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펑크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챕터 1: 홀로그램의 밀실

신서울의 밤은 언제나 혼돈의 미학을 자랑했다. 거대한 네온사인은 시야를 압도했고, 저마다의 빛을 뿜어내는 비행체들이 무지개처럼 하늘을 가로질렀다. 지상에는 오염된 공기를 뚫고 솟아오른 마천루들이 마치 거대한 비석처럼 늘어서 있었다. 그 아래, 낡고 좁은 골목마다 인공지능이 서빙하는 싸구려 국수집과 홀로그램 유흥업소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그 사이를 수많은 인파가 헤쳐나가고 있었다. 삶의 무게에 짓눌린 이들의 땀과 좌절이 도시의 모든 풍경에 덧씌워진 듯했다.

류하진은 자신의 낡은 오피스텔 창밖으로 펼쳐진 그 광경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쏟아지는 도시의 소음과 빛은 그의 작은 공간 안으로 침투하지 못했다. 방은 미니멀리즘과 무질서의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한쪽 벽면에는 수십 개의 모니터가 연결된 워크스테이션이 복잡한 데이터를 쉴 새 없이 띄우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낡은 종이책들이 켜켜이 쌓인 서가가 자리했다. 오래된 먼지 냄새와 커피 향이 희미하게 뒤섞인 공기. 이것이 그가 도시의 광기에서 벗어나 숨 쉬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고서적, 19세기 말에 인쇄된 아서 코난 도일의 단편집을 뒤적이고 있었다. 셜록 홈즈가 활약하던 시대의 추리 기법은 현대의 첨단 과학수사에 비하면 원시적이었다. 하지만 하진은 그 속에서 인간 본연의 통찰과 논리의 아름다움을 찾곤 했다. 삑, 삑, 삑— 테이블 위 개인 통신 단말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의 심장 박동처럼 규칙적이고 집요한 경고음이었다.

하진은 책을 덮고 단말기를 집어 들었다. 발신자는 강경감. 신서울 수사국에서도 가장 까다롭고 고집 센 인물로 정평이 나 있었다.

“류하진 씨, 드디어 받으시는군요. 연락이 안 돼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강경감의 목소리에는 초조함과 짜증이 뒤섞여 있었다.
하진은 이어폰을 귀에 꽂으며 나른하게 답했다.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 시간에 당신에게서 연락이 왔다는 건, 누군가 죽었다는 뜻이겠군요.”
“젠장, 농담할 상황이 아닙니다. 김태선 회장입니다.”

하진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김태선. 미라지 코프의 수장. 신서울 경제의 심장이자, 인공지능과 홀로그램 기술의 선구자. 한마디로 ‘건드리면 도시가 휘청이는’ 거물이었다.

“어디서요?” 하진의 목소리에 아주 미세한 긴장이 섞였다.
“미라지 코프 본사, 그의 개인 집무실입니다. 가장 높은 층, 펜트하우스 스카이 오피스죠. 문제는… 완벽한 밀실이라는 겁니다.” 강경감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낮아졌다. “외부 침입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회장님은… 죽어있었습니다.”
“흥미롭군요.” 하진은 작게 중얼거렸다. 고리타분한 살인 사건은 지루했지만, 밀실이라는 조건은 언제나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지금 당장 와주십시오. 이미 현장을 통제했지만… 우리 수사국에선 답이 안 나옵니다.”
“알겠습니다.”

하진은 단말기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범한 검은색 코트 차림이었지만, 그 안에는 그의 모든 감각을 증폭시키는 특수 장비들이 숨겨져 있었다. 그는 코트 깃을 바로잡으며 창밖의 어지러운 도시를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도시의 심장이 멈춘 듯한 거물의 죽음. 그리고 완벽한 밀실 살인. 재미있는 밤이 될 것 같았다.

***

미라지 코프의 본사는 지상 300층 높이까지 솟아 있었다. 건물 전체를 감싸는 특수 광학 패널은 밤하늘의 네온사인을 흡수하고 반사하며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빛났다. 하진의 자율주행 택시는 건물 최상층의 전용 헬리패드에 착륙했다. 전용 엘리베이터는 단 한 번의 정지도 없이 곧장 김태선 회장의 집무실 층으로 그를 데려다주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차가운 기운과 함께 수십 명의 수사국 요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얼굴에는 피곤함과 혼란이 역력했다. 현장 중앙에는 강경감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그는 하진을 보자마자 굳은 얼굴로 다가왔다.

“늦었습니다, 류하진 씨.”
“길이 막혔습니다. 비행체가 너무 많더군요.” 하진은 대수롭지 않게 답하며, 주변에 설치된 수사 장비들을 스캔하듯 훑어보았다.
“변명은 됐고, 이쪽입니다.” 강경감은 집무실 문을 가리켰다.

김태선 회장의 집무실은 그야말로 요새였다. 두께 50cm의 강화 복합소재로 만들어진 문은 외부 충격을 완벽히 차단했고, 고성능 생체 인식 장치와 홍채 스캐너가 문고리 옆에 박혀 있었다. 문은 육안으로 보기에도 완벽하게 잠겨 있었다. 강경감은 한숨을 쉬며 설명을 이어갔다.

“새벽 3시 27분, 회장님의 경호팀이 정기 순찰 중 이상을 감지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회장님 비서가 항상 대기하고 있는데, 오늘은 아무도 없었거든요. 비상 프로토콜에 따라 강제로 문을 열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내부에 완벽히 잠금 처리가 되어 있었던 겁니다.”
“결국엔 어떻게 열었죠?” 하진이 물었다.
“본사 보안팀의 최상위 권한으로 겨우 잠금장치를 해제했습니다. 해제 후에도 문이 열리지 않아 강제로 부쉈습니다. 보시다시피.” 강경감은 문 한쪽에 생긴 억지로 벌린 듯한 틈을 가리켰다.

하진은 손을 들어 제지하며 조용히 집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공간은 넓고 세련되었지만, 죽음의 기운이 짙게 깔려 있었다. 방 한가운데, 최고급 인체 공학 의자에 김태선 회장이 앉아 있었다. 그의 몸은 미동도 없이 축 늘어져 있었고, 얼굴은 회색빛으로 변해 있었다. 외상은 없었다. 독살? 혹은 심장마비?

수사관들이 가져온 첨단 스캐너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방의 모든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었다. 홀로그램 프로젝터는 이미 사망 시점의 방 내부를 재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진은 그런 장치들에 의존하기보다, 자신의 오감을 통해 공간을 탐색했다.

“창문은 특수 방탄 유리로 되어 있고, 내부에서 완벽히 봉쇄되어 있습니다. 환기구도 성인이 통과할 수 없는 크기이고요. 모든 통신망과 외부 연결이 끊어진 완벽한 밀실입니다.” 강경감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하진은 의자에 앉아있는 김태선 회장의 시신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시신을 넘어, 그 주변의 미세한 공기의 흐름, 빛의 반사, 그리고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흔적까지 훑어 내려갔다.

“재미있네요.” 하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뭐가 말입니까?” 강경감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이 방은 모든 외부 침입을 완벽하게 차단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물리적인 침입은 물론, 무선 신호나 에너지 간섭조차도. 일종의 ‘블랙 홀’ 같은 공간이죠.”
하진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방 전체를 다시 한번 스캔했다. 그의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잡힌 듯했다. 그는 발걸음을 옮겨 방 한쪽 벽에 설치된 거대한 홀로그램 디스플레이 앞에 섰다. 현재는 꺼져 있었지만, 분명 김태선 회장이 즐겨 사용했을 법한 장치였다.

“하지만 이 완벽한 블랙 홀에도… 예외는 있었습니다.” 하진이 디스플레이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무슨 소리입니까?” 강경감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진은 강경감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이 방은 완벽한 밀실이 아닙니다. 단지… 완벽하게 위장된 열린 공간일 뿐이죠. 누군가 이 방 안으로 들어왔고, 김태선 회장을 죽인 뒤… 아주 자연스럽게 이 공간을 빠져나갔습니다. 마치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죠.”
그의 손가락은 홀로그램 디스플레이의 꺼진 화면 위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아주 미세하게, 손가락 끝에 닿았다 사라지는 이질적인 에너지 파동을 감지했다.

“환상이네요. 완벽한…” 하진이 읊조렸다. “누군가 아주 정교하게 이 밀실을 ‘홀로그램’으로 속인 겁니다.”
강경감의 얼굴이 혼란으로 물들었다. “홀로그램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이 방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착각이라는 겁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죠.”
하진은 김태선 회장의 시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시신은 여전히 의자에 앉아있었고, 그 표정에는 죽음의 고통보다는 깊은 배신감이 서려 있는 듯했다.

“자, 이제 누가 이 완벽한 환상 속에서 춤을 추었는지 찾아볼까요?” 하진의 눈빛이 비로소 섬뜩할 정도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는 이 도시의 어둠 속에서 가장 냉철하고 가장 뛰어난 사냥꾼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의 앞에 놓인 것은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도시 전체를 뒤흔들 거대한 음모의 서막일지도 모르는, 완벽한 홀로그램 밀실 살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