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로노스의 심장
김하진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낡은 『마력학 개론』 서적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크로노스 마법 학원 도서관의 웅장한 아치형 천장 아래, 낡은 마력등이 희미한 황금빛을 뿌렸다. 학원은 언제나 차분한 진동과 함께 숨 쉬고 있었다. 거대한 증기 엔진이 학교 지하 깊은 곳에서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수천 개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울려 퍼지는, 기계와 마법이 완벽하게 조화된 곳. 하지만 오늘, 그 미묘한 진동은 평소와 달랐다.
`크르릉…… 콰아아앙!`
갑자기 바닥이 맹렬하게 흔들렸다. 책상 위의 깃펜이 쿵 하고 쓰러지고, 잉크병 속 푸른 잉크가 위태롭게 찰랑였다. 마력등의 빛이 불안하게 깜빡였다가 이내 꺼질 듯이 흔들렸다. 도서관 곳곳에서 놀란 학생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게 무슨……!”
“지진인가?”
하진은 다른 학생들처럼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짓지 않았다. 대신, 미간을 찌푸린 채 귀를 기울였다. 이 진동은 단순한 지진이 아니었다. 깊은 지하에서부터 솟아오르는 듯한, 거대한 무엇인가가 꿈틀거리는 듯한 불길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쿵, 쿵, 쿵. 마치 거대한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는 것 같은 둔탁한 울림이 희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차가운 쇠가 긁히는 듯한 섬뜩한 마찰음이 짧게 스쳐 지나갔다. 마치 거대한 금속이 뒤틀리며 비명을 지르는 듯한 소리였다.
다른 이들은 그저 건물이 노후해서 나는 소리라며 웅성거렸다. 관리인들이 와서 대충 상황을 수습하고 마력등을 다시 안정시키자, 학생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자신의 책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하진의 귀에는 그 불규칙한 심장 박동 소리가 계속해서 맴돌았다. 지하. 크로노스 학원의 지하에는 단순한 증기 엔진만 있는 게 아니었다.
밤이 깊어지고, 거대한 시계탑이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를 울렸다. 복도는 인기척 하나 없이 고요했다. 하진은 손에 오래된 지하 설계도를 든 채 복도 끝 비상 계단으로 향했다. 낡은 종이에는 희미한 연필 자국으로 ‘구역 델타’라고 표기된 곳이 있었다. 전설처럼 떠도는 학원의 금기 구역. 학생들 사이에서는 교수님들도 출입을 꺼린다는 소문이 돌았고, 심지어는 살아있는 것이 아닌 무언가가 잠들어 있다는 섬뜩한 이야기도 있었다.
계단을 한참 내려가자, 공기마저 달라졌다. 쾌적했던 학원 본관과는 달리, 이곳은 축축하고 차가웠다. 희미한 마력등 아래, 벽에는 굵은 증기 파이프들이 거대한 뱀처럼 얽혀 있었다. ‘쉬이이익, 쉬이이익’ 하는 증기 분출음과 저 멀리서 들려오는 기계음이 불협화음을 이루며 신경을 긁었다. 바닥은 기름때와 흙먼지로 얼룩져 있었고, 녹슨 톱니바퀴들이 아무렇게나 나뒹굴었다.
하진은 휴대용 마력등을 켜고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눈은 벽에 새겨진 마법 문양들을 훑었다. 대부분은 전력 공급이나 증기 압력 조절에 관련된 일반적인 문양이었지만, 가끔씩은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하고 복잡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들은 마치 경고문 같기도 했고, 어떤 거대한 힘을 억누르는 결계 같기도 했다.
`끼이이익…… 덜컹.`
저 멀리서 육중한 금속 소리가 들렸다. 하진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려 배관 뒤로 숨었다. 곧이어 눈앞에 나타난 것은 놋쇠와 강철로 만들어진 거대한 기계 병사였다. 톱니바퀴 눈동자가 붉게 빛나며 복도를 천천히 순찰했다. 팔다리가 삐걱거릴 때마다 기분 나쁜 금속 마찰음이 울렸다. 하진은 숨을 죽인 채 병사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이런 곳에 기계 병사가 순찰을 돌고 있다는 것은, 이 구역이 얼마나 중요한지, 혹은 얼마나 위험한지 말해주는 증거였다.
병사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하진은 다시 움직였다. 이제 거의 다 온 것 같았다. 설계도에 ‘구역 델타’로 표기된 곳은 가장 깊은 곳, 가장 오래된 지층에 위치해 있었다. 복도가 좁아지고, 공기는 더욱 무거워졌다. 마치 납덩이가 심장을 짓누르는 듯한 답답함.
그때, 하진의 귓가에 웅성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환청인가 싶었지만, 잠시 후 그 소리는 더 명확해졌다. 낮은 사람의 목소리였다.
“……최근에 출력 불균형이 너무 심합니다.”
“젠장, 또 그 녀석 때문이겠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
“더 이상 동력을 끌어올리는 건 위험합니다. 학장님은 왜 계속……”
목소리는 이내 희미해졌다. 아마도 닫힌 문 너머에서 들려온 모양이었다. ‘그 녀석’? ‘동력’? 하진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들의 대화는 학원 지하에 단순한 증기 엔진 이상의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만들었다. 학장님마저 개입하는, 거대한 비밀.
마침내, 하진은 복도 끝에 다다랐다.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광경이었다. 거대한 암벽을 깎아 만든 듯한 원형 공간의 중앙에, 압도적인 크기의 강철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문의 표면은 녹슨 놋쇠와 검게 그을린 강철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위에는 기괴하고 불길한 문양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마력등 하나 없이 오직 차가운 기운만이 공간을 채웠다.
하진은 손을 뻗어 문을 만졌다. 차가운 금속 표면에서 기묘한 진동이 느껴졌다. 쿵, 쿵, 쿵. 희미했던 심장 박동 소리가 이제는 명확하게, 문의 저편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거대하고, 불규칙하며, 무엇보다 *살아있는* 듯한 박동이었다. 마치 문 저편에 거대한 심장이 온 우주의 무게를 짊어진 채 뛰고 있는 것처럼.
그때였다. 심장 박동 소리가 갑자기 격렬해졌다. 쿵! 쿵! 쿵!
그리고 하진의 귀를 찢을 듯한,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왔다.
`질척…… 질척…… 슈우우우욱……!`
액체가 거대한 무언가에 의해 빨려 들어가는 듯한 소리, 그리고 뒤이어 터져 나오는 낮고 굵은 신음. 그것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짐승의 포효 같기도 했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괴물의 절규 같기도 했다. 하진은 문에 대고 있던 손을 황급히 거두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섬뜩함이었다.
그때, 문틈 사이로 아주 희미하게, 붉은빛이 깜빡였다. 마치 거대한 눈이 저편에서 번뜩이는 것만 같았다.
`그르르릉……`
방금 전보다 훨씬 더 묵직하고,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나오는 짐승의 으르렁거림이 강철 문을 통과해 하진의 뼛속까지 진동시켰다. 단순한 짐승이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살아있는 재앙에 가까웠다. 하진의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학원의 지하에 숨겨진,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끔찍한 금기. 그 실체가 바로 이 문 뒤에 있었다.
그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학원의 깊은 지하에서 이토록 거대하고 불길한 심장을 뛰게 하는가?
하진은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두려움 속에서도 섬광처럼 빛났다. 이제 그는 알았다. 이 크로노스 학원의 심장 아래, 어둠 속에 거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비밀은 언젠가, 이 학원 전체를 집어삼킬지도 모르는, 끔찍한 재앙이 될 것이라는 것을.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 끔찍한 존재가 학원으로부터 무엇을 먹고 자라고 있는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