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챕터 1: 그림자 아래 도시
네온사인이 빗물에 젖은 거리를 핏빛으로 물들이는 밤이었다. 메트로폴리스 7구역의 심장부, 아크론 제국의 거대한 감시탑들이 밤하늘을 찢을 듯 솟아 있었지만, 이곳, 최하층 빈민가의 골목은 그런 빛조차 제대로 닿지 않는 어둠의 미궁이었다. 공기 중에는 눅눅한 흙먼지와 싸구려 합성 식품의 찌꺼기, 그리고 알 수 없는 전자기기의 타는 냄새가 뒤섞여 희미한 오존층을 형성하고 있었다.
세아는 좁고 축축한 골목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낡은 방풍 재킷의 후드를 깊게 눌러썼지만,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그녀의 시야를 가릴 수는 없었다. 훈련된 발걸음은 삐걱거리는 맨홀 뚜껑이나 부식된 철제 계단을 귀신같이 피해갔다. 왼쪽 눈에 박힌 시각 센서는 칙칙한 벽면의 열화상 패턴을 스캔하며 최단 경로와 감시병의 이동 정보를 실시간으로 뿌려주었다. 망할 제국 놈들이 깔아놓은 감시망은 거미줄보다 촘촘했지만, 빈민가 아이들에게는 그 거미줄의 틈새를 찾아내는 것이 생존 방식이었다.
“젠장, 또 증강되었잖아.”
작은 혀끝을 차며 세아가 중얼거렸다. 방금 지나쳐 온 뒷골목 모퉁이에는 새로 설치된 감시 센서가 붉은 레이저를 교차하며 비추고 있었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길이지만, 이제는 조금 돌아가야 했다. 등 뒤에 멘 낡은 백팩 안에는 오늘 의뢰받은 물건이 들어있었다. 불법 해킹 칩 세 개. 제국이 엄격히 통제하는 정보망의 틈새를 뚫을 수 있는 유일한 열쇠 같은 것이었다. 이 물건을 약속된 장소까지 무사히 가져다주는 것이 오늘의 임무였다. 실패는 없었다. 실패는 굶주림을 의미했고, 굶주림은 곧 죽음이었다.
사방에서 웅성거리는 저층 시민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절망과 분노, 그리고 체념이 뒤섞인 비루한 삶의 교향곡. 가끔 들려오는 감시병들의 날카로운 구두 소리는 그들의 교향곡을 잠재우는 불협화음이었다. 세아는 그런 소음들을 모두 차단한 채 오직 자신의 발소리와 심장 박동 소리에만 집중했다.
한참을 더 헤집고 들어갔을 때, 좁은 골목 끝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새어 나왔다.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머릿속 시각 센서가 요란하게 경고음을 울렸다.
`경고: 전방 구역, 이동 감지. 복수의 대상. 무장 가능성 높음.`
세아의 심장이 순간 쿵 하고 내려앉았다. 골목 모퉁이에 몸을 숨기고 반대편을 엿봤다. 예상대로였다. 키 큰 건물의 그림자 아래, 감시병 두 명이 일렬로 서서 앞을 주시하고 있었다. 손에 든 중형 블래스터는 빛을 반사하며 차갑게 빛났다. 그들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아니, 누군가를 *찾는* 듯했다.
“빌어먹을.”
세아는 작게 욕설을 읊조렸다. 자신의 경로를 예측하고 매복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단순한 순찰이라면 이렇게까지 은밀하게 움직일 리 없었다. 등 뒤의 칩들이 위험에 처했다는 직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녀의 존재를 알아챘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가야 할 길을 막고 있었다.
돌아갈 수도 없었다. 의뢰인은 기다리고 있었고, 약속 시간을 어기면 돈을 받지 못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이 길 외에는 지금 당장 감시망을 뚫고 갈 다른 경로가 마땅치 않았다. 세아는 눈을 감고 빠르게 머릿속으로 지도를 그렸다. 감시병들이 시야를 확보하기 어려운 사각지대, 그들을 우회할 수 있는 높은 곳.
그녀의 시선이 옆 건물 외벽에 박힌 낡은 에어컨 실외기와 배수관에 꽂혔다. 녹이 슬어 삐걱거리는 철골 구조물이었다. 위로 올라가는 것은 위험했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젠장, 별수 없지.”
세아는 낮게 웅크려 자세를 잡았다. 심호흡 한 번. 그리고는 마치 바닥에 발이 없는 것처럼 가볍게 뛰어올랐다. 부식된 실외기를 딛고, 배수관을 잡고 몸을 위로 던졌다. 낡은 금속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크게 울렸다. 아래에 있던 감시병들이 순간적으로 고개를 들었지만, 세아는 이미 손끝으로 다음 발판을 찾아내며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빠르게 몸을 놀려 건물 옥상으로 기어올랐다. 옥상 바닥은 알 수 없는 잔해들과 깨진 유리 조각들로 뒤덮여 있었다. 메트로폴리스의 밤바람이 거세게 불어왔다. 아래로는 끝없이 펼쳐진 도시의 불빛들이 차갑게 반짝였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감시병들이 자신들이 막았던 골목 입구를 떠나 서서히 수색을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그녀를 찾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몸을 낮춰 옥상 가장자리로 기어가, 바로 옆 건물 옥상과의 거리를 가늠했다. 낡고 좁은 건물 사이를 연결하는 엉성한 철교 같은 것이 있었지만, 중간이 끊어져 있었다. 그 사이를 뛰어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등에 불법 칩들을 짊어진 채로는 더더욱.
`확률 계산: 성공률 73%.`
시각 센서가 계산 결과를 띄웠다. 이 정도면 충분히 해볼 만했다. 세아는 잠시 숨을 골랐다. 발밑으로 보이는 감시병들의 불빛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시간은 없었다.
“하나…”
낮게 숫자를 셌다. 도시의 소음이 그녀의 심장 박동과 섞여 들렸다.
“둘…”
눈을 가늘게 뜨고 목표 지점을 응시했다.
“셋!”
몸을 앞으로 던졌다. 발아래 콘크리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녀는 이미 공중에 있었다. 길게 뻗은 팔이 맞은편 옥상 난간을 간신히 붙잡았다.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몸이 난간에 부딪혔다.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이 팔을 타고 올라왔지만, 세아는 이를 악물고 몸을 끌어올렸다. 난간 위로 기어 올라서자마자 곧바로 바닥에 엎드렸다.
숨을 헐떡이며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이곳은 아직 안전한 듯했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백팩을 확인했다. 불법 칩들은 무사했다. 안도감에 어깨에 힘이 풀렸다.
그때였다. 옥상 한쪽 구석, 낡은 환풍기 뒤에서 흐릿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이다, 그림자 고양이.”
세아는 화들짝 놀라 몸을 돌렸다. 환풍기 뒤에서 나타난 것은 낡은 가죽 재킷을 입은 덩치 큰 남자였다. 그의 얼굴은 어둠 속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한쪽 눈에 박힌 붉은색 사이버 의안이 섬뜩하게 빛났다. 그는 세아의 연락책이자, 이 바닥에서 잔뼈 굵은 정보상이자 해커였다. 사람들은 그를 ‘망량’이라 불렀다.
“망량. 여기 있었어요?”
세아의 목소리에는 경계심이 스며들어 있었다. 망량은 피식 웃었다.
“네가 길을 헤맬까 봐 마중 나왔지. 감시병들이 주변을 쑤시고 다니더군. 무슨 일 있었나?”
“그냥 예상치 못한 손님들이 있었어요. 덕분에 좀 돌아왔죠.”
세아는 백팩에서 칩들을 꺼내 망량에게 건넸다. 망량은 칩들을 받아 들고 이리저리 살폈다. 그의 사이버 의안이 칩을 스캔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완벽하군. 역시 너야.”
망량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품속에서 작은 데이터 패드를 꺼내 세아에게 넘겼다. 패드 안에는 오늘 의뢰비와 다음 의뢰 정보가 들어있었다.
“다음 일은 뭐예요?”
세아가 물었다. 망량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더 짙어지는 듯했다.
“정보 회수. 제국 중앙 서버에 접속해서 특정 데이터를 가져와야 해. 이번에는 좀 위험할 거다.”
“위험한 건 늘 그랬잖아요.”
세아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망량은 그녀의 대답에 빙긋 웃었지만, 그 웃음 속에는 어떤 비장함이 엿보였다.
“이번에는 좀 다르다. 그 데이터는 제국이 감추고 싶어 하는 진실과 관련되어 있거든. 우리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왜 그들의 꼭두각시가 되어야 하는지… 그 해답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어.”
세아는 망량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늘 그저 살아남기 위해 달리고, 숨고, 싸워왔을 뿐이었다. 제국에 대한 분노는 삶의 배경 음악처럼 늘 함께했지만, 감히 그 거대한 존재에 맞설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 그러나 망량의 말은 그녀의 심장 한구멍을 쿡 찔렀다.
“그 진실이 뭔데요?”
세아가 낮게 물었다. 망량은 잠시 침묵했다. 그의 붉은 의안이 도시의 불빛을 반사하며 이글거렸다.
“그건 네가 직접 찾아야 할 거야. 하지만 기억해라. 이제 단순히 살아남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메트로폴리스의 그림자 아래에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으니.”
망량은 말을 마치고는 다시 환풍기 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세아는 그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데이터 패드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제국이 감추고 싶어 하는 진실. 어쩌면 그 진실이, 그녀를 비롯한 수많은 빈민들의 삶을 짓누르는 거대한 족쇄를 풀 열쇠가 될 수도 있을 터였다.
차가운 밤바람이 그녀의 뺨을 스쳤다. 세아는 망량의 마지막 말이 귓가를 맴도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몸을 돌려 도시의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변화의 바람. 그래, 그녀는 이제 그 바람의 한 조각이 되어야 했다. 생존을 넘어선 무언가를 위해.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그녀의 작은 발걸음이 새로운 반란의 서곡을 울리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