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힐링 애니메이션 독립적인 단편 소설

고요한 산자락에 둘러싸인 한옥 게스트하우스 ‘소월헌’. 처마 밑 풍경 소리가 바람결에 흔들리며 맑은 울림을 퍼뜨리는 곳이었다. 이른 아침, 한은서는 마루에 앉아 따뜻한 차를 홀짝이며 붓을 들었다. 갓 피어난 복사꽃잎의 여린 분홍빛을 화선지에 옮기던 참이었다. 촉촉한 공기와 풀 내음이 심신을 맑게 씻어주는 듯했다.

“은서 씨, 좋은 아침입니다!”

멀리서부터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우 순경이었다. 커다란 몸집으로 종종걸음을 치는 모습이 영락없이 시골 경찰의 순박함을 보여주었다. 그의 얼굴에는 잔뜩 걱정이 드리워져 있었다.

“현우 씨, 무슨 일이세요? 벌써 땀을 흘리시네요.”
은서가 미소 지으며 차를 권했다.

“차는 됐고… 큰일 났습니다! 이, 이상한 사건이 터졌어요!”
현우는 숨을 헐떡이며 간신히 말을 이었다. “어제 새로 오신 손님이… 그만… 돌아가셨어요. 근데 이게… 밀실 살인입니다!”

은서의 미소가 살짝 옅어졌지만, 여전히 평온한 눈빛이었다. “밀실이라니요?”

“네! ‘매화방’에 묵으시던 최영호 씨인데, 아침에 방 아주머니가 노크해도 대답이 없어서 들어가 봤더니… 그만… 흉기에 찔린 채 쓰러져 계셨답니다. 근데 방은 안에서 잠겨 있고, 창문도 굳게 닫혀 있었다는 거예요!”

현우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말도 안 됩니다. 대체 누가, 어떻게 들어갔다가 나갔다는 겁니까? 범인이 귀신이라도 된단 말입니까?”

은서는 조용히 붓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봅시다. 현우 씨.”

매화방은 소월헌의 가장 구석진 방이었다. 문 앞에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었고, 몇몇 경찰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방 안으로 들어서자, 오래된 나무 향과 희미한 피 냄새가 섞여 코끝을 스쳤다.

현우가 쭈뼛거리며 방 안을 가리켰다. “저기… 피해자 최영호 씨입니다. 흉기는 옆에 떨어진 편지칼로 추정되고요. 보시다시피 문은 안에서 빗장이 걸려 있었고, 현관 잠금장치도 안에서 잠긴 상태였습니다. 창문도 마찬가지고요.”

은서는 말없이 방 안을 둘러보았다. 작은 한옥 방. 창호지로 발린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창문 안쪽에는 나무로 된 빗장이 단단히 채워져 있었다. 방문도 마찬가지로 낡은 나무 빗장과 현대식 도어록이 모두 안에서 잠겨 있었다.

“방 안에는 외부인의 침입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지문도 최영호 씨 것만 나왔고요. 외부에서 안으로 들어올 방법 자체가 없어요. 벽을 뚫은 것도 아니고….” 현우는 답답한 듯 덧붙였다.

은서는 시선을 고정한 채, 바닥에 쓰러진 최영호 씨의 시신을 보았다. 옅은 남색 잠옷 차림. 옆에는 은색 편지칼이 떨어져 있었다. 그의 손은 창문 쪽을 향해 뻗어 있는 듯했다.

“창문을 다시 잠그려던 걸까요?” 은서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글쎄요… 이미 잠겨 있었을 텐데요.” 현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은서는 창문 가까이 다가갔다. 창호지에 발린 나무 격자 창문. 손으로 직접 만져보며 꼼꼼히 살폈다. 낡았지만 틈새 없이 단단했다. 그녀의 눈은 창문 윗부분, 아주 미세한 곳에 멈췄다. 창호지 아래, 나무 격자 틈새에 거의 보이지 않는 실오라기 같은 것이 끼어 있었다. 아주 가늘고 투명한 낚싯줄 같은 것이었다.

“현우 씨, 피해자 최영호 씨는 어떤 분이셨나요?” 은서가 물었다.

“아, 네. 소월헌 아주머니 말로는 조용하고 꼼꼼한 분이셨답니다. 물건을 칼같이 정리하고, 규칙을 잘 지키셨대요. 특히 방을 나설 때는 늘 잠금장치를 꼼꼼하게 확인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군요.” 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혹시… 최영호 씨가 유독 새를 좋아했거나, 자연의 소리에 민감하셨다는 얘기는 없었나요?”

현우는 잠시 생각하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어젯밤에 다른 손님 한 분이 불평했었어요! ‘매화방’에서 새벽마다 새소리가 너무 잘 들려서 잠을 설친다고요. 창문을 닫아도 소리가 들린다고 하소연했었죠.”

은서는 그 실오라기 같은 낚싯줄을 조심스럽게 꺼내 들었다. 그제야 그녀의 얼굴에 아주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현우 씨, 이 사건은 밀실 살인이 아닙니다.” 은서가 차분하게 말했다. “최영호 씨는 범인이 방에 들어오지 않은 상태에서 살해당했습니다.”

현우는 당황한 표정으로 은서를 바라봤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최영호 씨는 아주 꼼꼼한 분이셨습니다. 방을 나설 때도, 방에 들어와서도 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잠그고 확인하는 습관이 있었죠. 새벽에 창문으로 새소리가 들린다고 불평한 손님이 있었다고 했죠? 그 말은 최영호 씨가 잠들기 전에 창문을 완벽히 닫지 않았다는 뜻이 됩니다.”

은서는 낚싯줄을 현우에게 내밀었다. “이 낚싯줄을 보세요. 아주 가늘고, 투명해서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이 실은 바로 범인이 사용한 도구입니다.”

현우는 낚싯줄을 받아 들고 눈을 비볐다. “낚싯줄이요? 이걸로 어떻게…?”

“범인은 최영호 씨가 잠들기 전, 창문을 아주 미세하게 열어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에게 창문을 조금 열어달라고 부탁했을 수도 있겠네요. 소월헌의 아침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고, 새벽 공기를 느끼고 싶다고 말이죠. 꼼꼼한 최영호 씨는 아마 거절했을 겁니다. 하지만 새벽 새소리에 잠을 설칠 정도로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 잠시 창문을 열어두었을 수도 있습니다.”

은서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단호했다. “범인은 이 낚싯줄에 뾰족한 편지칼을 묶었습니다. 그리고 새벽녘, 최영호 씨가 잠시 창문을 아주 미세하게 열어둔 그 틈을 노린 거죠. 아마 잠이 오지 않거나, 물을 마시러 일어났을 때, 희미하게 열린 창문 밖에서 인기척을 느꼈을 겁니다. 그는 무심코 창문 가까이 다가갔을 테고요.”

“범인은 창문 밖에서, 그 작은 틈을 통해 낚싯줄에 매단 편지칼로 최영호 씨를 찔렀습니다. 그리고 최영호 씨는 마지막 힘을 다해 창문을 닫고 빗장을 걸었습니다. 평소의 꼼꼼한 습관이 죽음 직전까지 이어진 거죠. 마치 자신의 마지막 흔적을 지우려는 듯이….”

현우는 은서의 설명을 듣고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럼 저 낚싯줄은… 범인이 편지칼을 회수하려다 미처 회수하지 못한 흔적이라는 말씀이십니까?”

“네. 아마 편지칼을 찌른 후, 낚싯줄을 당겨 칼을 회수하려 했지만, 최영호 씨가 창문을 닫는 과정에서 낚싯줄이 창호지 틈새에 끼어버렸을 겁니다. 미처 회수하지 못하고 도망친 흔적이죠.”

현우는 방 안의 모든 것을 다시 보았다. 굳게 닫힌 문, 창문, 그리고 바닥의 최영호 씨. 그의 마지막 행동이 오히려 밀실을 완성했다는 사실에 묘한 서글픔이 밀려왔다.

“하지만 누가… 왜 그런 짓을?” 현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은서는 창밖을 향했다. 소월헌의 아담한 뜰에는 키 작은 동백나무 몇 그루가 심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뒤편으로 조금 전에 불평을 늘어놓았던 손님이 묵는 ‘난초방’이 보였다. 난초방의 창문에는 오래된 낚싯대가 기대어져 있었다.

“소월헌에는 새벽 새소리에 불평이 많았던 손님이 한 분 계셨다고 했죠? 그리고 난초방 창문에는 사용하던 낚싯대가 기대어져 있군요. 낚시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얇고 튼튼한 낚싯줄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최영호 씨에게 창문을 닫아달라고 여러 번 요청했지만, 꼼꼼한 그가 번번이 거절했거나, 혹은 잠시라도 열어두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어떤 충동이 작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피해자는 규칙을 잘 지키는 분이셨다고 했지만, 어쩌면 규칙을 지키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방식으로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새벽에 새소리를 듣기 위해 창문을 살짝 열어두는 행위가, 누군가에게는 참을 수 없는 사소한 일탈로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사소한 일탈이… 이 비극적인 결말을 가져온 겁니다.”

은서의 목소리에는 연민과 아쉬움이 깃들어 있었다. 범인이 누군지 짐작은 가지만, 그녀의 말 속에는 단죄보다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그로 인한 비극에 대한 깊은 이해가 담겨 있었다.

현우는 은서의 말에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멍해졌다. 밀실이라는 거대한 미스터리가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오해와 충동으로 인해 벌어진 어이없는 비극이었다니. 그는 급히 난초방으로 향했다.

은서는 다시 마루로 돌아와 붓을 들었다. 갓 피어난 복사꽃잎은 여전히 아름다운 분홍빛을 띠고 있었다. 차가 식었지만, 따스했던 공기는 여전했다. 밀실은 깨졌지만, 그 안의 서글픈 이야기는 고요한 소월헌에 또 다른 깊이를 더해주었다. 그녀는 다시 붓을 움직였다. 이제는 복사꽃잎 옆에 한 줄기 바람을, 그리고 그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낚싯줄의 흔적을 그려 넣을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