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준은 낡은 운동화를 끌며 밤거리를 걸었다. 네온사인 불빛이 스며들지 못하는 오래된 골목은 낮보다 더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족히 삼십 년은 넘었을 법한 붉은 벽돌 건물들 사이로 좁게 이어진 길은 늘 축축했고, 어딘가에서 풍겨오는 꿉꿉한 냄새가 그의 코끝을 맴돌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고단한 하루였다. 오전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오후에는 카페 아르바이트. 스물다섯, 졸업을 유예한 채 어정쩡하게 부유하는 삶은 언제나 피로를 동반했다.
“젠장, 월세는 또 언제냐.”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주머니 속에서 만져지는 휴대폰은 온종일 텅 비어 있었고, 유일한 위안이라면 어둠 속에 숨겨진 낡은 편의점 간판의 불빛뿐이었다. 으레 그랬듯 지름길을 택해 골목 안쪽으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익숙한 풍경이 아니었다. 분명 이곳에 있어야 할 낡은 목욕탕 건물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거대한 철제 펜스가 쳐져 있었다. ‘재개발 사업’이라는 큼지막한 현수막이 펄럭였다.
“벌써 시작했나?”
그는 혀를 찼다. 어차피 곧 사라질 동네이긴 했다. 오래된 건물들은 먼지 쌓인 과거처럼 힘없이 서 있다가 하나둘씩 스러져갔다. 문득 호기심이 발동했다. 펜스 틈새로 안을 들여다보니, 거대한 포클레인이 건물을 부수고 지나간 흔적이 역력했다. 붉은 벽돌과 콘크리트 조각들이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었고, 그 사이로 어두운 잔해들이 쌓여 있었다. 위험해 보여도, 어쩐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 그를 잡아끄는 듯한, 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민준은 작은 틈새로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흙먼지와 폐자재 냄새가 뒤섞인 공기가 탁했다. 삐걱거리는 발소리가 밤의 정적을 깨뜨렸다.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걷던 그의 눈에, 희미한 달빛 아래서 번쩍이는 무언가가 들어왔다. 유리 조각인가? 아니, 금속 조각치고는 너무 어두웠다.
그는 몸을 숙여 그것을 집어 들었다. 손바닥에 닿는 순간, 차가운 감각이 손가락을 휘감았다. 손에 쥐어진 것은 검은색 조약돌 같은 형태의 돌이었다. 대략 성인 남자의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였다. 매끄럽지 않고 거친 표면 위에는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한 문양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아주 오랜 시간 공들여 조각한 것처럼 정교했지만, 그 선들은 너무나 고대적이어서 어떤 문자인지, 어떤 상징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손끝으로 문양을 따라 쓸어보니 묘한 울림이 느껴지는 듯했다.
“이게 뭐지?”
별다른 생각 없이 주머니에 넣었다. 어차피 아무도 찾지 않을 폐허 속에서 발견한, 그저 좀 특이한 돌멩이일 뿐이었다. 이런 작은 물건 하나쯤은 가져가도 괜찮겠지. 어쩐지 모르게 이 돌을 이곳에 두고 가는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여전히 고단했지만, 왠지 모르게 주머니 속의 돌멩이가 신경 쓰였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돌멩이가 허벅지에 부딪히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막상 집에 도착해서는 피곤함에 이끌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퀘퀘한 방 공기, 닳아빠진 이불, 삐걱거리는 침대 프레임. 그의 삶은 늘 이런 식이었다. 특별할 것 없는, 그저 흘러가는 대로.
잠이 오지 않았다. 오늘 발견한 돌멩이가 생각났다. 그는 상체를 일으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차갑고 단단한 감촉. 다시 꺼내보니 방 안의 어둠 속에서도 돌멩이는 미묘한 광택을 내고 있었다. 천천히 손가락으로 문양을 쓸어보니, 아까와는 다른 미약한 진동이 느껴지는 듯했다.
‘설마.’
피곤한 정신 탓에 헛것이 느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돌멩이를 꽉 쥐었다. 그 순간이었다.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전기가 통하는 듯한 짜릿한 감각이 훑고 지나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손에 쥔 돌멩이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눈을 감을 새도 없이 그의 시야는 강렬한 빛으로 가득 찼고, 동시에 머릿속으로 기묘한 영상이 쏟아져 들어왔다.
수천 년은 되어 보이는 거대한 돌기둥들이 늘어선 황량한 평원. 하늘에는 거대한 혜성이 붉은 꼬리를 그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고, 어떤 이들은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절규했다. 이 모든 혼란의 중심에, 방금 그가 쥐고 있던 것과 같은 문양이 새겨진 거대한 제단이 솟아 있었다. 제단 위에서는 낯선 옷차림의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언어로 주문을 외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하늘로 솟구치며 혜성을 향해 뻗어나갔다. 엄청난 에너지의 충돌. 공간 자체가 일그러지는 듯한 굉음.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덮쳐왔다가, 마치 꿈이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민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흥건했다. 방은 여전히 어둠 속에 잠겨 있었고, 익숙한 퀘퀘한 공기가 코를 찔렀다. 손에 쥔 돌멩이는 아무런 빛도 내지 않고 평범한 검은 돌멩이처럼 놓여 있었다.
“뭐… 뭐야, 방금…?”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올 듯 뛰었다. 분명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환각? 아니, 너무나도 생생했다. 황량한 평원, 붉은 혜성, 알 수 없는 주문. 그 모든 것이 오감을 자극하는 듯 현실적이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돌멩이를 내려다보았다. 불과 몇 분 전까지는 그저 희귀한 기념품쯤으로 여겼던 물건.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이것은… 뭔가 다른 것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너무나도 거대한 힘의 조각.
어둠 속에서 돌멩이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었다. 하지만 민준의 눈에는 더 이상 평범한 돌멩이로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잠든 거인의 심장처럼, 미약하게 고동치고 있는 듯했다. 그의 심장도 그에 맞춰 격렬하게 뛰었다.
그의 지루하고 평범했던 일상은, 어둠 속에서 발견한 작은 돌멩이 하나로 인해 송두리째 뒤바뀔 참이었다. 잠 못 이루는 밤이 시작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