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1: 첫 만남은 원래 이런 식이지**
대회장은 웅장했다. 황금빛 비단이 휘날리고, 오색 찬란한 깃발들이 바람에 장엄하게 춤을 추는 이곳은, 3년에 한 번 열리는 천하운명결정전의 서막을 알리는 무대였다. ‘운명결정전’이라는 거창한 이름답게, 대회장 한가운데 높이 솟은 거대한 비석에는 ‘천하의 운명은 승자의 손에 달려있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무림의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각자의 문파를 대표하여 속속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저마다 위엄 있는 표정으로, 혹은 비장한 눈빛으로, 이 세기의 대결에 임하려는 기세를 뿜어냈다.
“크흠, 크흠. 나 강휘가 드디어 이 자리에 발을 들이다니!”
나는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작게 헛기침을 했다. 감동에 겨운 듯 하늘을 올려다보려 했지만, 왠지 모르게 발이 꼬였다. 휘청! 어딘가 허술한 내 첫 등장에, 주변의 몇몇 젊은 고수들이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에이, 상관없다! 이 정도는 애교다!
내 이름은 강휘. 소싯적, 한때는 무림의 한 줄기 빛이었다는 ‘하늘바람 문파’의 넷째 도제다. 지금은? 음, 그냥 ‘하늘바람 문파’다. 빛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문파 건물 지붕은 구멍이 숭숭 뚫려 비가 오면 비가 오고,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자연 친화적인 상태다. 식량 창고는 비어있은 지 오래고, 사부님은 매일 술만 드신다. 딱히 무언가를 가르쳐주지도 않는다. 그런데 왜 내가 여기에 왔냐고?
“크흠, 그녀를 위해서라면 이 한 몸 불사를 수도 있지.”
나는 손가락으로 이마를 톡톡 두드리며 고뇌하는 척했다. 그래, 사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사랑. 그것도 짝사랑. 작년, 우연히 들른 연화루에서 본 그 아름다운 여인, ‘청월검문’의 소사매 ‘연화’ 아가씨를 보기 위해서다. 그녀의 얼음장 같은 미모와 비수 같은 눈빛에 나는 첫눈에 반해버렸다. 문제는, 그녀는 나를 모른다는 것. 아니, 어쩌면 무림의 모든 사람이 나를 모를지도 모른다는 것.
“강휘! 너 혼자만 그렇게 심각하면 뭐 하냐! 누가 알아주기라도 해?”
뒤에서 들려오는 구박 섞인 목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 돌아봤다. 우리 문파의 막내 도제, ‘해맑’이다. 해맑은 이름처럼 얼굴은 해맑지만, 언제나 팩트 폭격을 날리는 잔인한(?) 아이다. 등에는 거대한 검 대신 죽검을 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크흠, 해맑아! 천하운명결정전은 무림의 모든 이목이 집중되는 자리다. 내 비록 이름 없는 문파의 이름 없는 도제지만, 여기서 한 번쯤 크게 사고를 쳐야 그녀의 눈에 띌 수 있지 않겠느냐?”
“사고는 이미 방금 네가 비틀거릴 때 치지 않았나? 그리고 이름 없는 문파의 이름 없는 도제가 무슨 짓을 한다고 청월검문의 소사매가 널 보겠냐?”
해맑은 잔인하게 팩트를 날리고는 품에서 말린 육포를 꺼내 질겅질겅 씹었다. 저 녀석은 어째서 저렇게 침착할까.
“쳇, 넌 사랑을 모른다. 사랑은 기적을 부르는 법! 봐라, 저기 저 기세등등한 자들도 다 나중엔 내 발밑에 무릎 꿇게 될 거야!”
나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외쳤다. 비록 내 주먹은 아직 연약하고, 내 검술은 사부님 몰래 독학한 것이 전부이지만, 내게는 불굴의 의지… 아니, 연화를 향한 불타는 마음이 있었다.
그때였다. 대회장 입구 쪽에서 웅성거림이 커지더니, 일순간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새하얀 설원 위를 걷는 듯한 청아한 발걸음. 얼음 조각처럼 투명한 미모. 그리고 그 차가운 눈빛!
“연화…!”
나는 무의식적으로 입술에서 그 이름을 읊조렸다. 흰색과 푸른색이 조화된 절제된 복장, 허리에 찬 은백색 검집의 검이 햇빛에 번뜩였다. 그녀의 뒤로는 청월검문의 장문인과 몇몇 고수들이 따르고 있었다. 그야말로 등장만으로 주변을 얼어붙게 만드는 듯한 위엄이었다.
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 저 아름다운 여인을 향한 내 마음은 변함없었다. 아니, 더욱 불타올랐다.
“강휘! 눈 돌아갔냐? 아가씨 침 흘리겠다!” 해맑이 옆구리를 쿡 찌르며 경고했다.
“조용히 해라! 이것은 순수한 사랑의 눈빛이다! 어서 내 기합 소리를 들어라!”
나는 연화가 지나가는 길목을 향해 다가가며, 온몸의 기운을 끌어모았다. 지금이야말로 나의 존재를 그녀에게 각인시킬 절호의 기회다! 멋진 자세로 기합을 내지르면, 틀림없이 그녀가 나를 돌아볼 것이다!
“하아아아아아아압!!!”
나는 목젖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렀다. 동시에 한쪽 다리를 번쩍 들어 올리며, 평소 사부님 몰래 연습하던 비장의 ‘하늘바람 발차기’를 시전하려 했다. 하지만 너무 많은 기를 끌어모은 탓일까. 아니면 연화 아가씨의 미모에 정신이 팔린 탓일까.
콰당!
내 발차기는 허공을 가르지 못하고, 오히려 내 몸을 지탱하던 나머지 한 발의 균형을 잃게 만들었다. 젠장! 나의 화려한 발차기는 결국 대회장 바닥과의 격렬한 입맞춤으로 끝이 났다. 먼지가 푹 하고 일어났다.
주변에서는 다시금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그중에는 해맑의 기특한(?) 웃음소리도 섞여 있었다. 나는 아픔보다 쪽팔림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황급히 고개를 들어 연화 아가씨 쪽을 보았다.
그녀는 정확히 내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있었다. 차가운 얼음 같은 눈빛이 정확히 바닥에 엎어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심한 듯, 그러나 조금의 미세한 움직임도 놓치지 않을 듯한 깊은 눈빛이었다.
“…….”
정적. 주변의 모든 소리가 사라진 것 같았다. 연화 아가씨의 눈동자에는 아무런 감정도 읽히지 않았다. 그저, 이 바닥에 엎어져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를 흘리는 초라한 나만 있을 뿐이었다.
“음…”
그녀의 입술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뭐지? 설마, 나를 걱정하는 건가? 아니면 혹시… 괜찮냐고 물어봐 줄 셈인가? 망상 속에서 나는 연화가 내게 손을 내밀어 주는 장면을 상상했다.
“…쓰레기 좀 치워라.”
연화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차갑고, 짧고, 너무나도 명확한 지시였다. 마치 눈앞의 물건을 치우라는 듯한 말투. 그리고 그녀는 시선을 거두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청월검문의 고수들 역시 아무렇지 않게 그녀를 뒤따랐다.
나는 그 자리에 엎어진 채 굳어버렸다. 쓰레기라니! 나는 무림의 미래를 짊어진… 아, 아니, 적어도 하늘바람 문파의 미래를 짊어진 강휘라고!
“하하하하하! 쓰레기래! 쓰레기!”
해맑은 배를 잡고 웃느라 바빴다. 저 녀석은 나중에 벌칙으로 육포 한 달 금지다.
쪽팔림과 분노가 뒤섞인 감정에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동시에, 왠지 모르게 불타오르는 오기가 생겼다. 그래, 쓰레기라고? 좋다! 이 쓰레기가 천하운명결정전에서 우승해서, 그녀의 눈앞에 번쩍 나타나 주겠어! 그리고 그때, 나는 그녀에게 당당하게 말할 것이다. ‘당신이 버린 쓰레기가 이렇게 멋지게 돌아왔다고!’
나는 비장하게 일어섰다. 옷에 묻은 먼지를 탁탁 털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다. 나의 로맨스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운명을 건 발차기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해맑아, 봤지? 나의 불굴의 의지를!”
나는 비장한 표정으로 외쳤다. 해맑은 여전히 육포를 씹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뿐이었다.
“너는 그냥 똥고집이야, 형.”
망할 해맑!
하지만 내 마음은 꺾이지 않았다. 연화 아가씨, 기다려라! 이 강휘가 반드시 당신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주고 말 테니! 첫 만남은 원래 이런 식이지! 앞으로가 진짜 승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