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 신화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차갑고 축축한 지하 통로였다. 곰팡이 냄새와 퀴퀴한 흙먼지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내 숨결은 얇게 찢어지는 비명처럼 느껴졌다. 벽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살아있는 유령처럼 일렁였다. 손전등 불빛은 길고 텅 빈 복도를 겨우 비출 뿐, 그 너머의 어둠은 짐승의 입처럼 모든 것을 삼킬 듯했다.

내 손에 들린 낡은 쪽지에는 피처럼 붉은 글씨가 휘갈겨져 있었다.

*“밤의 장막이 드리워진 곳, 망각된 이름들이 속삭이는 곳.”*

빌어먹을. 겨우 이따위 암호 해독에 석 달이 걸렸다. 강진우, 그 빌어먹을 배신자 새끼. 네가 남긴 흔적들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비틀리고, 왜곡되고, 숨겨져 있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추악한 것들이 네 그림자 아래 모여드는 것처럼.

이를 악물었다. 닳고 닳아 너덜해진 내 턱수염 위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손등의 흉터는 욱신거렸다. 오래전, 네가 나를 제물로 바쳤던 그 지옥 같은 밤, 찢겨나간 살점들이 흉하게 아물어 생긴 상처였다.

“강진우….”

내 목소리는 낯설게 갈라졌다. 더 이상 인간의 언어 같지도 않았다. 지난 2년간, 나는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의 울부짖음에 더 익숙해져 있었다.

그날 밤. 우리는 모든 것을 공유했다. 금기를 탐하는 광기 어린 호기심, 세상의 이면을 들추어내려는 오만한 열망, 그리고… 오래된 서고의 가장 깊은 곳에서 찾아낸, 검은 가죽으로 묶인 그 책.

너와 나는 밤낮없이 그 책에 매달렸다. 낯선 기호들, 심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그림들, 차원을 뒤틀어버릴 듯한 주문들. 우리는 광기의 춤을 추듯 그 텍스트에 몰두했다. 깨달음의 전율과 함께 오는 존재론적 공포는 우리를 더 깊은 심연으로 이끌었다.

*‘그것은… 모든 존재의 근원이자 종말.’*

네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던 말이었다. 네 눈동자는 탐욕으로 이글거렸다. 나는 그때 눈치채지 못했다. 네가 보았던 것은 진리가 아니라, 오직 너만을 위한 권능이었음을.

“우리가 옳았어, 이준!”

네가 환희에 찬 비명을 질렀을 때, 나는 이미 네가 파놓은 함정에 빠져 있었다. 네가 내 등에 꽂아 넣은 칼날은 차가웠다. 하지만 더 차가웠던 건, 내 눈앞에서 경멸과 비웃음을 담고 돌아서던 네 얼굴이었다.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나를 내려다보던 네 시선. 마치 벌레를 보는 듯한 역겨움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틈을 비집고 나타난 것. 밤보다 더 검고, 시간보다 더 오래된 형체. 그것이 내 영혼을 찢어발기려 했을 때, 나는 절규했다. 하지만 그 절규는 네겐 오직 승리의 배경 음악일 뿐이었다.

네가 원한 건, 네 이름 위에 영광의 서문을 써줄 누군가의 희생이었다. 그리고 나는 가장 완벽한 제물이었지. 네 가장 친한 친구, 네 모든 비밀을 공유했던 동반자.

“네가… 날 다시 찾게 될 줄은 몰랐겠지, 진우.”

손전등 불빛이 벽의 갈라진 틈새를 비췄다. 틈새 안쪽에는 낡은 종이 한 장이 박혀 있었다.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꺼내자, 종이는 바스라질 듯 낡아 있었다. 종이 위에는 먹으로 그린 듯한 그림이 있었다.

그것은 삼각형 안에 눈동자가 박힌 형상. 그리고 그 아래에 작게 쓰인 이름.

*‘밤의 형제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지하 통로가 단순히 버려진 곳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진우, 네놈이 이 역겨운 우상 숭배자들과 손을 잡았던 건가? 아니, 네가 그들의 수장이 된 건가? 네가 그날 밤 얻은 힘으로?

오래된 기억들이 파편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내가 병실에서 눈을 떴을 때, 의사들은 내가 ‘기억상실증’과 ‘심각한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진실이, 내 정신의 균열 사이로 끊임없이 비집고 들어오고 있음을. 벽을 기어 다니는 그림자들, 귓가에 속삭이는 이질적인 목소리들, 현실의 장막 너머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의 기척.

그것들은 내가 짊어진 저주이자, 동시에 나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손전등을 다시 들어 올렸다. 종이 뒷면에 희미하게 적힌 좌표가 눈에 들어왔다. 지하 통로 깊숙이 숨겨진 또 다른 입구의 위치였다. 네가 아무도 찾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던 은밀한 장소.

하지만 네놈은 한 가지 간과했다.

나는 네가 심연의 가장자리에 던져놓은 존재였다. 이미 모든 것을 잃은 자는 두려워할 것이 없다. 그리고 네가 열어젖힌 그 차가운 지식은… 이제 나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그것은 내게 너의 모든 흔적을 추적할 실마리를 제공했다. 기괴하고 뒤틀린 방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 희미한 불빛 너머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낮은 웅얼거림, 끈적이는 마찰음, 그리고… 내 뼈 속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듯한, 형언할 수 없는 박동.

점점 가까워지는 소리. 나는 숨을 멈췄다. 더 이상 곰팡이 냄새가 아니었다. 쇠비린내와 역한 단내가 뒤섞인, 짐승의 내장과도 같은 끔찍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손전등 불빛이 비추는 벽면에는 기괴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척추뼈가 비틀린 채 엉켜 있는 모습, 눈알이 수없이 박힌 듯한 촉수, 그리고 그 중앙에는… 거대한 입이 찢어져 있는 형상. 내가 그 책에서 보았던, 광기의 신을 숭배하는 그림이었다.

“빌어먹을…”

입에서 저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진우, 네놈은 도대체 어디까지 타락한 거야?

통로가 꺾이는 모퉁이를 돌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나는 얼어붙었다.

거대한 지하 공간. 천장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잠겨 있었고, 바닥에는 핏빛으로 물든 제단이 놓여 있었다. 제단 주위에는 검은 로브를 걸친 사람들이 웅크리고 있었다. 그들은 몸을 흔들며 낯선 언어로 주문을 읊고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깊고 불길했다.

그리고 그들 중앙에 서 있는 그림자.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나는 익숙한 실루엣. 등골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손이 떨려왔다.

강진우.

네놈이었다. 그는 제단 위에 놓인, 끔찍하게 뒤틀린 형상의 우상 앞에서 양손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그 우상은 마치 수많은 살덩이와 뼈가 뒤엉켜 만들어진 듯, 비틀린 형태로 존재했다. 그 중심에는 셀 수 없는 눈들이 깜빡이며, 나를 노려보는 듯했다.

“강진우….”

내 목소리는 이번에는 소리가 되지 못하고 목구멍 속에서 맴돌았다.

진우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로브의 후드 속에서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한때 내가 알던 그 얼굴이 아니었다. 그의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으로 가득했고, 입가에는 비인간적인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 미소는 내 존재 자체를 조롱하는 듯했다.

“오랜만이군, 이준.”

그의 목소리가 지하 공간에 울려 퍼졌다. 웅장하고, 동시에 섬뜩했다. 마치 수천 명의 목소리가 한데 섞인 것처럼.

“네놈은… 살아남았더군.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끈질겨.”

진우의 시선이 내 손에 들린 쪽지를 향했다. 그리고 그는 픽, 하고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내 귓속을 파고들며 뇌를 긁어대는 듯했다.

“그래. 결국 여기까지 찾아왔나. 네놈이 그 책의 잔재를 뒤쫓을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이토록 깊이 들어올 줄은 몰랐군.”

그의 손이 공중에서 스르르 움직였다. 그러자 제단 주위의 로브를 걸친 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시선은 인간의 감정을 찾아볼 수 없는, 텅 빈 시선이었다.

“내가 뭘 하려는지, 궁금한가? 내가 이 세계의 장막을 걷어내고, 너희들의 나약한 영혼을 새로운 진리에 바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진우의 말은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광기 어린 확신이 가득했다. 그의 손이 다시 공중에서 휘젓자, 제단 위 우상의 끔찍한 눈들이 더욱 빠르게 깜빡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하 공간을 채우고 있던 박동 소리가 점차 거대해지더니, 이제는 내 심장과 하나가 되어 요동치는 듯했다.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떨림을 억눌렀다. 나는 여기까지 오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내 정신, 내 육체, 내 남은 모든 것. 네놈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이 지옥 같은 진실 속에서 살아남았다.

“진우….”

나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네놈은… 결코 네가 원하는 걸 얻지 못할 거다.”

내 말에 진우의 비인간적인 미소가 더 깊어졌다.

“오만하군, 이준. 이제 와서 너 따위가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네놈은 그저… 실패한 제물일 뿐. 네가 지닌 그 파편 같은 지식은 그저 너를 고통스럽게 만들 뿐이야.”

그의 시선이 내 존재를 꿰뚫는 듯했다. 마치 내가 여전히 그날 밤,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던 나약한 존재인 것처럼.

“아니….”

나는 이를 악물었다. 피 맛이 느껴졌다.

“나는… 네가 열어젖힌 문을 통해, 이 세상에 들어온 것들을… 네놈에게 돌려줄 것이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진우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은 오만했고, 비웃음이었고, 동시에… 섬뜩한 승리의 포효 같았다.

“재미있군! 좋다. 한번 해보시지, 이준. 네놈의 몸뚱이가 저것들의 먹이가 되는 것을… 기꺼이 지켜보아주마.”

진우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제단 주위에 있던 로브를 걸친 자들이 일제히 나에게로 향했다. 그들의 로브 아래에서 끔찍한 형체들이 꿈틀거렸다. 뼈마디가 뒤틀린 팔, 수많은 손가락, 그리고… 형광색으로 빛나는, 수많은 눈동자들.

나는 직감했다. 그들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진우, 네놈이 만들어낸, 혹은 불러낸… 괴물들이었다.

내 손전등 불빛이 흔들렸다. 눈앞의 광경이 기이하게 일렁였다.

“그래, 진우….”

나는 피 묻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광기 어린 웃음이었다.

“누가 진짜 괴물이 될지는… 두고 봐야 할 거야.”

내 손이 품속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낡은 권총 한 자루와, 금이 간 검은 돌멩이가 들려 있었다. 돌멩이 안에서는 희미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낯선 파동이 느껴지고 있었다.

이것이 나의 복수였다. 네놈이 열어젖힌 지옥에서, 네놈을 끌어내릴… 나의 마지막 수단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지하 공간의 박동이 절정에 달했다. 제단 위 우상의 눈들이 일제히 빛을 발하더니, 벽면에 새겨진 문양들이 검붉은 피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나는 알았다. 이제 막, 진짜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