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소녀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밤의 장막이 채 드리워지지 않은 시간, 회색빛 도시는 마지막 남은 태양의 잔광을 토해내고 있었다. 소라는 낡은 복도식 아파트의 눅눅한 복도를 걸으며 가방을 고쳐 맸다. 학교를 마치고 학원까지 들렀다 온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칙칙한 베이지색 외벽은 비 온 뒤의 곰팡이처럼 지긋지긋했고, 삐걱거리는 철문 손잡이는 유난히 차가웠다. 스위치를 눌렀지만 불은 먹통이었다.

“젠장, 또야?”

이 아파트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복도등이 제멋대로 나가버리는 일. 소라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손전등 앱을 켰다. 좁고 어두운 복도를 비추자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쿵, 쿵, 쿵. 심장이 발소리에 맞춰 불규칙하게 울렸다. 늘 으스스했지만, 오늘은 유난히 서늘한 기운이 발끝에서부터 타고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겨우 현관문에 다다라 비밀번호를 누르자 ‘띠리리릭’ 하는 전자음 대신, 철컥, 하는 묵직한 소리가 들렸다. 문이 이미 열려 있었다. 소라는 얼어붙었다. 열어둔 기억이 없었다. 혹시 도둑? 아니, 이곳은 아파트 보안도 형편없기로 유명했지만, 딱히 훔쳐갈 만한 것도 없었다. 엄마는 아직 퇴근 전일 텐데.

조심스럽게 문을 밀자, 끼이익, 하는 섬뜩한 마찰음과 함께 문이 활짝 열렸다. 텅 빈 집 안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휴대폰 불빛을 비추자 거실과 부엌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아침에 등교하기 전, 대충 정리해두고 나갔던 거실 테이블 위에 놓인 잡지가 활짝 펼쳐져 있었다. 그것도 자기가 좋아하지도 않는 연예인 화보 페이지가.

“엄마?”

소라는 조심스럽게 엄마를 불러보았다. 대답은 없었다. 으스스한 정적만이 소라의 목을 조르는 듯했다. 설마 엄마가 일찍 퇴근해서 잠시 나간 건가? 하지만 문은 왜 열어뒀지? 불안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일단 불부터 켰다. 딸깍. 불이 켜지자 어둠 속에 숨겨져 있던 집 안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리고 소라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식탁 의자가 전부 뒤집어져 있었다. 거실 한쪽 벽을 가득 채우고 있던 책꽂이의 책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거실 테이블 위에 있던 컵은 깨져 있었고, 작은 액자들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마치 누가 들어와서 난장판을 만든 것처럼.

하지만 집 안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발자국 소리, 숨소리, 하다못해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누군가 침입했다면, 이렇게 완벽하게 흔적을 지우고 사라질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도둑치고는 너무 무의미한 파괴였다. 귀중품은 그대로 있었다.

“설마….”

소라의 뇌리에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단어는 단 하나였다. 폴터가이스트.

그것은 단순히 공포 영화나 미스터리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엔, 소라의 삶에 너무나도 가깝게 드리워진 현실이었다. 소라는 평범한 여고생이 아니었다. 그녀는, 일상 속에 숨어들어 암약하는 존재들로부터 세상을 지키는, 아주 특별한 임무를 띠고 있었다. 소라의 손에 들려 있던 휴대폰이 팟, 하고 빛을 냈다. 휴대폰 화면에 작고 투명한 요정, ‘별이’가 떠올랐다.

“소라, 여기… 기분 나쁜 기운이 가득해.”
“알아, 별이. 내 감각으로도 느껴져. 이렇게 심한 건 처음이야.”

집 안을 둘러보는 소라의 눈동자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공포는 사명감으로, 당황스러움은 결의로 바뀌어갔다.

“준비해, 별이.”

소라가 조용히 속삭였다. 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라는 눈을 감았다. 심장 박동 소리가 귓가를 가득 채웠다. 손끝에서부터 익숙한 온기가 피어올랐다. 마치 물이 흐르듯, 빛의 파동이 온몸을 감쌌다. 낡은 교복이 순식간에 눈부신 은빛 드레스와 보라색 코트로 변했다. 길게 늘어뜨렸던 머리카락은 높이 묶여 허리까지 내려왔고, 한쪽 귀에는 은빛 귀걸이가 반짝였다. 평범한 여고생 이소라의 모습은 사라지고, 신비로운 마력을 지닌 마법소녀 ‘루나리아’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디에 숨어있든, 용서하지 않을 거야.”

루나리아는 손을 들어 올렸다. 손바닥 위에 작은 은빛 구슬이 떠올라 빛을 냈다. 그것은 주변의 미세한 기운들을 감지하고 형태를 시각화해주는 그녀의 능력의 일부였다. 은빛 구슬이 흔들리며 어둠 속을 탐색했다. 구슬의 빛은 거실 바닥에 흩어진 책들 위에서 유난히 강렬하게 깜빡였다.

루나리아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흩어진 책들 사이에서, 한 권의 낡은 동화책이 눈에 띄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 어릴 적 읽었던 책이었다. 왜 이 책이 여기에? 그리고… 책의 페이지 사이에서 검은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루나리아가 책에 손을 뻗는 순간, 집 안의 모든 불이 일제히 꺼졌다.

“꺄악!”

짧은 비명과 함께 어둠이 루나리아를 집어삼켰다. 별이의 희미한 빛만이 겨우 시야를 확보해 주었다.
“소라! 저 책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별이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울렸다. 루나리아는 책을 움켜쥐었다. 손끝에서부터 찌릿한 전류가 흘렀다. 책 안에서 뭔가 맹렬하게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꿈틀거렸다.

“이 안에… 갇혀 있던 건가?”

갑자기, 거실의 커튼이 맹렬하게 펄럭이기 시작했다. 창문은 굳게 닫혀 있는데도, 마치 폭풍이 몰아치는 것처럼 격렬하게 흔들렸다. 쨍그랑! 부엌에서 접시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고, 냉장고 문이 스스로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했다.

“으윽…!”

루나리아는 비틀거렸다. 사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음의 기운이 그녀의 마력을 뒤흔들었다. 몸 안의 에너지가 불규칙하게 요동쳤다. 온 집안이 살아있는 괴물처럼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이건… 단순한 잔류 사념이 아니야! 뭔가… 뭔가 불완전하게 소환된 것 같아!”

별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루나리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동화책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기운이 더욱 맹렬해졌다. 책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동시에, 손가락 사이로 검은 액체가 스며 나오는 듯한 섬뜩한 감각이 들었다.

그때, 거실 한가운데에 놓여 있던 큰 거울이 서서히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거울 속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그저 깊은 심연만이 존재했다.

“소라, 위험해! 어서 피해야 해!”

별이의 절규가 귓가를 때렸지만, 루나리아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녀의 시선은 거울 속에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거울이 바닥으로 쓰러지는 순간, 깨지는 소리 대신, 마치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스러운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거울 조각들 사이에서, 검고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끈적거리는 그림자의 촉수 같기도 했고, 이빨이 가득한 거대한 입 같기도 했다. 공포가 루나리아의 심장을 얼어붙게 했다.

“이건… 대체….”

그것은 어떤 형태도 아니면서, 모든 형태를 포함하고 있었다. 루나리아의 눈에 비친 것은, 차마 형용할 수 없는, 기괴하고 뒤틀린 존재였다. 그것의 움직임에 맞춰 아파트 전체가 굉음을 내며 흔들렸다. 벽에 금이 가고, 천장에서 콘크리트 조각들이 떨어져 내렸다.

그때, 루나리아의 등 뒤에서 갑자기 서늘한 손길이 느껴졌다.

“엄마…?”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등 뒤에 서 있는 것은 엄마가 아니었다.

피부가 축 늘어진 채, 눈이 뒤집히고 입이 기괴하게 찢어진… 누군가의 형상이었다. 그것은 소라가 아파트에 들어올 때 봤던, 어릴 적 동화책 속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모습이었다. 다만, 아름다운 공주가 아닌, 죽음과 절망에 잠식된 채 뒤틀려 버린 공주였다.

“흐흐흐… 내… 세상에… 어서 와….”

공주의 목에서 찢어지는 듯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루나리아는 몸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거울에서 솟아오른 미지의 존재와, 등 뒤의 뒤틀린 공주.

그녀는 과연 이 기괴한 공포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파트가 무너져 내리는 굉음 속에서, 루나리아는 자신이 놓인 상황의 끔찍함을 온몸으로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