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은 삐걱거리는 금속 덩어리 위를 걷고 있었다. 그의 숨통을 조이는 회색 먼지는 매 걸음마다 폐허의 메아리를 토해냈다. 황동과 구리로 마감된 고글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끝없는 녹슨 톱니바퀴와 부서진 증기 기관의 무덤이었다. 그의 옆에는 작은 정찰용 오토마톤, ‘사수(査守)-07’이 징-징거리는 저음의 기어 소리를 내며 따라왔다. 사수-07의 둥근 광학 렌즈는 미세하게 흔들리며 전방의 위험을 스캔했다.
“젠장, 연료 압력 조절기가 또 문제를 일으키는군.”
강준이 낮게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건조했고, 폐허에 익숙한 쓸쓸함이 묻어났다. 그들의 이동수단이자 유일한 보금자리인 ‘밤까마귀’ 호는 이제 간신히 숨만 쉬고 있었다. 거대한 증기 엔진은 기침하듯 ‘콜록콜록’거리는 소리를 내며 불안정한 압력을 토해냈다. 조절기 내부의 핵심 부품이 완전히 마모된 탓이었다.
“사수-07, 주변 감지. 쓸만한 부품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
사수-07은 징-징거리는 소리를 잠시 멈추고는, 이내 날카로운 고주파음과 함께 전방으로 돌진했다. 강준은 등에 멘 무거운 배낭을 고쳐 메고, 낡은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허리춤의 만능 스패너를 만졌다.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예감이 발목을 잡았지만, 그는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발밑에서 깨진 유리 파편들이 ‘바스락’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사수-07이 보낸 신호는 북서쪽, 과거 ‘정밀기계 공단’이라 불리던 곳의 잔해를 가리켰다. 지금은 거대한 쇳덩이와 뒤틀린 파이프가 엉켜 거대한 괴물의 내장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그곳은 위험했지만, 동시에 희망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한때는 세계를 움직이던 심장이었으니, 분명 아직 쓸만한 무언가가 잠들어 있을 터였다.
공단으로 향하는 길은 더욱 험난했다. 녹슨 철골 구조물들이 위태롭게 하늘을 찌르고 있었고, 발밑에서는 깨진 유리 파편과 날카로운 금속 조각들이 지뢰처럼 깔려 있었다. 마스크 너머로 들이쉬는 공기에서는 곰팡이와 쇠 녹 냄새가 섞인 퀴퀴한 냄새가 났다. 불현듯, 저 멀리서 둔탁한 금속 충돌음이 들려왔다.
“사수-07, 확인해봐.”
사수-07은 재빠르게 잔해 더미 뒤로 몸을 숨겼다. 잠시 후, ‘삑-삑-‘거리는 경고음과 함께 광학 렌즈에 포착된 영상이 강준의 고글 안쪽 디스플레이에 전송되었다. 거대한 ‘정화기’였다. 본래 오염된 대기를 정화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동력을 상실한 채 오작동하며 접근하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살인 기계가 되어버린 놈이었다. 묵직한 증기 망치 팔을 ‘쿵-쿵’ 휘두르며 주변의 구조물들을 부수고 있었다. 그 몸체는 구리색과 강철색이 뒤섞여 있었고, 끓어오르는 증기가 여기저기서 ‘쉬이이익’ 뿜어져 나왔다.
“젠장, 아직도 돌아다니는 녀석이 있었군.”
강준은 허리춤에서 섬광탄을 꺼내 들었다. 사수-07에게 신호를 보내 주의를 끌게 한 뒤, 정화기가 한눈판 사이 재빨리 옆을 지나쳐야 했다. 타이밍이 중요했다. 사수-07은 ‘징-지지직’ 거리는 전자음을 내며 정화기의 반대편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작은 몸체에서 깜빡이는 불빛이 정화기의 둔중한 시선을 끌었다. ‘쾅!’ 정화기의 증기 망치가 사수-07이 있던 자리를 강타했다. 그 순간, 강준은 잔해 더미 사이를 스프링처럼 도약하며 몸을 던졌다. 낡은 금속 파편들이 그의 발에 쓸리며 ‘차르륵’ 소리를 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간신히 정화기를 피한 강준은 공단 내부 깊숙이 들어섰다. 모든 것이 멈춰버린 거대한 생산 라인, 녹슨 기계들이 유령처럼 서 있었다. 덩치 큰 프레스기들이 입을 벌린 채 굳어 있었고, 컨베이어 벨트는 먼지 쌓인 시체처럼 늘어져 있었다. 사수-07이 마침내 한 지점을 가리켰다. 천장이 무너져 내린 연구실의 잔해였다.
강준은 무너진 잔해를 조심스럽게 헤치고 들어갔다. ‘끼이익’ 낡은 철문이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며 열렸다. 먼지로 뒤덮인 작업대 위에서 빛바랜 설계도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아래, 진열장 속에 고이 모셔져 있던 작은 부품. 황동과 강철이 정교하게 결합된, 그가 찾던 ‘초정밀 압력 조절기’였다. 작은 기어들이 섬세하게 맞물려 있었고, 측면의 압력 게이지는 비록 멈춰있었지만 완벽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폐허 속에서 발견한 보물과도 같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진열장 바닥에서 ‘쉬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붉은 경고등이 깜빡였다. 오래된 보안 시스템이 아직 살아있었다. 거대한 황동 장치들이 벽에서 ‘틱-탁’ 소리를 내며 튀어나오더니, 조절기를 감싸는 투명한 보호막을 씌웠다. 동시에, 천장에서 ‘쿠구궁’하는 소리와 함께 낡은 강철 자동 경비병들이 내려왔다. 눈에는 붉은 광선이 번쩍였다. 기름때와 녹으로 범벅된 몸체는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강준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하! 쉽지 않지. 그래야 이 맛이지.”
강준은 비죽이 웃었다. 그는 고글을 치켜 올리고, 도구 벨트에서 작은 전류 충격기와 드릴을 꺼냈다.
“사수-07, 패턴 파악! 경비병들의 동선은 내게 알려줘.”
사수-07은 징-징거리며 빠른 속도로 경비병들의 움직임을 분석, 강준의 고글에 실시간으로 전송했다. ‘경로 예측: 우측 돌파, 72% 확률’. 강준은 경비병들의 둔탁한 공격을 피하며, 진열장 보안 시스템의 전원부를 노렸다. 복잡하게 얽힌 증기 파이프와 전선들 사이로 조심스럽게 드릴을 밀어 넣었다. 그의 손놀림은 거칠면서도 정교했다. 마치 기계의 일부처럼 움직였다.
‘끼이이잉-‘ 드릴이 낡은 금속을 파고드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경비병들의 공격이 거세졌다. 한 녀석의 증기 주먹이 그의 바로 옆 벽을 ‘쾅!’ 하고 강타하며 엄청난 먼지를 일으켰다. 그의 귀에 날카로운 금속 파편이 ‘스스슥’ 스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강준은 흔들림 없었다. 그의 눈은 오직 전원부에 고정되어 있었다. 땀방울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마침내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전원부가 파괴되고, 보안 시스템이 ‘쉬이이이익’ 소리와 함께 멈췄다. 황동 장치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조절기를 감싸던 보호막이 사라졌다. 경비병들은 움직임을 멈추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붉은 광선이 꺼진 그들의 눈은 죽은 눈동자 같았다.
강준은 조절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가락 끝에 전해졌다. 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 작은 부품 하나가, 오늘 밤 그들의 생명을 연장해 줄 터였다.
밤까마귀 호로 돌아온 강준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부서진 조절기를 새것으로 교체하기 시작했다. 증기압 파이프를 연결하고, 압력 게이지를 다시 조정했다. 렌치를 ‘딸깍딸깍’ 돌리고, 볼트를 ‘드르륵’ 조였다. 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그의 눈은 살아있는 기계처럼 정교하게 움직였다. 모든 부품이 제자리를 찾자, 그는 조심스럽게 시동 레버를 당겼다.
‘쉬이이익-‘ 압력 밸브가 열리고, 엔진에서 묵직한 증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웅-웅웅-‘ 밤까마귀 호의 거대한 강철 몸체가 미세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연료 압력 게이지 바늘이 안정적인 수치를 가리키고 있었다. 엔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따뜻한 증기 열기가 차가운 차체 내부를 데웠다.
“그래, 이거지.”
강준은 후련한 한숨을 내쉬었다. 사수-07은 그의 옆에서 징-징거리며 만족스러운 기어 소리를 냈다.
창밖은 여전히 회색빛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폐허의 그림자가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하지만 밤까마귀 호의 심장은 다시 힘차게 뛰고 있었다. 강준은 따뜻한 증기 열기에 몸을 기댔다. 내일은 또 다른 폐허를 헤매야 할 것이다. 또 다른 위험에 맞서야 할 테고, 또 다른 부품을 찾아 나서야 할지도 모른다. 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생존의 고리 속에서, 그는 오직 한 가지를 믿었다.
자신의 손과, 그의 곁을 지키는 작은 오토마톤, 그리고 절대 포기하지 않는 마음.
“가자, 사수-07. 다음 정거장은 없어.”
사수-07은 징-징거리는 소리로 응답했고, 밤까마귀 호는 거친 증기를 뿜어내며 어둠 속으로 나아갈 준비를 마쳤다. 폐허 속에서, 작은 희망의 불꽃이 다시 타오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