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우주선 ‘창백한 새벽’의 내부, 탐사대의 발소리가 금속 바닥에 차갑게 울렸다. 낡고 거대한 선체는 태고의 시간이 빚어낸 미궁 같았다. 압력등의 희미한 불빛이 닿는 벽면은 매끈한 합금이 아닌, 손바닥만 한 황동 리벳으로 고정된 알 수 없는 금속판들이 겹겹이 이어진 모습이었다. 어떤 구간에서는 유리관 안으로 희미한 형광빛 액체가 느릿하게 흐르는 것이 보였다. 마치 거대한 증기기관의 혈관처럼.
선장 이시엘의 숨결이 헬멧 안에서 하얗게 퍼졌다. “미라, 에너지 반응은 여전한가?”
탐사관 박미라의 목소리가 통신망을 통해 돌아왔다. “네, 선장님. 오히려 더 선명해졌습니다. 여기 코어 같아 보여요.”
그녀의 스캐너가 가리키는 방향은 굴곡진 복도 끝, 기이하게 넓어진 공간이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조용한 긴장감이 이들의 어깨를 짓눌렀다. ‘창백한 새벽’은 우주를 떠다니던 전설 속 유령선이었다. 수억 년 전 사라진 외계 문명의 것이라는 소문만 무성할 뿐, 그 누구도 실체를 확인하지 못했던 존재. 그리고 지금, 그들은 그 전설의 심장부에 서 있었다.
복도가 끝나는 지점에 이르자, 그들의 눈앞에 거대한 원형 공간이 펼쳐졌다. 천장은 어둠 속에 잠겨 보이지 않았고, 바닥은 희미한 호박색 빛을 내는 기묘한 문양들로 뒤덮여 있었다. 마치 잊힌 대장간의 꺼져가는 불씨처럼, 바닥의 문양들은 약하게 맥동했다.
그리고 그 중앙.
흑요석처럼 거칠게 다듬어진 제단 위에, 그것이 떠 있었다.
단순한 구체나 단일 구조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복잡한 기하학적 형태의 집합체였다. 흑요석처럼 검은 금속판들이 서로 맞물려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구리빛으로 빛나는 막대들이 관통해 박혀 있었다. 사람 머리만 한 것부터 손톱만 한 것까지, 상상할 수 없는 복잡한 톱니바퀴들이 그 구조 안에 박혀 있었다. 어떤 톱니는 소리 없이 앞으로, 어떤 톱니는 뒤로, 마치 목적 없는 춤을 추듯 끊임없이 회전하고 있었다. 이음새 사이에서는 옅은 증기 같은 것이 끊임없이 피어올라 위로 흩어졌다. 거대한, 외계의 심장이 뛰는 듯한 나지막하고 규칙적인 윙 소리가 그것의 핵에서 흘러나와, 이들의 장화 밑 바닥 전체를 미세하게 진동시켰다.
“세상에… 저게 대체….” 박미라의 입에서 경외와 공포가 뒤섞인 탄식이 터져 나왔다.
기관장 김철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거친 수염이 덮인 그의 얼굴에 긴장감이 역력했다. “저 녀석… 살아있는 거 같군. 이런 기계는 본 적이 없어.”
의무관 최지영이 앞으로 나서려는 박미라의 팔을 붙잡았다. “접근 금지! 미지의 물질이나 에너지 방출 가능성 있습니다. 생체 반응 체크 중입니다!” 그녀의 스캐너가 요란하게 경고음을 울렸다.
이시엘 선장이 침착하게 지시했다. “진정해. 철수, 주변 환경 스캔. 미라, 장치 작동 여부와 패턴 확인. 지영, 계속 데이터 수집해.”
박미라가 조심스럽게 스캐너를 뻗었다. 그녀의 스캐너가 유물에 닿으려는 찰나, 유물에서 아주 미세한, 거의 들리지 않는 ‘딸깍’ 소리가 울렸다. 정지해 있던 거대한 황동빛 톱니바퀴 중 하나가 움찔하더니, 나지막한 웅웅거림과 함께 회전을 시작했다. 바닥의 호박색 문양들이 일제히 더 밝게 빛났다가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유물에서 피어오르던 증기는 더욱 짙어졌고, 희미하게 무지개 빛을 띠기 시작했다.
“캡틴!” 김철수의 목소리가 갑자기 거칠어졌다. “주변 압력…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우리 함선 ‘나선’의 선내 기압 조절기가 미친 듯이 돌고 있어요!”
최지영의 스캐너가 불안정한 파형을 그렸다. “제 생체 스캐너가… 이상합니다. 제 심장 박동수가… 아니, 제 것이 아니에요! 주변 공기에서 정체불명의 나노 입자가 검출됩니다!”
박미라는 유물을 멍하니 응시했다. “움직여요… 안쪽에서 뭔가가… 맞춰지고 있어요!”
유물에 박힌 톱니바퀴들이 갑자기 미친 듯이 회전 속도를 높였다. 귀를 찢을 듯한 높은 음의 윙 소리가 귓가를 긁어댔다. ‘증기’는 이제 더 굵고 선명한 줄기를 이루며 유물 주변을 휘감았다. 그것은 단순한 증기가 아니었다. 형태를 갖추지 못했던 그것들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흑요석 판들이 끼워진 표면이 미세하게 뒤틀리더니, 그 틈 사이로 얇고 빛나는 에너지 선들이 드러났다. 마치 오래된 껍질에 난 균열 같았다. 규칙적인 윙 소리는 고동치는 박동으로 격렬해지며 이들의 뼈를 울렸다.
갑자기, 거대한 원형 공간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바닥의 빛나는 문양들은 미친 듯이 깜빡이다가, 이내 섬광처럼 환한 백색광을 뿜어냈다. 선명하고 격렬하게 춤추는 그림자들이 승무원들을 덮쳤다. ‘창백한 새벽’ 내부의 거대한, 보이지 않는 어떤 기계장치가 압력에 못 이겨 신음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오래된 금속이 엄청난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뒤틀리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때, 원형 공간의 벽면을 이루던 거대한 황동 리벳 박힌 판들 중 하나가 육중하고 느리게, 그러나 확실하게 옆으로 갈려 열리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드러난 것은 텅 빈 공간이 아니었다. 빛을 집어삼키는 듯한, 더 깊고 어두운 심연이었다. 그 심연 속에서, 유물 자체에 박힌 어떤 톱니보다도 훨씬 거대한, 단 하나의 톱니바퀴가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 톱니의 날카로운 가장자리는 차가운 내부 불꽃으로 섬뜩하게 빛났다. 희미하고 거의 음악처럼 들리는 ‘쨍그랑’ 소리가 울려 퍼진 뒤, 오존과 함께, 무한히 오래되고, 완전히 이질적인 어떤 존재의 냄새를 싣고 강한 바람이 쏟아져 나왔다.
이시엘 선장의 목소리가 날카로운 긴박감을 띠고 터져 나왔다. “물러서! 모두 후퇴!”
그러나 때는 너무 늦었다. 그들 주변의 공기가 짜릿하게 전기를 띠었다. 유물은 마지막으로 귀청을 찢는 듯한 ‘크랙’ 소리를 내며 내부의 어떤 기계장치가 제자리를 찾아 잠겼다. 그러자 유물 주변에서 응집되던 증기 형태들이 갑자기 선명하게 초점을 맞췄다. 그것은 추상적인 형태가 아니었다. 찰나의 순간 동안 일그러지고 뒤틀린, 기괴하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실루엣들이었다. 그것들은 섬광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며, 유물의 핵에서 눈부신 에메랄드빛 섬광이 터져 나왔다. 원형 공간은 섬뜩한 초록빛 황혼에 잠겼다. 새로 열린 벽의 거대한 톱니바퀴가 다시 한번, 이번에는 훨씬 더 빠르게 회전했다. 그 회전은 불가능할 정도로 깊고, 공명하는 윙 소리를 만들어냈고, 그들의 영혼까지 뒤흔들며, 공간 자체를 찢어발길 듯한 기세로 울려 퍼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