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미스터리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제1장. 사라진 그림자

카르틴의 하늘은 늘 잿빛이었다. 제국의 심장인 황도, 그란테이아가 눈부신 대리석과 황금빛 돔으로 치장되어 있을 때도, 제국의 끄트머리 빈민구역 카르틴은 한 번도 햇살을 제대로 받은 적 없는 낡은 구두창처럼 칙칙했다. 퀴퀴한 뒷골목에서는 시궁창 냄새와 썩은 과일 냄새가 뒤섞여 희망 없는 하루를 알렸고, 허리춤에 권총을 찬 제국군 병사들의 딱딱한 군화 소리만이 유일하게 규칙적인 리듬을 만들었다.

진우는 그 냄새와 소리에 익숙했다. 열여덟 해를 이 잿빛 도시에서 살았고, 스물여덟 해를 살게 될지도 몰랐다. 그는 낡은 수레에 짐을 싣고 시장통을 가로질렀다. 등에는 무거운 마대 자루가 축 늘어져 있었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어느 노인보다도 형형했다. 짐꾼이라는 그의 직업은 단순히 물건을 나르는 것을 넘어, 도시의 모든 소문과 풍경을 눈과 귀에 담는 관찰자의 역할이기도 했다.

“쳇, 젠장!”

진우의 앞에서 걷던 어린 짐꾼 하나가 삐끗하며 짐을 쏟아냈다. 그 옆을 지나가던 제국군 병사가 귀찮다는 듯 혀를 찼다.

“게으른 놈 같으니. 질질 끄는 건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나?”

병사는 구둣발로 쏟아진 사과 몇 개를 뭉개버리고는 성큼성큼 지나쳤다. 어린 짐꾼은 그저 바닥에 엎드려 울먹일 뿐이었다. 진우는 차마 발을 멈추지 못하고 어린 짐꾼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돕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제국군의 눈에 띄어 자신마저 빌미 잡힐 게 뻔했다. 이 도시에선 정의는 사치였다. 살아남는 것만이 유일한 미덕이었다.

점심 무렵, 그의 단골 식당인 ‘노을 주막’에 들렀다. 이곳은 카르틴에서 유일하게 따뜻한 국밥 한 그릇과 함께 인간적인 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주막 안은 여느 때와 다르게 쥐죽은 듯 조용했다. 늘 왁자지껄하던 손님들은 고개만 숙인 채 식사를 하고 있었고, 주인 아주머니의 얼굴에는 깊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아주머니, 국밥 한 그릇이요.”

진우가 평소처럼 활기 없이 중얼거리자, 아주머니가 낡은 행주로 상을 닦으며 진우에게로 다가왔다.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낮고 쉬어 있었다.

“진우야, 못 들었니? 어제 밤에… 박 이장님이 사라지셨어.”

진우는 수저를 들다 말고 멈칫했다. 박 이장님이라니. 카르틴의 이장이자, 빈민들을 위해 늘 제국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던 몇 안 되는 어른이었다. 특히 최근 제국이 발표한 ‘운하 확장세’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하며 서명운동까지 벌이던 참이었다. 운하 확장은 황실의 사치일 뿐, 그 비용은 고스란히 이 가난한 동네의 짐이 될 것이라고 그는 늘 강조했다.

“사라지셨다고요? 어디로요?”

“모르지… 어젯밤에 집에 가보니 문이 열려 있었는데, 아무도 없었단다. 이웃들도 아무것도 못 봤다고 하고….” 아주머니는 낡은 행주를 쥐어짜듯 비틀었다. “사람들이 수군대는데… 분명 제국군 놈들이겠지. 어르신께서 그 빌어먹을 운하세에 대해 자꾸 따지셨으니….”

진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침묵은 곧 긍정이었다. 이 도시에선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제국의 눈 밖에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사람들. 박 이장님은 그래도 달랐다. 많은 이들이 따랐고, 그의 목소리는 카르틴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런 분이 그렇게 허망하게 사라지다니.

국밥은 모래를 씹는 것처럼 퍽퍽했다. 그는 억지로 몇 숟갈 떠먹고는 주막을 나섰다. 그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박 이장님의 집으로 향했다. 낡은 목조 가옥, 마당에는 늘 정성껏 가꾼 채소들이 있었는데, 오늘은 그마저도 생기를 잃은 듯 보였다.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아주머니 말대로 빗장이 열려 있었다.

진우는 조심스럽게 대문을 밀고 들어섰다. 마당은 깨끗했다. 너무나 깨끗해서 오히려 수상했다. 흙 한 줌 흐트러진 곳 없이 정돈되어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장님…”

진우가 나직이 이름을 부르자, 마당 한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작은 헛기침 소리였다. 진우는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낡은 창고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그 틈새로 누군가의 눈이 불안하게 진우를 응시하고 있었다.

“누구…세요?” 진우가 경계하며 물었다.

창고 문이 조심스럽게 더 열리며, 낡은 천을 뒤집어쓴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막에서 봤던 어린 짐꾼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늘 겁이 많았고, 사람들과 눈도 잘 마주치지 못했다.

“젊은이… 이장님 찾으러 왔는가?” 그녀의 목소리는 몹시 떨렸다.

“혹시… 뭘 보셨나요?”

여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고개를 젓는 척했다. 그녀의 눈동자는 진우의 어깨 너머, 하늘을 맴도는 제국군의 탐사정 쪽으로 향했다. 진우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거대한 탐사정이 굉음을 내며 카르틴 상공을 선회하고 있었다. 저것은 단순히 감시의 눈이 아니었다. 침묵을 강요하는 제국의 거대한 위협이었다.

다시 여인에게 시선을 돌리자, 그녀는 이미 땅바닥만 응시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아무것도….”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창고 문 안쪽으로 몸을 숨기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의 손에서 작고 낡은 나무 조각이 툭 하고 떨어졌다. 진우의 시선이 재빨리 그 조각에 닿았다. 그것은 단순한 나무 조각이 아니었다. 이장님이 늘 허리에 차고 다니던 작은 지팡이의 한 조각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나무 조각에는 작게, 아주 작게, 긁힌 듯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그 무늬는 진우의 눈에 익숙했다. 카르틴의 빈민들이 몰래 모여 비밀리에 정보를 교환하는, ‘달그림자’라는 조직의 상징이었다. 그들은 제국군에 대한 저항을 꿈꾸며, 아주 은밀하게 움직였다. 이장님이 그들과 연관되어 있었다니. 진우는 생각지 못한 실마리에 가슴이 뛰었다.

여인은 급히 나무 조각을 발로 덮으려 했지만, 진우는 이미 자신의 눈에 그 무늬를 새겼다. 그녀는 진우에게 눈물을 글썽이며, 거의 애원하듯 말했다.

“제발… 모른 척해주십시오. 아무것도… 아무것도 모르는 척….”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공포를 이해했다. 제국의 그림자는 너무나도 길고 어두웠다. 그는 나무 조각을 줍는 대신, 그 무늬가 새겨진 부분을 잠시 응시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그와 똑같은 무늬가 새겨진 낡은 쇠붙이를 만졌다. 그것은 그가 과거에 우연히 주웠던, 달그림자 조직원들이 사용하는 일종의 암호 키였다.

박 이장님은 단순한 실종이 아니었다. 그는 달그림자와 연관되어 있었고, 제국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혹은, 이장님이 제국이 숨기고 싶어 하는 무언가를 알아냈고, 그것이 그의 실종으로 이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진우는 조용히 대문을 나섰다. 잿빛 하늘 아래, 카르틴의 거리는 더욱 음울해 보였다. 멀리서 탐사정의 굉음이 다시 울려 퍼졌다. 제국은 모든 것을 감시하고, 모든 것을 통제하려 했다. 하지만 진우의 심장은 묘한 불안감과 함께 뜨거워지고 있었다. 박 이장님의 사라진 그림자 뒤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진실은, 이 잿빛 도시 카르틴에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까?

진우는 낡은 쇠붙이를 꽉 쥐었다. 그는 이제 단순한 짐꾼이 아니었다. 진실을 좇는 그림자이자,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자가 되어야 했다. 제국의 거대한 장막 뒤에 숨겨진 추악한 민낯을, 그는 기어이 파헤쳐야만 했다. 그것이 박 이장님에 대한, 그리고 이 잿빛 도시에 사는 모두에 대한 그의 마지막 의무일지도 모른다.

밤이 깊어질수록, 카르틴의 어둠은 더욱 짙어졌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진우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지금부터, 제국이 만든 거대한 미로 속으로 첫발을 내딛는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