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그림자 속의 밀실]**
차갑고 끈적이는 장마비가 끝없이 이어졌다. 흑영관은 비에 젖은 거대한 그림자처럼 산등성이에 박혀 있었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낡은 석조 건물은 음산한 기운을 내뿜었고, 창문마다 드리워진 두꺼운 커튼은 내부의 비밀을 더욱 굳게 닫고 있는 듯했다.
나는 민준이었다. 강력계 경위 김민준. 비상벨이 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형사과장님과 함께 이 끔찍한 장소에 도착했다. 빗물에 젖은 자갈길을 밟고 현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왠지 모르게 무거웠다. 이미 도착해 있던 초동수사팀원들이 굳은 얼굴로 우리를 맞았다.
“과장님, 경위님. 현장은… 보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베테랑 형사의 목소리에는 드물게도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평생 온갖 끔찍한 사건을 접해왔을 그들마저 혼란스럽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는 직감이 스쳤다.
긴 복도를 따라 걸었다. 낡은 목재 바닥이 발걸음마다 희미하게 삐걱거렸다. 복도 끝,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서재 문이 열려 있었다. 그러나 그 안으로 발을 들이밀기도 전에 이미 싸늘한 공기가 피부에 와 닿았다. 희미하게 피비린내가 풍겨왔다.
“젠장.” 과장님의 낮은 욕설이 터져 나왔다.
서재 안은 그야말로 참혹했다. 앤티크한 가구와 수십 년 묵은 고서들로 가득 찬 방 한가운데, 대리석 바닥에 한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희뿌연 조명 아래 그의 몸은 섬뜩하리만치 창백했고, 피가 흥건하게 고여 바닥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날카로운 흉기에 여러 차례 찔린 듯한 상처가 선명했다.
“피해자는 윤태성 씨입니다. 흑영관의 주인.” 초동팀장이 보고했다. “발견자는 집사 박상현 씨입니다.”
“밀실인가?” 과장님이 읊조리듯 물었다.
“네, 과장님. 완벽한 밀실입니다.” 팀장이 고개를 숙였다.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습니다. 저희가 도착했을 때도 그렇더군요. 창문은 모두 굳게 닫혀 있었고, 안쪽에서 잠금장치가 채워져 있었습니다. 환풍구는… 사람이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좁습니다. 지하실이나 다락방으로 통하는 다른 통로도 없습니다.”
나는 현장을 꼼꼼히 살폈다. 방 안에는 어떤 침입의 흔적도 없었다. 부서진 창문도, 훼손된 문틈도, 뒤집힌 가구도 없었다. 마치 피해자가 혼자 이 방에 들어가 스스로 문을 잠그고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누군가’는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발견 당시 상황은?” 내가 물었다.
“집사 박상현 씨의 진술에 따르면, 밤늦도록 서재에 계시던 윤 회장님이 아침까지 나오지 않아 걱정스러워 열쇠로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열쇠로 문을 열었다는 것은 바깥에서 잠겨 있었다는 말이 아니었다. 안에서 잠긴 문이었다. 범인은 어떻게 이 방을 나간 거지?
모든 경찰관들의 얼굴에는 당혹감과 함께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이 현장은 누가 봐도 상식적인 이해의 범주를 벗어나 있었다. 미스터리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완벽한 밀실 살인.
그때, 서재 문 앞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꽤 흥미롭군.”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그를 향했다. 빗물에 약간 젖은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 강이한이었다. 흐트러짐 없는 단정한 머리, 날카로우면서도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 그리고 묘한 여유가 느껴지는 표정. 그는 강력계 소속은 아니었지만, 경찰 내부에서는 물론 외부에서도 ‘천재 탐정’으로 불리는 특별수사팀의 고문이었다. 어려운 사건이 터지면 과장님은 항상 그를 불렀다.
“강 고문님!” 과장님이 반색하며 맞았다.
강이한은 굳이 현장 안으로 발을 들이지 않았다. 문턱에 선 채로 방 전체를 한 번 스윽 훑어볼 뿐이었다. 그의 시선은 피해자의 시신에서 잠시 멈추는가 싶더니, 이내 방 구석구석을 훑었다. 특히 문과 창문의 잠금장치, 그리고 벽면과 천장, 바닥을 유심히 살폈다.
“경찰 측에서는 완벽한 밀실이라고 판단하고 있겠죠.” 강이한이 나른한 어조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떤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고문님. 모든 증거가 밀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외부 침입은 불가능합니다.” 팀장이 설명했다.
강이한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비웃음이라기보다는, 흥미로운 난제에 직면한 지성인의 표정에 가까웠다.
“불가능한 일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아직 그 방법을 알지 못할 뿐이죠.”
그는 천천히 서재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의 발걸음은 조심스러웠지만 망설임은 없었다. 희생자의 시신에 가까이 다가가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그는 시신을 직접 만지지는 않았지만, 날카로운 눈으로 상처 부위와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는 바닥에 고인 피의 농도와 퍼진 정도를 관찰했다.
“사인은 과다출혈에 의한 쇼크사. 사망 시각은 새벽 2시에서 4시 사이로 추정되는군요.” 강이한이 중얼거렸다. 그의 눈은 여전히 시신 위를 맴돌고 있었다. “흉기는… 아마도 이 근처에 있어야 할 텐데, 보이지 않는군요.”
“네, 고문님. 흉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러다 갑자기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앤티크한 샹들리에가 희미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내 그의 시선은 천장에서 벽으로, 다시 바닥으로, 마침내 문과 창문의 잠금장치로 향했다.
“잠금장치가 훼손된 흔적은 없죠?”
“네, 완벽합니다.”
강이한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문 쪽으로 걸어갔다. 손으로 문틀을 살짝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잠금장치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마치 평범한 쇠붙이에서 숨겨진 비밀을 찾아내려는 듯했다.
“이 문은 안에서 잠겼다가, 밖에서 열쇠로 열린 문. 그게 전부입니까?”
“네. 집사 박상현 씨의 진술입니다. 그는 외부에서 잠겨 있었다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강이한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밀실 살인 사건은 언제나 범인의 교활함과 탐정의 지혜 싸움입니다.” 그는 읊조리듯 말했다. “여기서 사라진 것은 단지 흉기뿐만이 아닙니다. 살인범이 사라졌죠. 그리고 그 사라진 살인범은 이 완벽해 보이는 밀실 속에 숨어 있습니다.”
그의 말은 논리적이었지만, 동시에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을 내포하고 있었다. 어떻게 완벽한 밀실 속에 범인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강이한은 나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은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김 경위님,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세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진실은 우리에게서 멀어집니다.”
그는 말을 마친 후, 서재 문턱을 넘어 밖으로 나섰다.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흑영관의 어둠은 더욱 짙어지는 듯했다. 완벽한 밀실. 과연 그 속의 진실은 무엇일까. 나는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그가 떠난 자리를 응시했다. 시작부터 난해한 사건이었다. 그의 천재적인 통찰력이 아니었다면, 이 사건은 영원히 미궁 속에 갇힐지도 몰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