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미스터리 독립적인 단편 소설

지훈은 새로 이사 온 1304호의 거실 창가에 서서 밤의 도시를 내려다봤다. 불빛으로 수놓인 거대한 그림이 발아래 펼쳐져 있었다. 여긴 정말 완벽했다. 번잡한 도심 한복판에 이런 고층 아파트라니. 햇살 잘 들고, 뷰 좋고, 모든 것이 새것처럼 반짝거렸다. 그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지난 몇 년간의 고된 노력이 드디어 이런 안락함을 선물해준 것 같았다.

“그래, 바로 이거야.”

그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새 출발의 설렘이 온몸에 퍼지는 듯했다. 내일이면 본격적으로 짐 정리를 시작해야지.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잠시 후 냉장고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꺼내 마시며 편안히 소파에 몸을 기댔다. 하루 종일 이삿짐과 씨름한 피로가 몰려왔다. 그대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지훈은 머리가 띵했다. 어쩐지 몸이 으슬으슬한 기분이었다. 간밤에 창문을 열어놓고 잤던가? 하지만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고개를 갸웃하며 침대에서 일어난 그는 부엌으로 향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이 간절했다. 그런데 탁자 위에 분명히 놓아두었던 휴대폰이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네. 분명 여기 뒀는데.”

어제 저녁, 소파에 앉아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보다가 잠이 들었으니, 탁자 위나 소파 쿠션 틈새 어디쯤 있을 터였다. 그는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없었다. 설마 이삿짐 상자 안에 들어간 건가? 어지러운 상자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헤매다 그가 휴대폰을 발견한 곳은 의외의 장소였다. 바로 침대 머리맡 작은 협탁 위였다.

“……내가 여길 한 번도 안 봤을 리가 없는데.”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피곤해서 착각했겠지. 사람은 가끔 그런다.

며칠 뒤, 지훈은 제법 집안 정리를 마쳤다. 거실에는 깔끔한 서재 겸 작업 공간이 마련되었고, 침실은 아늑하게 꾸며졌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던 그는 다시 한 번 의아한 상황에 직면했다. 식료품을 넣으려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어제 저녁 분명히 먹고 남은 피자 상자가 제자리에 없었다. 그는 냉장고 안을 몇 번이고 확인했지만, 피자 상자는 마치 증발이라도 한 듯 사라지고 없었다.

“설마 내가 버렸나?”

쓰레기통을 뒤져봤지만, 역시나 없었다. 지훈은 고개를 젓고는 혼잣말했다. “정신이 없었나 보다.”

하지만 이런 ‘정신없음’은 점점 더 잦아졌다. 책상 위에 놓아두었던 볼펜이 감쪽같이 사라졌다가 엉뚱한 욕실에서 발견되거나, 밤새 잠가두었던 베란다 문이 아침에 보니 살짝 열려 있기도 했다. 한번은 새로 산 고급 이어폰이 사라져 온 집안을 뒤집어 놓았는데, 며칠 뒤 침대 매트리스 아래에서 뭉텅이로 발견되기도 했다.

“진짜 미쳐버리겠네.”

지훈은 짜증스럽게 머리를 긁적였다. 피로 탓인지, 낯선 환경 탓인지 분간할 수 없었지만, 이 아파트에 이사 온 후로 자꾸만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건물 관리 사무소에 전화해 점검을 요청했다. 혹시 집안에 몰래카메라 같은 것이 설치되어 있는 건 아닌지, 외부 침입의 흔적은 없는지 확인해달라고 했다. 관리인은 피곤한 기색으로 다녀갔지만, 아무런 특이점도 찾지 못했다. 모든 것은 정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지훈은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늦은 시간, 도시의 소음도 잠잠해질 무렵이었다. 갑자기 부엌에서 ‘쨍그랑’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다.

“누구야?”

아파트에 혼자 사는 그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는 조심스럽게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 불을 켜자, 바닥에 깨진 유리컵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컵은 싱크대 선반 위에 놓여 있던 것이었는데, 아무런 접촉도 없이 스스로 떨어져 깨진 듯했다.

“이게… 무슨.”

등골이 오싹했다. 그의 이성적인 머리가 이 상황을 이해하려 애썼지만, 아무런 논리적인 설명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조각들을 치웠다. 그리고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 날, 지훈은 대학 동창이자 IT 보안 전문가인 민준에게 연락했다. 민준은 평소에도 오컬트나 미스터리 같은 주제에 관심이 많아 관련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고 있기도 했다.

“야, 너 요새 귀신 들린 거 아니냐? 진짜 뭔 일인데 그래?” 민준은 지훈의 다급한 목소리에 반신반의하는 눈치였다.

지훈은 그동안 겪었던 모든 일들을 민준에게 털어놓았다. 휴대폰이 엉뚱한 곳에서 발견된 일부터, 피자가 사라진 일, 그리고 어젯밤 유리컵이 깨진 일까지. 민준은 처음에는 웃음을 터뜨렸지만, 지훈의 진지한 표정과 목소리에 점점 표정을 굳혔다.

“솔직히 좀… 기이하긴 하네. 근데 폴터가이스트는 보통 사람의 심리 상태에 영향을 받는다던데. 너 혹시 요즘 스트레스 많이 받았냐?”

“내가 스트레스 안 받은 날이 있었냐? 근데 그게 물건을 움직이고 유리컵을 깨뜨린다고?”

“음… 어쨌든, 믿기지 않겠지만, 일단 네 말대로 카메라를 설치해 보자. 혹시 모르잖아? 외부 침입자가 있을지도.”

민준의 제안에 따라, 지훈은 거실과 부엌에 소형 보안 카메라를 설치했다. 움직임이 감지되면 녹화가 시작되고, 휴대폰으로 알림이 오는 시스템이었다.

카메라를 설치한 지 이틀째 되던 날 밤, 지훈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다. 밤 11시,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거실에서 움직임이 감지되었다는 메시지였다. 그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핸드폰 화면으로 거실을 확인했다. 어두컴컴한 거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잠시 후, 거실 한편에 놓인 작은 액자가 흔들리더니, 이내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쨍그랑!’ 하는 소리가 휴대폰 너머로도 생생하게 들려왔다.

지훈은 숨을 멈췄다. 액자가 떨어진 후, 카메라는 더 이상 움직임을 감지하지 못했다. 그는 밤새도록 화면을 응시했지만,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떨어진 액자를 확인하니 유리가 깨져 있었다. 어젯밤 꿈이 아니었다.

민준은 지훈의 아파트에 찾아와 녹화된 영상을 함께 확인했다.

“크흠… 이거 진짜인데?” 민준은 턱을 문지르며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봤다. “외부 침입 흔적은 전혀 없고. 갑자기 액자만 저렇게 뚝 떨어지네? 그것도 혼자서?”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잖아. 네가 보기에도 이거 이상하지?”

“이상하다 못해 소름 끼치지. 음… 폴터가이스트는 ‘시끄러운 영혼’이라는 뜻이잖아. 특정 장소나 사람에게 강한 에너지체가 반응해서 물리적 현상을 일으키는 거거든. 꼭 죽은 사람의 영혼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의 강렬한 감정이 파동처럼 작용하기도 한대.”

“그럼 내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내가 내 집에서 물건을 던진다는 거냐? 말이 돼?” 지훈은 기가 막혔다.

“아니, 그게 아니라… 어… 보통 사춘기 아이들이나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서 많이 나타난다고 하더라고. 강한 심리적 에너지에 주변 환경이 반응하는 거지. 근데 너는 그런 케이스는 아닌 것 같고.”

민준은 한참을 고민하더니, 문득 인터넷 검색창을 켰다. “이 아파트… 전에 누가 살았는지 혹시 알아?”

“모르지. 그냥 부동산에서 좋은 매물이라고 해서 계약한 건데.”

“그럼 이 건물에 혹시 무슨 사고가 있었는지나… 그런 건?”

민준은 그 자리에서 아파트 주소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관련 뉴스 기사나 온라인 게시물을 뒤졌다. 몇 분 후, 민준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야, 이거… 좀 이상하다. 이 아파트, 입주 초기에 좀 시끄러웠던 적이 있네.”

“뭐가?”

“사망 사고. 그것도 1304호에서. 입주 두 달 만에 한 여자분이 자살했대. 외부인 침입 흔적 없고,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나와 있어.”

지훈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1304호. 바로 자신이 살고 있는 그 호실이었다.

“그럼… 그 여자분 때문이라는 거야? 영혼이 아직 이 집에 있다는 거야?”

“확신은 못 하지만… 폴터가이스트 현상이라는 게, 꼭 사람의 영혼뿐만 아니라, 특정 장소에 남아 있는 강렬한 감정의 잔재가 발현되는 경우도 많다고 해. 특히 갑작스럽고 강렬한 죽음의 에너지 같은 것들이 그렇대.”

그날 밤 이후, 지훈은 극심한 공포에 시달렸다. 그는 카메라를 켜놓고 잠을 청했지만, 그의 신경은 온통 주변의 미세한 소리에 곤두서 있었다. 한밤중에 갑자기 부엌 싱크대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거나, 거실에서 누군가 끄는 듯한 미세한 소리가 나면 그는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결국 지훈은 민준의 도움을 받아 그 아파트의 이전 거주자에 대해 더 깊이 조사하기 시작했다. 민준은 자신이 아는 한 지인에게 부탁해 신분을 위장하고 과거의 자료를 더 파헤쳤다.

몇 주 후, 민준은 충격적인 사실을 알아냈다. 이전 거주자였던 ‘박혜진’이라는 여성이 자살하기 전, 극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으며, 특히 마지막 몇 달 동안은 “집에서 자꾸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거나 “누군가 자신을 괴롭힌다”는 이야기를 주변에 자주 했다는 증언이 있었다. 당시에는 단순한 환청이나 편집증으로 치부되었던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그 여자분이 죽기 전에도 이 집에서 이런 현상을 겪고 있었다는 거야?” 지훈은 혼란스러웠다. “그럼 그 여자분의 영혼이 아니라, 이 집에 뭔가 다른 게 있다는 건가?”

민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어쩌면 그 여자분의 감정이 너무나 강렬해서, 그게 이 집에 남아버린 것일 수도 있어. 그리고 그 감정의 잔재가 너의 존재에 반응해서 다시 나타나는 걸지도.”

그날 밤, 지훈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응시했다. 이 집, 1304호. 완벽해 보였던 새 보금자리는 이제 그에게 가장 끔찍한 감옥이 되어 있었다. 휴대폰 알림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침실 내부의 카메라에서 움직임이 감지되었다는 알림이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 화면을 켰다. 어두운 침실, 그의 침대 발치에 놓인 작은 스탠드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만지는 것처럼. 그리고 이어서 스탠드 옆에 놓인 작은 유리컵이, 아무런 소리도 없이, 천천히 침대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쨍그랑!’

지훈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그의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는 듯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 집의 미스터리는 해결되었지만, 그의 악몽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어쩌면 이 집은 그 여자분의 마지막 고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영혼의 감옥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는 이제 그 감옥의 새로운 죄수가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