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 신화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핏빛 서약

## 1. 잿더미 속의 눈동자

숨이 턱 막혔다. 폐 안으로 들이쉬는 공기마다 눅진한 곰팡내와 퀴퀴한 먼지가 들러붙어 사지가 축 늘어지는 기분이었다. 강진우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담요 뭉치 위에서 느릿하게 눈을 떴다. 머리 위로는 녹슨 파이프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시멘트 벽에는 검은 곰팡이가 역병처럼 번져 있었다. 이곳은 한때 번성했던 지하 비밀 연구실의 일부였지만, 지금은 그저 버려진 폐허에 불과했다. 그리고 진우의 삶 또한 이 폐허와 다를 바 없었다.

시간 감각은 이미 오래전에 무너져 내렸다. 낮인지 밤인지, 어제인지 오늘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저 눈을 뜨면 지옥 같은 현실이 기다리고, 눈을 감으면 더 끔찍한 악몽이 찾아올 뿐이었다. 모든 것이 그날 이후로 시작되었다. 아니, 모든 것이 그놈, 윤지혁의 배신으로 끝나버렸다.

진우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갈비뼈가 시큰거렸지만, 그 통증은 가슴을 짓누르는 먹먹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의 시선은 방 한가운데 놓인 낡은 나무 상자로 향했다. 상자는 먼지와 거미줄로 뒤덮여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것들은 진우의 유일한 희망이자, 동시에 절망이었다.

손을 뻗어 상자를 열었다. 삐걱이는 소리가 폐허의 정적을 깨고 섬뜩하게 울렸다. 상자 안에는 몇 권의 낡은 책과 기묘한 형상의 조각상들이 어둠 속에 잠들어 있었다. 표지는 알 수 없는 상형문자로 가득했고, 종이는 누렇게 바래고 갈라져 있었다. 조각상들은 매끄럽거나 각지지도 않은, 도저히 이 세상의 것이라 믿기 힘든 기괴한 형상으로, 보고 있자면 머릿속이 일그러지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진우의 손끝이 책 한 권의 표면을 쓸었다. 책의 이름은 없었지만,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불쾌한 전율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이 책들은… 지혁과 함께 찾아 헤매던 금단의 지식이었다. 세상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열쇠이자, 동시에 파멸로 이끄는 독이었다. 지혁은 이 지식을 탐했고, 결국 진우를 미끼로 삼아 자신만이 그 거대한 힘을 손에 넣으려 했다.

“지혁… 너는 내가 어떤 지옥을 맛보게 될지 알면서도… 기어이….”

진우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쉬어 있었다. 그날의 기억이 불현듯 선명하게 떠올랐다. 어둠 속에서 번뜩이던 지혁의 싸늘한 눈빛, 등 뒤에 꽂히던 차가운 칼날, 그리고 자신을 집어삼키려던 형언할 수 없는 존재의 그림자.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던 무력감. 끓어오르는 증오가 온몸의 피를 역류시키는 듯했다.

그는 살아남았다. 기적적으로, 혹은 저주처럼. 하지만 더 이상 이전의 강진우가 아니었다. 삶의 모든 의미를 잃었고, 남은 것은 오직 복수심뿐이었다. 이 지옥 같은 삶을 끝내기 위해서라도, 지혁을 끌어내려야 했다. 똑같이 고통받게 해야 했다. 아니, 그보다 더 처참하게 만들어야 했다.

진우는 상자에서 가장 낡고 두꺼운 책을 꺼냈다. 책장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알 수 없는 불경한 기운이 방 안을 채우는 듯했다. 고대어로 쓰인 내용들은 당장이라도 눈을 멀게 할 것 같았지만, 진우는 이미 오래전에 이 책들을 탐독해왔다. 지혁과 함께 미지의 영역을 파고들 때, 잠시나마 얻었던 환희와 희열은 이제 비틀린 분노와 광기로 변질되어 있었다.

페이지에는 기이한 도형들과 의식에 대한 설명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것들은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을 불러내거나, 그들의 힘을 빌리는 방법을 담고 있었다. 금기. 금기였다. 하지만 진우에게 이제 금기는 의미 없었다. 지혁을 응징하기 위해서라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었다. 아니, 이미 팔렸는지도 모른다. 그날, 그 어둠 속에서.

“이 지식으로… 나는 너를 심판할 것이다, 윤지혁.”

진우는 중얼거렸다. 그의 눈동자는 더 이상 인간적인 빛을 찾을 수 없었다. 마치 심연을 직접 들여다본 자처럼, 그 안에는 어둡고 축축한 광기만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는 손을 뻗어 책상 위에 놓인 녹슨 칼을 집어 들었다. 칼날은 날카롭지 않았지만, 한때는 성스러운 의식에 쓰였을 법한 복잡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텅 빈 공간, 찢어진 천 조각, 무너져 내린 벽돌더미. 그 모든 것들이 진우의 처지와 같았다. 그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다. 오직 지혁을 향한 불타는 증오만이 그를 지탱하고 있었다.

그는 책장을 다시 펼쳤다. 특정 페이지에 도달하자, 그림처럼 묘사된 복잡한 문양들이 눈에 들어왔다. 인간의 눈으로는 도저히 해독할 수 없는, 우주의 근원과 맞닿은 듯한 기하학적 형태. 이 문양들이 바로 이계를 여는 열쇠였다.

진우는 칼끝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그었다. 쓰라린 통증과 함께 붉은 피가 솟아났다. 그는 피 묻은 손으로 낡은 책의 페이지 위에 기이한 문양을 그리기 시작했다. 피 냄새가 희미하게 공간을 채우고, 곰팡내와 섞여 불길한 향기를 뿜어냈다.

문양이 완성될수록, 폐허의 공기는 더욱 무거워졌다. 어둠 속에 잠겨 있던 존재들이 진우의 의식에 반응하는 듯했다. 벽에서 뚝, 하고 곰팡이 덩어리가 떨어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고, 저 멀리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조차 기분 나쁜 박자로 울렸다.

‘이제… 시작이다.’

진우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이제 그는 평범한 인간의 길을 벗어나, 금단의 지식을 짊어진 복수의 화신이 될 것이다. 윤지혁. 너는 네가 연 지옥에서, 가장 먼저 불타는 죄인이 될 것이다.

그의 눈동자 속 심연이 더욱 깊고 어두워졌다. 마치 그 심연 끝에서, 태초의 혼돈이 그를 응시하는 듯했다. 진우는 두려움 대신, 알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더 이상 숨거나 도망칠 곳도, 이유도 없었다. 남은 것은 오직 전진뿐이었다.

그는 피로 그린 문양 위에 손을 얹고, 낡은 책에서 읽은 고대어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인간의 성대를 통해 나오기에는 너무나 이질적인, 비틀린 음절들이 폐허를 가득 메웠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바람이 불어오는 것처럼, 진우의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무엇인가가 꿈틀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