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장. 벽 속의 비명
청운문(靑雲門)의 정적은 밤하늘처럼 깊었다. 백 년 넘게 이어져 온 평화는 한낮의 비명과 함께 산산조각 났다. 안개처럼 서린 영기(靈氣)는 평소의 맑고 고요한 기운을 잃고 탁한 슬픔과 혼란의 기운으로 일렁였다.
문주(門主) 서강(徐江)이 죽었다.
그것도 가장 견고하고 영력이 강한 방, 문주의 개인 수련실 안에서 홀로 죽은 채 발견되었다. 문은 안에서 굳게 잠겨 있었고, 사방의 벽은 수백 년 된 단단한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작은 창문 하나조차 없는 밀실 중의 밀실이었다. 영력을 꿰뚫는 어떤 시선도, 강력한 비술(秘術)도 침투할 수 없는 청운문의 심장부. 그곳에서 문주 서강이 싸늘한 시신으로 변했다.
“청명(淸明) 도사님, 부디… 부디 청운문의 억울함을 밝혀 주시옵소서!”
수심에 잠긴 장로 이묵(李黙)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그의 눈빛에는 슬픔과 함께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청명 도사는 낡고 후줄근한 도포 자락을 여미며 그를 지긋이 바라봤다. 그의 외모는 어딘가 모르게 허름하고 평범했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두 눈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볼 듯 날카롭게 빛났다. 그는 강호에 떠도는 수수께끼 같은 사건들을 기이한 방식으로 해결해 온 인물이었다. 무림의 고수들이나 선문(仙門)의 영웅들이 풀지 못하는 난제들이 그의 손을 거치면 마치 당연하다는 듯 실마리가 풀려나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벽을 보는 자’ 혹은 ‘파계승 같은 도사’라 불렀다.
“이묵 장로, 그리 서두를 것 없습니다. 죽음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으니, 서두른다고 도망치거나 달라지지 않습니다.”
청명 도사의 느긋한 어조는 주변의 삼엄한 분위기와 극명한 대비를 이뤘다. 그는 말없이 문주 서강의 수련실 앞으로 걸어갔다. 청운문의 정예 제자들이 살기 어린 눈빛으로 문을 둘러싸고 있었고, 굳게 닫힌 거대한 석문(石門)에는 금빛 주술 문자(呪術文字)들이 번개처럼 깜빡이며 남아 있었다. 문주 서강이 마지막으로 걸어 잠근 강력한 봉인 주술이었다.
“문은 어떻게 열었습니까?” 청명 도사가 물었다.
“결국 외부에서 강제로 열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주님의 신물(信物)인 ‘청운패(靑雲牌)’가 없이는 안에서 잠긴 문을 열 방법이 없었으니까요. 문이 열리는 순간, 안에서 차갑고도 섬뜩한 냉기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이묵 장로가 한숨을 쉬었다.
“음. 문주님의 신물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시신 옆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불가사의합니다. 누가 문주님을 죽이고 그 패를 굳이 떨어뜨려 놓았단 말입니까?”
청명 도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석문을 찬찬히 훑어봤다. 문틈새는 실오라기 하나 들어갈 틈 없이 굳게 닫혀 있었고, 표면에는 미세한 균열이나 흔적조차 없었다.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문 주변의 벽을 가볍게 두드렸다.
“벽은 어떻습니까? 금강벽(金剛壁)인가요?”
“그렇습니다. 청운문이 세워질 때부터 존재했던 영물(靈物)의 뼈를 갈아 넣어 굳힌 벽이라, 어떤 금강불괴(金剛不壞)의 존재도 함부로 깨트릴 수 없습니다. 첩보(諜報)나 암습(暗襲)의 대가들도 이 벽만큼은 뚫지 못할 겁니다. 더욱이 이 수련실은 문주님만이 들어오고 나갈 수 있도록 특별한 영기 보호막이 늘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청명 도사의 눈빛이 문득 날카롭게 빛났다. 그는 벽에 손을 대고 아주 잠시 눈을 감았다. 주변의 제자들이 술렁였다. 그가 평범한 도사가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이처럼 기이한 행동은 처음이었다.
“기이하군요. 이 벽 안에서… 미세하게 맴도는 기운이 있습니다. 마치 차가운 한기(寒氣)처럼요.”
이묵 장로와 제자들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스쳤다. 그들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수련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 들어가 보시겠습니까?” 이묵 장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청명 도사는 대답 대신 굳게 닫혔다 강제로 열린 석문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방 안에서 희미한 영등(靈燈)이 깜빡이고 있었다. 방 안은 생각보다 넓었다. 사방은 벽이었고, 천장 또한 단단한 바위로 이루어져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옥돌로 만든 좌대(座臺)가 있었고, 그 위에 문주 서강이 가부좌를 한 채 앉아 있었다.
“흐읍!”
누군가 작게 숨을 들이켰다. 서강의 시신은 너무나도 기이했다. 외상은 전혀 없었다. 다만, 그의 얼굴은 마치 얼어붙은 듯 새파랗게 질려 있었고, 두 눈은 공포에 질린 채 크게 떠 있었다. 온몸의 모세혈관이 터진 듯 검붉은 흔적이 희미하게 비쳤다. 죽기 직전 극심한 고통과 공포를 겪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치 무언가에 영혼까지 빨린 듯한 모습이었다.
“수련 중이셨던 것 같습니다.” 이묵 장로가 말했다. “문주님은 보통 정오부터 해질녘까지 이곳에서 심법(心法) 수련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해가 져도 나오지 않으시기에, 제자들이 걱정되어 찾아갔더니…”
청명 도사는 아무 말 없이 서강의 시신 주위를 맴돌았다. 그의 발걸음은 마치 깃털처럼 가벼웠다. 그는 방 안의 모든 것을 눈으로 훑었다. 좌대 주변에 떨어진 청운패, 바닥에 흐트러진 수련용 부적, 그리고 벽에 걸린 낡은 벽화까지.
“수련 도중에 변을 당하신 것이군요. 그렇다면 방 안에서 누군가 문주님을 직접 해쳤다는 말이 됩니다. 하지만… 외부에서 들어온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천장에서 내려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한 제자가 말했다.
“천장에도 주술진이 걸려 있습니다. 그것도 가장 강력한 영기 방어막이죠. 문주님만이 해제할 수 있습니다.” 이묵 장로가 제자의 말을 일축했다.
청명 도사는 시신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외상이 없다는 것은 기공(氣功)이나 독(毒)으로 살해당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서강 문주는 강호에서 손꼽히는 방어 비술의 대가였다. 그에게 독을 먹이거나, 그의 기공을 뚫고 내상을 입히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죽기 직전, 이 방 안에는 문주님 말고 다른 존재가 있었습니까?” 청명 도사가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그럴 리가요! 이곳은 문주님 전용 수련실입니다. 그 누구도 허락 없이는 발을 들일 수 없습니다!” 이묵 장로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문주님은 죽기 직전, 무엇을 보셨을까요?”
청명 도사의 시선이 다시 서강의 얼굴에 머물렀다. 극심한 공포. 그 시선이 향했던 곳은 문 쪽도, 천장 쪽도 아니었다. 그의 시선은… 정면을 향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좌대에서 앉아 수련할 때 눈앞에 펼쳐지는 벽을 향하고 있었다.
“벽화입니까?” 한 제자가 웅얼거렸다.
그 벽화는 오랜 세월이 느껴지는 희미한 그림이었다. 구름 위를 유영하는 신선들과 용이 그려져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선화(仙畫)였다.
청명 도사는 천천히 벽화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뻗어 벽화의 한 귀퉁이를 살짝 쓸었다. 낡고 바싹 마른 먼지가 손가락에 묻어났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갑자기 벽화의 가장자리, 옥색 구름이 그려진 부분을 손으로 더듬기 시작했다.
“…이묵 장로, 이 벽화는 언제부터 있었던 것입니까?”
“문주님께서 부임하시면서 특별히 이곳에 걸어두셨다고 합니다. 선대 문주님의 유품이라고 들었습니다.”
“선대 문주님의 유품이라… 흠.”
청명 도사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그의 손이 벽화의 미세한 틈새를 따라 움직이더니, 이내 벽화 한가운데에 손가락을 멈췄다.
“이 벽화, 자세히 보니… 어딘가 모르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제자들이 다시 벽화를 바라봤다. 그들에게는 그저 낡은 벽화일 뿐이었다. 하지만 청명 도사의 눈에는 다른 것이 보였다. 그는 옥색 구름 위를 유영하는 용의 눈을 가만히 응시하더니, 피식 헛웃음을 터뜨렸다.
“벽은 뚫을 수 없다고 하셨죠? 좋습니다. 하지만… 만약 벽이 움직인다면 어떻습니까?”
모두의 시선이 청명 도사에게 집중됐다. 벽이 움직인다고? 그 거대한 암석 벽이? 아무도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묵 장로의 얼굴에는 혼란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청명 도사는 낡은 도포 자락에서 작은 은침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벽화 속 용의 눈에 그 은침을 꽂아 넣었다.
*스르륵…*
쥐죽은 듯 고요했던 방 안에, 아주 미세한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마치 거대한 바위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한 소리였다. 이내, 벽화가 걸려 있던 벽의 일부분이 안쪽으로 스르륵 밀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밀려 들어간 벽 안쪽에는… 칠흑 같은 어둠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차가운 한기가 격렬하게 뿜어져 나오며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모두가 숨을 죽였다. 그리고 그들은 보았다.
밀려 들어간 벽의 틈새로, 핏빛 섬광이 번뜩이는 칼날의 그림자가 희미하게 드러나는 것을.
청명 도사의 눈빛은 그 칼날의 그림자를 꿰뚫어 보듯 예리했다.
“밀실 살인이라고요? 아닙니다. 이 방은 처음부터 완벽한 밀실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살인자가 영리하게 숨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을 뿐이죠.”
그의 목소리는 고요했지만, 방 안에 모인 모두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죽은 문주 서강의 시선이 왜 벽을 향하고 있었는지, 그제야 모두가 깨달았다. 그는 죽기 직전, 그 벽 속에서 나오는 누군가를 목격했던 것이다.
이제, 그 벽 속의 어둠 너머에 무엇이 숨어 있을지 밝혀낼 차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