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온사인이 도시의 밤을 붉고 푸르게 물들였다. 거대한 빌딩 숲은 기괴한 첨탑처럼 솟아 있었고, 그 사이를 수없이 많은 에어택시들이 무소음으로 가르며 날아다녔다. 자이온 타워의 최상층. 그곳은 도시의 정점이었고, 동시에 가장 고립된 공간이었다.
한설아, 자이온 그룹의 최고 기술 책임자이자 은둔형 천재. 그녀는 생체 인식 잠금장치로 봉인된 개인 연구실 겸 펜트하우스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침입 흔적은 없었다. 모든 출입구는 내부에서 단단히 잠겨 있었고, 외부 침입 흔적은 먼지 한 톨조차 찾을 수 없었다. 타워 전체를 감싸는 통합 보안 시스템은 그 어떤 이상 징후도 기록하지 않았다. 창문은 특수 강화유리로 외부 충격이나 침입은 애초에 불가능했고, 환기구는 성인 남성의 팔뚝 하나 겨우 들어갈 정도였다. 완벽한 밀실 살인.
류진은 손목에 감긴 데이터 패드를 한 번 훑었다. 시간은 이미 자정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또 밀실이군.” 그의 목소리는 묘하게 건조했다. 언제나처럼 사건 현장에는 혼란스러운 기운이 가득했다. 특수 기동대 소속의 감식반 요원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었고, 자이온 그룹 보안팀은 초조한 얼굴로 보고서를 주고받았다. 그들은 모두 천재 CTO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그리고 그 죽음이 남긴 의문에 압도된 듯 보였다.
“류진 씨, 오셨군요.” 현장 책임자인 형사반장 강태우가 땀에 절은 얼굴로 다가왔다. 그의 이마에는 핏줄이 불거져 있었다.
“상황은 들었습니다. 강 반장님은 여전히 밀실에 약하시군요.” 류진은 피식 웃었다. 비아냥거림이라기보다는, 친근한 조소에 가까웠다. 그의 왼쪽 눈은 푸른색 광학 렌즈가 박혀 있었는데, 주변의 미세한 데이터 흐름을 흡수하며 기묘하게 번뜩였다. 그 눈은 그가 단순히 인간의 시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님을 암시했다.
“젠장, 류진 씨! 약한 게 아니라 이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이 방의 모든 잠금장치는 내부에서 잠겼고, 외부 침입 흔적은 먼지 한 톨도 없어! 창문? 특수 강화유리야. 폭탄이 터져도 흠집 하나 안 난다고! 환기구는 내 팔뚝 하나 겨우 들어가는 크기인데, 설아 씨는 자그마치 키 175센티에 50킬로그램이 넘는 여성이라고!” 강태우가 울분을 토했다. 그의 목소리는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류진은 강태우의 투덜거림을 한 귀로 흘리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바닥에 깔린 매크로 섬유 카펫 위를 천천히 걸었다. 삐걱이는 소리 하나 나지 않는 고성능 전투화. 그의 푸른 눈은 스캔 모드로 전환되어, 방 안의 미세한 에너지 흐름, 데이터의 잔향, 심지어 공기 중의 입자까지 분석하기 시작했다. 일반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정보의 파동이 그의 시야에 겹쳐졌다.
중앙에는 거대한 홀로그램 테이블이 있었고, 그 옆에 등받이가 높은 인체공학 의자에 한설아의 시신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마치 깊은 잠에 빠진 듯 평온해 보였지만, 푸른 입술과 미세하게 확장된 동공은 그녀의 생명이 이미 오래전에 꺼졌음을 알렸다. 몸에 상처는 없었다. 독극물? 아니면 전자기 충격?
“사망 시간은?” 류진이 물었다.
“감식반 추정으로는 대략 6시간 전. 밤 8시에서 9시 사이. 사인은 아직 불명확합니다. 외부 상흔도 없고, 내부 장기 파열도 없어요. 독극물 반응도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감식반 팀장이 빠르게 보고했다.
류진은 시신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푸른 눈이 미세한 파장을 쏘아 그녀의 피부와 옷을 스캔했다. 시신 주변의 공간에는 미세하게 뒤틀린 전자기장이 감지되었다. 매우 약했지만, 분명 존재했다.
“강 반장님, 이 방의 모든 전자기기 접속 기록을 뽑아주세요. 특히 홀로그램 테이블과, 설아 씨가 사용하던 개인 단말기의 접속 기록 전부를요.” 류진이 말했다.
“이미 다 뽑았지만, 별다른 특이점은 없었습니다. 설아 씨는 사망 전까지 업무를 보다가, 잠시 휴식을 취한 기록만 있을 뿐입니다. 외부와 연결된 흔적은 일절 없어요.” 강태우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류진은 홀로그램 테이블 위를 덮고 있는 미세한 먼지층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일반인이라면 눈치채지 못할, 아주 미세한 차이. 먼지 입자의 배열이, 마치 어떤 가벼운 물체가 그 위를 스쳐 지나간 듯 흐트러져 있었다.
“흐음… 외부와 연결된 흔적이 없다고요?” 류진이 중얼거렸다. 그의 시선은 방 안의 가장 평범한 곳, 바로 천장에 있는 환기구에 닿았다.
강태우는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말씀드렸잖습니까, 제 팔뚝도 겨우 들어간다고요.”
류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환기구 주변의 벽면을 훑었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아주 미세한 균열. 그것은 물리적인 균열이 아니라, 에너지의 불균형이 남긴 흔적이었다. 마치 무언가 ‘투과’되었던 것처럼.
“강 반장님, 이 방에서 가장 강력한 전자기장을 일으킬 수 있는 기기가 무엇이죠?” 류진이 물었다.
“아마 이 홀로그램 테이블일 겁니다. 자이온 그룹이 자체 개발한 차세대 증강현실 인터페이스니까요. 아니면 설아 씨 개인용 워크스테이션이겠죠. 하지만 둘 다 외부와 연결되려면 보안 프로토콜을 거쳐야 합니다.”
류진은 홀로그램 테이블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방금 전까지 한설아가 앉아있던 그 자리였다. 그의 푸른 눈은 이제 홀로그램 테이블의 제어판을 스캔했다. 복잡한 데이터 흐름이 그의 시야에 펼쳐졌다.
“설아 씨는 죽기 직전에 무언가를 ‘보고’ 있었군요.” 류진이 말했다.
“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강태우가 의아해했다.
“이 홀로그램 테이블의 잔류 데이터. 아주 잠깐 동안, 특정 시뮬레이션이 실행되었던 흔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뮬레이션은… 외부 네트워크에서 가져온 파일입니다.” 류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은 실마리를 찾아낸 탐정 특유의 만족감이었다.
강태우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보안 기록에는…”
“보안 기록은 이 방에 ‘침입한 사람’을 추적하죠.” 류진이 말을 잘랐다. “하지만, 사람이 아닌 다른 것이 침입했다면?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무것도 침입하지 않았다면*?”
류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환기구 쪽으로 걸어갔다. 그의 손이 천장에 닿았다. 푸른 눈동자가 더욱 강렬하게 빛났다.
“여기입니다. 맹점. 그리고 이 맹점을 이용한 겁니다.”
“맹점이라니요? 대체 뭘 말하는 겁니까, 류진 씨!” 강태우는 답답함에 넥타이를 풀었다.
류진은 그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허공에 손가락을 휘저었다. 그의 푸른 눈에서 발산되는 미세한 빛이 허공에 홀로그램 이미지를 그려냈다. 그것은 이 방의 3D 구조도였다. 그리고 특정 환기구의 내부를 투과하는, 아주 가느다란 에너지 흐름의 경로가 점멸했다.
“사건의 열쇠는 ‘들어오는 자’가 아니라, ‘투과하는 자’에 있습니다.” 류진은 홀로그램 이미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그 ‘투과’는 물리적인 것이 아니었죠.”
그의 시선은 한설아의 시신을 다시 향했다. 여전히 평온해 보이는 얼굴.
“이 밀실은, 살인자가 이곳에 들어오지 않고도 살인을 저지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완벽한 무대였습니다.”
강태우는 류진이 만들어낸 홀로그램 이미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가 이해하기에는 너무나도 첨예하고 복잡한 정보들이었다.
“투과… 물리적인 것이 아니었다고요?” 강태우가 간신히 되물었다.
“네. 정확히는 ‘정보’가 투과했습니다.” 류진이 낮게 읊조렸다.
“그리고 그 정보는, 이 방에 있던 모든 보안 시스템을 잠시나마 ‘속여서’ 한설아 씨의 죽음을 연출한 겁니다.”
류진의 푸른 눈이 다시 한번 번뜩였다. 밀실 살인의 트릭이, 그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그림처럼 서서히 맞춰지고 있었다.
“문제는 누가, 그리고 왜 이런 고도의 기술을 써서 그녀를 살해했는가, 그리고 그 ‘정보’가 어떻게 이 방으로 들어왔는가 이겠군요.”
류진은 손목의 데이터 패드를 톡톡 두드렸다.
“강 반장님, 설아 씨의 마지막 시뮬레이션 기록을 더 상세히 분석해야겠습니다. 특히 그 ‘외부 네트워크 파일’의 출처와, 그 파일이 이 방의 보안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강태우는 여전히 혼란스러웠지만, 류진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 이끌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류진 씨. 곧바로 지시하죠. 대체… 무엇이 이 방으로 들어와 설아 씨를 죽인 겁니까?”
류진은 창밖으로 펼쳐진 네온 도시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의 푸른 눈동자에 도시의 빛이 비쳤다.
“글쎄요. 보이지 않는 칼날이 아닐까요? 아니면… 보이지 않는 손가락이, 그녀의 심장을 멈추게 한 거겠죠.”
그의 말은 수수께끼 같았지만, 강태우는 류진이 이미 답의 절반 이상을 찾아냈음을 직감했다.
밀실은 깨졌다. 이제 남은 것은, 그 밀실을 설계한 살인자의 얼굴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