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무너진 잔해 속에서**
숨이 턱 막혔다. 콧속 가득 눅진한 흙먼지와 곰팡이, 그리고 알 수 없는 쇠 비린내가 차올랐다. 민준은 부서진 버스 차체의 녹슨 잔해 뒤에 몸을 납작하게 웅크렸다. 등 뒤로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내린 고층 빌딩의 앙상한 철근들이 하늘을 찔렀다. 잿빛 하늘은 언제나처럼 탁했고, 그 아래의 세상은 죽어 있었다.
“젠장… 여기서 몇 시간째야.”
마른 목울대가 따끔거렸다. 어제 겨우 찾아낸 샘물은 한 모금으로 버텨야 할 만큼 귀했고, 그의 입술은 이미 거칠게 터져 있었다. 목표는 저기, 십 년 전이라면 서울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을 흔하디흔한 편의점이었다. 건물의 절반이 기울어져 기적처럼 버티고 있는 그곳에, 어쩌면 아직 먹을 만한 통조림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
낡고 닳은 시계는 아무런 시간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멈춰버린 과거처럼, 민준의 손목에 묶여 있을 뿐이었다.
*삑, 삑, 삑—.*
고작 천 원짜리 삼각김밥 하나를 사기 위해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가던 기억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컵라면, 시원한 캔 커피. 당연했던 일상의 풍경들이 이제는 아득한 꿈결 같았다. 그 시절의 자신에게 “미래는 이렇게 될 거야.”라고 말해줬다면, 과연 믿었을까. 아니, 미친놈 취급을 받았겠지.
이곳에 떨어진 지 벌써 3년. 민준은 더 이상 과거의 평범한 회사원이 아니었다. 발밑의 부스러지는 아스팔트, 코끝을 스치는 썩은 내, 멀리서 들려오는 기분 나쁜 짐승의 울음소리까지, 온몸의 감각이 곤두서 있었다.
“철피 거미… 조심해야 해.”
이 지역은 ‘철피 거미’의 서식지로 악명 높았다. 몸에 금속 갑피를 두른 거대한 거미들은 쇠를 먹고 자랐고, 그들의 거미줄은 강철보다 질겼다. 한때 문명의 상징이던 빌딩의 잔해들은 이제 그들의 거대한 먹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민준은 허리춤에 찬, 녹슨 철근을 날카롭게 갈아 만든 창을 고쳐 잡았다. 주머니 속의 작은 손전등을 켜자, 좁은 빛줄기가 무너진 잔해들을 훑었다. 기척은 없었다. 하지만 이 고요함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신호였다.
무너진 담벼락과 폐차들을 방패 삼아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편의점 건물은 위태롭게 기울어져 있었지만, 간판의 색 바랜 로고는 여전히 희미하게나마 ’24시’라는 글자를 보여주고 있었다. 놈들의 거미줄이 외벽을 온통 휘감고 있었다. 희뿌연 거미줄은 마치 끈적한 안개처럼 보였다.
“젠장, 예상보다 더 심한데.”
정면 돌파는 불가능했다. 민준은 건물의 옆면으로 돌아가, 창문이 깨져 나간 2층으로 향하는 낡은 비상계단을 발견했다.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딜 때마다 철제 계단이 삐걱거렸다. 녹슨 쇠 소리가 귀를 찢을 듯 울렸지만, 다행히 주변의 괴물들은 반응하지 않았다.
2층 창문을 넘어 건물 내부로 들어서자, 퀘퀘한 먼지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바닥에는 부서진 유리 조각과 건축 폐기물들이 뒹굴었다. 천장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꼴이었다. 민준은 조심스럽게 아래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찾았다. 그의 목표는 여전히 1층의 편의점 진열대였다.
계단을 한 칸 한 칸 내려갈 때마다 심장이 발소리에 맞춰 격렬하게 울렸다.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여덟 개의 눈동자가 언제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했다. 1층에 도착하자마자, 민준의 손전등이 비춘 곳은 처참하게 파괴된 진열대들이었다. 텅 빈 선반, 바닥에 뒹구는 포장지들. 희망이 사그라드는 순간이었다.
“빌어먹을…”
그런데 그 순간, 손전등이 스쳐 지나간 진열대 구석에서 희미한 빛이 반사되었다. 통조림이었다! 먼지가 수북하게 쌓였지만, 온전한 형태를 유지한 채 몇 개의 통조림이 플라스틱 바구니 안에 남아 있었다. 육류 통조림, 과일 통조림, 심지어 캔 커피까지!
민준은 황급히 통조림을 주워 담았다. 깡통이 부딪히는 찰그랑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쩌저적—!*
바로 그때였다. 등 뒤에서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민준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천장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뚝 떨어졌다. 민준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이제껏 본 철피 거미 중 가장 거대한 개체였다. 묵직한 강철 갑피는 조명에 반사되어 번쩍거렸고, 굵은 다리들은 날카로운 칼날 같았다. 여덟 개의 붉은 눈이 민준을 향해 노려보고 있었다.
“크윽…!”
거미는 거대한 앞다리를 들어 민준을 향해 내리찍었다. 민준은 재빨리 몸을 굴려 공격을 피했다. 콰앙! 거미의 다리가 바닥을 강타하며 진열대가 산산조각 났다.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고, 통조림 몇 개가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놓칠 수 없었다. 민준은 철근 창을 꽉 잡았다. 이 놈은 일반적인 철피 거미보다 훨씬 크고 빠르다. 정면승부는 무모하다. 약점을 찾아야 해. 민준은 거미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뒤로 물러섰다.
거미가 다시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끈적한 거미줄을 발사했다. 민준은 간발의 차이로 몸을 피했지만, 어깨에 거미줄 일부가 스쳤다. 마치 접착제처럼 들러붙는 끈끈한 액체에 민준은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젠장, 이거 너무 끈적하잖아!”
거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민준에게 덮쳐들었다. 민준은 철근 창을 힘껏 휘둘렀다. 챙! 강철 갑피에 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소용없다. 이 정도로는 흠집도 낼 수 없어.
순간, 민준의 눈에 거미의 복부 아랫부분이 들어왔다. 갑피가 비교적 얇고 약해 보이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곳을 노리려면 거미의 공격을 피하며 근접해야 했다. 위험했다.
“한 번뿐이야…!”
민준은 다시 한번 거미줄이 발사될 타이밍을 기다렸다. 거미가 몸을 뒤틀며 거미줄을 뿜어냈다. 그 짧은 순간, 민준은 온 힘을 다해 몸을 던졌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거미줄이 그의 옆구리를 스쳐 지나가며 살을 찢었다. 피가 솟구쳤지만, 민준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거미의 몸 아래로 파고들며 철근 창을 복부에 힘껏 찔러 넣었다.
*푸욱—! 쩌억—!*
금속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거미의 복부에서 검붉은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거미는 비명을 지르듯 몸을 뒤틀었고, 다리가 사방으로 허우적거렸다. 민준은 그 반동으로 튕겨져 나갔다.
거미는 격렬하게 발버둥 치다가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민준은 옆구리의 상처를 확인했다. 꽤 깊게 베였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터였다.
“하아… 하아… 망할 거미 새끼…”
겨우 한숨을 돌린 민준은 바닥에 굴러떨어진 통조림들을 다시 주워 담았다. 대부분 찌그러졌거나 내용물이 새어 나온 것들이었지만, 그나마 몇 개는 온전했다. 최소한 며칠은 버틸 수 있을 양이었다.
하지만 그때, 그의 시선이 거미가 쓰러진 곳, 진열대 사이의 틈새에 고정되었다. 거미줄에 휘감겨 있던 작은 물체가 눈에 띄었다. 손전등을 비추자, 그것은 낡고 거친 금속 조각처럼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표면에는 알 수 없는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고, 중앙에서는 희미하게 푸른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물건이었다. 낡은 기술의 잔해라기보다는, 마치 다른 시대의 유물 같았다. 민준은 조심스럽게 그것을 집어 들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과 함께, 손안에서 작은 고동이 느껴지는 듯했다.
밖에서는 이미 붉은빛 노을 대신, 탁한 흙먼지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거대한 모래폭풍이 몰려오고 있었다. 민준은 황급히 주워 담은 통조림과 정체불명의 금속 조각을 품에 넣었다.
이번에는 또 어디로 가야 할까. 새로운 위협이 닥쳐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이 이상한 물건은, 과연 그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 희미한 푸른빛이 잿빛 황혼 속에서 깜빡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