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균열: 제1장 – 잿빛 그림자 아래**

숨을 들이쉬는 매 순간,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눅진 녹물의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천장 위로 웅장하게 뻗었을 한때의 철골 구조물은 이제 거대한 괴물의 뼈대처럼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다. 무너진 빌딩의 잔해와 폐기된 기계들의 덩어리들이 거대한 무덤을 이루는 이곳, ‘심연’이라 불리는 지하 도시에선 지상에서 빛을 등진 그림자들만이 간신히 숨 쉬고 있었다.

강휘는 무거운 철문 아래 놓인 낡은 침상에 몸을 기댄 채, 빛바랜 지도를 응시했다. 종이 위에는 지상의 제국, 그 거대한 철의 심장이 뿜어내는 수많은 혈관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제국. 그 이름만으로도 공포와 절망이 차오르는 독재자들의 심장부. 그들은 자신들을 ‘인류의 수호자’라 칭했지만, 강휘의 눈에는 그저 끝없이 갈취하고 파괴하는 거대한 포식자에 불과했다.

“오늘이 벌써 사흘째입니다, 대장.”

낮게 깔리는 유나의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그녀는 망가진 통신기를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었다. 기름때와 먼지로 얼룩진 손가락이 능숙하게 버튼을 눌렀지만, 들려오는 것은 오직 지지직거리는 잡음뿐이었다.

“연락이 끊긴 건가.” 강휘의 목소리에도 피로가 묻어났다.

“아니면… 잡혔거나요.” 유나의 눈빛은 냉철했다. “수확의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제국의 감시가 더욱 삼엄해졌어요. 찬이 조용히 잠입했으니, 아직 희망은 있을 겁니다.”

‘수확의 날’. 그 이름은 이 지하 도시에 사는 모든 이들에게 저승사자의 나팔 소리나 다름없었다. 제국은 매년 ‘인구 통제’와 ‘자원 배분’이라는 명목 아래 각 구역에서 정해진 수의 인력을 강제로 징발했다. 한 번 끌려가면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그들은 제국의 광산에서 죽을 때까지 노역하거나, 위험천만한 지상 개척에 강제로 투입되어 결국 황량한 땅의 거름이 되곤 했다. 그리고 올해는,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인원을 요구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찬은 그저 정찰만 갔을 뿐이다. 괜한 짓은 안 했을 거야.” 강휘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어리고 충동적인 찬을 걱정하는 동시에, 자신도 모르게 희망이라는 얇은 끈을 붙잡고 싶었다.

“그 아이가 언제나 명령을 잘 따르던가요.” 유나가 가시 돋친 말을 던졌다.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혹시라도 찬에게 문제가 생겼다면, 우리가 그 대가를 치러줄 겁니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얼음 같은 결기가 빛났다.

그때, 철문이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노인이 들어섰다. 낡은 작업복 위로 드리워진 그의 그림자는 길고 초췌했다. 박 노인은 강휘의 스승이자, 이 작은 저항 세력의 정신적 지주였다. 그의 손에는 방금 길어 온 듯한 탁한 물이 담긴 양동이가 들려 있었다.

“어이, 젊은이들. 또 어두컴컴한 곳에서 뭘 꾸미고 있나.” 노인은 툴툴거렸지만, 그의 눈빛은 강휘와 유나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다. “찬이 아직 소식이 없나? 이 늙은이 촉이 좀 싸한데.”

“아직입니다, 노인장.” 강휘가 지도를 접으며 일어섰다. “하지만 그보다는, 제국 놈들이 수확의 날을 앞두고 한층 더 잔인해졌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박 노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잔인해졌다고? 그보다 더 잔인해질 곳이 남아있단 말인가.” 그는 혀를 찼다. “그래, 서민 구역에 식량 배급이 절반으로 줄었다더군. 제국 보급선이 지나치게 많아졌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대체 뭘 그렇게 긁어모아가는 게냐.”

“문제는 식량만이 아닙니다.” 유나가 무전기를 내려놓고 다가섰다. “감시단이 동부 구역에서 무차별적인 가택 수색을 벌였습니다. 반항하는 주민들은 현장에서 즉결 처형했고요. 그들의 명분은 ‘반역자 색출’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이번 수확의 날에는 평소보다 세 배나 많은 인원을 징발할 것이라고 합니다.”

세 배. 그 말에 강휘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지금도 한 구역에서 몇백 명씩 끌려가면 공동체가 휘청거렸다. 세 배라면, 이 작은 지하 도시는 완전히 붕괴될 터였다. 남은 이들은 굶주리거나, 결국 제국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 배라니… 제정신이 아닌 놈들이군.” 박 노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그의 주름진 얼굴에 분노와 슬픔이 교차했다. “이대로는 안 돼.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

“하지만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강휘의 목소리에 무력감이 섞였다. “제국은 수백 개의 구역을 지배하는 거대한 철옹성입니다. 그들의 병력과 무력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섭니다. 무모하게 나서봤자, 우리는 이 작은 불씨마저 꺼뜨릴 뿐입니다.”

“그럼 그저 앉아서 우리가 끌려가길 기다리자는 말입니까?” 유나가 강휘의 말을 끊었다. 그녀의 눈은 불꽃처럼 타올랐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요? 아니요. 적어도 이대로 죽을 수는 없습니다.”

강휘는 유나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유나의 가족은 지난 수확의 날에 모두 끌려갔다. 그녀에게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다. 아니, 잃을 것이 너무 많아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사람이었다.

“…정보는 더 있나, 유나?” 강휘가 나직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미 결심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손이 낡은 지도를 펼쳐 들었다. 그녀가 가리킨 곳은 지상의 제국 수도, 그 중심부를 관통하는 거대한 보급로였다. “지상의 제국 수도로 향하는 서부 보급로입니다. 제국은 이 보급로를 통해 각 구역에서 착취한 자원과 인력을 수송합니다. 특히 이번 수확의 날에 징발될 인원들 역시 이 길을 통해 이송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 보급로를 습격이라도 하자는 건가?” 강휘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그곳은 제국의 가장 강력한 감시망이 집중된 곳이야. 자살 행위나 다름없어.”

“그렇습니다. 하지만 모든 요새에는 균열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유나의 손가락이 지도 위의 한 지점을 짚었다. “여기는 오래된 지하 수도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국 병력이 가장 소홀히 하는 지점이죠. 완벽한 계획만 있다면, 우리는 이곳을 통해 보급선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핵심 물자를 탈취하고, 징발된 이들을 해방할 수 있다면… 제국은 잠시 혼란에 빠질 겁니다.”

“그 잠시의 혼란이 우리의 존재를 드러내고, 그들의 무자비한 보복을 불러올 거야.” 강휘가 말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이미 유나가 짚은 지점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보복이요? 우리가 숨어있어도 그들은 우릴 잊지 않을 겁니다. 그들이 우릴 잊는 날은, 우리가 모두 사라지는 날 뿐입니다.” 유나는 단호했다. “우리가 그들에게 우리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들의 심장을 한 번이라도 때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이 어둠 속에서 질식해 죽을 겁니다.”

박 노인은 말없이 강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묵묵한 지지와 함께, 지난 세월 동안 수없이 겪어온 절망과 희망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강휘는 낡은 지도의 보급로를 응시했다. 제국은 마치 거대한 문어처럼 촉수를 뻗어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 했다. 하지만 그 거대한 몸체에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을 터였다. 그것을 찾아내어 찌르지 않으면, 자신들은 영원히 이 어둠 속에서 발버둥치다 사라질 것이다.

“…찬은 그 보급로 쪽으로 정찰을 갔었나?” 강휘가 물었다.

유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마 그곳에서 뭔가 중요한 정보를 얻으려 했을 겁니다.”

강휘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폐허가 된 도시의 잿빛 그림자 아래에서, 그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이대로 침묵하고 죽어갈 것인가, 아니면 불가능에 가까운 싸움이라도 시작할 것인가. 그의 마음속에서 꺼질 듯하던 작은 불씨가 다시금 타오르기 시작했다.

“좋아.” 강휘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그의 눈에는 망설임 대신 강철 같은 결의가 깃들어 있었다. “우리가 그 균열을 만들자. 유나, 계획을 더 자세히 말해봐. 박 노인, 무장은 가능한 대로 준비해야 합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저들의 심장을 꿰뚫어야 한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밖에서 희미한 굉음이 들려왔다. 마치 멀리서 거대한 바위가 굴러떨어지는 듯한 둔탁한 소리였다. 이어 진동이 땅을 타고 전달되어 왔다. 강휘와 유나, 박 노인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다.

“…이런.” 유나가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 소리는… 제국 병력의 중장비가 움직이는 소리입니다. 평소 이 시간에 이 구역으로 들어올 리가 없는데…”

강휘는 문득 섬뜩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찬. 혹시…

그때, 철문 밖에서 급박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문이 거칠게 두드려졌다.

“대장! 대장! 큰일 났습니다! 제국 병력입니다! 서쪽 통로가… 서쪽 통로가 뚫렸습니다!”

세 사람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제국 병력이 이미 코앞까지 들이닥친 것이다. 그들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강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젠장… 서둘러! 전투 준비!”

어둠 속, 작은 불씨가 피어오르기도 전에, 제국의 거대한 그림자가 그들을 덮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