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은 짙은 남색 벨벳처럼 고요했고, 세레니티 마법 학원의 첨탑들은 별빛 아래 우아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고요한 밤의 장막 아래, 깊고 깊은 학원 지하에서는 두 명의 문제아가 차가운 공기를 뚫고 미지의 심연으로 한 발짝씩 나아가고 있었다.
“야, 강하준! 너 진짜 이 길이 맞다고 확신해? 아까부터 계속 이상한 냄새가 나잖아!”
유진은 등 뒤의 벽에 바싹 달라붙어 잔뜩 겁먹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녀의 손에 들린 마법 룬등은 겨우 앞길 몇 걸음을 비출 뿐이었고, 그 빛은 습한 지하 복도를 더 음침하게 만들었다. 발밑에서는 흙먼지와 부서진 돌 조각들이 밟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시끄러워, 송유진. 내가 설마 길을 헤매겠냐? 여긴 분명히… 그 금서 목록이 숨겨져 있다는 곳의 진입로일 거야.”
하준은 짐짓 태연한 척 대답했지만, 그의 목소리 끝에는 미세한 떨림이 묻어 있었다. 그는 오른손에 푸른색 마나를 응집시켜 작은 불꽃을 띄워 올리고 있었다. 그 불꽃은 룬등보다 밝았지만, 동시에 그의 초조함을 드러내는 듯 희미하게 흔들렸다. 그들은 일주일 전, 도서관 지하의 금지된 서고에서 몰래 고대 주문집을 뒤지다 우연히 발견한 숨겨진 통로로 들어왔다. 호기심과 ‘우리 학원에 숨겨진 엄청난 비밀을 파헤치자!’는 유진의 엉뚱한 결의가 합쳐진 결과였다.
“금서 목록은 무슨. 누가 봐도 사람을 가둬놓거나 뭔가 끔찍한 걸 봉인해 둔 곳 같다고! 아까부터 발밑에서 이상한 게… 꾸물거리는 느낌이라고!” 유진은 하준의 교복 소매를 꽉 붙잡았다.
“너 원래 그렇게 오버하는 버릇 좀 고쳐라. 그리고 꾸물거리는 건 네 상상력일 뿐이야. 네가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하니까 더 소름 끼치잖아!” 하준은 툴툴거렸지만, 왠지 모르게 그의 시선도 발밑을 한 번 더 확인하는 듯했다.
그들이 나아가는 길은 점점 더 좁아지고 어두워졌다. 복도의 벽면은 곰팡이와 이끼로 뒤덮여 축축했고, 천장에서는 불규칙하게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마치 누군가 숨죽여 흐느끼는 것처럼 섬뜩하게 들렸다.
“강하준, 잠깐만.” 유진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이상한 소리가 들리지 않아? 마치… 노랫소리 같기도 하고.”
하준은 귀를 기울였다. 처음에는 그저 지하 특유의 울림이라고 생각했지만, 유진의 말대로였다. 아주 희미하게, 저 멀리 어둠 속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음절들이 엮인 멜로디가 들려왔다. 단순한 노랫소리라기엔 너무나도 기괴하고 불안정한 음색이었다.
“뭐야, 저거?” 하준의 얼굴에서 장난기는 사라지고 경계심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마나 불꽃을 더 강하게 키웠다.
멜로디는 점점 더 또렷해졌고, 동시에 그들이 처음 맡았던 달콤하고 역한 냄새가 더욱 강렬해졌다. 마치 수천 송이의 시든 꽃들이 한꺼번에 썩어가는 듯한 향이었다.
“우와, 진짜 소름 돋는다. 우리 그냥 돌아가자, 하준아. 이러다 진짜 무슨 귀신이라도 만나는 거 아니야?” 유진은 이제 완전히 얼어붙어 하준의 등 뒤로 숨으려 했다.
“겁쟁이 같으니라고. 여기까지 와서 돌아간다고? 내가 누군데? 강하준이야. 학원 역사상 최고 천재 마법사라고 불리는 내가, 겨우 지하 노랫소리에 쫄 거 같아?” 하준은 허세를 부리듯 턱을 치켜들었지만, 그의 발걸음은 눈에 띄게 느려져 있었다.
그들은 마침내 넓은 공간으로 이어지는 입구에 다다랐다. 입구는 고대 문자로 뒤덮인 낡은 돌문이었다. 문틈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빛은 기이한 보랏빛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노랫소리는 그곳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 분명했다. 이제는 단순한 멜로디가 아니라, 수많은 목소리가 뒤섞여 중얼거리는 듯한 혼란스러운 속삭임이었다.
“저 안이야…” 유진이 침을 꿀꺽 삼켰다.
“흥, 이제야 본론이군.” 하준은 애써 태연한 척하며 돌문에 손을 댔다. 문은 그의 손길이 닿자마자 낡은 경첩이 비명을 지르며 천천히 열렸다.
문이 완전히 열리자, 그들 앞에 펼쳐진 광경은 상상을 초월했다. 좁은 복도 끝에 나타난 것은 웅장한 홀이었다. 홀의 중심에는 거대한 검은 수정이 공중에 떠 있었고, 그 수정에서는 보랏빛 섬광이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홀의 벽면 전체에는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고, 그 문양들은 수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에 반응하며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인 것은, 홀 안에 수많은 실루엣들이 떠다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들은 형태가 없는 그림자 같기도 했고, 연기처럼 흐느적거리는 사람 같기도 했다. 그 실루엣들이 바로 섬뜩한 노랫소리의 근원처럼 보였다. 그들은 마치 무엇인가에 홀린 듯 검은 수정 주위를 맴돌며,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 같은 것을 끊임없이 읊조리고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가 뒤섞여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은 고통스러운 자장가처럼 들렸다.
“세상에… 저게 다 뭐야?” 유진은 경악하며 하준의 팔을 더 세게 붙잡았다. 그녀의 눈은 동공지진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준 역시 눈을 가늘게 뜨고 홀 안을 응시했다. 그의 표정은 경계심을 넘어선, 일종의 전율로 가득 차 있었다. “저 수정… 분명히 마나 반응이 엄청나게 강해. 그런데… 저 실루엣들은 대체 뭐지? 영혼인가?”
그때, 홀 안에서 맴돌던 실루엣 중 하나가 그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니, 고개를 돌린다는 표현보다는 ‘그쪽으로 기울어졌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마치 형체가 없는 무언가가 갑자기 그들의 존재를 인지한 것처럼.
*스르륵… 스스스륵…*
실루엣은 희미한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마치 안개 속에서 얼굴이 희미하게 드러나는 것처럼, 고통으로 일그러진 인간의 형체가 어렴풋이 보였다. 그리고 그 형체는 마치 비명을 지르는 듯한 소리를 내며 그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이젠 노랫소리가 아니라, 지옥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절규에 가까웠다.
“젠장!” 하준은 순간적으로 유진을 등 뒤로 밀치며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손에서 푸른 마나 불꽃이 맹렬하게 타올랐다. “다가오지 마!”
그가 마법 주문을 외려던 찰나, 발밑에서 ‘쩌억’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균열이 생겨났다. 홀의 바닥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기 시작했고, 검은 수정은 더욱 격렬하게 보랏빛 섬광을 내뿜으며 울렸다. 그리고 균열 사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검은 연기가 그들의 발목을 휘감았다.
“꺄악! 하준아!” 유진의 비명과 동시에 바닥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들은 미처 손 쓸 틈도 없이, 보랏빛 섬광과 검은 연기, 그리고 고통스러운 비명 소리가 가득한 심연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떨어지는 와중에도 하준은 본능적으로 유진의 허리를 감싸 안았고, 유진은 그의 목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들의 몸은 마치 한 조각처럼 얽혔다.
“젠장, 이게 무슨…” 하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들은 차가운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충격과 함께 또 다른 세계로 내던져졌다. 그곳은 어둠과 혼돈으로 가득 찬, 끔찍한 진실의 심장부였다.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죽은 듯이 가라앉은 도시의 잔해, 그리고 그 속에서 잠들어 있던 거대한 존재의 어렴풋한 그림자였다. 동시에, 그들의 귓가에는 섬뜩한 속삭임이 울려 퍼졌다.
*…기억… 모든 것을… 돌려받을 시간이야…*
로맨틱 코미디는 이미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버린 듯했다. 그들은 지금, 학원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상상을 초월하는 금기의 심연 한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은 비로소 깨달았다. 학원의 모든 학생들, 그리고 어쩌면 전 세계가 영원히 잊고 있던 끔찍한 진실을. 이 모든 것이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