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 호러 독립적인 단편 소설

지혁은 깊은 산속을 헤치고 나아갔다. 빽빽한 나무들이 뿜어내는 습하고 무거운 공기가 폐부 가득 차올랐다. 이끼 낀 바위와 썩어가는 낙엽이 뒤섞인 길은 이미 사람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인 듯했다. 지혁이 이 짓을 시작한 건 한 달 전이었다. 따분한 일상에 질려 인터넷을 뒤적이다,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폐암자 터에 대한 글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저 기분 전환 삼아 떠나온 길이었는데, 점점 더 오기가 생겼다.

“젠장, 진짜 이런 데 뭐가 있다고….”

투덜거리면서도 그의 눈은 매섭게 주변을 살폈다. 넝쿨에 뒤덮인 돌계단이 희미하게 드러나자 지혁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드디어 도착한 모양이었다.

폐암자는 말 그대로 ‘터’에 가까웠다. 기왓장 조각과 무너진 석탑 잔해가 숲 속에 드문드문 흩어져 있었고, 본당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는 주춧돌 몇 개만이 과거의 영광을 웅변하고 있었다. 지혁은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고 폐허를 이리저리 찍었다. 스산하면서도 고요한 풍경은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무너진 담장 아래, 오래된 돌 틈 사이로 이상하게 매끄럽게 다듬어진 석판이 눈에 띄었다. 주변의 돌들과는 확연히 다른 질감이었다. 호기심이 동한 지혁은 조심스럽게 석판을 건드렸다. 묵직한 돌은 의외로 쉽게 움직였다. 석판이 옆으로 밀려나자, 그 아래로 검고 깊은 어둠이 입을 벌렸다.

“이런 곳에 이런 게….”

지혁은 잠시 망설였다. 으스스한 기운이 풍겼지만,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는 손전등을 켜고 조심스럽게 좁은 통로로 발을 디뎠다. 축축하고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통로 끝에는 작은 석실이 나타났다.

석실은 놀랍도록 보존 상태가 좋았다. 사방이 매끄러운 돌로 다듬어져 있었고, 중앙에는 대리석 같은 재질의 낮은 제단이 놓여 있었다. 제단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거의’ 아무것도 없었다. 덩그러니 놓인 것은 사람의 주먹만 한 크기의 검은 돌멩이였다.

돌멩이는 아무런 특색도 없어 보였지만, 왠지 모르게 지혁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마치 모든 빛을 빨아들인 듯한 완벽한 검정, 그리고 그 안에서 희미하게 비치는 은은한 광택. 지혁은 천천히 손을 뻗어 돌멩이를 만졌다.

차가웠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차가웠다. 돌을 잡는 순간, 지혁의 손끝에서부터 전신으로 싸늘한 기운이 퍼져나갔다. 동시에 그의 귓가에 희미한 울림이 들려왔다. 마치 심장이 저음으로 박동하는 듯한, 혹은 아주 멀리서 누군가 속삭이는 듯한 소리였다.

“뭐지?”

지혁은 얼른 손을 뗐다. 소리는 멈췄다. 다시 손을 대자, 소리는 다시 시작됐다. 그는 돌을 들고 석실을 나왔다. 폐허를 떠나 산길을 내려오는 동안, 돌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지혁은 자신이 피곤해서 환청을 들은 것이라고 애써 합리화했다.

집으로 돌아온 지혁은 돌을 책상 한쪽에 놓아두었다. 일상으로 돌아온 첫날은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런데 둘째 날부터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소한 것들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왔는데 욕실 문이 닫혀 있었다든가, 분명히 책상에 올려두었던 컵이 바닥에 떨어져 깨져 있다든가 하는 식이었다. 지혁은 자신이 깜빡했거나 고양이가 저지른 짓이겠거니 생각했다. 고양이는 키우지 않았지만, 그게 가장 그럴듯한 변명이었다.

밤에는 더욱 기괴한 일들이 일어났다. 잠이 들려 하면, 어둠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듯한 희미한 그림자를 보았다. 침대 옆에 둔 스탠드가 저절로 켜졌다가 꺼지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이 모든 기현상들은 언제나, 그의 책상에 놓인 검은 돌멩이가 시야에 들어올 때만 일어났다.

지혁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돌을 쓰레기통에 버려 보았다. 그러나 잠시 후, 쓰레기통은 내용물이 쏟아진 채 뒤집어져 있었고, 검은 돌은 그의 침대 머리맡에 놓여 있었다. 그는 돌을 주워 창밖으로 던져버렸다. 다음 날 아침, 돌은 그의 베개 옆에 있었다.

“젠장! 너 대체 뭐야?”

지혁은 돌을 움켜쥐었다. 차가운 촉감과 함께, 귓가에 들려오던 저음의 울림이 이번에는 선명한 속삭임으로 변해 들려왔다. 그의 뇌 속으로 직접 울리는 듯한 소리였다.

*‘깨어났느냐… 나의 새로운 그릇이여.’*

지혁은 경악하며 돌을 놓쳤다. 돌은 바닥에 떨어져도 부서지지 않고, 여전히 검고 매끄러웠다. 속삭임은 멈췄지만, 그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그는 미쳤다고 생각했다. 심각한 스트레스와 불면증이 겹쳐 환청을 듣는 것이라고.

그날 이후, 속삭임은 더욱 잦아졌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혹은 혼자 있을 때. 속삭임은 그의 이름 대신 그를 ‘그릇’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상한 힘이 그에게서 발현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지혁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와 통화를 하던 중이었다. 친구는 진상 손님 때문에 짜증이 난다고 불평했다. 지혁은 무심코 “그냥 다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친구에게서 온 문자를 보고 소름이 끼쳤다. “야, 어제 그 진상 손님, 갑자기 어제저녁부터 아예 가게에 발길을 끊었다더라. 신기하지?”

지혁은 불안한 실험을 시작했다. 그는 검은 돌을 손에 쥐고 마음속으로 특정 대상을 향한 강렬한 염원을 떠올렸다. 그 염원은 언제나 이루어졌다. 지혁을 괴롭히던 동네 양아치들이 밤새 싸움에 휘말려 경찰서에 잡혀갔고, 그가 절실히 원하던 한정판 피규어가 우연히 그의 손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 대가로 그는 조금씩 변해갔다. 밤에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의 주변에는 언제나 희미한 그림자들이 따라다녔고, 속삭임은 점점 더 명료해져 이제는 완벽한 문장으로 그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그것으로 충분치 않다… 더 큰 것을 원하라… 이 모든 세상이 네 발아래…’*

그는 자신의 의지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돌이 시키는 대로, 아니, 돌이 그에게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거울 속 자신의 눈은 예전보다 훨씬 깊고 어두워져 있었다. 마치 낯선 존재가 그의 육체를 빌려 세상을 응시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어느 날 밤, 속삭임은 더욱 거세졌다. 그의 방은 차가운 기운으로 가득 찼고, 벽면에는 알 수 없는 고대 문자들이 희미하게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의 손에 들린 검은 돌은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쿵쾅거렸다.

*‘준비되었다… 깨어나라… 나의 왕국이여….’*

지혁은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그의 시야는 흐려지고, 세상은 일그러졌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지혁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그의 존재는 희미해지고, 그의 육체는 이제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의 그릇이 되어버린 듯했다.

검은 돌은 그의 손에서 떨어져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리고는 그의 심장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차가운 돌이 그의 가슴에 닿는 순간, 거대한 빛이 그의 방을 뒤덮었다. 빛 속에서, 지혁의 형체는 찢겨지고 재구성되는 듯 보였다. 고통과 함께 찾아오는 알 수 없는 환희. 그의 육체는 연기처럼 흩어지다가 다시 뭉쳐졌다.

빛이 사라지고, 방 안은 다시 어둠에 잠겼다. 하지만 이제 방은 예전의 지혁의 방이 아니었다. 공간 자체가 뒤틀리고 왜곡되어 있었다. 벽은 사라지고, 무한한 어둠 속에 기괴한 형상들이 떠다녔다.

그리고 그 어둠의 중심에, 한 존재가 서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지혁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 키는 훨씬 커졌고, 사지를 뒤덮은 피부는 검은 돌처럼 매끄럽게 빛났다. 얼굴이었던 자리에는 눈도 코도 입도 없는 밋밋한 검은 구체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 세상의 모든 어둠을 응축한 듯한 두 개의 붉은 점이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공간 속으로 녹아들었다.

*‘…왔노라.’*

아무도 없는 방에, 지혁의 목소리가 아닌, 천년의 어둠을 머금은 듯한 웅장하고 깊은 음성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소리는, 곧 세상 전체에 울려 퍼질 전조에 불과했다.

깊은 산속 폐암자 터.
어느 탐방객이 실수로 건드린 석판 아래, 검은 돌 하나가 자리를 비운 채, 영겁의 시간을 기다려 온 듯한 텅 빈 제단만이 남았다. 산바람이 폐허를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는, 마치 누군가의 비명처럼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