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게임 (VRMMO)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제1화: 에테르의 심연

차가운 돌벽을 손으로 짚었다. 손끝에 닿는 축축하고 미끄러운 감각은 이곳이 얼마나 오랜 시간 햇빛 한 줌 없이 잠들어 있었는지를 웅변하고 있었다. 강휘는 숨을 죽인 채 발걸음을 옮겼다. 에테르 학원 지하 깊은 곳, 그 누구도 발을 들여서는 안 된다고 전해지는 ‘금지된 서고’. 하지만 지금 그가 걷고 있는 이 길은 서고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음산함을 풍기고 있었다.

어둠 속을 더듬으며 나아가는 그의 귓가에는 얼마 전 우연히 획득한 암호 쪽지의 내용이 끊임없이 맴돌았다.
_“세상에 드러나선 안 될 진실이, 에테르의 가장 깊은 곳에 잠들어 있다. 사라진 이들의 흔적은 심연의 맹세와 함께.”_
그리고 그 쪽지 한편에 희미하게 쓰여 있던 이름, 서윤. 불과 몇 달 전, 학원의 수석 마법사 후보로 촉망받던 그 소녀가 홀연히 사라진 뒤, 학원 측은 그녀가 ‘개인 사정으로 인한 휴학’을 신청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강휘의 직감은 그 설명을 믿지 않았다. 서윤은 그 어떤 학생보다 마법에 대한 열정이 뜨거웠고, 학원 생활에 대한 애착도 강했다. 그녀가 갑자기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

강휘의 손에서 희미한 빛을 내는 마력석이 길을 비췄다. 돌길은 점점 더 아래로 향했고, 공기는 더욱 무거워졌다. 단순히 오래된 먼지 냄새가 아니었다. 눅눅한 흙냄새 사이로 쇠비린내와 알 수 없는 화학약품 냄새가 섞여 코를 찔렀다.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두려움보다는 미지의 진실에 대한 흥분, 그리고 서윤의 행방에 대한 불안감이 뒤섞인 감정이었다.

“환영 은신.”

강휘의 나직한 중얼거림과 함께 그의 몸이 흐릿해졌다. 그림자처럼 벽에 밀착하며 움직이는 그의 발소리는 먼지 쌓인 바닥에서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이 은신 마법은 그의 특기였다. 비록 공격 마법에는 서툴렀지만, 은밀한 침투와 탐색에는 누구보다 뛰어났다. 그 덕분에 그는 학원 내에서도 이단아 취급을 받곤 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고위 마법사보다도 유용했다.

얼마나 더 내려갔을까. 시야가 트이면서 거대한 공간이 나타났다. 강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살폈다. 이곳은 서고가 아니었다. 거대한 동굴 같기도 하고, 동시에 인공적으로 정교하게 다듬어진 공간 같기도 했다. 벽면에는 고대 룬 문자들이 섬뜩한 붉은빛으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고, 그 빛은 주기적으로 깜빡이며 공간 전체에 불길한 생명력을 불어넣는 듯했다.

공간 중앙에는 거대한 원통형 구조물이 서 있었다.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었다. 복잡한 마법 회로와 금속 파이프들이 얽혀 있었고, 그 중심에서는 윙윙거리는 낮은 진동음이 끊이지 않았다. 흡사 거대한 기계 장치가 살아 숨 쉬는 심장처럼 박동하는 것 같았다. 고대 유적에서 발견될 법한 낡은 유물이 아니라, 오히려 최첨단 과학 기술과 고대 마법이 기괴하게 결합된 형태였다.

강휘의 심장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분명 이곳은 최근까지도,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작동하고 있는 시설이었다. 학원의 오래된 비밀 창고 같은 것이 아니었다.

조심스럽게 기계 장치에 다가갔다. 진동음은 점점 더 커졌고, 공기 중에는 묘한 마력의 압력이 느껴졌다. 장치 주변으로는 여러 개의 작은 투명한 ‘포드’들이 놓여 있었다. 흡사 거대한 배양기 같기도 했다. 포드 안에는 밝게 빛나는 점액질의 액체가 가득 차 있었고, 그 액체 속에는…

강휘의 눈이 커졌다. 그는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환영 은신이 풀릴까 봐 숨소리마저 조절하며, 가장 가까운 포드 안을 들여다보았다.

액체 속에는 사람이 있었다.

맨몸의 인간 형상이 끈적한 유체 속에 떠 있었다. 눈을 감고 있는지, 아니면 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자세히 보니, 피부는 창백했고, 머리칼은 유체 속에서 흐느적거렸다.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얼굴. 하지만… 낯익었다.

포드 위쪽으로 떠오른 홀로그램 패널에는 알 수 없는 문자들이 빠르게 스크롤 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선명하게 박힌 코드명.

`피험체-B-07`

그리고 그 아래, 그래프처럼 움직이는 ‘마력 수치’와 함께 그녀의 얼굴이 희미하게 투영되어 있었다. 익숙한 얼굴. 서윤. 학원의 수석 마법사 후보, 사라진 소녀. 그녀는 이곳에 있었다. 살아있다고 해야 할지, 죽었다고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태로, 거대한 기계 장치에 연결된 채 포드 안에 갇혀 있었다.

서윤의 얼굴은 너무나도 평화로워 보였다. 동시에 너무나도 공허했다. 강휘의 등골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제야 모든 조각이 맞춰지는 듯했다. 학원이 감추려 했던 진실. 사라진 학생들. ‘심연의 맹세’… 이것은 맹세가 아니라, 희생이었다.

에테르 학원의 자랑스러운 마력은, 찬란한 마법의 근원은, 바로 이렇게 강제로 추출되고 있었던 것일까? 그것도 자신들의 학생들에게서?

강휘는 몸을 떨었다. 역겨움과 공포가 뒤섞였다. 명문이라 불리던 에테르 학원의 지하에는,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한 채 마력을 착취하는 끔찍한 실험실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거대한 중앙 장치에서 ‘웅-!’ 하는 소리와 함께 한층 더 강렬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붉은 룬 문자들이 더욱 짙게 빛나기 시작했고, 서윤이 갇힌 포드 속 유체가 미세하게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무언가를 빨아들이는 것처럼, 포드 속에서 잔잔한 소용돌이가 일었다.

서윤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의 입술이 아주 희미하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동시에 강휘의 머릿속에, 마치 자신의 생각이 아닌 것처럼,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와줘…*

너무나 희미해서 환청 같기도 하고, 너무나 또렷해서 현실 같기도 한 목소리. 그것은 고통에 잠식된 영혼의 마지막 울부짖음처럼 들렸다. 강휘는 숨을 들이켰다. 그는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이 끔찍한 진실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 순간, 멀리서 철컥이는 기계음과 함께 거친 발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 모든 것을 들켜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