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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있는 밀실] 23화. 벽 속의 웃음소리

차가운 밤공기가 폐부를 찌르고 들어왔다. 오래된 고택의 정원에는 습기를 머금은 흙냄새와 함께 짙은 밤안개가 깔려 있었다. 불길한 기운이 잔뜩 서린 이 대지 위로, 서재현은 낡은 코트 깃을 올리며 침묵 속에 발을 들였다.

“어서 오십시오, 서 박사님. 형사 김민준입니다.”

중년의 형사 김민준이 그를 맞았다. 그의 얼굴에는 피로와 함께 해답을 찾지 못한 자의 좌절감이 역력했다.

“시간 낭비할 상황이 아닌 줄은 압니다만… 서 박사님이 아니면 이 사건은 정말 미궁으로 빠질 겁니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재현은 짧게 답하며 고택의 육중한 현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섰다. 앤티크 가구들로 가득 찬 실내는 어두웠고, 희미한 조명만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곰팡내와 함께 희미한 피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강태식 회장입니다. 수집가로서는 명성이 높았지만, 대인 관계는 극히 폐쇄적이었죠. 어제 저녁 늦게 비서가 마지막으로 생존을 확인했고, 오늘 아침 출근한 가정부가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민준이 설명했다. “문제는… 밀실입니다.”

그는 재현을 2층 서재 앞으로 안내했다. 육중한 오크나무 문에는 경찰의 노란 통제선이 쳐져 있었다.

“문은 안에서 빗장이 걸려 있었고, 창문은 특수 강화 유리로 막혀 있었을 뿐더러, 안에서 걸쇠로 단단히 잠겨 있었습니다. 외부 침입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그 어떤 전문가가 와도 강제로 침입한 흔적은 찾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민준은 한숨을 쉬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밀실입니다.”

재현은 아무 말 없이 문고리에 달린 통제선을 치우고 서재 안으로 들어섰다. 묵직하고 오래된 공기가 그의 얼굴을 스쳤다.

방은 넓었다.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에는 고서들과 함께 기이한 형태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조명은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에서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으나, 방 전체에 드리워진 음산한 기운을 걷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방 한가운데, 붉은 피 웅덩이 속에서 강태식 회장이 엎드려 있었다. 그의 등에는 칼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칼날은 기묘한 문양이 새겨진, 이국적인 단검이었다. 고색창연한 칼자루는 강회장의 굳게 쥔 오른손에 들려 있었다. 마치 스스로를 찌른 듯한 자세였다.

“부검 결과, 사망 시각은 어제 밤 10시에서 11시 사이로 추정됩니다. 등에는 정확히 심장을 관통하는 상처가 하나 있습니다. 출혈로 인한 사망이죠.” 민준이 덧붙였다. “방금 말씀드렸지만, 자살로 보기에는 너무 비정상적인 자세입니다. 오른손잡이인데, 칼이 왼손에 들려 있다면 모를까… 심장을 찌른 칼을 굳이 오른손으로, 등 뒤로 찔러 넣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안 됩니다. 타살이 확실한데, 침입자는 없습니다.”

재현은 희생자의 시신을 둘러쌌다. 그는 민준처럼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눈은 시신 위에 잠시 머물렀다가, 방 전체를 훑었다. 책장 위의 낯선 유물들, 벽에 걸린 거대한 태피스트리, 심지어는 바닥의 먼지 하나까지 놓치지 않았다.

“강회장은 이런 기이한 물건들을 모으는 데 집착했습니다. 스스로를 ‘어둠을 수집하는 자’라고 칭했죠. 외부인은 극히 드물게 들였고, 거의 매일 밤 이 서재에서 홀로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민준이 말을 이었다. “누군가 저주라도 건 걸까요? 서 박사님은 영적인 현상도 다루신다고 들었습니다만…”

재현은 조용히 강회장의 시신 옆에 쪼그려 앉았다. 그의 눈은 칼자루에 새겨진 문양에 닿았다. 낯선 문양은 마치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는 뱀의 형상과 같았고, 칼날에서 풍겨 나오는 비릿한 금속 냄새는 방 안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강렬했다.

“이 방에 들어오기 전부터, 이 고택 전체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좋지 않습니다.” 재현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저주나 영적인 힘은 언제나 현실의 치밀한 함정에 가려지기 마련이죠.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언제나 본질을 숨기기 위한 장막이 됩니다.”

그는 시신 주위에 흩어진 피와 바닥의 미세한 먼지 입자들을 유심히 살폈다. 특이한 점은 없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닫힌 밀실 안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때, 재현의 시선이 천장의 샹들리에에 닿았다. 그리고 다시 시신이 엎드린 방향을 따라 벽을 응시했다. 서재의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거대한 태피스트리였다. 낡고 바랜 천에는 기이한 신화 속 존재들이 어둠 속에서 춤추는 듯한 모습이 수놓아져 있었다.

“강회장은 이 태피스트리를 특히 아꼈다고 합니다. 몇 년 전, 남미 오지의 한 부족에게서 어렵게 구해온 것이라고… 이 태피스트리 뒤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벽입니다. 저희도 꼼꼼히 확인했습니다.” 민준이 설명했다.

재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 태피스트리 앞으로 다가갔다. 손가락으로 거친 천을 쓸었다. 먼지투성이의 천 사이로 희미하게 묻어 있는 얼룩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일반적인 먼지와는 다른, 끈적이는 듯한 느낌의 얼룩이었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기름때 같기도, 마른 핏자국 같기도 했다.

그의 눈이 태피스트리의 가장자리를 따라 움직였다. 벽과 태피스트리 사이의 미세한 틈, 그리고 그 틈 너머의 벽면.

“형사님.” 재현이 불렀다. “강회장은 무엇에 집착했습니까?”

“희귀한 유물과 고서적, 특히 고대 문명이나 주술과 관련된 것에 광적으로 집착했습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가 심했습니다. 이 방을 외부와 완벽히 단절된 금고처럼 만들었던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죠.”

“죽음의 공포, 그리고 수집.” 재현은 태피스트리 한가운데, 기묘한 신이 활짝 웃고 있는 얼굴에 손을 얹었다. “이 방 안에서, 강회장은 스스로의 죽음의 공포를 전시하고 있었군요.”

그는 태피스트리 아래 바닥에 시선을 고정했다. 육안으로는 식별하기 어려운, 아주 미세한 긁힘 자국이 몇 군데 보였다. 일반적인 마모 자국과는 달랐다. 무언가가 정기적으로, 혹은 강하게 끌려 지나간 흔적 같았다.

“강회장은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했죠?” 재현은 다시 시신을 바라봤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무언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행동은 이 밀실 살인의 트릭을 완성시키는 결정적인 퍼즐 조각이 됩니다.”

민준은 재현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트릭이라니요? 침입자가 없는데, 어떻게…”

재현은 대답 대신 태피스트리 중앙에 새겨진 웃는 신의 얼굴에서 손을 떼고, 뒤로 물러섰다. 그의 얼굴에는 미미한 확신이 스쳐 지나갔다.

“이 방은 완벽한 밀실이 아닙니다. 이 방은… 스스로 움직이는 밀실이었군요.”

민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서 박사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벽이 움직였습니다.” 재현은 낮게 읊조렸다. 그의 시선은 태피스트리 뒤편의 벽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강태식 회장이 그렇게 믿도록 유도되었습니다.”

그는 태피스트리 가장자리의 미세한 틈새를 다시 한번 손가락으로 훑었다. 그리고는 민준에게 물었다.

“이 고택에서 가장 오래된, 낡은 오르골을 본 적이 있습니까? 태엽을 감아 소리를 내는 그런 종류의…”

민준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오르골이요? 아니요, 그런 건 보지 못했습니다만…”

“그렇다면, 이 방 안에 있는 유물들 중에, 특정 소리나 진동에 반응하는 장치가 있었을 겁니다.” 재현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강회장이 매일 밤 이 서재에서 혼자 있었다면, 습관적으로 하던 행동이 있었을 겁니다. 어쩌면, 그것 자체가 죽음을 부르는 트리거였을지도 모르죠.”

그의 시선은 다시 한번 시신이 엎드린 방향을 따라 태피스트리 뒤의 벽에 고정되었다. 그곳에서, 아주 희미하게, 벽 속에서 비릿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강회장은 죽기 직전, 거대한 유령을 마주했다고 착각했을 겁니다.” 재현은 태피스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자신의 죽음을 재촉하는 벽 속의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말이죠.”

그의 손이 태피스트리의 특정 지점을 짚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직한 지시가 흘러나왔다.

“저 태피스트리를 걷어내십시오, 형사님. 그리고 저 벽의 가장 낮은 부분을… 제 지시에 따라 정확히 파내야 합니다.”

민준은 재현의 지시에 의아해하면서도, 그의 눈빛에서 읽히는 강한 확신에 이끌려 조심스럽게 태피스트리를 걷어내기 시작했다. 육중한 태피스트리가 걷히자, 그 뒤편의 벽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곳에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완벽한 밀실의 진실이 잠자고 있었다.

**[24화 예고]**
벽 뒤에 숨겨진 것은 과연 무엇인가? 서재현은 밀실 살인의 숨겨진 트릭을 밝혀내기 위해, 고택의 가장 은밀한 곳으로 향한다. 범인이 남긴 마지막 흔적은 과연, 그의 예상대로 벽 안에 숨겨져 있었을까? 그리고 그 벽 속에서 피어오른 섬뜩한 웃음소리의 진짜 의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