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잿빛 환영의 부름**
회색 도시의 하늘은 언제나처럼 무겁게 짓눌려 있었다. 빗방울은 축축한 대기를 타고 끈적하게 달라붙었고, 오래된 석조 건물들의 검은 벽돌 사이로 눅진한 어둠이 스며들었다. 도시의 북쪽 가장자리, 악취 나는 운하와 버려진 고아원들 너머에 자리한 낡은 시계탑 아래, 류하의 은신처가 있었다.
창문도 없이 굳게 닫힌 강철문 너머, 류하는 촛불 하나에 의지해 고서를 읽고 있었다. 양피지 특유의 퀴퀴한 냄새와 먼지 냄새가 희미하게 맴도는 공간은 그의 존재만큼이나 기묘했다. 그는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글자를 더듬으며, 잿빛 눈동자를 굴렸다. 세상의 모든 비밀을 해독하려는 듯 집요한 눈빛이었다. 낡은 책상 위에는 정체 모를 광물 조각과 부서진 마법 도구, 그리고 마른 나비의 날개가 무심하게 놓여 있었다.
그때였다. 밖에서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규칙적이지 않고 다급한, 신경질적인 두드림. 류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덮고, 차갑게 식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이런 식으로 그를 찾는 이는 딱 한 부류밖에 없었다.
“류하! 안에 있나? 문 좀 열어보게!”
목소리는 익숙했다. 강수사관. 거친 숨소리가 섞인 걸 보니 한참을 뛰어온 모양이었다. 류하는 무거운 강철문을 열기 전, 허리춤에 찬 작은 단검이 잘 매어져 있는지 확인했다. 불필요한 행동이었지만, 그의 오래된 습관 중 하나였다.
끼이익, 묵직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자, 빗물에 젖어 꼴이 말이 아닌 강수사관이 서 있었다. 그의 두꺼운 망토는 축 늘어져 있었고, 땀과 빗물로 번들거리는 얼굴은 공포와 경악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강수사관. 도시의 쥐들이 드디어 반란이라도 일으켰습니까?”
류하의 목소리는 새벽 서리처럼 차갑고 건조했다. 감정 없는 눈빛은 강수사관의 초조한 표정을 훑었다.
“농담할 때가 아니네, 류하! 이건… 이건 자네가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일이야. 다시금 불가능이 우리 눈앞에 펼쳐졌어!”
강수사관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류하의 좁은 은신처로 성큼 들어섰다. 그의 발자국이 젖은 흙먼지를 남겼다. 류하는 묵묵히 문을 닫고, 닫힌 문 너머로 새어 들어오려던 습한 외부 공기를 단절시켰다.
“불가능이라. 언제나 저에게 불가능한 사건을 가져오시는군요. 이번에는 또 어떤 ‘불가능’이 강수사관의 밤잠을 설치게 했습니까?”
류하는 평소처럼 차분했지만, 그의 잿빛 눈동자에는 미약한 호기심의 불꽃이 일렁였다. 강수사관이 가져오는 사건들은 언제나 기묘하고,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류하는 그런 퍼즐을 풀어내는 데 특출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카엘 경이야. 북부 고탑의 은둔자, 연금술사 카엘 경이 죽었네.”
강수사관의 목소리는 낮고 떨렸다. 카엘 경이라니. 류하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카엘 경은 수십 년간 북부의 외딴 고탑에서 은둔하며 기묘한 연금술과 마법 연구에 몰두했던 인물이었다. 그를 직접 본 사람도 드물었지만, 그의 이름은 도시의 뒷골목에서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었다.
“카엘 경이요? 그 노인이 결국 지독한 물약을 잘못 마시기라도 했답니까? 아니면 자신의 피조물에게 잡아먹히기라도 한 겁니까?” 류하의 어조에는 비꼼이 섞여 있었다.
“그런 식이라면 오히려 평범한 죽음이었을 거야. 문제는… 그가 발견된 장소다.” 강수사관은 침을 꿀꺽 삼키며 말을 이었다. “카엘 경의 서재. 고탑의 가장 꼭대기 층에 있는 그 서재 말이야.”
류하는 묵묵히 강수사관을 응시했다. ‘서재’라는 단어에 그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을 강수사관은 알고 있었다.
“그 서재는… 완벽하게 잠겨 있었다네. 안에서 걸쇠가 굳게 잠겨 있었고, 창문은 두꺼운 철창살로 막혀 있었지. 설령 철창살이 없었다 해도, 그 높이에서 드나드는 건 불가능해. 비밀 통로도 없었고, 우리는 모든 벽을 두들겨 봤네! 경비병들은 고탑 아래서 며칠 밤낮을 지키고 있었어. 아무도 탑으로 드나든 사람이 없었다고 맹세하고 있어.”
강수사관은 거의 울부짖다시피 말했다.
“하지만 시체는 있었지. 카엘 경의 시체가 말이야. 서재 중앙에서 발견됐네. 그의 심장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어. 마치 아주 정교하고 날카로운 송곳으로 한 번에 꿰뚫은 것처럼. 그런데… 그 어떤 무기도 발견되지 않았다네. 서재 안에는 카엘 경의 시체 외에는 아무도 없었어.”
류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머릿속으로 강수사관의 설명을 그림처럼 그려보는 듯했다.
“완벽한 밀실 살인. 심지어 살해 도구마저 사라졌다는 말씀이군요.”
“그래, 완벽한 밀실이야. 탑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자물쇠 같았고, 서재는 그 자물쇠 안의 또 다른 자물쇠였다네. 도대체 누가, 어떻게, 그리고 무엇으로 그를 죽인 거지? 경비병들은 탑 전체를 봉쇄하고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고 맹세해!”
강수사관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가 얼마나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는지 류하는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종류의 사건은 도시를 혼란에 빠뜨리고, 사람들에게 불길한 소문을 퍼뜨리기 마련이었다. 해결되지 않는 의문은 공포를 낳고, 공포는 결국 폭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사체를 옮긴 자도 없었고, 서재에 접근한 자도 없었다. 심지어 범행 도구마저 사라졌다.” 류하는 천천히 중얼거렸다. 그의 눈빛은 어느새 차가운 광기로 빛나고 있었다. “재미있군요. 아주 흥미로운 퍼즐입니다.”
“자네라면… 자네라면 해낼 수 있을 거야, 류하. 부탁하네. 우리 수사팀은 완전히 손을 놓았어. 이건 인간의 소행이라고 믿을 수가 없어!”
강수사관은 류하의 어깨를 붙잡고 애원했다. 류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의 잿빛 눈동자가 촛불의 흔들리는 불꽃을 응시했다.
“좋습니다. 제가 가죠.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말해보게! 시키는 대로 다 하겠네!”
“단순히 사건을 해결하는 것에 그치지 않을 겁니다. 저는… 그 노인이 죽어가면서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 마지막으로 느꼈던 절망까지도 알아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 방식대로 조사할 겁니다. 아무도 제게 간섭할 수 없습니다.”
류하의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서려 있었다. 강수사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럼, 안내하시죠. 불가능의 문이 어디인지, 당신의 퍼즐 조각은 어디에 놓여 있는지 직접 보아야겠습니다.”
류하는 허리춤의 단검을 매만지고는 낡은 망토를 어깨에 걸쳤다. 비록 그의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강수사관은 그의 잿빛 눈동자 속에 타오르는 해독할 수 없는 열망을 읽을 수 있었다. 그 순간, 류하의 눈빛은 마치 진실을 갈망하는 굶주린 짐승의 것 같았다. 그 짐승이 먹잇감을 발견한 것이다.
두 사람은 어두운 운하를 따라 북쪽으로 향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멀리 도시 북쪽 끝에 검은 그림자처럼 솟아 있는 카엘 경의 고탑이 불길한 실루엣을 드러내고 있었다. 잿빛 환영이 그들을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류하는 그 부름에 기꺼이 응답했다. 어떤 어둠과 진실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이미 그 불길한 서막에 매료된 듯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