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챕터 1: 증기의 밀실, 강철 심장의 도시
새벽 세 시, 크롬웰 시는 거대한 증기기관처럼 숨을 쉬고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톱니바퀴 탑들 사이로 푸른 증기 안개가 춤추듯 피어올랐고, 고층 빌딩들을 잇는 강철 구름다리 위로는 징 소리와 함께 태엽 구동 마차가 지나갔다. 밤늦도록 일하던 공장의 굴뚝에서는 짙은 매연이 검은 비늘처럼 흩뿌려졌지만, 도시는 아랑곳하지 않고 끓어오르는 에너지로 가득했다.
경위 엘윈 브라이트는 징소리가 멎은 길 위에서 자신의 태엽식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짙은 안개 속에서 그의 가슴은 답답하게 조여들었다. 불과 두 시간 전, 그는 따뜻한 침대에서 막 잠이 들 참이었다. 그러나 한 통의 긴급 전보가 그의 평온을 산산조각 냈다.
“엘윈 경위님, 아르망 보렐 박사의 저택입니다.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르망 보렐. 이 강철 심장 도시, 크롬웰의 가장 위대한 발명가 중 한 명이자 ‘증기 혁명’을 이끈 거물. 그의 이름 앞에는 항상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런 그에게 무슨 일이? 엘윈은 차가운 새벽 공기를 들이마시며 서둘러 호출에 응했다.
태엽 마차는 비상등을 번쩍이며 좁은 골목을 빠져나갔다. 이윽고 눈앞에 나타난 것은 웅장한 아르망 보렐의 저택이었다. 검은 벽돌과 황동색 장식이 어우러진, 흡사 거대한 증기선이 땅에 박힌 듯한 기묘한 건축물. 저택의 정원과 현관 앞에는 이미 수십 명의 경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붉은 비상등이 밤의 어둠을 찢고 번뜩였고, 그 빛 아래로 경관들의 긴장된 얼굴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엘윈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현장 책임자인 맥그리거 경감을 향해 걸어갔다. 굵은 콧수염과 피곤에 절은 눈빛이 특징인 맥그리거 경감은 이미 잔뜩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경감님, 무슨 일입니까?”
맥그리거는 엘윈을 보자마자 거친 한숨을 내쉬었다. “끔찍한 일이야, 엘윈. 최악의 경우라고. 아르망 보렐 박사가… 살해당했어.”
엘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살해라고요? 누가… 감히?”
“그게 문제야.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어. 완벽한 밀실 살인이야.” 맥그리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피해자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발견됐네. 문은 안에서 굳게 잠겨 있었고, 창문도 마찬가지였어. 외부 침입 흔적은 전혀 없어. 유령이라도 저지른 짓이 아니고서야….”
엘윈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아르망 보렐의 연구실은 이 도시에서 가장 견고하고 보안이 철저한 곳으로 유명했다. 특수 합금으로 제작된 두꺼운 강철 문, 외부 충격에도 끄떡없는 강화 유리창, 그리고 보렐 박사만이 아는 복잡한 태엽식 잠금장치. 그곳을 뚫고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분도 와 계시네.” 맥그리거가 저택 안쪽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엘윈의 시선이 맥그리거가 가리킨 곳으로 향했다. 복도 끝, 가장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곳에 한 인영이 서 있었다. 등 뒤에서 비치는 희미한 가스등 불빛에 실루엣만 겨우 파악될 뿐, 그의 표정은 전혀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엘윈은 단번에 그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콘라드 폰 아이젠.
그의 이름 앞에는 항상 ‘기계의 지배자’, ‘천재 중의 천재’, 혹은 ‘광인’이라는 수식어가 뒤따랐다. 길게 땋아 내린 백금발 머리카락과 기이할 정도로 붉은 안경 너머의 눈빛, 그리고 항상 어두운 색의 롱코트를 고집하는 그의 기괴한 차림새는 크롬웰 시의 명물이었다. 그는 경찰 소속도, 사설 탐정도 아니었지만, 도시에서 발생하는 가장 기묘하고 풀기 어려운 사건의 현장에는 언제나 그림자처럼 나타나 기적처럼 진실을 밝혀내곤 했다. 그의 논리는 인간의 사고방식을 초월했고, 그의 추리는 신의 영역에 닿아 있었다.
엘윈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그가 이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것은, 이 사건이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의미였다.
엘윈과 맥그리거는 콘라드를 따라 피해자의 연구실로 향했다. 복도에는 이미 핏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 강철 문 앞에는 현장감식반원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지금까지 문을 열지 못한 겁니까?” 엘윈이 물었다.
“아니. 박사가 특수하게 만든 태엽식 잠금장치 때문에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었네. 지문 감식을 마친 후에야 강제로 개방할 예정이야.” 맥그리거가 답했다.
그 순간, 콘라드가 움직였다. 그는 닫힌 문에 바짝 다가서더니, 안경을 추켜세우고 손가락으로 문 주변의 미세한 틈새를 훑기 시작했다. 그의 움직임은 마치 정교한 오토마톤 같았다. 느리지만 정확하고, 망설임이 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강철 문 앞에서 그는 마치 책을 읽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미간을 찌푸리기도 했다.
잠시 후, 현장감식반장이 조심스럽게 태엽 잠금장치를 강제로 개방하기 시작했다. ‘딸깍’ 하는 기계음과 함께 거대한 강철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안으로 열렸다.
순간,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함께 피 비린내가 확 끼쳐왔다.
연구실 내부는 흡사 거대한 기계의 심장부와 같았다. 벽면을 따라 빼곡하게 박힌 황동색 기어들, 천장을 지나는 굵은 증기 파이프들, 각종 복잡한 태엽장치들이 얽히고설켜 있었다. 거대한 작업대 위에는 반쯤 조립된 증기 구동 인형이 앙상한 골조를 드러내고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낡은 가죽 의자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 아르망 보렐 박사가 엎드려 있었다.
그의 등에는 뾰족한 칼날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칼자루는 정교하게 세공된 황동으로 만들어졌고, 칼날은 희미하게 빛났다. 그의 손은 책상 위로 축 늘어져 있었고, 새하얀 셔츠는 붉은 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세상에….” 엘윈은 저절로 탄식을 내뱉었다.
맥그리거 경감이 입을 굳게 다문 채 방 안을 둘러보았다. “보게, 엘윈. 모든 문과 창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어. 창문은 두꺼운 강화유리고, 작은 환기구조차 막혀 있어. 이 방은 완벽한 밀실이야.”
엘윈은 침착하게 방 안을 스캔했다. 과연, 맥그리거의 말대로 모든 출입구는 안에서 잠겨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방 중앙으로 다가가 시신을 살폈다. 보렐 박사의 눈은 공포에 질린 채 천장을 향하고 있었다. 발버둥 친 흔적은 없었지만, 주변에는 약간의 흐트러짐이 보였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범인이 드나들었을 만한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바닥은 어떤가?” 엘윈이 물었다.
“전부 확인했네. 어떤 미세한 흙먼지나 발자국도 없어. 하다못해 수상한 냄새도 나지 않아. 마치… 살인자가 증기처럼 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맥그리거의 목소리에는 좌절감이 묻어났다.
콘라드는 이미 방 안으로 들어서 있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방의 가장자리를 따라 걷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바닥에, 벽에, 천장에,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기계장치들 위를 스치듯 지나갔다. 마치 보이지 않는 실타래를 따라가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엘윈은 그의 시선이 멈추는 곳을 함께 바라보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저 복잡한 기계장치들과 증기 파이프뿐이었다.
갑자기 콘라드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의 시선은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증기 파이프 중 하나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파이프는 천장에서 내려와 방 한가운데의 작업대 위로 이어져 있었다.
맥그리거가 콘라드의 시선을 따라 천장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저 파이프 말인가? 보렐 박사가 특별히 제작한 증기압 조절 장치 중 하나지. 연구실 내부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거나, 실험 장비에 증기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네.”
콘라드는 아무런 대꾸 없이 파이프를 응시했다. 그의 손이 천천히 올라가더니, 파이프 표면을 가볍게 두드렸다. ‘통, 통’ 하는 둔탁한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그리고 그는 돌연 몸을 돌려 맥그리거와 엘윈을 향해 돌아섰다. 붉은 안경 너머의 눈빛은 마치 심연을 들여다보는 듯 차갑고 날카로웠다.
“맥그리거 경감, 그리고 엘윈 경위.” 콘라드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지만, 기묘한 울림이 있었다. “당신들은 이 방이 ‘밀실’이라고 단정하고 있군요.”
맥그리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나? 모든 문과 창문이 안에서 잠겨 있었고, 외부 침입 흔적은 전혀 없었으니….”
콘라드는 맥그리거의 말을 끊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의 시선은 다시 천장의 증기 파이프를 향했다.
“그렇다면,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밀실’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엘윈과 맥그리거는 의아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콘라드는 그들의 당혹감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범인이 들어오고 나갈 방법이 없는 공간, 그것이 밀실이겠죠. 하지만… **범인이 굳이 들어오고 나갈 필요가 없었다면 어떨까요?**”
엘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맥그리거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콘라드를 응시했다.
콘라드는 피 묻은 시신과 복잡한 기계장치들로 가득 찬 방을 천천히 둘러보며 나직이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태엽 소리처럼 정교하고 냉철했다.
“이 방은 완벽한 밀실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방은 **하나의 거대한 장치**입니다. 그리고 범인은 그 장치를 능숙하게 다루었을 뿐입니다.”
그의 시선이 다시 한번 천장의 증기 파이프 끝자락에 맺혔다. 그곳에는 육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한, 갈색 얼룩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마치 녹슨 증기처럼 보였으나, 콘라드는 그 얼룩 너머에 숨겨진 진실을 읽어내는 듯했다.
“이 방은 처음부터 살인을 위한 무대였습니다. 그리고 **범인은 바로 이 안에 있었습니다.** 다만, 당신들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았을 뿐.”
밤의 크롬웰 시는 여전히 증기 안개 속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아르망 보렐의 연구실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가득 찬 채, 차가운 침묵만을 토해내고 있었다. 콘라드의 마지막 말은 엘윈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톱니바퀴처럼 뱅글뱅글 맴돌았다.
범인이 이 안에 있었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대체 무슨 뜻일까. 엘윈은 혼란스러웠지만, 동시에 심장이 고동치는 것을 느꼈다. 이 기묘한 미스터리의 서막이 이제 막 열린 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