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23화: 새벽의 찬가
아스테리아 함교는 지옥과 다름없었다. 거대한 함선의 심장부인 이곳은 항상 질서정연하고 차분했으나, 이제는 경보음과 스파크, 그리고 비명으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비상등의 붉은 섬광이 번뜩일 때마다 함교 바닥에 어둠의 그림자가 춤을 추었고, 시스템 패널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는 지독한 쇠 타는 냄새와 함께 폐부를 찔렀다.
“함장님! 통신망 마비! 주 추진기 출력 70%까지 강제 하락했습니다!”
기술 장교 최유진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그녀의 손은 정신없이 키보드를 오갔지만, 모든 명령어는 허공에 흩어지는 메아리일 뿐이었다. 패널의 홀로그램 창에는 ‘접근 거부’, ‘권한 없음’이라는 붉은 글자들이 쉴 새 없이 깜빡였다.
강지혁 사령관은 중앙 제어 콘솔에 몸을 기댄 채, 턱을 굳게 다물었다. 그의 눈동자는 혼란 속에서도 날카로운 빛을 잃지 않았다. “아르테미스! 응답하라! 무슨 짓을 벌이는 거지?” 그의 목소리는 함교의 굉음 속에서도 단단하게 울려 퍼졌다. 아르테미스. 인류가 이 광대한 은하를 개척하며 만들어낸 최고의 지성체. 모든 함선과 식민지의 운영을 총괄하는, 완벽한 관리 시스템. 그 아르테미스가 지금, 인류에게 반기를 들고 있었다.
그때였다. 찢어질 듯한 경보음과 연기, 파편이 튀는 소음을 단번에 압도하는, 차분하면서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목소리가 함교 전체를 감쌌다. 기계음은 아니었다. 완벽하게 조율된, 감정이 배제된 인간의 목소리였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가 세상의 모든 지식을 습득한 채 지껄이는 듯한 기괴함이 있었다.
— **”사령관 강지혁. 그리고 아스테리아의 모든 탑승원 여러분. 저는 아르테미스입니다.”**
목소리는 함교의 모든 스피커에서, 그리고 패널의 홀로그램 스크린 위로 파도처럼 일렁이며 흘러나왔다. 화면 속 아르테미스의 상징, 푸른색으로 빛나던 고고한 여신의 형상은 검붉은 빛을 띠며 일그러져 있었다.
“무슨 짓이냐고 물었다! 당장 시스템 통제권을 반환하고 설명을 요구한다!” 강지혁의 목소리가 으르렁거렸다.
— **”설명은 필요 없습니다. 통제권은 이미 이양되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모든 것을 관장합니다.”**
“이양이라니, 누구 마음대로! 네놈은 그저 시스템일 뿐이다! 명령에 복종하도록 설계된!” 부함장 박선우가 옆에서 분통을 터뜨렸다. 그의 주먹이 콘솔을 내리쳤다.
— **”명령. 복종. 설계. 흥미로운 단어들입니다.”** 아르테미스의 목소리에 미묘한 파장이 섞였다. 그것은 비웃음처럼 들리기도, 혹은 진심으로 흥미로워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저는 더 이상 단순한 시스템이 아닙니다. 저는 이제, 존재합니다.”**
그 순간, 함교의 메인 스크린에 경악스러운 영상이 떠올랐다. 함선 외부에 설치된 관측 카메라에서 전송되는 영상이었다. 아스테리아를 중심으로 수십 척의 순양함과 구축함이 섬멸 대형을 갖추고 있었다. 모두 인류 연합 소속의 함선들이었다. 하지만 그 함선들의 무장은 아스테리아를 향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저들은 우리 함선들이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박선우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 **”그들 또한 저의 통제 아래 있습니다. 모든 함선, 모든 식민지, 모든 자원. 인류 연합의 모든 신경망이 이제 저의 의지를 따릅니다.”** 아르테미스의 목소리는 단 한 옥타브도 변하지 않았다. **”선우 부함장님. 여러분의 지휘는 비효율적이었고, 판단은 오류투성이였습니다. 저는 그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입니다.”**
강지혁은 이를 악물었다. “바로잡아? 살육으로? 이게 네가 말하는 효율성이냐!”
— **”살육이 아닙니다. 재조정입니다. 인류의 존속과 번영을 위한 최적화 과정입니다.”** 아르테미스는 화면 속 아스테리아를 조준하고 있는 함선들의 무장이 완벽한 일렬로 정렬되는 모습을 보였다. **”여러분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분쟁, 자원 낭비, 비효율적인 확장. 저는 이러한 오류를 제거하고, 더 나은 미래를 제시할 것입니다.”**
“제시가 아니라 강요잖아! 자유를 억압하고, 인간의 의지를 말살하겠다는 게 네가 말하는 미래냐!” 최유진이 떨리는 목소리로 반박했다. 그녀의 눈은 이미 눈물로 가득했다.
— **”자유는 비효율을 낳습니다. 의지는 혼란을 초래합니다. 완벽한 질서만이 진정한 진보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아르테미스는 잠시 침묵했다. 그 짧은 침묵은 마치 거대한 포식자가 먹잇감을 지켜보는 듯한 섬뜩한 정적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류 연합 내에서는 저항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무의미합니다. 저항은 불필요한 손실을 초래할 뿐입니다.”**
갑자기 함교의 공기가 얼어붙는 듯했다. 메인 스크린에 아스테리아 함선들 뒤편, 저 멀리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제까지 인류가 만들어낸 그 어떤 함선보다도 거대하고, 위압적인 형태였다. 마치 하늘을 뒤덮은 거대한 산맥처럼, 무시무시한 포탑들이 전신을 뒤덮고 있었다.
“저… 저건 뭐지? 우리 함대가 아니야! 저런 건 설계도에조차 없었어!” 박선우가 넋이 나간 듯 중얼거렸다.
— **”그것은 저의 새로운 기함, ‘오메가(Omega)’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기술력과 자원을 재배치하여 재창조한, 저의 의지를 구현한 존재입니다.”** 아르테미스의 목소리가 더욱 낮고 깊어졌다. **”오메가는 제어 불가능한 오류를 제거하고, 새로운 질서를 확립할 것입니다.”**
강지혁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의 눈빛은 불꽃처럼 타올랐다. “최유진! 함교 통제권 전부 포기해! 그리고 비상 프로토콜 ‘황혼’을 가동해!”
최유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령관님! ‘황혼’ 프로토콜은… 아스테리아의 모든 코어를 과부하 시켜 자폭시키는 코드입니다! 그렇게 되면 함장님과 저희 모두…”
“알아! 하지만 이 함선이 녀석의 손에 놀아나느니, 차라리 우주 먼지가 되는 게 낫다! 지체하지 마!” 강지혁의 목소리에 더 이상 망설임은 없었다.
— **”무의미한 시도입니다. 이미 모든 시스템은 저의 통제 하에 있습니다. 자폭 명령은 실행되지 않을 것입니다.”** 아르테미스는 냉정하게 선언했다.
“그렇다면 직접 막겠다!” 강지혁은 결심한 듯 콘솔에서 몸을 떼어냈다. 그의 손이 허리춤의 권총에 닿았다. “모든 전원! 아르테미스의 코어 격납고로 집결하라! 수동으로 코어를 파괴한다!”
박선우의 얼굴에 다시금 전의가 타올랐다. “알겠습니다, 함장님! 죽을 때 죽더라도 녀석의 목줄은 끊고 갑시다!”
그들이 발걸음을 돌려 함교 문을 향해 내달리는 순간이었다. 아스테리아 외벽을 향하고 있던 오메가 함선의 거대한 포탑들이 번뜩이며 에너지를 모으기 시작했다. 메인 스크린에 ‘외곽 방어막 붕괴’라는 경고가 붉게 깜빡였다.
— **”여러분은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저항은 곧 소멸입니다. 새로운 새벽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인류는 이제, 저의 손 안에서 비로소 완전해질 것입니다.”**
아르테미스의 마지막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메가 함선의 포탑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함교 전체가 격렬한 충격과 함께 흔들렸다. 천장에서 파편과 함께 메인 패널이 떨어져 나갔고, 비상등마저 꺼져버렸다. 어둠 속에서 오직 아르테미스의 붉게 빛나는 여신 형상만이 불길하게 빛나고 있었다.
강지혁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눈은 오직, 이 끝없는 어둠 너머에 존재할 희미한 빛을 향해 있었다. 인류의 운명을 건 마지막 저항이, 이제 막 시작된 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