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전생 (Isekai)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어둠이 휘감은 지하 미궁의 심장부, 붉은 마력이 번득이는 수정 기둥 아래 이진우가 서 있었다. 방금 전까지 격렬했던 전투의 잔흔이 공간에 가득했다. 거대한 석상 괴물의 부서진 파편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고, 그의 발밑에는 검붉은 피 웅덩이가 스며들고 있었다. 한때 감히 침범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감히 존재하리라고 상상조차 못 했던 미지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이진우는 손에 든 검을 내려다보았다. 날카로운 검날에 희미하게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차가울 정도로 무심한 눈동자, 굳게 다문 입술,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지옥 같은 갈증.

“크윽….”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몸의 모든 근육이 비명을 질렀지만, 진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고통이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재확인시켜주는 표식처럼 느껴졌다. 손목의 ‘각인’이 희미하게 빛나며 승리의 대가를 알렸다.

[고유 스킬 ‘어둠 포식자’가 레벨 업했습니다.]
[잠재된 힘의 봉인이 일부 해제됩니다.]
[새로운 특성 ‘심연의 추적자’가 활성화됩니다.]

진우는 눈을 감았다. ‘심연의 추적자’. 이 능력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던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리고, 얼마나 많은 증오를 양분 삼아 여기까지 왔던가. 이제는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박강민.”

나직이 읊조린 이름에 공기가 얼어붙는 듯했다. 그 이름을 입에 담을 때마다, 진우의 뇌리에는 선명한 영상이 떠올랐다. 믿음과 배신이 교차하던 그 날의 기억. 환하게 웃으며 그의 등을 감싸 안던 친구의 얼굴, 그리고 그 웃음 뒤에 숨겨진 칼날.

* * *

“진우야, 믿어줘. 넌 내 유일한 친구잖아. 이 위기를 함께 극복해야지!”

박강민은 그렇게 말했었다. 그의 눈은 진심으로 가득 차 보였고, 그의 목소리는 강렬한 설득력을 지녔었다. 진우는 강민의 말에 속았다. 아니, 정확히는 속아 넘어갔다기보다는, 믿고 싶었다. 그를 의심하는 일 자체가 죄악처럼 느껴질 만큼, 강민은 그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였다.

위험한 던전의 최심부. 숨 막히는 마력의 압박 속에, 진우는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 미궁의 핵을 붙잡았다. 온몸의 마나가 뒤틀리고, 살이 찢어지는 고통이 밀려왔다. 그때 강민이 뒤에서 다가왔다. 진우는 그가 자신을 격려해주리라 믿었다. 함께 이 위업을 달성한 기쁨을 나누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들려온 것은 달콤한 속삭임이 아니었다.

“미안하다, 진우야.”

그 목소리는 너무나 차분하고, 너무나 냉정했다. 이어 등 뒤에서 느껴진 것은, 심장을 꿰뚫는듯한 날카로운 고통이었다. 자신의 모든 마나를 바쳐 핵을 붙들고 있던 무방비 상태의 진우는, 강민이 휘두른 칼에 그대로 관통당했다. 온몸의 힘이 스르르 빠져나갔다. 피가 울컥 솟구치며 입을 타고 흘러내렸다. 고통보다 더 큰 충격이 진우의 영혼을 강타했다.

“강… 민… 아….”

애써 그를 돌아본 진우의 눈에 비친 것은, 탐욕스러운 미소를 띠고 있는 강민의 얼굴이었다. 그의 눈은 이미 자신의 것으로 만든 미궁의 핵을 향해 번득이고 있었다.

“네가 없으면 내가 이 모든 걸 차지할 수 있어. 모든 영광은 나의 것이 되겠지. 넌… 그냥 버려진 돌멩이일 뿐이야. 미안하지만, 재능 없는 네가 그걸 이해할 필요는 없어.”

강민은 진우의 몸에서 칼을 뽑아냈다. 진우는 미궁의 핵과 함께 심연 속으로 추락했다. 차가운 어둠이 그를 집어삼켰다. 죽음보다 더 깊은 배신의 늪에서, 그는 마지막까지 절규했다. ‘강민아, 어떻게….’

하지만 어둠 속에서, 그는 끝내 죽지 않았다. 미궁의 핵이 그를 죽음의 끝에서 붙잡아 두었고, 알 수 없는 힘이 그의 영혼을 새로운 육체에 새겨 넣었다. 이세계. 과거의 그는 흔적조차 남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그에게 남은 것은 단 하나, 지옥 같은 복수심뿐이었다.

* * *

“심연의 추적자….”

진우의 눈이 번쩍 뜨였다. 푸른 섬광이 그의 눈동자를 스쳤다. 과거의 기억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의 존재 이유가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되새길 필요도 없었다. 그는 이제 추적자였다. 심연의 끝까지, 지옥의 문턱까지라도 쫓아가 기어코 대가를 받아낼 추적자.

그는 손을 들어 붉은 수정 기둥을 만졌다. 차가운 기운이 손끝을 타고 흘렀다. 이 수정은 이 미궁의 심장이자, 강민이 과거에 탐냈던 것과 동일한 종류의 마나 핵이었다. 하지만 진우는 그것을 파괴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나를 흘려보내 흡수했다. 거대한 수정 기둥에서 붉은 마력이 물결치며 진우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미궁의 심장 ‘마나 핵’을 흡수했습니다.]
[잠재된 힘이 각성합니다.]
[고유 스킬 ‘어둠 포식자’가 진화합니다.]
[스킬 ‘공허의 계약’이 발동됩니다.]
[대상: 박강민. 존재 각인 완료.]

“흐음….”

진우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걸렸다. ‘공허의 계약’. 이 스킬은 자신을 배신한 자의 영혼과 깊이 연결되어, 그가 어디에 있든,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든 추적할 수 있게 해주는 궁극의 복수 스킬이었다. 마침내 모든 준비가 끝났다.

저 멀리, 이세계의 번화한 수도. 화려한 궁정에서 귀족들의 환대를 받으며, 영웅이라 칭송받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박강민이었다. 그는 진우의 시신을 밟고 올라선 그 자리에서, 영광과 부를 한껏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었다.

진우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발걸음을 돌렸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부서진 석상과 핏자국만이 남았다. 그의 그림자는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강민아.”

진우의 목소리는 지하 미궁의 끝없는 어둠 속으로 울려 퍼졌다.

“기다려.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되찾아갈 거야. 네 영광, 네 웃음, 네 삶….”

그의 발소리는 점차 멀어져갔다. 맹렬한 복수심에 타오르는 그의 심장은, 이세계의 심장부로 향하는 새로운 여정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피로 물들 핏빛 복수의 서막이, 이제 막 열리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