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게임 (VRMMO)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아득한 별무리 237화: 검은 틈새의 속삭임

눈을 떴을 때, 하진의 시야를 가득 채운 것은 끝없이 펼쳐진 검은 우주였다. 돔형 함교 전면을 가득 메운 초대형 창 너머로 수십억 개의 별들이 차가운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함선 ‘오리온호’는 망망대해의 작은 조약돌처럼 그 광활한 어둠 속을 미끄러지듯 나아가고 있었다. 함교 내부의 은은한 조명과 기계음만이 이곳이 우주 한복판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하진은 손끝으로 컨트롤 패널의 홀로그램 키보드를 가볍게 두드렸다.

“현재 섹터, 미답 항로 델타-7. 특이사항 없음. 당직 변경 전까지 탐사 지속.”

나직이 읊조리듯 보고를 마친 하진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이 미답 항로 탐사는 몇 달째 이어지고 있었다. 끝없는 데이터 분석과 루틴 작업의 반복. 이곳의 시간은 현실의 시간과 동기화되어 흘러갔고, 그 지루함마저 완벽히 재현되는 놀라운 몰입감은 때로 감탄을 넘어선 피로를 안겨주곤 했다.

“하진 대원, 커피 한 잔 어때? 잠 깨는 데는 최고지.”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하진은 고개를 돌렸다. 부함장 세라가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는 머그잔 두 개를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의 푸른색 제복은 하진의 것과 마찬가지로 피로를 숨기기 위한 방편처럼 구겨져 있었다.

“고맙습니다, 세라 부함장님. 마침 한 잔 생각났습니다.”

하진은 미소와 함께 잔을 받아 들었다. 따뜻한 온기가 손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텁텁하면서도 달콤한 향이 코끝을 스쳤다. 현실에서는 맛볼 수 없는 완벽한 가상현실 속의 커피 맛.

“별다른 건 없지? 이 구역은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불길해.” 세라가 창밖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이따금 소행성 하나라도 튀어나와 줘야 살맛이 날 텐데.”

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터 상으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광물 자원도, 미확인 생체 반응도… 그저 진공뿐입니다.”

바로 그때였다.

‘삐이이-!’

갑작스러운 경고음이 함교를 가득 메웠다. 스크린 한쪽 구석에 떠 있던 작은 지도가 붉은색으로 깜빡였다.

“무슨 일이야?!” 세라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하진은 반사적으로 제자리로 돌아와 패널을 조작했다. “미확인 물질 감지! 좌표 X-582, Y+101. 크기… 측정 불가?”

“측정 불가라고?” 세라의 목소리에 당혹감이 섞였다. “오류 아니야? 우리 함선 센서는 현존하는 최고 사양인데.”

“아닙니다. 센서 오류 메시지는 뜨지 않습니다. 계속 측정값을 요청하고 있지만, 들어오는 건 노이즈뿐입니다.” 하진은 동공이 확장되는 것을 느꼈다. “거리가… 너무 가깝습니다. 갑자기 나타났어요.”

그때, 함선 전체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창밖의 별들이 일렁이는 것 같았다.

“함선 충돌 궤도에 진입 중! 비상 회피 기동! 당장!”

하진의 지시에 따라 오리온호가 거대한 몸체를 비틀며 회피 기동을 시작했다. 관성 제어 시스템 덕분에 내부에서 진동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지만, 창밖 풍경은 격렬하게 요동쳤다.

“젠장, 저게 대체 뭐야!” 세라가 경악하며 소리쳤다.

하진은 스크린에 띄워진 영상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광학 센서가 보내온 영상 속에는 거대한 검은 물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은 행성도, 소행성도, 심지어 거대한 우주선 잔해도 아니었다.

마치 어둠 그 자체가 응집된 것 같았다. 빛을 모조리 집어삼키는 듯한 완벽한 검정. 하지만 그 표면은 매끄럽지 않았다. 수억 년의 풍파를 견뎌낸 거대한 바위처럼 불규칙하게 솟아올라 있었고, 그 불규칙한 면들 사이로 희미한 금속성 광택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그 거대한 물체가 어떤 식으로든 별빛을 반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블랙홀처럼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듯했다.

“에너지 반응은?” 하진이 숨죽인 채 물었다.

“없어! 어떤 종류의 에너지 방출도 감지되지 않아. 존재 자체가 말이 안 돼.” 세라의 목소리가 떨렸다.

“회피 기동 완료. 충돌은 피했습니다.” 하진이 상황을 보고했다. “하지만… 저 물체와의 거리가 좁혀지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를 끌어당기는 것 같습니다.”

“중력장인가?”

“데이터 없음. 모든 물리 법칙을 거스르는 것 같습니다. 표면에… 기하학적인 무늬가 보입니다.”

하진이 영상을 확대하자, 거대한 검은 물체의 표면에 새겨진 문양들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것은 지구상 그 어떤 문명에서도 본 적 없는 기묘한 곡선과 직선의 조합이었다.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서로 얽혀 있었지만,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함장님께 보고해야 해. 이런 건… 전례가 없어.” 세라가 황급히 통신망을 열었다.

하지만 그녀의 통신은 연결되지 않았다.

“젠장! 통신 두절? 왜?!”

“아무것도 송수신되지 않습니다! 모든 외부 통신망이 먹통입니다!” 하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내부 통신도… 안 됩니다!”

함교 전체에 정적이 흘렀다. 오직 오리온호의 엔진음만이 작게 울릴 뿐이었다. 그리고 창밖의 검은 물체는 더욱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그 기묘한 문양들은 더욱 선명해졌고, 이제는 어렴풋한 맥동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저건… 유물이야.” 세라가 넋 나간 듯 중얼거렸다. “외계 문명의 유물. 그것도 심우주에서… 살아있는 유물.”

바로 그때, 하진의 뇌리를 스치는 섬뜩한 감각이 있었다. 등골을 타고 오르는 오한. 그것은 게임 속의 연출이 아니었다. 너무나 생생한, 현실과 구분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창밖의 검은 유물 표면에 새겨진 문양들이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희미한 푸른빛이 검은 표면을 타고 흐르더니, 이내 거대한 균열처럼 벌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고요하던 호수 표면에 돌을 던진 것처럼, 빛의 파동이 유물 전체로 퍼져나갔다.

‘지지직-’

함교 내부의 조명들이 일제히 깜빡였다. 스크린 속 오리온호의 시스템 상태 창들이 붉은색 경고 메시지로 뒤덮였다.

“함선 시스템 이상 감지! 제어 불능! 모든 동력 계통에 과부하!”

하진은 비틀거렸다. 마치 누군가 자신의 머릿속에 날카로운 얼음 조각을 쑤셔 넣는 것 같았다. 익숙한 함선 내부가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모든 것이 삐걱거리고, 일렁이는 것 같았다.

“하진 대원! 정신 차려! 뭐라도 해봐!” 세라의 다급한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그러나 하진의 시선은 이미 창밖의 유물에 고정되어 있었다. 거대한 검은 표면이 갈라지면서 그 안쪽에서 정체불명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단순히 밝은 빛이 아니었다. 어떤 색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우주적 혼돈을 담은 듯한 빛이었다. 그 빛 속에서, 하진은 무언가를 보았다.

형태는 없었다. 하지만 명확하게 느껴졌다. 셀 수 없이 많은 눈동자들, 혹은 거대한 그림자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는 섬뜩한 확신. 그리고 그 순간, 하진의 의식 속으로 기이한 속삭임이 파고들었다.

*…들어와…*

귓가에 직접 들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뇌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울리는 목소리. 동시에 오리온호의 모든 시스템이 완전히 다운되었다. 함교는 암흑에 잠겼고, 유일한 빛은 창밖의 균열에서 뿜어져 나오는 혼돈의 빛뿐이었다.

하진의 눈앞의 시야가 픽셀 단위로 붕괴하기 시작했다. 화면이 깨지는 듯한 노이즈와 함께, 유물의 균열 너머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뻗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촉수 같기도, 거대한 손가락 같기도 했다.

그리고, 하진의 시야는 완전히 검게 변했다.

***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