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녘, ‘제네시스 테크놀로지’ R&D 단지 상공을 맴도는 순찰 드론의 섬광이 짙은 어둠을 갈랐다. 그 빛 아래, 거대한 격납고 7번, 일명 ‘강철 성역’이라 불리는 곳에 비상등이 깜빡이고 있었다. 류진하는 찌푸린 미간으로 그 불빛을 응시했다. 그의 옆에는 한서영 경감이 초조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현장 상황은 여전히 변함없습니다, 진하 씨. 완벽한 밀실입니다.”
한서영이 건넨 자료 파일에는 사망자의 이름이 선명했다. 강태산. 제네시스 테크놀로지의 초고도 기갑 연구팀 수장이자, 세간에는 ‘기계의 신’으로 불리던 천재 공학자였다. 그의 시신은 자신이 개발한 최신예 전투 기갑 ‘천둥매’의 조종석에서 발견되었다.
“시신은 천둥매의 조종석에 그대로 있습니다. 흉기는 보이지 않고, 외상은 가슴 부위에 작은, 하지만 치명적인 소결 흔적뿐입니다. 마치 초고열 에너지에 정밀하게 지져진 것처럼요. 외부 침입 흔적은 전무합니다.”
한서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강철 성역, 격납고 7번은 이중 삼중의 보안 체계를 갖춘 요새였다. 2미터 두께의 티타늄 합금 벽, 완벽한 전자기 밀봉, 생체 인식과 다중 패스워드 없이는 접근조차 불가능한 곳이었다. 모든 출입 기록에는 강태산 혼자 새벽 3시에 들어간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그의 조수 이수아가 무인 카메라 영상으로 그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다.
“그 어떤 인원도, 그 어떤 장비도 격납고 안으로 들어오거나 나간 기록이 없습니다. 심지어 내부의 공기 흐름까지 통제되는 공간입니다. 진하 씨, 이건… 불가능합니다.”
류진하는 대답 없이 두꺼운 방탄 유리를 통해 격납고 내부를 응시했다. 거대한 천둥매가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은빛 외골격과 번개 문양이 새겨진 어깨 부위는 보는 이를 압도했다. 그 조종석에 강태산의 시신이 축 늘어져 있었다.
“최민혁 보안 팀장은 어떻습니까?” 류진하가 물었다.
“그는 난리가 났습니다. 자신의 보안 시스템에 털끝만 한 문제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랬겠죠. 그래서 더 난감한 겁니다.”
류진하는 특수 방호복을 입고 격납고 내부로 들어섰다. 내부 공기는 이상할 정도로 차갑고 건조했다. 거대한 천둥매의 강철 표면을 훑던 그의 시선이 조종석으로 향했다. 강태산의 몸에는 피 한 방울 묻어있지 않았다. 가슴 한가운데에 깊숙이 패인, 불에 그을린 상처만이 그의 죽음을 증명했다.
“에너지 병기로 보입니다. 하지만 누가, 어떻게 이 완벽한 밀실 안에서 그를 공격했죠?” 한서영이 중얼거렸다.
류진하는 천천히 격납고를 걸었다. 발밑의 미세한 먼지조차 규칙적으로 쌓여 있었다. 그는 벽면의 거대한 전력 공급 패널, 천장의 환기 시스템, 그리고 바닥에 깔린 냉각 파이프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살폈다. 그의 눈이 번뜩인 것은 천둥매의 거대한 동력 코어와 연결된 벽면의 보조 전력 케이블을 볼 때였다. 그 케이블이 통과하는 벽 패널 하나가 아주 미세하게, 마치 충격에 의해 살짝 들려있는 것처럼 보였다. 육안으로는 거의 식별 불가능한 정도였다.
“이 패널, 이상하지 않습니까?” 류진하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한서영이 다가와 살펴보았지만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글쎄요… 노후화된 것 같은데요?”
“이 격납고는 최고 수준의 시설입니다. 노후화라기엔 너무 특정 부분만 들려있습니다. 그리고 천둥매의 가슴에 난 상처… 저건 외부에서 발사된 것이 아닙니다.”
“네? 그럼 도대체…”
류진하는 천둥매의 조종석으로 다가갔다. 조종석 내부에는 복잡한 컨트롤 패널과 홀로그램 디스플레이가 가득했다. 그리고 조종석 시트의 등받이, 강태산의 등 뒤에 있어야 할 곳에 아주 미세한 그을림 자국이 있었다. 너무나 작아서 다른 수사관들은 놓쳤을 법한 흔적이었다.
“강태산 박사는 천둥매의 실험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류진하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렇겠죠. 늘 그랬으니까요.”
“천둥매의 가장 큰 특징이 무엇입니까? 실험적인 에너지 코어와 ‘초고밀도 입자포’ 아닙니까?”
“네. 대외비지만, 그 입자포는 이 세상 그 어떤 방어막도 뚫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직 완성 단계는 아니지만요.”
“완성 단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겁니다.”
류진하가 천둥매의 거대한 팔을 올려다보았다. 팔 부분에 탑재된 입자포는 꺼져 있었다.
“범인은 이 격납고 안에 없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사람’은 없었습니다. 강태산 박사를 죽인 것은 바로… 천둥매, 그 자신입니다.”
한서영은 경악했다. “말도 안 돼요! 자율 작동도 안 되는 기갑이 사람을 죽였다고요?”
“직접 죽인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 천둥매를, 그리고 이 격납고 시스템 전체를 이용한 겁니다.”
류진하는 모두를 다시 격납고 밖으로 불러냈다. 보안팀장 최민혁과 조수 이수아가 초조하게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태산 박사는 천둥매의 ‘초고밀도 입자포’의 내부 에너지 전송 시스템을 시험하고 있었습니다.” 류진하가 입을 열었다. “그 입자포는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이 격납고의 주 전력망에서 공급됩니다.”
최민혁이 콧방귀를 뀌었다. “당연한 얘기 아닙니까? 하지만 모든 전력 공급은 완벽하게 통제됩니다. 이상 전류는 감지 즉시 차단되죠.”
“과연 그럴까요?” 류진하가 반문했다. “아까 제가 지적했던 벽면의 패널 기억하십니까? 아주 미세하게 들려 있던 그 패널 말입니다. 그곳은 보조 전력 케이블의 우회로가 지나가는 자리입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 패널을 아주 살짝 느슨하게 만들었습니다. 겉으로는 티 나지 않게요.”
모두의 시선이 류진하에게 쏠렸다.
“범인은 강태산 박사의 실험 스케줄과 천둥매의 설계 결함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습니다. 천둥매의 입자포는 아직 미완성이었기에, 특정 주파수의 미세한 전력 과부하에는 취약했습니다. 특히 내부 에너지 코어가 최대로 가동될 때 말이죠.”
류진하는 강태산의 조수, 이수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녀는 불안한 듯 시선을 피했다.
“범인은 외부에서 무선으로, 아주 정밀하게 조정된 짧은 전자기 펄스를 이 격납고의 보조 전력 케이블로 흘려보냈습니다. 그때, 강태산 박사는 천둥매의 입자포 에너지 전송 테스트를 최고조로 진행하고 있었죠. 들려있던 패널은 그 미세한 펄스가 감지되지 않고 시스템 내부로 스며들 수 있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한서영이 다급히 물었다.
“외부에서 유입된 미세한 전자기 펄스가 주 전력망의 통제를 우회하여 천둥매의 에너지 코어에 순간적인 과부하를 일으켰습니다. 그 과부하가 아직 불안정했던 입자포 내부의 에너지 전송 시스템에 치명적인 역류를 일으켰고, 그 에너지가 바로 조종석 내부로 분출된 겁니다. 강태산 박사가 입었던 상처는 외부에서 발사된 것이 아니라, 천둥매 내부에서, 그의 등 뒤에서 솟아난 에너지 폭발의 결과입니다.”
류진하의 논리는 마치 정교한 기계처럼 빈틈이 없었다.
“그 미세한 그을림 자국은 조종석 시트의 등받이에 있었습니다. 그것이 증거입니다. 외부에서 발사된 것이라면 그런 위치에 상처가 남을 리 없죠.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완벽한 밀실인 강철 성역 내부에서 벌어졌기에, 외부 침입의 흔적은 있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범인은 물리적으로 격납고 안에 들어갈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자신의 사무실에서, 혹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가능했겠죠.”
류진하는 다시 이수아를 향해 돌아섰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천둥매의 설계 결함, 강태산 박사의 실험 스케줄, 이 격납고의 미묘한 취약점까지.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꿰뚫고 있었던 사람은… 박사님의 가장 가까운 조수였던 이수아 씨, 당신뿐입니다.”
이수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결국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천둥매는… 제 것이었어요! 그 늙은이는 제 아이디어를 훔쳐갔어요! 그는 늘 저를 무시하고 자신의 명예만을 탐했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제가 직접 그를 끝장내주려고…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상상할 수 없도록….”
이수아는 흐느끼며 자백했다. 그녀는 자신이 개발한 소형 무선 전자기 교란기를 이용해, 강태산의 실험 시간과 일치시켜 격납고 전력망에 교란 신호를 보냈던 것이었다. 자신이 직접 만든 기갑,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던 그 기갑이 스승의 심장을 꿰뚫는 ‘흉기’가 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 못 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리고 그 밀실의 완벽함이 그녀의 알리바이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류진하는 이수아를 차가운 시선으로 응시했다. 강철 성역을 지키는 견고한 벽, 그 속에서 울려 퍼지는 천둥매의 정체 모를 비명. 하지만 그 어떤 견고한 밀실도 천재적인 논리 앞에서는 결국 허물어지는 법이었다. 살인자도, 그리고 그 살인 도구도, 결국 인간의 손에서 시작되었기에. 류진하는 사건 현장을 떠나는 한서영의 뒤를 따르며, 어둠이 걷히고 밝아오는 새벽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또 하나의 완벽한 살인은, 그렇게 차가운 논리의 빛 아래 드러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