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잿빛 숨결
코볼트 행성의 하늘은 언제나 병든 오렌지색이었다. 썩어 문드러진 핏빛 노을과 흡사한 그 빛은, 태양이 제 힘을 잃고 죽어가고 있다는 착각을 주기에 충분했다. 물론, 이 행성 사람들에게 태양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지하 깊은 곳에서 끌어 올려야 할 ‘심장석’뿐이었다.
카엘은 이 심장석 광산의 가장 깊은 막장에서 일했다. 땀에 절은 몸은 철판과 흙먼지로 뒤덮여 끈적거렸고, 헬멧의 조명등이 비추는 좁은 시야는 늘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위험으로 가득했다. ‘드르륵, 쾅!’ 거대한 굴착기가 지하의 암반을 찢는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그 진동은 뼛속까지 울려 퍼져 영혼마저 흔드는 듯했다.
“젠장, 또 긁혔잖아.”
카엘은 왼팔뚝에 길게 그어진 상처를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의 손에 들린 광석 채취용 해머는 이미 수십 번도 더 수리한 낡은 것이었다. 제국이 보급하는 장비들은 늘 그랬다. 간신히 작동하는 수준의 싸구려이거나, 아예 쓸모없는 고철 덩어리였다. 그들은 코볼트 행성의 생명들을 소모품처럼 여겼다. 행성 자체가 거대한 소비재였으니까.
“카엘, 괜찮나? 오늘은 작업량이 심상치 않아.”
옆 막장에서 늙은 야렉이 쉰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야렉은 40년 넘게 이 막장에서 심장석을 캐왔다. 그의 등은 이미 돌처럼 굽어 있었고, 얼굴은 깊은 주름살과 검버섯으로 가득했다. 그의 눈만이 여전히 빛나고 있었는데, 그 빛은 고통과 체념, 그리고 어딘가 희미한 반항심이 뒤섞인 불꽃이었다.
“걱정 마세요, 야렉 아저씨. 제가 아직 팔팔합니다.”
카엘은 일부러 밝게 대답했지만, 심장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오늘은 평소보다 채취량이 두 배로 늘어났다. 제국 병사들이 어제저녁 마을에 들어와 어린아이들까지 작업에 동원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기 때문이었다. ‘세금 체납’이라는 명목이었지만, 그건 늘 그랬듯이 터무니없는 거짓말이었다. 제국은 그저 더 많은 것을 원할 뿐이었다.
갑자기, 지반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쿠구궁!’ 굉음과 함께 머리 위에서 자잘한 돌 부스러기가 쏟아져 내렸다. 카엘은 반사적으로 몸을 숙였다.
“무슨 일이야?!”
야렉의 외침이 이어졌다. 이어진 것은 비명이었다.
“악! 다리가… 다리가 깔렸어!”
카엘은 몸을 돌렸다. 야렉의 막장 쪽이었다. 굴착기의 한 부분이 무너지면서 야렉의 다리를 덮친 것이었다. 거대한 철골이 그의 다리를 짓눌러 피가 흥건하게 배어 나오고 있었다. 야렉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바닥을 기고 있었다.
“야렉 아저씨!”
카엘은 망설일 틈도 없이 달려갔다. 다른 광부들도 삽과 곡괭이를 들고 달려왔지만, 그 거대한 철골을 옮길 방법은 마땅치 않았다. 제국이 제공하는 비상 장비는 늘 말뿐이었다.
“비켜! 이 멍청이들아!”
그때, 저편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제국의 감시병, 센추리온 발레리우스였다. 번쩍이는 은빛 갑옷과 휘장, 번들거리는 그의 얼굴은 이 지저분한 광산과는 이질적인 존재였다. 그의 뒤에는 중무장한 병사들이 두 명 따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방독면을 쓰고 있었지만, 발레리우스는 그러지 않았다. 마치 이 더러운 공기조차 그에게는 하찮은 것인 양.
“무슨 소란이야? 작업 시간을 지체시키다니, 반역이라도 하려는 건가?”
발레리우스는 야렉의 고통스러운 신음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심하게 물었다.
“센추리온 님! 야렉 아저씨가 깔렸습니다! 당장 구조 장비를…”
카엘이 외치려 하자, 발레리우스의 시선이 그를 꿰뚫었다. 차갑고 무정한 눈동자였다.
“구조 장비? 흠, 저 늙은이가 제국에 더 이상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나? 손실은 손실일 뿐. 대체할 인력은 넘쳐난다.”
“뭐라고요?!”
카엘은 분노에 치를 떨었다. 이 늙은 광부가 평생을 바쳐 제국에 심장석을 바쳤는데, 이제 와서 쓸모없는 존재 취급이라니.
“닥쳐! 이 하찮은 코볼트 놈! 너는 그저 제국의 재산을 캐내는 기계일 뿐이다. 명령을 어기고 소란을 피운 죄를 물어야겠군.”
발레리우스는 손짓했다. 뒤따르던 병사들이 둔탁한 진압봉을 들고 카엘에게 다가왔다.
“저리 가! 야렉 아저씨는 우리가 구해야 해!”
카엘은 이를 악물었다. 그 순간, 야렉이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카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말하고 있었다. ‘도망쳐라. 나 하나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카엘은 도망칠 수 없었다. 야렉 아저씨는 그의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어릴 적 고아가 된 그를 거두어 광부의 기술을 가르쳐준 사람이었다.
‘퍽!’
진압봉이 카엘의 어깨를 강타했다. 뼈가 울리는 고통에 카엘은 비틀거렸다. 그러나 그는 다시 야렉의 막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야렉은 더 이상 신음하지 않았다. 그의 눈은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고, 흐릿한 동공은 이미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는 알 수 없는 미소가 희미하게 번지고 있었다. 해방감일까, 아니면 체념의 끝일까.
“어이, 이 노인네 죽었잖아? 이봐, 발레리우스 센추리온! 시체는 어떻게 할까요?”
한 병사가 무심하게 말했다. 발레리우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시체를 흘긋 보더니 말했다.
“그대로 놔둬. 광산 매장량이 줄어든 건 아니니까. 그리고 저 건방진 놈은 끌고 가서 교육을 좀 시켜.”
병사들이 다시 카엘에게 다가왔다. 카엘은 피가 흐르는 어깨를 붙잡고 그들을 노려보았다. 그의 심장 속에서 차가운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대로 끌려갈 순 없었다. 야렉 아저씨의 죽음이 이렇게 허무하게 묻힐 수는 없었다.
“그래, 교육… 시키지. 내가. 네놈들에게.”
카엘의 눈빛이 변했다. 고통과 절망으로 가득했던 그 눈에는 이제 날카로운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해머를 쥐는 것보다 훨씬 강하게. 병사들이 한 발짝 더 다가오자, 카엘은 갑자기 몸을 숙이며 막장 깊은 곳으로 달렸다.
“저놈 잡아!”
발레리우스의 고함이 막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병사들이 뒤쫓았지만, 이 막장은 카엘의 집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수십 년간 파고든 복잡한 갱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좁고 어두운 틈새로 몸을 던지고, 낡은 지지대 사이를 미끄러져 내려갔다.
병사들의 발소리가 멀어지자, 카엘은 한참을 달려 멈춰 섰다. 숨을 헐떡이며 몸을 기댄 곳은, 야렉 아저씨가 늘 ‘우리들의 비밀 기지’라 부르던 버려진 수갱 입구였다. 헬멧의 조명등을 끄자, 완전한 어둠이 그를 삼켰다. 차갑고 끈적이는 어둠.
이 어둠 속에서 카엘은 야렉의 마지막 미소를 떠올렸다. 그리고 제국 센추리온의 오만하고 차가운 얼굴을. 그는 떨리는 손으로 품속을 뒤졌다. 야렉 아저씨가 생전에 몰래 건네주었던 낡은 주머니. 그 안에는 먼지 덮인 작은 금속 조각 하나가 들어 있었다.
그것은 코볼트 행성의 상징, 그러나 제국에 의해 금지된 문양이었다. 날개를 펼친 채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새의 형상. 잿빛 하늘을 뚫고 날아오르려는 작은 불꽃의 상징.
카엘은 금속 조각을 꽉 쥐었다. 날카로운 모서리가 손바닥을 파고들어 피가 배어 나왔지만, 그는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그의 눈앞에는 야렉 아저씨의 시신과, 그의 옆을 무심하게 지나치는 제국 병사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아저씨…”
카엘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낮게 울렸다. 끓어오르는 분노, 솟아나는 슬픔, 그리고 새롭게 싹트는 결의가 뒤섞여 심장을 채웠다.
‘이제 더 이상, 당하고만 있지 않을 거야.’
그는 낡은 금속 조각을 쥔 채, 어둠 속에서 홀로 조용히 맹세했다. 코볼트의 잿빛 숨결 속에서, 작지만 강렬한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