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독립적인 단편 소설

도시의 심장은 멎은 지 오래였다. 핏물과 재가 뒤섞인 아스팔트 위를 걷는 생존자들의 발소리는 메마른 낙엽처럼 바스락거렸다. 살아남은 자들이 모여든 곳은 옛 도서관을 개조한 요새였다. 두꺼운 강철 문과 창문을 막은 철판은 망자들의 울음소리를 희미하게 걸러냈지만, 그 안에 도사린 인간의 본성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어느 날 아침, 모두의 얼굴에 공포가 드리워졌다. 보급품 창고였다. 그곳은 지하 1층 깊숙이 자리한, 두꺼운 강철 문으로 굳게 닫힌 요새 속 요새였다. 문은 외부에서 잠그는 큼지막한 자물쇠와 내부에서 잠그는 쇠로 된 빗장으로 이중 잠금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아침, 보급 담당 김민수가 그곳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문을 부쉈을 때, 빗장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외부 자물쇠는… 이렇게 열쇠가 안에서 굴러 나왔습니다.”

강대장, 요새의 책임자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의 주름진 얼굴에는 망자들의 위협보다 더 깊은 절망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빗장이 쳐진 문틈으로 시선을 던졌다. 이름은 서재혁. 사람들은 나를 탐정이라 불렀다. 망자들이 거리를 점령한 후, 추리 소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일들이 현실이 되었고, 나는 그 현실 속에서 어정쩡하게 살아남은 유일한 ‘탐정’이었다. 굶주림과 피로에 지쳐 비쩍 마른 몸뚱이지만, 내 눈빛은 여전히 날카롭게 빛났다.

“사건 현장을 보시겠습니까, 탐정님?” 강대장이 물었다.

“아니요, 먼저 설명을 듣죠. 시신은 건드렸습니까?”

“최대한 안 건드렸습니다. 확인만 했어요. 민수 씨 가슴에 식칼이 박혀 있었습니다.”

“식칼이요?”

“네. 주방에서 쓰는 것 같았습니다. 저희 요새에서 유통되는 표준 식칼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피해자는 보급 담당 김민수. 잠금장치는요? 다시 정확하게 설명해 주시죠.”

“창고 문은 두껍고 튼튼한 강철 문입니다. 밖에서는 저희가 걸어 잠그는 쇠 자물쇠가 있고, 안쪽에는 이렇게 손으로 밀어 잠그는 굵은 빗장이 있습니다. 어제저녁, 마지막으로 민수 씨가 창고를 정리하고 나오면서 자물쇠를 걸었고, 열쇠는 언제나처럼 제게 맡겼습니다.”

강대장은 허리춤에서 낡은 가죽 주머니를 꺼내 보였다. 그 안에는 서너 개의 열쇠가 짤랑거렸다.

“이게 보급품 창고 열쇠입니다. 제가 밤새도록 보관하고 있었고, 아무도 만지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순찰조가 민수 씨가 창고 문에 기대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고,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자 이상하게 여겨 제게 보고했습니다. 제가 직접 열쇠로 외부 자물쇠를 열고 들어갔습니다. 문을 여는 순간… 빗장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민수 씨는 칼에 찔린 채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럼 열쇠가 안에서 나왔다는 건요?”

“제가 외부 자물쇠를 따고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을 때,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겁니다. 강철 문이 안쪽으로 스르륵 열리면서 열쇠가 굴러 나온 것 같아요.”

나는 눈을 감고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봤다.
외부 자물쇠는 강대장이 가지고 있었다.
내부 빗장은 안에서 잠겨 있었다.
외부 자물쇠의 열쇠가 내부에서 발견되었다.
이건 모순이었다. 외부 자물쇠를 잠근 사람이 어떻게 문 안에서 열쇠를 떨어뜨릴 수 있단 말인가? 마치 누군가가 문을 잠그고 텔레포트라도 한 것처럼.

“창고에 다른 출입구는 있습니까?”

“없습니다. 환기구도 있지만, 성인 남자가 드나들 수 있는 크기는 아닙니다. 그냥 벽에 뚫린 구멍 수준입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강대장과 함께 창고로 향했다. 지하 1층, 차가운 콘크리트 복도를 따라 걸었다. 퀘퀘한 곰팡이 냄새와 피 냄새가 섞여 코를 찔렀다. 굳게 닫혔던 강철 문은 이제 빗장이 풀린 채 활짝 열려 있었다.

시신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김민수는 문 바로 안쪽에 쓰러져 있었다. 군용 야전 침대 몇 개와 쌀포대, 통조림 상자들이 가득한 좁은 공간이었다. 그의 가슴팍에는 거친 나무 손잡이가 달린 식칼이 깊이 박혀 있었다. 칼날 위로 말라붙은 피는 검붉게 굳어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었다. 시신의 옷과 바닥에는 핏자국이 흥건했다.
“피해자의 오른손은 어디 있습니까?”

“몸 아래 깔려 있습니다.” 강대장이 대답했다.

“칼은 오른손잡이가 쓰기 편한 방향으로 박혀 있군요. 하지만… 상처의 깊이와 각도가… 자살이라고 보기엔 조금 부자연스럽습니다. 이렇게 깊고 정확하게 심장을 찌르려면 상당한 결심과 힘이 필요할 텐데, 칼을 쥔 손의 자세가… 뭔가, 망설였거나, 혹은….”

나는 말을 멈추고 창고 내부를 꼼꼼히 살폈다. 천장, 벽, 바닥. 모두 콘크리트로 마감되어 있었다. 이음매나 균열은 없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

문의 빗장은 굵은 쇠 막대기로 되어 있었다. 손잡이를 잡고 옆으로 밀면 빗장이 벽에 박힌 쇠 구멍으로 들어가는 구조였다. 지금은 풀려 있었지만, 그 흔적은 선명했다.

“이 빗장을 안에서 잠그고, 어떻게 밖에서 자물쇠를 걸고, 다시 그 열쇠를 안으로 던져 넣을 수 있었을까요?” 박기술, 요새의 기술 담당자가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 그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이건… 유령이라도 했어야 할 짓입니다.”

“유령은 시대를 가리지 않죠.” 나는 피식 웃었다.
내 시선은 빗장과 문틈에 고정되었다. 문은 오래 사용되어 닳은 흔적이 많았다. 틈새가 완벽하게 밀착되지는 않았다. 위아래로 미세한 유격이 있었다.

나는 피해자 김민수의 몸을 조심스럽게 살펴봤다. 그의 옷깃, 손톱 밑.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빗장 손잡이 근처 바닥을 자세히 들여다보던 내 눈에 아주 작은, 육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는 긁힌 자국이 포착되었다. 바닥의 긁힌 자국은 문틈 쪽으로 미세하게 나 있었다. 그리고 그 자국을 따라가다 보니, 문의 하단 가장자리, 콘크리트 바닥과 맞닿는 부분에 아주 가는 틈새가 보였다.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머리카락 한두 가닥이 겨우 통과할 만한 틈새였다.

“누군가가 빗장을 안에서 잠그고, 외부 자물쇠를 잠근 뒤, 다시 그 열쇠를 안으로 넣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내가 말했다. “하지만 역으로, 밖에서 빗장을 잠그고 열쇠를 넣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네? 밖에서 빗장을요? 그 두꺼운 쇠 막대기를 어떻게 밖에서 잠급니까?” 강대장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나는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김민수 씨는 살해당했습니다. 자살이 아니에요. 칼을 쥔 손의 위치, 그리고… 이 상처의 깊이는 누군가가 작정하고 찌른 흔적입니다. 망설임이 없어요.”

모두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범인은 민수 씨를 찌른 후, 그가 가지고 있던 외부 자물쇠 열쇠를 챙겼을 겁니다. 그리고 문을 나갔겠죠. 문을 나간 후 외부 자물쇠를 채웠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면 빗장은 여전히 열려 있어야 합니다.” 박기술이 말했다. “안에서 잠근 빗장이 어떻게 밖에서 잠겨 있었단 말입니까?”

나는 빙긋이 웃었다. “빗장은 말이죠. 겉으로 보기엔 안에서만 조작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은 완벽하지 않아요. 저 빗장 손잡이 아래쪽, 문틈으로 바닥에 아주 미세한 긁힌 자국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 문 하단과 바닥 사이의 틈새….”

나는 주머니에서 얇고 질긴 낚싯줄 하나를 꺼냈다. “이런 가는 실 하나만 있어도 됩니다. 혹은 더 튼튼한 철사 같은 것. 범인은 이런 도구를 사용했을 겁니다. 민수 씨가 쓰러져 문에 기대기 직전, 혹은 그가 쓰러지고 나서, 범인은 문밖으로 나와 외부 자물쇠를 잠갔겠죠. 그리고는… 이 얇은 도구를 사용해 문 하단의 틈새로 넣어, 빗장 손잡이를 걸어 당겼을 겁니다. 빗장이 쇠로 되어 있어서 무거웠겠지만, 충분히 가능합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빗장을 끝까지 밀어 넣었을 겁니다.”

“그, 그게 가능합니까?” 이경비, 요새의 경비 담당자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

“당연하죠. 이런 불완전한 문이라면 얼마든지. 빗장을 잠근 후, 마지막으로 외부 자물쇠 열쇠를 문 하단의 틈새로 다시 밀어 넣어 안으로 떨어뜨렸을 겁니다. 이렇게 하면 완벽한 밀실 살인이 완성되죠. 외부에서는 자물쇠로 잠겨 있고, 내부에서는 빗장으로 잠겨 있고, 열쇠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 버렸으니.”

모두의 얼굴에 경악이 스쳤다.

“그렇다면 범인은 누구죠?” 강대장이 흥분해서 물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박기술을 바라봤다. “이런 섬세하고 집요한 작업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낚싯줄 같은 도구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더 드물죠. 요새에서 가장 작은 부품 하나까지 다루는 데 능숙한 사람, 그리고 이런 기발한 트릭을 생각해낼 수 있는 사람. 박기술 씨, 맞죠? 어젯밤, 당신은 보급품 창고 근처를 배회했습니다. 감시 카메라에 희미하게 잡혔어요.”

박기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의 손가락이 떨리기 시작했다.

“김민수 씨가 뭔가를 훔치려 했거나, 당신의 어떤 비밀을 알게 되었던 겁니까? 어쩌면 요새의 얼마 남지 않은 귀한 의료품을 빼돌리려 한 것을 당신이 발견하고, 순간적인 격분으로 일을 저지른 것이겠죠.”

박기술은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그 녀석이…! 몰래 귀한 항생제를 훔쳐서… 밖으로 팔아넘기려 했습니다! 이런 지옥 같은 세상에서…!”

그의 절규는 곧 요새 안에 메아리쳤다. 생존자들은 망자들의 위협에서 벗어나 한숨 돌릴 수 있을지 몰랐지만, 인간의 탐욕과 분노는 어디에도 존재했다. 밀실 살인의 트릭은 깨졌지만,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어둠은 여전히 끔찍한 진실이었다. 나는 조용히 박기술을 강대장에게 인계했다. 그리고는 핏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 바닥을 뒤로하고, 망자들의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요새의 복도로 발걸음을 옮겼다. 또 다른 사건이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세상이었다. 나의 추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