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협 (신선) 독립적인 단편 소설

고요한 청운봉(靑雲峰)의 만년설이 덮인 정상을 향해, 두 개의 그림자가 영기(靈氣)를 가르며 날아오르고 있었다. 한 명은 맑은 연꽃잎처럼 부드러운 인상을 가진 청년, 련화(蓮華). 다른 한 명은 백옥처럼 단정하고 서늘한 기품을 지닌 청년, 백륜(白輪)이었다. 그들은 청운문(靑雲門)의 쌍벽이자, 사형제(師兄弟)를 넘어선 영혼의 벗이었다.

“백륜, 저기 보이는군.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천금동(千金洞)이.” 련화의 목소리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눈은 저 멀리, 신비로운 안개 속에 가려진 동굴 입구를 가리켰다. 전설에 따르면 그곳에는 고대 신선이 남긴 무량심결(無量心訣)이 잠들어 있다고 했다. 마음을 무한히 정화하고 영력을 끝없이 확장시키는, 청운문의 비전(秘傳) 중의 비전이었다.

백륜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미소는 언제나 련화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그래, 련화. 우리 둘이 함께라면 반드시 그 심결을 얻어 청운문을 더 높은 경지로 이끌 수 있을 거야.”

그들은 마침내 동굴 어귀에 도착했다. 동굴은 예상보다 훨씬 깊고 어두웠다. 영묘한 기운이 감돌았지만, 동시에 알 수 없는 불안감도 드리워져 있었다. 련화는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백륜은 그의 뒤를 따랐다.

동굴 깊은 곳, 영석(靈石)이 박힌 벽면 사이로 거대한 연꽃 문양이 새겨진 석실이 나타났다. 그 중앙에는 은은한 빛을 발하는 비석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 무량심결의 첫 구절이 새겨져 있었다.

“찾았다… 백륜, 우리가 해냈어!” 련화는 감격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그는 비석에 새겨진 글귀를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그러자 주변의 영기가 그의 몸으로 흡수되는 것을 느꼈다. 무량심결은 깨달음을 얻는 즉시 그 효력을 발휘하는 신비로운 공법이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후우읍… 련화.”

등 뒤에서 들려온 백륜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싸늘했다. 련화가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차가운 기운이 그의 등에 박혔다. “크윽…!”

련화는 숨을 들이쉬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자신의 몸에 박힌 비수와, 그것을 쥐고 있는 백륜의 싸늘한 눈빛이 있었다.

“백륜… 너… 왜…” 련화는 겨우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온몸의 힘이 빠르게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무량심결을 익히기 시작한 그의 단전(丹田)이 마치 얼어붙는 듯했다.

백륜은 차갑게 웃었다. 그의 얼굴에는 더 이상 따뜻한 벗의 흔적은 없었다. 오직 탐욕과 냉혹함만이 가득했다. “왜냐고? 련화, 너는 너무나도 완벽했으니까. 모든 사람이 너를 칭송했고, 너는 언제나 한 발 앞서 나갔지. 하지만 이 무량심결은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어야 해. 오직 나만을 위한 것!”

그는 련화의 단전에서 피어오르던 무량심결의 기운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비수에 묻은 독은 련화의 몸을 마비시켰고, 백륜의 흡수 공법은 그의 영력을 뿌리째 뽑아내고 있었다. 련화의 영혼이 찢겨나가는 듯한 고통이 전신을 휩쓸었다.

“이 영력은, 이제 내 것이다. 너는 너무 순진했어, 련화. 이 세상은 강자만이 살아남는 곳. 네놈처럼 어리석은 자는 이용당하는 게 마땅해.” 백륜은 련화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는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었다.

련화의 눈앞이 흐려졌다. 그는 백륜의 비열한 웃음을 마지막으로 보았다. 고통과 배신감이 그의 모든 감각을 마비시켰다. 그리고 어둠이 찾아왔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련화는 자신이 지옥의 나락에 떨어진 줄 알았다. 몸은 산산조각 났고, 영력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폐인이었다. 겨우 눈을 떴을 때, 그가 누워있던 곳은 청운문의 깊은 골짜기 아래, 사악한 기운이 맴도는 음습한 동굴이었다.

분명 백륜은 자신을 죽은 줄 알고 버렸을 터. 하지만 련화의 질긴 생명력은 꺼지지 않은 작은 불씨처럼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의 영맥(靈脈)은 끊어졌고, 단전은 텅 비어 있었다. 다시는 수련의 길을 걸을 수 없는 몸이었다.

그러나 그를 살린 것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 피어난 증오와 복수심이었다. 백륜을 향한 사무치는 원한만이 그의 심장을 뛰게 했다.

몇 년의 세월이 흘렀다. 련화는 동굴의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단련했다. 그는 더 이상 영력을 쓸 수 없었지만, 동굴 깊숙한 곳에서 발견한 고대의 마법진과 알 수 없는 기운을 이용해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그것은 정통 수련과는 거리가 먼, 육체의 극한을 초월하고 영혼의 본질을 뒤흔드는 금지된 비법이었다. 그는 자신의 육체를 강철처럼 단련하고, 끊어진 영맥을 대신해 뼛속 깊이 스며드는 어둠의 기운을 받아들였다.

이제 련화는 예전의 부드러운 연꽃 같은 청년이 아니었다. 그의 눈은 깊은 증오로 타올랐고, 얼굴에는 차가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의 주위에는 항상 희미한 흑기(黑氣)가 감돌았고, 그의 움직임은 그림자처럼 빠르고 섬뜩했다. 그의 이름은 이미 세상에서 잊혔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 그는 스스로를 ‘흑련(黑蓮)’이라 칭했다.

청운문은 백륜의 지휘 아래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무량심결을 완벽하게 익혀 문파의 정점(頂點)에 올랐고, ‘무량선군(無量仙君)’이라 불리며 세상의 칭송을 한 몸에 받았다. 그의 수하들은 련화의 죽음이 마도(魔道)에 홀린 련화가 저지른 자살이라고 떠들어댔고, 사람들은 순진하게 그 말을 믿었다.

백륜의 명망은 하늘을 찔렀다. 그는 곧 열릴 선문대전(仙門大戰)에서 청운문을 대표하여 최고의 자리에 오를 것이 확실시되고 있었다.

흑련은 그 모든 소식을 어둠 속에서 지켜봤다. 그리고 그의 복수의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았다.

***

선문대전의 마지막 날. 청운문의 광활한 대련장에는 각 문파의 수많은 선인과 제자들이 모여 있었다. 백륜은 대련장의 중앙, 선기(仙氣)가 충만한 무대 위에 홀로 서 있었다. 그의 등 뒤로 무량심결의 푸른 광채가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대련장 상공에서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하늘을 뒤덮은 듯한 칠흑 같은 기운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감히 이 선문대전에 마도(魔道)의 기운이!” 백륜이 노성을 토하며 그림자를 향해 무량심결의 힘을 쏘아 올렸다. 하지만 그의 영력은 검은 그림자에 닿자마자 흡수되는 듯 사라졌다.

그림자 속에서 한 남자가 내려왔다. 그는 흑색 도포를 입고 얼굴의 절반을 가리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맹렬한 불꽃처럼 타올랐다.

“무량선군, 참으로 오랜만이다.” 낮고 갈라진 목소리가 대련장에 울려 퍼졌다. 가면 너머로 드러난 눈은 백륜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네놈은 누구냐? 감히 청운문의 위대한 대전에 난입하다니!” 백륜은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남자의 기운은 그가 상대했던 어떤 마도 고수보다도 깊고 압도적이었다.

“나는… 너의 과거이자, 너의 심장을 찢어발길 미래다.” 흑련은 가면을 벗었다. 그의 얼굴은 예전 련화의 모습이 남아있었지만, 그 고통과 증오가 새겨져 전혀 다른 인물이 되어 있었다.

“련… 련화?!” 백륜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말도 안 돼! 네놈은 분명 죽었을 터…!”

“죽음? 그래, 너는 나를 죽였다. 내 영혼을, 내 마음을, 내 모든 것을 죽였다. 하지만 네놈은 내가 살아남아 너의 모든 것을 파괴할 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겠지.” 흑련의 눈에서 핏발이 섰다.

“거짓말이다! 네놈은 마도에 홀려 내 이름을 사칭하는 자일 뿐!” 백륜은 애써 부정하며 무량심결의 힘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거대한 푸른 기운이 그의 몸을 휘감으며 대련장을 뒤흔들었다.

“진실은 오직 너와 나만이 아는 법. 그리고 이제, 세상이 그 진실을 알게 될 것이다!” 흑련은 한 걸음 한 걸음 백륜에게 다가섰다. 그의 발걸음마다 대련장의 영석들이 금이 갔다. 그는 더 이상 영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가 익힌 것은 육체를 극한까지 단련하여 만들어낸 순수한 살기와 증오, 그리고 파괴의 힘이었다.

백륜이 먼저 공격했다. 무량심결의 정화된 영력이 거대한 파도처럼 흑련을 덮쳤다. 하지만 흑련은 그 파도를 맨몸으로 뚫고 나갔다. 그의 몸에 닿은 영력은 마치 그에게 흡수되는 듯 사라지거나, 그를 피해 흩어졌다.

“네가 훔쳐 간 무량심결의 기운은, 나를 죽이지 못한다. 오히려 너의 영력이, 내 육체를 더욱 강하게 만들 뿐!” 흑련은 백륜의 눈앞에 순간이동한 듯 나타났다. 그의 주먹에는 칠흑 같은 기운이 서려 있었다.

“무슨… 헛소리를!” 백륜은 필사적으로 방어했지만, 흑련의 주먹은 그의 보호막을 종이처럼 찢고 백륜의 복부를 강타했다.

“크악!” 백륜은 피를 토하며 무대 뒤편으로 날아갔다. 그의 단전에서 고통스러운 균열이 느껴졌다.

“이것은 네가 내게 박았던 비수에 대한 대가다!” 흑련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백륜이 쓰러진 곳으로 달려가 그의 몸을 붙잡고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모두 보아라! 이 위대한 무량선군이, 어떻게 비열한 배신으로 친구의 목숨과 공법을 빼앗았는지!” 흑련의 목소리는 대련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는 백륜의 옷을 찢어 그의 흉터가 드러나게 했다. 그곳에는 련화의 영력을 흡수하며 생긴 검은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저것은… 련화가 사라지기 전 몸에 생겼던 마(魔)의 흔적… 백륜 선군께서 련화의 사악한 영력을 흡수하여 정화하려 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단 말인가?” 객석에서 술렁거림이 터져 나왔다.

“정화? 웃기는 소리! 저것은 네가 내 영력을 흡수하며 생긴 탐욕의 흔적일 뿐! 내가 너를 믿었을 때, 너는 나의 모든 것을 빼앗고 나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흑련은 백륜의 목을 붙잡고 더욱 힘을 주었다. 백륜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다.

“아니다…! 이 마도놈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나는 청운문을 위한 것이었다!” 백륜은 절규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이미 패배와 두려움이 가득했다.

흑련은 백륜을 거대한 영석 기둥에 던져 박았다. 기둥은 산산조각 났고, 백륜은 그 충격으로 정신을 잃었다. 흑련은 그의 앞으로 다가서서 쓰러진 백륜의 단전을 향해 손을 뻗었다.

“네가 내게서 빼앗아 간 모든 것을… 이제 돌려받을 시간이다.”

흑련의 손에서 칠흑 같은 기운이 뿜어져 나와 백륜의 단전을 파고들었다. 백륜의 몸속에 있던 무량심결의 영력이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흑련에게 역류하기 시작했다. 푸른빛과 검은빛이 뒤섞이며 백륜의 몸은 심하게 경련했다.

“크아아악! 내… 내 영력…! 련화! 멈춰! 제발…!” 백륜의 비명소리는 대련장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고, 몸은 급속도로 말라갔다. 무량심결의 힘이 완전히 빠져나가자, 백륜의 몸은 축 늘어졌고, 그의 영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제 그는 그저 평범한, 아니 그보다 못한 폐인이 되었다.

흑련은 백륜의 몸에서 마지막 한 줄기 영력까지 뽑아냈다. 그의 눈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복수의 서늘한 만족감이 번지는 듯했다.

“죽음은 너무 쉽다, 백륜. 너는 남은 평생 동안, 네가 저지른 죄와 네가 빼앗아 간 모든 것에 대한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네가 나를 보며 느끼게 했던 고통, 비웃음, 절망을… 이제 네가 맛볼 차례다.”

흑련은 힘없이 바닥에 쓰러진 백륜을 내려다보았다. 백륜의 눈은 공허했고, 그의 입에서는 의미 없는 신음만이 흘러나왔다. 이제 ‘무량선군’의 위용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껍데기만 남은 한 인간이 있을 뿐이었다.

선문대전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침묵했다. 그들은 흑련이 보여준 섬뜩한 힘과, 백륜의 추악한 진실 앞에 얼어붙어 있었다.

흑련은 더 이상 그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는 망가진 백륜을 뒤로하고, 천천히 대련장을 벗어났다. 그의 발걸음은 가벼웠지만, 그의 등 뒤에 드리운 그림자는 여전히 깊고 길었다. 복수는 끝났지만, 그의 마음속 어둠은 쉬이 가시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듯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련화가 아니었다. 영원히, 흑련으로 살아가야 할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