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 호러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첫 번째 챕터: 잿더미 속의 숨**

차가운 새벽 공기가 허물어진 유리창 틈새로 비집고 들어왔다. 재민은 무너져 내린 콘크리트 기둥 뒤에 웅크린 채 가늘게 떨었다. 바람이 찢어진 벽 사이를 휘돌며 늑대의 울음소리 같은 음산한 소리를 토해냈다. 회색빛 먼지가 가득한 이 도시는, 이제 생존자에게는 거대한 공동묘지나 다름없었다.

배낭 속에는 며칠 전 겨우 찾아낸 딱딱한 건빵 몇 조각과, 녹이 슬기 시작한 낡은 통조림 하나가 전부였다. 손에 쥔 쇠지렛대는 유일한 동반자이자 무기였다.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그것들’에게서 자신을 지켜줄, 믿을 수 있는 것은 이 차가운 쇳덩이뿐이었다. 재민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천천히 내뱉었다. 이런 곳에서는 작은 소리 하나도 죽음을 부를 수 있었다.

오늘은 식량을 찾아 이 폐허가 된 병원을 뒤질 차례였다. 외곽 지역에 위치한 이 병원은 그나마 ‘혼돈의 그림자’들이 덜 들끓는 곳이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그렇다고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저 다른 곳보다 ‘조금 덜 위험하다’는 막연한 희망에 불과했다.

“젠장…”

재민은 땀으로 축축한 이마를 쓸어 올렸다. 며칠째 제대로 된 잠을 자지 못해 눈꺼풀은 천근만근이었다. 하지만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눈을 감는 순간, 망자들의 속삭임이 귓가에 들려오는 환청에 시달리거나,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오는 형언할 수 없는 존재들에게 습격당할지도 몰랐으니까.

조심스럽게 발을 떼어 복도를 가로질렀다. 한때는 환자들로 북적였을 복도였지만, 이제는 깨진 유리 파편과 뜯겨나간 문짝, 알 수 없는 얼룩들만이 음산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삐걱이는 쇠붙이 소리, 어딘가에서 물이 새는 듯한 ‘똑, 똑’ 하는 소리만이 정적을 깨뜨렸다. 재민의 신경은 곤두서 있었다.

“……없나.”

중얼거리는 목소리조차 주변의 공기에 흡수되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응급실 표지판이 간신히 매달려 있는 문을 열었다. 내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엉망진창이 된 의료기구들, 찢어진 차트들, 그리고… 벽에 새겨진 붉은 손자국. 손바닥 자국은 선명했지만, 손가락은 기이할 정도로 길게 늘어져 있어 인간의 것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듯했다.

재민은 본능적으로 쇠지렛대를 고쳐 쥐었다. 이 병원에도 ‘그것들’이 머물다 간 흔적이 역력했다. 핏자국이 아니라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랄까. 그것들은 피를 흘리지 않았다. 그저 삶의 흔적을 지우고, 공포를 남길 뿐이었다.

그때, 저편에서 작은 빛줄기가 보였다. 희미했지만 분명한, 아직 전원이 살아있는 듯한 모니터의 불빛이었다. 호기심과 함께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이런 폐허에서 전력이 살아있는 곳은 드물었다.

재민은 바닥에 굴러다니는 깨진 유리 조각들을 피해 조심스럽게 빛을 향해 다가갔다. 불빛은 수술실 안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낡은 문을 살짝 밀자,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차가운 공기가 확 풍겨 나왔다. 수술실 내부는 어두웠지만, 저 안쪽에서 깜빡이는 모니터의 푸른빛이 희미하게 공간을 밝혔다.

모니터에는 아무것도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그저 전원이 들어와 있다는 맹목적인 빛. 재민은 실망했지만, 혹시 다른 물건이라도 있을까 싶어 주변을 살폈다. 낡은 수술 도구들과 함께 바닥에 엎어진 캐비닛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캐비닛을 일으켜 세우자, 안에서 작은 물건 하나가 툭 하고 굴러 나왔다. 낡은 종이 상자였다. 먼지를 털어내자, 한때는 화려했을 포장지 무늬가 드러났다. 비상용 구급상자였다. 심장이 다시 한번 크게 뛰었다. 내용물은 기대하기 어려울지라도, 이 자체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발견이었다.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자, 마른 붕대 몇 개와 소독약, 그리고 손바닥만 한 작은 성경책 한 권이 나왔다. 재민은 픽 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이런 세상에서 신을 찾는 이들이 아직도 있다니. 하지만 곧 그의 시선은 성경책 뒤에 숨겨져 있던 것에 멈췄다. 작은 비닐 지퍼백이었다. 안에는 꽤 많은 양의 비상 식량이 들어있었다. 딱딱한 육포와 견과류, 그리고 에너지바 몇 개. 재민은 떨리는 손으로 지퍼백을 움켜쥐었다. 살아남을 수 있는 희망이 조금 더 늘어난 기분이었다.

그때였다.

수술실 한쪽 구석, 그림자가 유난히 짙게 드리워진 곳에서 희미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처음에는 단순히 빛이 만들어낸 착시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림자는 점점 더 짙어지며,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유동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공기가 갑자기 차갑게 식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재민은 본능적으로 몸을 숙였다. 심장이 발버둥 치듯 쿵쾅거렸다. 쇠지렛대를 꽉 쥐었지만,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다. ‘혼돈의 그림자’. 그것이었다. 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연기 같기도 하고, 어둠이 뭉쳐진 덩어리 같기도 한 존재. 그것은 서서히 수술실 바닥을 따라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재민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움직임은 유령처럼 미끄러졌고, 그 존재 자체가 모든 소리를 집어삼키는 듯했다. 하지만 재민의 귓가에는 들리지 않는 속삭임이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그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공포를 끄집어내는 듯한 낮은 울림이었다.

그림자가 가까워질수록, 재민의 시야가 흐릿해졌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낡은 수술실의 벽이 비틀리는 것처럼 보였다. 환영이었다. 그것이 사람의 정신을 파고들어 공포를 극대화하는 방식이었다. 절대로 눈을 마주쳐선 안 된다. 그게 이 폐허에서 살아남기 위한 몇 안 되는 규칙 중 하나였다.

재민은 억지로 시선을 그림자에서 떼어냈다. 도망쳐야 했다. 하지만 어디로? 이 좁은 수술실 안에서.

그때, 그의 눈에 모니터의 푸른빛이 다시 들어왔다. 전원이 살아있다는 사실. 순간적인 직감이 뇌리를 스쳤다. 빛. 빛은 때때로 그것들을 잠시나마 쫓아낼 수 있었다.

재민은 주저 없이 쇠지렛대를 휘둘러 모니터를 후려쳤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모니터의 화면이 지지직거렸다. 푸른빛이 갑자기 강렬하게 번쩍이며 수술실 전체를 일순간 환하게 밝혔다.

‘쉬이이이익-‘

혼돈의 그림자가 역한 소리를 내며 움츠러들었다. 마치 빛에 데인 것처럼, 검은 연기가 일렁이며 뒤로 물러섰다. 순간적인 틈이었다.

재민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비닐 지퍼백과 성경책을 배낭에 쑤셔 넣고, 몸을 날려 수술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복도를 가로질러 달렸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시선과 점점 커지는 속삭임이 그를 쫓아오는 듯했다.

“젠장! 젠장!”

계단을 두 칸씩 건너뛰며 내려갔다. 발소리가 폐허에 울려 퍼졌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지하로 내려갈수록 공기는 더욱 차가워지고, 곰팡이 냄새와 함께 알 수 없는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마침내 병원 뒷문으로 통하는 낡은 철문을 발견했다. 녹슨 손잡이를 힘껏 비틀자,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재민은 허물어진 담벼락을 넘어섰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폐허가 된 도시의 그림자 속으로, 끊임없이 쫓아오는 공포를 등지고, 오직 살아남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렸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잠시 멈춰 섰다. 저 멀리 동쪽 하늘에는 이제 막 해가 뜨기 시작하고 있었다. 희미한 붉은빛이 잿빛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재민은 찢어진 옷소매로 땀을 닦아냈다. 식량은 얻었지만, 이 도시의 공포는 여전했다. 어쩌면 전보다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그는 텅 빈 눈으로 떠오르는 해를 응시했다. 이 희망 없는 세상에서, 그가 살아남을 수 있는 날은 과연 며칠이나 더 남았을까. 그는 알 수 없었다. 단지, 오늘 하루도 겨우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안도할 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알 수 없는 목적지를 향해. 어쩌면 그 끝에,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를 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