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 하이 판타지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잊혀진 별의 조각

**제12화. 균열**

아레스 호의 함교는 죽음처럼 고요했다. 계기판의 불빛만이 창백하게 깜빡일 뿐, 평소 활기 넘치던 승무원들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캡틴 강태준은 사령관석에 앉아 전방의 칠흑 같은 우주를 응시했다. 시야 밖, 화물칸 깊숙한 곳에 봉인된 ‘그것’이 함선 전체를 서서히 잠식하고 있음을 그는 직감하고 있었다. 발견 직후의 전율은 이제 공포로 변색되어 모두의 심장을 옥죄고 있었다.

“함장님, 통신 기록입니다.”

옆에서 부함장 이서하가 낮은 목소리로 보고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전례 없는 피로가 드리워져 있었다. 단정한 제복 차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위태로운 기운이 감돌았다.

“읽어봐.” 강태준은 거친 목소리로 답했다.

“어제 22시 03분, 화물칸 보안 프로토콜 무단 해제 시도 감지. 자동 차단되었습니다. 00시 17분, 의료실의 김지아 박사가 보고한 바에 따르면, 선임 기술병 하승우 일병이 원인 불명의 극심한 환각 증세를 보였습니다. 지금은 안정 상태입니다만… 불안정합니다.”

강태준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 “하승우 일병. 마지막 임무가 뭐였지?”

“제3 탐사팀 소속으로, 3일 전… 유물을 처음으로 육안 관측했습니다.” 서하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유물. 그들은 애써 ‘블랙 모노리스’ 혹은 ‘특이점’ 같은 무미건조한 단어를 사용했지만, 마음속 깊이 그것은 이미 미지의 존재로 각인되어 있었다. 심우주를 떠돌다 발견한, 거대한 흑요석 같은 육면체. 어떤 장비로도 뚫을 수 없는 불투명한 벽. 하지만 그 표면에 새겨진 고대의 상형문자와, 내부에서 희미하게 비쳐 나오던 보랏빛 섬광은 그것이 단순한 돌덩이가 아님을 명확히 말해주고 있었다.

강태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하 부함장, 보안 상태를 최고 수준으로 올려. 추가 인원 배치는 없다. 당분간 함선 내 이동은 최소화하고, 모든 탐사팀은 해체한다.”

“하지만… 아직 유물의 기능도, 안전성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함부로 접근하지 않는 건 동의하지만, 추가 조사를 완전히 중단하는 건—” 서하가 반대하려 했다.

“이미 충분히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강태준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더 이상 가까이 갔다가는 더 많은 것을 잃을 뿐이야. 안전이 최우선이다.”

그의 눈은 흔들림 없이 냉정했다. 하지만 서하는 그 차가운 시선 속에 드리워진 깊은 고뇌를 읽을 수 있었다. 그는 무언가 더 알고 있었다. 아니, 느끼고 있었다.

그 순간, 함교의 메인 스크린에 경고음이 울렸다. 통신 보안이 격렬하게 흔들리는 그래프가 나타났다.

“함장님! 미확인 암호 패턴이 함선 네트워크에 침투하고 있습니다!” 기술장교 박선우가 다급하게 외쳤다. 그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춤추듯 오갔다. “출처를 알 수 없습니다! 외부가 아닙니다! 함선 내부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내부라고?!” 강태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모든 내부 통신을 차단하고, 격벽을 봉쇄해! 바이러스 검사 프로토콜을 가동해!”

하지만 박선우의 손은 이미 굳어버린 듯 멈춰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공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안 됩니다… 접근이… 안 됩니다… 모든 시스템이… 먹통이 되어갑니다…”

스크린의 그래프는 미친 듯이 치솟았고, 이내 전체 함교 시스템이 깜빡거리며 멈춰 버렸다. 불이 일제히 꺼지고, 비상등이 붉은빛을 토해냈다.

완벽한 침묵 속에, 어둠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듯했다.

그 침묵을 깬 것은, 멀리서 들려오는 기이한 소리였다. 마치 수백 개의 목소리가 한데 섞여 속삭이는 듯한, 혹은 거대한 존재가 숨 쉬는 듯한 낮은 울림이었다. 소리는 점점 선명해졌고, 어딘가 익숙한 느낌마저 들었다.

강태준은 번개처럼 몸을 돌렸다. 소리의 근원지는 명확했다.

“화물칸이다…!”

그는 직감적으로, 그것이 유물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임을 깨달았다. 단순한 음파가 아니었다. 뇌리 깊숙이 파고들어, 오래전 잊었던 기억을 끄집어내는 듯한… 섬뜩하고도 매혹적인 선율이었다.

“모든 보안병력, 화물칸으로 집결! 비상 프로토콜 ‘격리’를 발동한다! 누구든 유물에 접근하는 자는… 즉시 제압한다!” 강태준은 비상 호출기로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는 냉철했지만, 손에 쥔 비상 호출기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화물칸으로 향하는 복도는 미로처럼 느껴졌다. 비상등의 붉은빛이 깜빡이며 공포를 증폭시켰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기이한 속삭임이 복도 전체를 채우고 있었다. 강태준은 옆에서 총을 든 보안장교 최민준을 흘끗 보았다. 민준의 얼굴은 땀으로 번들거렸지만, 굳게 다문 입술은 그의 강인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대장님, 유물에서 나오는 소리 같습니다.” 민준이 헐떡이며 말했다.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소리는 확실히 커지고 있었다. 이제는 단순한 속삭임을 넘어, 웅장한 합창처럼 들렸다. 언어가 없는 합창이었지만, 그 안에는 거대한 우주의 신비와 함께, 알 수 없는 슬픔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듣는 이의 영혼을 흔들어 놓는 소리였다.

마침내 화물칸의 봉쇄된 문에 도착했다. 육중한 강철 문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보랏빛 섬광이 문틈을 비집고 나왔다.

“문 열어!” 강태준이 명령했다.

보안팀원들이 코드를 입력하고, 강제로 문을 열기 시작했다. 굉음과 함께 문이 서서히 열리자, 압도적인 기운이 복도 전체를 덮쳤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들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화물칸 중앙에는 거대한 흑요석 유물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보랏빛 섬광은 더욱 강렬해져, 마치 유물 자체가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가 된 듯 보였다. 그리고 그 유물의 표면에 새겨진 고대의 상형문자들이, 지금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하나하나의 문자가 빛을 발하며 공중으로 떠오르고, 서로 연결되어 알 수 없는 형상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유물 앞에 서 있는 인물이었다.

“박선우…!” 강태준의 입에서 신음 같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조금 전 함교에서 정신을 잃었던 박선우 기술장교였다. 그는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유물 앞에 서서, 두 팔을 유물을 향해 뻗고 있었다. 그의 눈은 완전히 뒤집혀 흰자위만 보였고, 입술은 알 수 없는 언어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몸에서는, 유물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희미한 보랏빛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유물의 꿈틀거리는 상형문자들이 선우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선우! 당장 거기서 떨어져!” 강태준이 소리쳤다.

하지만 선우는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듯했다. 그는 유물에 손을 뻗어, 검은 표면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의 손끝이 유물에 닿자마자, 유물에서 섬뜩한 파장이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선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보랏빛 기운이 더욱 강렬해졌다.

그리고 그때, 선우의 등 뒤에서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마치 뜨거운 공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듯, 선우의 등 뒤 허공이 일렁였다. 작은 균열이 생겨나더니, 그 균열 사이로 칠흑 같은 어둠이 스며 나왔다. 어둠은 순식간에 커져, 검은 장막처럼 선우의 등 뒤를 뒤덮었다.

균열 속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듯한 환영이 스쳐 지나갔다. 거대한 은하의 모습, 알 수 없는 행성들의 풍경,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싸 안는 듯한 무한한 공허함. 한순간 모든 승무원들이 시공간을 초월한 존재의 눈동자를 마주한 듯한 전율을 느꼈다.

“저게… 뭐야…?” 민준의 목소리가 공포에 질려 갈라졌다.

균열은 점점 커져, 한 사람 정도 들어갈 수 있는 크기가 되었다. 균열 너머에서 알 수 없는 존재의 차가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균열의 가장자리에서, 마치 검은 촉수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서서히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강태준은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유물은 그저 고대의 유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차원의 문이었다. 그리고 박선우는… 그 문을 열고 있었다.

“사격 준비! 선우를 보호하면서… 저 촉수를 막아!” 강태준은 절규하듯 외쳤다. 그의 명령은 총소리에 묻혀버렸다.

최민준을 비롯한 보안팀원들이 즉시 사격 자세를 취했다. 플라즈마 소총에서 발사된 광선이 검은 촉수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촉수는 마치 허깨비처럼 광선을 뚫고 지나갈 뿐,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오히려 촉수는 속도를 더해, 박선우의 등 뒤를 완전히 감싸기 시작했다.

촉수가 선우의 어깨를 스치자, 선우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더 이상 알 수 없는 중얼거림이 아니었다.

“*…그가 온다… 오래된 자… 심연의 군주… 문이 열렸다…*”

그의 목소리는 박선우의 것이 아니었다. 수천, 수만 개의 목소리가 겹쳐진 듯한, 섬뜩하고도 장엄한 울림이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 끝에, 화물칸 전체를 뒤흔드는 거대한 충격파가 발생했다.

균열은 완전히 열렸고, 그 안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형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레스 호의 모든 비상등이 꺼졌다.
침묵과 어둠이 다시 찾아왔다.
하지만 이제 그 침묵은, 우주 전체를 집어삼킬 듯한 거대한 포효를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 포효 속에서, 고대부터 잊혔던 존재의 이름이, 별들의 심연에서 메아리쳐 울리는 듯했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