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소녀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잿빛 거리의 서곡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잿빛 거리, 아린의 하루는 삐걱거리는 나무 침대 위에서 시작되었다. 눅눅한 공기 속으로 희미한 비린내와 먼지 냄새가 뒤섞여 스며들었다. 창문 없는 흙벽 오두막은 새벽의 냉기를 온전히 막아주지 못했다. 아린은 얇은 누더기 이불을 끌어올려 옆에 누운 미나의 마른 어깨를 덮어주었다. 미나의 숨소리는 여전히 가늘었고, 창백한 얼굴에는 미열이 감돌았다.

“미나….”

아린은 작게 속삭였지만, 미나는 아무런 미동도 없이 잠들어 있었다. 열병은 벌써 한 달째 미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이 잿빛 거리에서는 감기조차 사치였다. 변변한 약초 하나 구하기도 힘들었고, 제국의 병원 문턱은 일반 평민들에게는 하늘만큼이나 높았다. 저 멀리, 동이 터오기 시작하는 하늘 아래 우뚝 솟은 황궁의 첨탑이 보였다. 그곳은 금빛으로 번쩍이며, 이곳 잿빛 거리의 비참함과는 전혀 다른 세계처럼 빛났다. 황제와 귀족들은 매일밤 성대한 연회를 즐기며 풍족한 삶을 누리겠지.

차가운 돌바닥에 맨발을 내딛는 아린의 몸은 이미 익숙한 고통으로 가득했다. 어제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잡초라도 뜯으러 나갔다가 긁힌 무릎이 쓰라렸다. 부어오른 손목은 신경 쓰지 않았다. 살아남는 것, 그리고 미나를 살리는 것, 그것만이 그녀의 유일한 목표였다.

“누나, 나 배고파….”

어느새 잠에서 깬 미나가 가늘게 눈을 뜨며 중얼거렸다. 아린의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마른침을 삼킨 아린은 억지로 밝은 목소리를 냈다.

“응, 응. 우리 미나. 누나가 맛있는 거 구해올게. 조금만 기다려.”

하지만 ‘맛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아린조차 알 수 없었다. 주머니 속에는 어제 밤늦게까지 매달려 엮은 풀 바구니 몇 개를 팔아 얻은 동전 한 닢이 전부였다. 쌀 한 줌조차 살 수 없는 돈이었다.

아린은 낡은 외투를 걸치고 오두막을 나섰다. 잿빛 거리는 새벽부터 활기가 넘쳤다. 그러나 그 활기는 희망의 것이 아닌, 절박한 생존의 아우성이었다. 굶주림에 지쳐 쓰러진 노인, 부모에게 매달려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흔했다. 거리에 울려 퍼지는 쉰 목소리의 상인들은 어제 팔다 남은 시든 채소나 정체불명의 잡동사니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아린은 익숙하게 인파를 헤치고 가장 구석진 골목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거칠고 시들었지만, 먹을 수 있는 풀뿌리나 버려진 뼈 조각이라도 얻을 수 있었다. 한참을 헤매던 아린의 눈에, 길바닥에 떨어진 자줏빛 열매 몇 개가 들어왔다. 누군가 먹다가 버린 것 같았다. 그리 달지는 않지만, 지금 미나에게는 무엇보다 귀한 비타민이 될 터였다. 아린은 망설임 없이 열매를 주워 낡은 천에 싸서 품에 넣었다.

바로 그때였다.

“길을 비켜라! 제국군 수색대다!”

거친 고함이 잿빛 거리를 뒤흔들었다. 사람들의 얼굴에 순식간에 공포가 드리워졌다. 모든 활기는 사라지고, 마치 유령이 지나간 듯 정적이 흘렀다. 철컥거리는 금속음과 함께 무장한 제국군 병사들이 우르르 골목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의 갑옷은 황궁처럼 빛났지만, 그 빛은 섬뜩하고 위압적이었다.

“수상한 물품을 소지한 자는 즉시 내놓아라! 제국법에 따라 엄중히 처벌할 것이다!”

병사들은 몽둥이를 휘두르며 길가의 좌판을 뒤엎었다. 상인들은 비명을 지르며 쫓겨났고, 간신히 모아두었던 식량들이 발 아래에서 짓밟혔다.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아린은 얼어붙은 채 몸을 웅크렸다. 제국군은 매달 한두 번씩 이렇게 들이닥쳐 ‘수상한 물품’이라는 명목으로 주민들의 남은 식량이나 귀중품을 강탈해갔다. 반항하는 자는 가차 없이 끌려갔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한 병사가 아린의 앞을 막아섰다. 그의 얼굴은 차갑고 무감각했다.
“이 조그만 것. 뭘 숨기고 있지?”
병사의 눈은 매서웠고, 아린의 품속에 넣은 열매 뭉치를 정확히 꿰뚫어 보는 듯했다. 아린은 저도 모르게 품을 감쌌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거짓말! 감히 제국군을 기만하려 드는가?”

병사의 거친 손이 아린의 어깨를 잡아챘다. 아린은 휘청이며 넘어졌다. 품속에 있던 열매 뭉치가 흙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짓밟힌 열매들은 순식간에 으깨어져 붉은 즙을 흩뿌렸다. 마치 피처럼 선명한 붉은색이었다.

“안 돼… 미나…!”

아린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고작 열매 몇 개였지만, 미나에게는 생명줄과 같은 것이었다. 그마저도 빼앗기고, 짓밟혔다. 병사는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아린을 내려다봤다.

“고작 이딴 쓰레기를 감추려 했느냐? 하찮은 것.”

그의 말이 아린의 귓가에 비수처럼 박혔다. 아린은 바닥에 엎드린 채 주먹을 꽉 쥐었다. 자신의 무력함에, 이 모든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에 치솟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미나의 고통스러운 얼굴이, 간절한 눈빛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은 그저 무능한 존재일 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절망이 아린의 심장을 집어삼키는 순간, 엉망이 된 열매 파편들 사이에서 희미한 빛이 터져 나왔다. 아주 작고 은은한 빛이었다. 마치 꺼져가는 촛불처럼 흔들렸지만, 그 속에는 알 수 없는 온기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아린의 심장 속에서, 꽁꽁 얼어붙었던 무언가가 서서히 녹아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차갑던 손끝과 발끝에 따스한 기운이 퍼져나갔다.

병사는 아직 아린을 비웃고 있었다. 그때, 아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안에서 은은한 푸른빛이 깜빡였다. 병사는 순간 흠칫하며 한 발자국 물러섰다. 본능적인 위협감에 그의 얼굴에 미묘한 당황스러움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곧 그는 자신의 나약함에 화가 난 듯 헛기침을 하며 다시 몽둥이를 치켜들었다.

“다음엔 이런 짓 하지 마라, 더러운 것.”

병사는 그 말과 함께 다른 병사들에게 손짓하며 골목을 떠났다. 그들이 가져갈 것을 모두 챙겨갔기에 더 이상 볼일이 없었다. 잿빛 거리는 다시 침묵에 잠겼다. 하지만 이번 침묵은 이전과는 달랐다. 사람들의 눈빛에는 전보다 깊은 절망과 함께, 차갑게 식어버린 분노가 서려 있었다.

아린은 흙바닥에 주저앉은 채 떨리는 손으로 짓밟힌 열매 조각들을 쓸어 모았다. 그 속에서 빛나던 것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가슴 속에는 여전히 따스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잿빛 거리의 풍경, 짓밟힌 생명, 절망에 찬 사람들의 모습이 그녀의 심장에 새겨졌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멀리 보이는 황궁의 첨탑을 응시했다. 금빛으로 빛나는 저곳이, 이 모든 비극의 근원이었다.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을 거야.*

아린의 눈빛에 굳은 결심이 스쳤다. 그 작은 변화는 잿빛 거리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새로운 서곡을 연주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서 시작된 미약한 떨림은, 머지않아 거대한 파동이 되어 세상을 뒤흔들게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