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뼈저리게 시린 지하 통로였다. 코끝을 찌르는 오존과 눅진 쇳내음이 뒤섞인 공기는 생체 필터 마스크를 뚫고 들어와 폐부를 자극했다. 카엘은 거친 숨을 고르며 녹슨 금속 벽에 등을 기댔다. 손에 든 구식 레이저 권총의 차가운 감촉이 땀으로 축축한 손바닥에 선명하게 와닿았다.
“젠장, 이런 곳에 감시 유닛이 있을 줄이야.”
레나가 낮게 욕설을 뱉었다. 그녀는 구부정한 자세로 휴대용 스캐너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벽면에 숨겨진 장치를 탐색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스캐너의 푸른빛에 반사되어 번뜩였다. 낡고 헤진 점프슈트 위로 드러난 어깨 근육은 긴장으로 단단하게 뭉쳐 있었다.
“제국 놈들은 우리가 버려진 구역에 신경 쓰지 않을 거라 생각하겠지. 그게 우리의 이점이야.” 카엘은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눈은 통로 저편, 깜빡이는 비상등 아래로 드리워진 그림자를 훑었다. “상관 없어. 예정대로 진행한다.”
“말은 쉽지. 저놈의 ‘제국 감시 그리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촘촘하다고. 벌써 세 번째 유닛이야. 이대로라면 ‘새벽별 작전’은 개뿔…”
레나의 불평은 카엘의 굳건한 눈빛에 닿자마자 잦아들었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다시 스캐너에 집중했다. ‘새벽별 작전’. 썩어빠진 제국의 심장부에 깊숙이 박힌 거대한 데이터 중추를 마비시키는 것. 거미줄처럼 얽힌 제국의 정보망에 잠시나마 혼란을 주고, 그 틈에 억압받던 평민들의 목소리를 터뜨릴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찾았다!” 레나가 작게 외쳤다. 그녀의 스캐너에서 발사된 레이저가 벽면의 특정 지점을 가리켰다. 녹슨 패널 뒤에 숨겨진, 희미하게 전류가 흐르는 회로가 드러났다. “여기를 끊으면 이 구역의 감시 회로를 일시적으로 마비시킬 수 있어. 하지만 시간이… 젠장, 타이머가 너무 짧아.”
“얼마나?”
“최대 120초. 그 안에 다음 구역으로 이동해서 주 서버 링크를 찾아야 해. 실패하면 제국 순찰대가 곧바로 몰려올 거야.”
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120초. 심장이 발버둥치는 소리가 귀청을 때리는 듯했다.
“됐어. 내가 미끼가 될 테니까, 넌 최대한 빨리 해.”
“미끼라고? 말도 안 돼! 혼자 감당할 수 없을 거야!” 레나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높아졌다.
“다른 방법이 있나? 이 길은 너무 좁아. 둘이 함께 도망칠 수도 없어. 내가 주의를 끌면, 넌 그 틈에 주 서버로 향해. 그리고…” 카엘은 레나의 어깨를 붙잡고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반드시 성공해야 해. 모두의 희망이 너에게 달려있어.”
레나는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카엘의 눈에 어린 비장함과 결연함은 그녀의 망설임을 집어삼켰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쥐었다.
“알았어. 꼭 성공할게. 그러니 너도, 반드시 살아남아야 해!”
“걱정 마.” 카엘은 짧게 웃었다. “난 아직 할 일이 많거든.”
그는 권총을 움켜쥐고 통로의 코너를 돌아섰다. 곧이어 철컥이는 금속음이 들려왔다. 제국 순찰대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들의 중무장 부츠가 바닥을 울리는 둔탁한 소리가 점점 커졌다. ‘위이잉…’ 거대한 플라스마 방패의 에너지 충전음이 어둠 속에서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
카엘은 심호흡을 했다. 손안의 레이저 권총은 장난감처럼 가벼웠지만, 그의 의지는 강철보다 단단했다.
“어이, 제국 개자식들! 이리로 와라!”
일부러 목소리를 키워 도발하자, 순찰대원들이 일제히 그를 향해 움직였다. 좁은 통로에서 움직임이 제한적일 테지만, 숫적으로 열세였다. 하지만 카엘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가 통로 코너에서 튀어나오자마자, 선두에 선 병사의 헬멧을 향해 레이저를 발사했다. ‘쉬이이잉!’ 붉은 광선이 어둠을 갈랐다.
“저항군이다! 사살해!”
병사의 외침과 함께 여러 발의 에너지탄이 카엘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는 재빨리 몸을 굴려 폐기된 환기구 뒤로 숨었다. ‘타앙! 타앙!’ 에너지탄이 금속 벽을 때리는 둔탁한 소음이 고막을 찢을 듯했다. 환기구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 짧은 순간, 레나는 허리를 숙인 채 미리 준비해둔 데이터 스파이크를 벽면의 회로에 꽂아 넣었다. ‘삐비빅!’ 스파이크의 작은 화면에 녹색 코드가 빠르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제발… 제발…” 그녀는 거의 기도하듯이 중얼거렸다.
카엘은 환기구 뒤에서 고개를 내밀어 적들을 교란했다. 병사들은 그가 숨어 있는 곳에 집중했고, 그 틈을 타 레나는 전력을 다해 해킹을 시도했다. 100초, 80초, 50초… 시간이 맹렬하게 흘러갔다. 제국 병사들이 포위망을 좁혀오는 것이 느껴졌다. 플라스마 방패의 푸른빛이 환기구 틈새로 새어 들어와 카엘의 얼굴을 스쳤다.
“망할, 더 이상은 안 되겠어!”
병사 하나가 강력한 에너지탄을 발사했다. ‘콰앙!’ 환기구가 산산조각 났다. 카엘은 뒤로 나동그라지며 통로 바닥에 처박혔다. 뼈가 울리는 고통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그 순간, 레나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성공했어! 회로 마비! 60초간이야!”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통로 천장의 감시 카메라들이 일제히 꺼지고, 벽면에 깜빡이던 비상등마저도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완벽한 암흑. 찰나의 침묵이 흘렀다.
“이런… 젠장! 시야 확보!” 병사들의 혼란스러운 외침이 들렸다.
카엘은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고통스러웠지만, 지금은 달릴 때였다.
“레나! 어서!”
레나는 이미 다음 구역으로 통하는 비상문을 향해 전력으로 뛰고 있었다. 카엘도 그녀를 따라 죽을힘을 다해 발을 굴렀다. 뒤에서는 병사들의 동요하는 목소리와 함께 비상등이 깜빡이며 다시 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이 시야를 회복하기 전에 최대한 멀어져야 했다.
“주 서버 링크까지 얼마나 남았어!” 카엘이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이곳을 지나… 폐기된 중계탑 밑으로! 한 500미터 정도!” 레나는 스캐너의 지도를 보며 외쳤다.
500미터. 어둠 속에서, 그것도 제국의 코앞에서, 중무장한 병사들의 추격을 따돌리며 이동해야 하는 거리.
그때였다. 레나의 스캐너에서 갑자기 경고음이 울렸다.
‘삐비빅- 삐비빅-! 미확인 에너지 신호 감지! 접근 중!’
레나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젠장… 이건… 일반 순찰대가 아니야! 제국 방위군 소속의 정예 유닛이야! 속도가 너무 빨라!”
카엘의 심장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제국 방위군이라면 일반 순찰대와는 급이 달랐다. 그들은 최신식 장비와 훈련으로 무장한 정예 중의 정예였다. 그들이 이 버려진 지하 통로까지 들이닥쳤다는 것은, 작전의 일부가 이미 노출되었음을 의미했다. 아니면… 어쩌면 제국은 처음부터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크르르릉…’
통로 저편에서 둔중한 금속 마찰음이 들려왔다.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흡사 거대한 사냥개처럼, 맹렬한 기세로.
“젠장, 도망쳐! 레나!” 카엘은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주 서버는 포기해! 지금은 후퇴가 먼저야!”
“하지만, 새벽별 작전은…” 레나는 망설였다.
“살아남아야 다음 기회를 잡을 수 있어! 우리가 죽으면 아무것도 못 해!” 카엘은 레나의 손목을 움켜쥐고 폐기된 환기구 통로로 그녀를 밀어 넣었다. “내가 시간을 벌게! 넌 먼저 빠져나가!”
카엘은 다시 레이저 권총을 겨눴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었다. 비록 이 작전은 실패할지라도, 자신들의 의지는 절대 꺾이지 않을 터였다. 제국이 아무리 거대하고 강력하다 해도, 이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작은 저항의 불씨를 완전히 끌 수는 없을 것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카엘은 이를 악물었다. 다가오는 거대한 그림자, 그리고 그 그림자 뒤에 도사린 썩어 문드러진 제국을 향해. 불꽃 같은 의지를 담아, 최후의 저항을 준비했다. 이 지하 미궁 속에서, 평민들의 반란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