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 웹소설: 심연의 유물 ]**
**제37화. 검은 심장 (下)**
고요는 우주선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장 무서운 적이었다. 아르고호는 광활한 심우주의 심장을 가르고 전진했다. 엔진의 미약한 진동만이 살아있는 유일한 증거였고, 그마저도 완벽한 진공의 장막 뒤에선 메아리 없는 울림일 뿐이었다.
함교의 푸른 조명 아래, 선장 이안은 홀로그램 스크린을 응시했다. 무한히 펼쳐진 별들의 은하수를 가로지르는 아르고호의 예상 항로가 반짝였다. 평범한 정찰 임무였다. 적어도 몇 시간 전까지는.
“지나, 아직도 원인을 못 찾았나?” 이안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옥타브 낮았다.
과학 책임자 지나는 자신의 콘솔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답했다. “네, 선장님. 전례 없는 에너지 패턴입니다. 스캐너가 제대로 작동하질 않아요. 마치… 주변의 모든 에너지를 집어삼키는 블랙홀의 미니 버전 같아요. 그런데 중력 렌즈 현상은 없고요.”
그들의 전방,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떠 있었다. 그 그림자는 별빛마저 집어삼키는 듯, 주변 공간을 미세하게 왜곡시키고 있었다. 흡사 거대한 구멍이 뚫린 것 같기도 하고, 혹은 모든 것을 흡수하는 먹물 덩어리 같기도 했다.
“강태! 동력은?” 이안이 통신망에 대고 소리쳤다.
“선장님! 갑자기 전력 소모량이 치솟고 있습니다! 비상 동력으로 전환 중입니다!” 기관실에서 기술자 강태의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원인은 아직 불분명합니다! 이 물체가 가까워질수록 배가 이상해요!”
“물체가 아니야. 유물이다.” 지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녀의 손가락이 미친 듯이 자판 위를 오갔다. “이건… 어떤 종류의 고밀도 물질도 아니에요. 기존의 물리 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어요. 어쩌면… 유기적인 물질일 수도 있습니다. 살아있는…”
“살아있다고?” 이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데이터가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지나가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푸른 스크린의 반사가 아른거렸다. “미세한 진동이 감지됩니다. 특정 주파수에서요. 그리고… 스캐너가 포착한 표면은 끊임없이 미세하게 형태를 바꾸고 있어요.”
바로 그때, 함교의 모든 조명이 일제히 깜빡였다. 시스템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젠장! 무슨 일이야!” 강태가 다시 소리쳤다.
“주 전력 불안정! 보조 시스템 마비 직전입니다!” 지나가 빠르게 보고했다. “이안 선장님, 후퇴해야 합니다. 이 물체가 우리 배의 에너지를 빨아들이고 있어요!”
이안은 잠시 침묵했다. 그의 시선은 창밖의 검은 유물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심장이 불안하게 쿵쾅거렸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안에는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이 피어올랐다. 미지의 것을 향한, 탐험가의 본능이었다.
“아니, 더 다가간다.” 이안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지나의 눈이 커졌다. “선장님! 위험합니다!”
“위험한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저걸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어. 저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이 될 수도 있다.” 이안은 스크린을 향해 손짓했다. “접근 속도 최저로 유지하고, 비상 동력으로 최대한 버텨. 지나, 네 모든 센서를 총동원해서 저 유물에 대한 정보를 긁어모아.”
아르고호는 검은 심장을 향해 느리게, 그러나 멈추지 않고 전진했다. 유물에 가까워질수록, 배 안의 공기는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알 수 없는 압력이 모두를 짓누르는 듯했다. 함교의 벽에서 미세한 균열음이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선장님, 표면에 어떤 문양 같은 것이 보입니다.” 지나가 숨죽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문양이 아닙니다. 균열… 아니, 입구인 것 같습니다. 완벽하게 매끄럽던 표면에 육각형 형태의 틈이 생겨나고 있어요.”
거대한 유물의 검은 표면에,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거대한 육각형의 틈이 천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 안은 칠흑 같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어둠 너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강태, EVA 슈트 준비시켜!” 이안이 명령했다. “지나, 나랑 같이 간다. 강태는 배에 남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선장님!” 지나가 반대하려 했지만, 이안의 단호한 눈빛에 입을 다물었다.
“명령이다.”
두 사람은 서둘러 EVA 슈트를 착용하고 소형 셔틀에 올랐다. 셔틀이 아르고호의 도크를 빠져나오자마자, 선체는 더욱 격렬하게 흔들렸다. 강태의 다급한 목소리가 통신으로 흘러들어왔다.
“선장님! 배가… 배가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아요! 시스템이 마비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 가면 동력이 모두 빨려 버릴 겁니다!”
“버텨, 강태! 우리가 돌아갈 때까지 버텨야 해!” 이안은 셔틀을 조종하며 유물의 열린 입구로 향했다.
셔틀이 육각형의 입구에 근접하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셔틀의 모든 전자기기가 일순간 정지했다. 계기판이 꺼지고, 조종간이 먹통이 되었다.
“선장님, 제 슈트 산소 공급 장치에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지나가 불안에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이안은 자신의 슈트 내부 모니터를 확인했다. *삐빅, 삐빅.* 심박수가 비정상적으로 치솟고 있었다. 셔틀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린 듯, 천천히 유물의 내부로 빨려 들어갔다.
육각형의 입구가 소리 없이 닫히는 순간, 셔틀 안의 모든 것이 암전되었다. 완벽한 어둠과 압도적인 침묵 속에서, 이안과 지나는 서로의 숨소리조차 들을 수 없었다. 그때, 어디선가 아주 미세한, 그러나 명확한 소리가 들려왔다.
*쉬이이이…*
마치 거대한 숨을 내쉬는 듯한 소리였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 차가운 것이 그들의 슈트를 스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선장님…” 지나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저기… 뭐가 움직이는 것 같아요.”
이안은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이 멀리서 깜빡이는 것을 그는 보았다. 그것은 별빛이 아니었다. 어떤 생체 발광체 같았다. 그리고 그 빛은…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느리게, 그러나 멈추지 않고.
그 순간, 이안은 직감했다. 그들은 단순히 유물을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무언가의 잠자는 심장을 깨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심장은 이제, 그들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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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