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선 ‘아스가르드’는 태초의 어둠 속을 미끄러지듯 나아가고 있었다. 7G-델타 섹터. 인류가 이제껏 발을 들여놓지 못했던, 광활하고 황량한 미지의 영역. 함장 류진은 홀로 함교의 조종석에 앉아, 눈앞을 가득 채운 별들의 흐름을 멍하니 응시했다. 몇 년을 이렇게 어둠 속에서 떠돌았는지, 그의 기억마저 희미해질 지경이었다.
“함장님, 서연 과학 장교입니다. 비정상적인 에너지 패턴이 감지되었습니다.”
류진의 귀에 꽂힌 통신기가 날카로운 목소리를 뱉어냈다. 무미건조했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서연의 목소리는 뭔가 심상치 않음을 알리고 있었다.
“비정상적이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해봐.”
그는 즉시 자세를 고쳐 앉고, 주 모니터에 함선 외부의 데이터를 띄웠다.
“온도, 전자기장, 중력… 모든 면에서 일반적인 천체와는 다릅니다. 아니, 아예 측정이 불가능한 수준입니다. 마치… 존재해서는 안 되는 물질처럼요.”
모니터에 표시된 좌표는 아스가르드호의 전방 10만 킬로미터 지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텅 비어 있어야 할 공간에, 알 수 없는 데이터 덩어리가 기괴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조종사 준호가 능숙한 손길로 함선을 조작하며 다가섰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
“함장님, 이 속도면 3시간 내에 육안으로 확인 가능합니다. 그런데… 제 감으로는, 저곳에 뭐가 있든 좋은 징조는 아닙니다.”
준호는 우주를 떠돈 지 20년이 넘는 베테랑이었다. 그의 직감은 종종 과학적 분석보다 정확할 때가 있었다.
수석 엔지니어 강민의 우려 섞인 목소리도 들려왔다. “함장님,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보호막을 최대로 올리고, 모든 시스템을 대기 상태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건… 심상치 않아요.”
그의 목소리에는 언제나처럼 현실적인 걱정이 묻어났다.
류진은 잠시 눈을 감았다. 모든 승무원의 안전이 그의 어깨에 달려 있었다. 그는 쉼 없이 질문을 던졌다.
“서연, 혹시 저것이 과거에 알려진 문명과 관련된 것일 가능성은 없나?”
“현재 데이터로는 전혀요. 모든 탐사 기록과 대조해봤지만, 일치하는 것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마치… 이 우주의 물질이 아닌 것 같아요.” 서연의 목소리에선 학자 특유의 호기심과, 그를 넘어선 불안감이 느껴졌다.
세 시간 후, 아스가르드호는 그 미지의 존재 앞에 섰다.
거대했다. 그러나 그 크기를 정확히 가늠하기 어려웠다. 마치 시선을 두는 순간마다 형태가 일그러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맙소사…” 준호의 입에서 낮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모니터에는 완벽한 검은색 큐브 형태가 떠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검은색과는 달랐다. 빛을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주위의 모든 빛을 삼켜버리는 듯한 압도적인 어둠이었다. 표면은 매끄러웠지만, 그 안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듯한 환영이 아른거렸다.
“함장님, 제 광학 센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이 물질의 표면은 빛을 반사하지 않아요. 아니, 아예 존재 자체가 주변 공간을 왜곡시키는 것 같습니다.” 서연의 목소리는 경외감과 공포로 뒤섞여 있었다.
아스가르드호가 천천히 큐브에 접근할수록, 함선 내부에는 기이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먼저, 조명이 미세하게 깜빡였다. 그리고 이내 전 함선에 음산한 저음의 웅웅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마치 심해의 괴수가 내는 울음소리 같았다.
“시스템 오류! 비상 전원 전환!” 강민이 다급하게 외쳤다.
류진은 손으로 관자놀이를 짚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마치 뇌 속에 차가운 얼음 송곳이 박히는 듯한 불쾌감이었다.
“준호, 속도를 더 줄여.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대피 준비를 해.”
“네, 함장님… 그런데… 뭔가 이상해요. 제 팔이… 저리고… 어지럽습니다.” 준호는 조종간을 잡은 손을 떨었다. 그의 안색은 창백했다.
서연의 통신이 다시 들려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전과는 달랐다. 목소리가 몹시 불안정했다.
“함장님… 저… 저 안에서… 무언가 저를 부르는 것 같아요. 속삭이는 소리가 들립니다… 인류의 언어는 아닌데… 의미가… 의미가 명확하게 와닿아요.”
류진은 섬뜩함을 느꼈다. “서연, 진정해. 지금 즉시 모든 분석을 중단하고 격리실로 돌아가!”
“안돼요, 함장님! 이건… 인류의 지식을 초월하는… 뭔가 엄청난… 진리예요! 제가 이걸 이해해야만 해요!” 서연의 목소리는 광기에 가까웠다.
그때, 거대한 큐브의 표면에서 미세한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금이 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칠흑 같은 액체가 서서히 녹아내리는 듯한 형태였다. 그리고 그 틈새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색깔의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동시에 모든 색깔이었고, 아무런 색깔도 아니었다. 그 빛은 눈을 직접 찔러오는 듯한 고통을 안겼다.
“보호막이… 보호막이 불안정합니다!” 강민의 비명이 들려왔다. “외부 에너지 간섭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예요!”
류진의 시야가 일그러졌다. 그의 눈앞에, 오래전 잃었던 가족의 얼굴이 홀연히 나타났다. 그들은 류진을 향해 손을 뻗으며 울부짖고 있었다. 환각이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생생했다.
“나가! 내 눈앞에서 사라져!” 류진은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는 경련했다.
큐브의 균열은 더욱 커졌다. 그 틈 사이로, 거대한 어둠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물리적인 어둠이 아니었다. 공간 자체를 잠식하는 듯한, 존재의 근원을 뒤흔드는 공포의 파동이었다.
“크아아악!”
준호가 비명을 지르며 조종간에서 손을 놓았다. 그의 얼굴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코와 귀에서 붉은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함장님… 함장님! 서연 장교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강민의 다급한 외침이 통신기를 찢을 듯 울렸다.
류진은 혼란스러운 시야 속에서 메인 모니터를 응시했다. 큐브는 이제 완전히 열리고 있었다. 그 안은 무한한 심연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 그러나 그 안에는 우주 전체를 집어삼킬 듯한 굶주림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심연의 중심에서, 무언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은 형태가 없는 형태였다. 마치 인류의 시각으로는 결코 인식할 수 없는, 너무나도 거대하고 오래된 존재의 그림자였다.
마지막으로, 서연의 통신이 다시 연결되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이제 평온했다. 너무나도 섬뜩할 정도로 평온했다.
“함장님… 이해했어요. 이 유물은… 문이 아니었어요. 이건… 이 우주를 집어삼키기 위해… 영원히 기다려온… 입이었습니다.”
그녀의 통신은 거기서 끊겼다.
류진은 공포에 질려 숨을 헐떡였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심연에서, 거대한 무언가의 눈동자가 그들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것은 별보다도 더 오래되었고, 인류의 상상력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다.
아스가르드호는 이제 그 거대한 입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젠장… 모든 전력을… 탈출에 집중해!” 류진은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는 것을, 그는 직감하고 있었다.
어둠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