함장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조심스럽게 들려왔다. 그는 거친 숨을 고르며 방금 전까지 이지훈이 서 있던 지점, 즉 참혹한 현장 바로 앞의 투명한 에너지 실드 벽에 바짝 다가섰다. 실드는 미세한 전류를 흘려보내며 외부의 모든 오염을 차단하고 있었지만, 시야만큼은 완벽하게 보장했다. 마치 거대한 쇼케이스 안에 전시된 끔찍한 예술 작품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이지훈은 대답 없이 방 안에 갇힌 그림자를 응시했다. 시신은 방 한가운데, 푹신한 제국 스타일 카펫 위에 쓰러져 있었다. 자세는 경련 끝에 굳어버린 듯 비틀려 있었고, 얼굴은 미세한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육안으로도 확연히 보이는, 치명적인 신경 독극물 반응이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시신 주변, 그리고 방 전체를 꼼꼼하게 살피는 이지훈의 시선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방은 완벽하게 봉쇄되어 있었습니다.” 강 함장이 침음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믿기지 않는 현상에 대한 혼란과, 해결해야 할 의무감 사이의 불안감이 섞여 있었다. “생체 인식 잠금장치는 저의 지문으로도 열 수 없었고, 강제로 해킹하려는 시도는 경보를 울렸죠. 모든 전원과 통신 포트도 제가 직접 확인했습니다. 외부와 내부를 연결하는 모든 경로가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었어요.”

“환기구도요?” 이지훈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시신에서 떨어지지 않고, 그 주변의 바닥 패턴을 훑고 있었다.

“네, 함선 설계도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이 VIP룸의 환기구는 사람 한 명은커녕, 큰 고양이 한 마리도 드나들 수 없을 정도로 좁습니다. 게다가 모든 환기구에는 자동 차단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었고요. 독극물 유입은 불가능합니다.”

“창문은요?”

강 함장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이 방은 함선 중앙부 데크에 위치해 있습니다. 애초에 외부로 연결되는 창문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벽은 특수 합금으로 이루어져 있고, 강제로 파괴하려는 시도도 없었습니다. 벽의 패널 하나하나까지 전부 검사했습니다. 외부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이지훈은 마침내 시신에서 시선을 떼어, 방 전체를 파노라마처럼 훑었다. 고급스러운 가구들, 벽에 걸린 고대 문양의 예술품, 천장의 은은한 조명. 그 모든 것이 완벽하게 평온해 보였다. 마치 이곳에서 끔찍한 살인이 벌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부조리한 농담 같았다.

“이 방의 유일한 출입구는 저 문이죠.” 이지훈이 벽 한쪽에 박힌, 손바닥만 한 인식 패널이 붙어 있는 육중한 금속 문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 문은 오직 피해자의 생체 인식 데이터로만 열리도록 설정되어 있었고.”

“맞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 문은 잠겨 있었고, 어떠한 외부 흔적도 없었습니다. 피해자는 외부와 단절된 채, 자기 방에서 독살당한 겁니다.” 강 함장의 목소리에 답답함이 묻어났다. “어떻게 독극물이 유입되었는지,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함선 보안 시스템은 완벽했습니다. 침입자는 없었습니다.”

이지훈은 잠시 침묵했다. 그의 눈은 마치 고성능 스캐너처럼 방의 구석구석을 훑고 있었다. 가구의 미세한 스크래치, 벽의 질감, 천장의 공기 순환기 그릴. 그의 시선은 마치 아무것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피해자는 죽기 전에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이지훈이 다시 물었다.

“저희는… 기록을 확인했습니다. 마지막 몇 시간 동안 피해자는 휴식 중이었고, 외부와의 통신 기록은 전혀 없었습니다. 심지어 음식이나 음료 배달도 없었습니다. 혼자였습니다.”

“혼자.” 이지훈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의 눈길이 시신 주변, 특히 손이 닿을 만한 반경을 다시 한번 훑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강 함장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혹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아주 작은 무언가를 포착한 것이다.

피해자의 늘어진 손 바로 옆, 고급스러운 카펫 위에는 투명한 액체가 아주 미량 묻어 있었다. 너무나 작아서, 조명에 반사되지 않으면 쉽게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강 함장이 보고한 신경 독극물의 반응은 푸른빛이었다. 하지만 이 액체는 투명했다. 그리고… 그 옆에, 아주 희미하게, 마치 누군가가 발로 문질러 지우려다 만 것 같은, 육안으로 거의 식별 불가능한 은색 가루 자국이 있었다.

이지훈은 시야를 좁혀 그 미세한 자국들을 응시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은 바닥에서부터 시작하여 시신, 그리고 그 너머의 벽까지 이어졌다.

“함장님.” 이지훈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이 방에는 외부인이 들어올 수 없다는 전제는 옳습니다.”

강 함장의 얼굴에 희망이 서리는가 싶었지만, 이지훈의 다음 말에 그 희망은 다시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범인이 반드시 외부인일 필요는 없습니다.”

강 함장의 얼굴이 혼란으로 일그러졌다. “그게 무슨… 피해자는 혼자였습니다. 기록상으로도… 그럼 스스로 독극물을 마셨다는 말씀이십니까? 자살이라고요?”

이지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눈에는 이미 퍼즐의 조각들이 맞춰지고 있는 듯한 미묘한 빛이 돌고 있었다.

“아니요. 자살이 아닙니다. 이 살인은 너무나도… 교묘합니다.”

그는 에너지 실드에 손을 얹고 잠시 눈을 감았다. 머릿속으로 모든 조각들을 재배열하는 듯했다. 카펫 위의 투명한 액체, 은색 가루, 그리고 밀실의 완벽한 봉쇄. 모든 것이 하나의 그림으로 합쳐지는 순간이었다.

“강 함장님.” 이지훈이 눈을 뜨며 말했다. 그의 시선은 에너지 실드 너머의 시신을 똑바로 향했다. “이 밀실의 트릭은 ‘밀실’ 자체가 아닙니다.”

강 함장이 숨을 들이켰다. “그럼… 무엇이 말입니까?”

이지훈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의 미소는 언제나처럼 냉철하고, 어떤 감정도 읽히지 않는 차가운 빛을 띠고 있었다.

“밀실을 가장한 ‘열린 방’이요.”

강 함장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 “열린 방이라니요? 모든 것이 봉쇄되어 있었습니다! 감히 제 눈을 속이려 하십니까?”

“속인 건 제가 아니라, 범인입니다. 함장님의 눈과, 함선의 보안 시스템 모두를요.”

이지훈은 에너지 실드 너머, 시신의 머리 위쪽 벽면에 있는 작은 공기 순환기 그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너무나 평범해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을, 그저 평범한 환기구였다.

“저 그릴 뒤편을 확인해주십시오. 정밀한 화학 분석기가 필요할 겁니다. 아마도 미량의, 하지만 특수한 ‘무언가’가 남아있을 겁니다.”

강 함장은 이지훈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의 지시에는 늘 절대적인 믿음을 보였다. 그는 즉시 무선 통신기를 들고 명령을 내렸다.

이지훈은 다시 시신을 바라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시신이 아닌, 시신이 쓰러진 바닥의 카펫 무늬와, 그 무늬 사이의 아주 미세한 간격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완벽한 범죄의 시나리오가 한 편의 홀로그램처럼 재생되고 있었다.

밀실은 완벽했다. 밀실은 완벽하게 봉쇄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완벽한 봉쇄는 너무나 완벽해서, 오히려 범인의 의도를 감추는 데 사용되었다. 마치 거대한 함선이, 아주 작은 나사 하나로 조작될 수 있는 것처럼.

범인은 방을 나가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방에 들어올 필요조차 없었다.

이지훈의 입가에 옅은 그림자가 스쳤다.

“이제, 누가 이 밀실을 만들었는지 알아낼 차례군요.”

강 함장은 이지훈의 마지막 말을 알아듣지 못한 듯 여전히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통신기에 대고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지훈의 눈빛은 이미 사건의 핵심을 꿰뚫고, 그 너머의 거대한 그림자를 쫓고 있었다. 별의 심장 요새에 드리워진, 잔혹한 그림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