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어둑한 하늘은 언제나처럼 잿빛이었다. 멸망한 세상의 모든 것이 그런 색을 띠는 것 같았다. 닳아빠진 운동화가 부서진 파편 위를 걸을 때마다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지훈은 익숙하게 그 소음을 무시하며 한때 번화했던 백화점 건물의 잔해 속을 헤치고 나아갔다. 유리 진열장은 이미 오래전 부서져 알맹이를 잃었고, 마네킹은 기괴한 자세로 나뒹굴었다. 한때 화려했을 옷가지들은 곰팡이에 잠식되거나 먼지로 뒤덮여 흉측한 몰골이 되어 있었다.

오늘의 목표는 식량이었다. 통조림이든, 썩지 않은 건조식품이든, 뭐든 좋았다. 지난 사흘간 씹은 것이라고는 빗물에 불린 쌀알 몇 톨이 전부였다. 뱃속에서는 천둥이라도 치는 듯 요란하게 꼬르륵 소리가 났다. 하지만 굶주림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익숙한 침묵이었다. 이 도시의 침묵은 평화가 아니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것이었다.

“하아, 하아….”

먼지 낀 공기가 폐부를 긁는 느낌이었다. 지훈은 낡은 마스크를 더욱 고쳐 썼다. 희미하게 코를 찌르는 악취는 이 세상의 상징과도 같았다. 층계를 오르내리는 발걸음은 조심스러웠다. 매 순간이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다. 문득, 저 멀리서 규칙적이지 않은 발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질질 끌리는 듯한, 둔탁한 소리.

지훈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스캐빈저. 혹은 그들이 한때 사람이었다는 것을 망각한 채, 지훈은 그렇게 불렀다. 괴물.

손에 쥔 쇠파이프를 꽉 움켜쥐었다. 녹슬고 삐걱거리는 문 뒤에 몸을 숨긴 채, 벽 틈새로 살며시 밖을 엿봤다. 멀지 않은 곳에서, 살점이 뜯겨나가 뼈대가 드러난 한 마리의 괴물이 비틀거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놈은 머리가 한쪽으로 꺾여 있었고, 텅 빈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도 기이하게 빛났다. 지훈은 숨을 죽였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는 것 같았다. 저 놈의 청각은 예민하지 않지만, 후각은 끔찍할 정도로 발달해 있었다. 움직임도 소리도 최대한 자제해야 했다.

놈이 천천히 멀어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고는 꺾인 고개를 천천히 돌려 지훈이 숨어있는 문 쪽을 향했다.

‘젠장.’

놈이 킁킁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지훈의 몸이 경직됐다. 들켰다. 놈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비틀거리던 걸음은 순식간에 달리는 듯한 속도로 바뀌었다.

“크어어어…!”

찢어지는 듯한 괴성이 폐허에 울려 퍼졌다. 지훈은 망설일 틈도 없이 문을 박차고 뛰었다. 발소리가 요란하게 울렸지만, 이제 숨길 필요는 없었다. 그저 살아야 했다. 놈은 생각보다 빨랐다. 뒤에서 끈적한 손이 뻗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지훈은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우며 좁은 통로를 향해 몸을 날렸다.

“젠장, 젠장!”

달려봐야 도착하는 곳은 언제나 막다른 길이었다. 비상구 표지가 뜯겨나간 문을 열자, 계단은 이미 무너져 있었다. 아래는 어둠뿐이었다. 놈의 신음 소리가 바로 뒤까지 따라붙었다. 살점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지훈은 몸을 돌려 쇠파이프를 휘둘렀지만, 놈은 둔탁한 소리와 함께 쓰러지는가 싶더니 다시 일어섰다. 머리를 노려야 했다. 하지만 놈은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쇠파이프를 든 손목을 놈의 썩어가는 손이 움켜쥐었다. 역겨운 악취와 함께 피부에 달라붙는 감촉은 소름이 돋았다. 지훈은 고통에 찬 신음과 함께 몸부림쳤지만, 놈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놈의 턱이 지훈의 목덜미를 향해 다가왔다.

‘끝인가… 이렇게 끝나는 건가….’

절망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때였다. 지훈의 등 뒤, 무너진 계단 아래의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이 일렁였다. 손목을 붙잡힌 채 발버둥 치던 지훈의 몸이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놈의 이빨이 살갗에 닿기 직전, 지훈은 그대로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크아아아!”

괴물의 단말마가 울렸다. 지훈은 어둠 속으로 추락했다. 콘크리트 파편과 흙먼지 위로 몸이 곤두박질쳤다. 머리가 깨질 듯한 충격과 함께 정신을 잃는가 싶었지만, 온몸을 꿰뚫는듯한 차가운 감각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겨우 몸을 일으킨 지훈은 고통에 신음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자신이 떨어진 곳은 무너진 백화점의 지하가 아니었다. 이곳은, 지하 깊숙한 곳에 숨겨진 또 다른 공간이었다. 고대의 유적과도 같은 모습. 돌로 된 기둥들이 견고하게 천장을 받치고 있었고, 벽에는 알아볼 수 없는 상형문자와 기묘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중앙에 놓인 제단이었다. 검고 매끄러운 돌로 만들어진 제단 위에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푸른빛 조약돌이 놓여 있었다. 그 조약돌에서 나오는 희미한 빛이 이 공간을 비추고 있었다.

“이게… 뭐야….”

감탄사인지, 경악인지 모를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곳은 세상이 멸망하기 전에도 알려지지 않았던 곳일 터였다. 문득, 등 뒤에서 다시 괴물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전 굴러떨어졌을 때, 놈도 함께 떨어진 모양이었다. 아니, 놈은 이미 지훈의 바로 뒤에 서 있었다. 놈의 썩은 이빨이 빛에 반사되어 번뜩였다. 이번에는 피할 수 없었다.

지훈은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제단 위에 놓인 푸른 조약돌을 움켜쥐었다. 마지막 발버둥이었다. 죽기 직전, 뭔가라도 붙잡고 싶은 인간의 미약한 본능.

조약돌이 손에 닿는 순간, 거대한 전기가 흐르는 듯한 감각이 온몸을 꿰뚫었다. 푸른빛은 순식간에 폭발적으로 타올랐고, 지훈의 손에서부터 팔, 그리고 온몸으로 격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그의 뇌리 속으로 수많은 이미지가 파고들었다. 아득히 먼 옛날의 풍경, 알 수 없는 언어로 속삭이는 목소리, 그리고 세상의 근원을 이루는 듯한 거대한 힘의 감각.

“크아아아악!”

눈앞의 괴물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 소리는 지훈이 듣던 괴물의 소리가 아니었다. 고통과 절규가 뒤섞인, 마치 불에 타는 듯한 소리. 빛이 너무 강렬해서 눈을 감았지만, 지훈은 느껴졌다. 자신에게 달려들던 괴물이 순식간에 재가 되어 흩어지는 것을. 흔적도 없이,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빛이 사그라들자, 고요함이 찾아왔다. 지훈은 천천히 눈을 떴다. 손에 쥔 푸른 조약돌은 여전히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서부터 팔목에 걸쳐, 고대의 문양과도 같은 푸른색 선들이 새겨져 있었다. 마치 문신처럼.

괴물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한 줌의 검은 먼지뿐이었다.

지훈은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이 기묘한 유적의 공간을 응시했다. 이 알 수 없는 힘은 대체 뭐지? 이 푸른 돌은? 그리고 내 몸에 새겨진 이 문양은?

지훈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그것은 공포였지만, 동시에 알 수 없는 경이로움과 전율이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는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어버린 것만 같았다.

이게, 꿈일 리 없어.

그의 눈빛은 더 이상 잿빛 하늘을 닮지 않았다. 푸른 조약돌의 빛처럼, 미약하지만 강렬한 무언가가 그의 눈동자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