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이 밤의 문은 누구에게 닫혔는가
강하랑은 진지했다. 눈앞의 스크린에 비치는 미세한 움직임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턱을 괸 채 검지로 입술을 느리게 쓸었다. 왼쪽 눈동자는 화면 중앙의 녹색 점을 쫓았고, 오른쪽 눈동자는 그 점이 그리는 궤적의 예상 경로를 읽는 듯 허공을 방황했다. 그의 주변은 온통 쓰레기였다. 방금 전까지 그가 열과 성을 다해 분석하고 추론했던 간식 봉투들, 엉뚱한 모양으로 구겨진 종이컵, 그리고 아무렇게나 던져진 책 더미들. 완벽한 지저분함 속에 완벽한 질서가 숨어있는 그의 세계.
“젠장.”
나직이 읊조린 그에게서 짜증 섞인 한숨이 터져 나왔다. 화면 속 초록 점은 그의 예측을 완벽하게 빗나가, 그가 설정한 수치와는 전혀 다른 움직임을 보이며 게임 오버 사인을 띄웠다.
“이게 말이 돼? 이 완벽한 수의 세계에서 찰나의 오류가 발생했다고? 시스템의 결함인가, 아니면…”
그가 중얼거리는 순간, 탁자 위 휴대폰이 맹렬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화면에는 이름 두 글자, ‘이슬비’가 선명했다. 하랑은 한숨을 쉬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 지금 중요한 연구 중인데.”
“하랑 씨! 중요한 연구는 무슨! 또 게임하고 있었죠?” 수화기 너머로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가 쏟아졌다. 날카로운데 은근히 듣기 좋은, 이슬비 형사 특유의 목소리였다.
“게임이 아니야, 이슬비 형사님. 이건 무작위성의 본질을 탐구하는 심오한 실험이라고. 자네 같은 직관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닥쳐요! 지금 장난할 시간 없어요. 빨리, 당장, 지금 즉시, 검은 연못가에 있는 박 회장님 별장으로 와요. 긴급 상황이에요!”
검은 연못가 별장. 박성철 회장. 그 이름에 하랑의 느슨했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굳어졌다. 대한민국 경제계를 쥐락펴락하는 거물 중의 거물. 그런 사람의 별장에 긴급 상황이라니. 분명 심상치 않은 일일 터였다.
“무슨 일인데 그래? 또 회장님 금고 번호를 까먹으셨대?”
“사람이 죽었어요! 밀실 살인이라고요, 밀실!”
‘밀실 살인’이라는 단어에 하랑의 눈빛이 순식간에 날카롭게 빛났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장난감 가게의 새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미묘한 흥분감이 그의 얼굴을 스쳤다.
“오호라. 밀실이라. 그거 재미있겠는데.”
“재미? 지금 제정신이에요? 지금 난리가 났는데!”
“알았어, 알았어. 갈게. 대신, 오늘 저녁은 자네가 사야 해. 내 심오한 연구를 방해한 대가로.”
하랑은 전화를 끊고 몸을 일으켰다. 그의 방은 언제나 그랬듯 난장판이었지만, 그의 머릿속은 놀랍도록 또렷했다.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 같은 세상의 모든 사건들이 그에게는 언제나 풀 수 있는 퍼즐이었다. 그리고 지금, 새로운 퍼즐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
검은 연못가 박 회장 별장은 과연 소문대로 거대한 위용을 자랑했다. 높은 담벼락을 따라 삼엄하게 경비가 서 있었고, 별장 앞마당은 이미 경찰차와 과학수사팀 차량으로 빼곡했다. 붉은색과 푸른색 경광등이 밤하늘을 가르며 섬뜩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하랑은 자신의 낡은 세단을 주차장에 던져놓듯 세우고 차에서 내렸다. 잠시 후, 이슬비 형사가 그에게로 달려왔다. 항상 단정하게 묶어 올리던 머리는 잔뜩 흐트러져 있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하랑 씨! 이제 와요? 전화는 왜 이렇게 늦게 받아요!”
“늦다니? 내가 차 키를 찾느라 그랬지. 그리고 형사님은 왜 이렇게 초췌해졌어? 범인한테 쫓기기라도 했나?” 하랑은 그녀의 이마에 맺힌 땀을 손가락으로 툭 건드렸다.
“이거 진짜! 지금 장난할 때 아니거든요?” 슬비는 그의 손을 쳐내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자, 어서 와요. 현장으로 안내할게요.”
별장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눅진하고 끈적한 공기가 하랑을 감쌌다. 겉만 번지르르한 빈 껍데기 같은 집이었다. 거실을 지나 복도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낮은 탄식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에요. 박 회장님 서재.” 슬비가 무거운 참나무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문 앞에는 이미 여러 명의 형사들과 감식반 요원들이 초조하게 서 있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한결같이 당혹감과 좌절감이 묻어 있었다.
“다들 지금 뭐 하는 거죠? 그냥 구경하는 건가?” 하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에서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어서 그래요. 아니, 못 들어간다고 하는 게 맞겠네요.” 슬비가 한숨을 쉬었다. “서재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창문도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게다가 창문은 이중 잠금장치에 방탄 유리였고요. 내부에는 부러진 흔적이나 침입 흔적은 전혀 없었어요. 완벽한 밀실이죠.”
“완벽한 밀실이라…” 하랑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한 반가움이자, 동시에 오만한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일단 들어가서 직접 확인해 봐야겠어.” 하랑은 문으로 다가섰다. 그는 잠시 문손잡이를 만져보고, 문틈을 유심히 살폈다.
“강력계 이반장님이 지금 현장 통제 중이세요. 섣불리 만지면… 안 돼요!” 슬비가 급히 그를 말리려 했지만, 하랑은 이미 문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봐, 강하랑! 자네는 대체 뭔데 함부로 현장에 들어서나?!” 안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강력계 이반장이었다. 그의 얼굴은 피곤함과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경찰의 비효율적인 수사 방식이 나를 부르는군요.” 하랑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의 시선은 이미 방 안을 훑고 있었다.
서재 안은 생각보다 간결했다. 중앙에는 거대한 참나무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었고, 벽면 가득 책장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고풍스러운 가구들과 값비싼 예술품들이 방을 채우고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은 한 남자의 싸늘한 시신 앞에서 의미를 잃었다.
박성철 회장이었다. 그는 책상 앞에 앉은 채 상체를 숙이고 있었다. 등에는 선명한 칼자국이 나 있었고, 책상 위에는 붉은 액체가 흥건하게 번져 있었다. 그의 눈은 형형하게 뜨여 있었고, 그 속에 담긴 것은 공포와 놀라움이었다.
하랑은 시신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가 시신 앞에서 보인 유일한 감정은 마치 정교한 기계장치를 해부하는 엔지니어의 그것과 비슷했다. 그의 시선은 시신을 넘어, 책상 위, 그리고 바닥으로 향했다.
“이 슬비 형사님.” 그가 나직이 불렀다.
“네, 네?!”
“여기 바닥에 깔린 이 고급스러운 양탄자 말이야. 혹시 제작 연도가 언제쯤인지 알아?”
슬비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지금 그걸 왜 물어요? 시신이나 먼저 살펴보는 게 우선 아닌가요?!”
“이게 다 연관이 있다니까. 형사님 눈에는 그저 낡은 양탄자로 보이겠지만, 내 눈에는 이 방의 모든 역사가 새겨진 중요한 단서로 보인다고.”
이반장이 혀를 차며 끼어들었다. “강하랑, 제발 좀 진지하게 임해라. 피해자는 등 뒤에서 칼에 찔렸어. 정황상 피해자는 살해당할 때까지 범인이 누군지 몰랐을 가능성이 높아. 그리고 이 완벽한 밀실은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아무도 모르고!”
하랑은 피식 웃었다. 그가 웃는 순간, 슬비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그가 또 다른 기괴한 추론을 내놓을 것이라는 직감 때문이었다.
“글쎄요. 정말 아무도 몰랐을까요?” 하랑은 박 회장의 시신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은 여전히 크게 뜨여 있었고, 그 속에 담긴 것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었다.
“이 회장님 눈빛 말이야. 저건 마치… 아주 가까운 사람을 보고 놀란 듯한 표정인데.”
하랑은 다시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굳게 닫힌 창문으로 다가섰다. 그는 창문 유리에 손가락을 대고 톡톡 두드려 보더니,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이 슬비 형사님.”
“네? 또 뭔데요?”
“여기, 이 창문 말이야. 이 창문은… 닫힌 적이 없는 것 같아.”
그 말을 끝으로, 하랑은 고개를 돌려 이슬비 형사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장난기 가득하면서도 형용할 수 없는 진지함이 깃들어 있었다. 슬비는 그 눈빛 속에서 그가 이미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기이한 확신을 느꼈다. 이 밤의 문은 과연 누구에게 닫히지 않았던 것일까. 그리고 그 열린 문으로 들어선 그림자의 정체는? 이슬비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