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협 (신선)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제1장: 균열

김현우는 익숙한 비명과 함께 잠에서 깨어났다. 비명은 물론, 그의 것이 아니었다. 지친 몸으로 겨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 아파트 밖 도시는 밤늦도록 꺼질 줄 모르는 생명력으로 거대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저 비명은 분명 아래층이나 옆 동에서 들려온 것이리라. 오늘도 야근이었다. 낡은 원목 식탁 위에는 어제 먹다 남긴 인스턴트 커피 잔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벽에 걸린 괘종시계는 새벽 3시 1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느릿하게 냉장고 문을 열었다. 텅 빈 공간에선 맥주 캔 몇 개만이 쓸쓸하게 놓여 있었다. 물 한 잔을 마시고 나니 혀끝에 씁쓸함이 감돌았다. 피로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현우는 다시 침대에 누웠지만, 한 번 깨어난 잠은 좀처럼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그때였다.
주방 쪽에서 쨍그랑, 하는 소리가 들렸다.
현우는 숨을 멈췄다. 도둑? 그러나 소리는 너무나 작고, 마치 유리잔이 굴러떨어지는 듯한 경쾌한 소리였다. 그는 귀를 기울였지만, 이내 도시의 웅성거림에 묻혀버렸다. “피곤해서 헛것이 들리나.” 현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눈을 감았다.

다음 날 아침, 현우는 출근 준비를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식탁 위에는 어젯밤 분명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우유팩이 놓여 있었다. 뚜껑은 비스듬히 열린 채였다.
“내가 잠결에 꺼내놨었나?”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우유팩을 다시 냉장고에 넣었다. 어제 피곤했으니 그럴 수도 있지. 현우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 후로 며칠 동안, 사소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출근하기 전 분명 닫아두었던 창문이 퇴근하고 돌아오면 아주 미세하게 열려 있었다. 세탁기에 돌려둔 양말 한 짝이 사라졌다가 엉뚱하게 거실 한복판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욕실 거울에 김이 서리면, 마치 누군가 손가락으로 글자를 쓰려다 만 듯한 희미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 현우는 처음엔 스스로의 건망증을 탓했다.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가 기억력에 영향을 미치는 걸까?

어느 날 저녁, 현우는 늦게까지 TV를 보며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채널을 돌리다 맘에 드는 영화를 발견하고는 잠시 집중했다. 그때, 방 구석에 놓아둔 작은 테이블 위의 컵이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현우는 눈을 비볐다. “내가 너무 마셨나?”
그는 손을 뻗어 컵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하지만 컵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떠밀리듯 다시 스르륵, 원래 위치에서 몇 센티미터 정도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현우는 순간적으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술기운이 단번에 사라졌다.
그는 숨죽인 채 컵을 응시했다. 컵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주위는 고요했다. 창문은 닫혀 있었고,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누구… 없어요?”
낮게 속삭이듯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저 도시의 희미한 웅성거림만이 밤의 장막을 뚫고 들어올 뿐이었다. 현우는 그날 밤, 잠 못 이루고 아침을 맞았다.

공포는 사소한 균열에서 시작되어 점차 거대한 틈으로 벌어졌다.
그는 혼자 있을 때면 으스스한 한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에어컨을 튼 것도, 창문을 연 것도 아니었다. 마치 차가운 손이 등골을 스치는 듯한 기이한 감각이었다. 가끔은 아무도 없는 방에서 낮은 속삭임이 들리는 것 같았다. 분명 의미 없는 소음이었지만, 현우의 신경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그는 결국 휴대폰으로 아파트 내부를 촬영하기 시작했다. 거실, 주방, 침실… 밤새도록 녹화 버튼을 눌러두었다. 그러나 다음 날 확인한 영상에는 아무것도 찍혀 있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아무것도’ 찍혀 있지 않았다. 카메라를 설치해둔 이후로 기묘한 현상들이 잠시 멈춘 듯 보였다. 현우는 안도하면서도 묘한 허탈감을 느꼈다. 자신이 드디어 미쳤다고 생각해야 할까?

안심도 잠시였다.
어느 날 밤, 현우는 평소처럼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다. 불은 꺼져 있었고, 방 안은 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갑자기, 침대 발치 쪽에서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스스스슥… 득득…
마치 무언가 딱딱한 것이 바닥을 긁으며 움직이는 듯한 소리였다. 현우는 심장이 발끝으로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그는 눈을 꼭 감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
소리는 점점 현우의 침대 쪽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스스스슥… 득득…
이제는 그의 발치에 멈춰 선 것 같았다. 현우는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차마 눈을 뜰 수 없었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때, 이불 위로 뭔가 묵직한 것이 쿵, 하고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차가운 돌덩이라도 던져진 듯한 감각이었다.
현우는 용기를 냈다. 떨리는 손으로 이불을 살짝 걷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물체가 보였다.
그것은 그의 열쇠였다. 아침에 분명 현관 신발장 위에 두었던 차 키와 집 열쇠 뭉치.
하지만 열쇠는 지금, 그의 침대 이불 위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열쇠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그의 눈앞에서 아주 느리게, 그러나 명확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빙글, 빙글…
현우는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온몸의 근육이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공포는 이제 그의 심장을 조여왔다. 열쇠는 계속해서 회전했다. 어둠 속에서 금속성 광택이 섬뜩하게 번뜩였다. 마치 그를 비웃는 듯이.

그 순간, 방 안의 공기가 급격하게 차가워졌다. 온몸의 모공이 열리는 듯한 감각.
차가움은 단순한 냉기가 아니었다. 마치 수만 년 된 얼음 동굴에 들어선 듯, 모든 생명이 얼어붙을 것 같은 원초적인 냉기였다.
그리고 그 차가움 속에서, 알 수 없는 형체가 방 한가운데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형체는 검은 안개 같기도 했고, 연기 같기도 했다. 뚜렷한 실루엣은 없었으나, 거대한 기운이 현우를 짓눌렀다. 그것은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아주 오래된 무언가처럼 느껴졌다.
현우는 겨우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그 순간, 회전하던 열쇠가 엄청난 속도로 그의 머리 위로 날아와 벽에 **탕!** 하고 부딪혔다.
벽에 부딪힌 열쇠는 다시 튕겨 나와 침대 발치에 뚝 떨어졌다.
그리고 동시에, 방 한가운데를 가득 채우고 있던 검은 형체가 스르륵 사라졌다.
방 안의 냉기도 한순간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온 듯했다.

현우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몸을 일으키려 애썼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벽에 부딪혀 생긴 희미한 흔적을 만졌다.
환각이 아니었다. 꿈도 아니었다.
이 아파트에는, 그와 함께, 무언가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더 이상 사소한 장난으로 그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무엇을? 왜?
이 아파트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