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내려앉은 거대 도시, 네오 서울의 상층부 스카이라인은 인공 별빛처럼 반짝였다. 강 이안은 천장 전체를 덮은 홀로그램 스크린을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었다. 3D로 구현된,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고대 열대우림의 풍경이 미세한 바람 소리와 함께 그의 개인 아파트 공기를 채우고 있었다. 시대를 역행하는 듯한 낡은 디자인의 앤티크 탁자 위에는 먼지 쌓인 고전 물리학 서적과 최신형 증강현실(AR) 스캐너가 대조적으로 놓여 있었다.
손목의 얇은 연결 단말기에서 띠링, 알림음이 울렸다. 화면에는 김수진 경감의 얼굴이 떠 있었다. 그녀는 항상 그랬듯 피곤에 절어 있었지만, 오늘은 유독 표정이 어두웠다.
“이안 씨, 잠시 시간 괜찮으십니까?”
이안은 늘 그랬듯 손끝으로 탁자를 가볍게 두드렸다. 규칙적이고 나른한 소리.
“경감님, 제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 개념입니다. 굳이 말하자면, 우주에 펼쳐진 무수한 가능성 중 하나를 제가 선택해서 소비하고 있을 뿐이죠.”
이안은 익숙한 레퍼토리에 미소를 지었지만, 수진의 표정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녀는 평소라면 비아냥거렸을 이안의 농담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사건입니다. 아주 골치 아픈 사건이요.”
“골치 아프지 않은 사건으로 저를 부르신 적은 없잖습니까.”
“이번엔 좀 다릅니다. 아니, 완전히 다릅니다. 밀실 살인.”
이안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고전적이지만 언제나 흥미를 끄는 키워드였다.
“오랜만이군요. 고전적이지만 늘 흥미를 끄는… 미스터리.”
“재미있어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수진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전문가들도 모두 고개를 젓고 있어요.”
자율주행 캡슐택시는 도시의 첨단 고층 빌딩 숲을 미끄러지듯 가로질렀다. 거대한 합성 유리에 반사된 인공 태양빛이 눈부셨다. 목적지는 ‘아크로폴리스 타워 7’. 도시의 가장 높은 세 구역 중 하나로, 상위 0.1%의 인구만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보안 등급은 일반 구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모든 입주민은 일상적으로 생체 정보를 스캔하고, 모든 물자는 자동화된 시스템을 통해 철저한 검증을 거쳐야만 반입이 가능했다. 이곳에서 살인이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다.
캡슐택시가 착륙장에 정차하자, 자동화된 문이 스르륵 열렸다. 신선한, 그러나 인공적으로 정화된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사건 현장은 70층 펜트하우스였다. 피해자는 저명한 뇌과학자이자 신기술 개발 기업 ‘프로메테우스’의 CEO인 ‘닥터 유진’이었다. 그의 이름은 전 세계적으로 생명 연장 기술과 의식 확장 연구의 선두 주자로 알려져 있었다.
수진 경감이 안내한 곳은 펜트하우스 내부의 개인 연구실이었다. 짙은 색의 금속 합금으로 만들어진 육중한 문은 이미 경계선을 표시하는 노란 홀로그램 테이프로 둘러싸여 있었다. 문 주변에는 경계선 밖으로도 감지 센서가 작동하는지, 미세한 전자기장 같은 것이 느껴졌다. 몇몇 수사관들이 초조한 얼굴로 대기하고 있었다.
“문을 부수지는 않았겠죠?” 이안이 물었다. 목소리에는 작은 농담기가 섞여 있었다.
“정확히는, 부술 필요가 없었습니다.” 수진이 한숨을 쉬었다. “모든 보안 시스템은 외부 침입이 없었다고 보고합니다. 문은 내부에서 잠겨 있었고, 외부에서 강제로 연 흔적도 없습니다. 잠금장치도 멀쩡합니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눈빛은 이미 문틈과 경첩, 그리고 주변 벽면의 미세한 질감까지 스캔하고 있는 듯했다.
“그럼, 창문은요?”
“방탄 강화 합성 유리로 외부의 작은 충격조차 감지합니다. 모두 정상입니다. 에어 덕트? 성인이 지나갈 수 없는 크기입니다. 환기 시스템도 마찬가지고요.”
이안은 연구실의 육중한 문 앞에 멈춰 섰다. 표정 없는 얼굴로 문틈을 자세히 살폈다. 특수 제작된 센서가 부착된 얇은 필름을 손가락으로 문틈에 살짝 눌러보았다. 이안의 연결 단말기 화면에 ‘밀폐도 99.99%’라는 수치가 떴다. 완벽에 가까운 밀폐 상태였다.
“완벽하군요.” 이안이 중얼거렸다. 그의 낮은 목소리는 홀로그램 테이프가 만들어내는 미세한 험음 속에서도 또렷하게 들렸다.
이안은 수진이 건넨 디지털 키로 잠금 해제된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연구실 내부는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벽면에는 복잡한 수식과 미완성된 뇌파도, 그리고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홀로그램으로 떠다니고 있었다. 푸른빛과 녹색빛이 뒤섞인 데이터의 강이 방안을 채우는 듯했다.
중앙에는 투명한 강화 유리로 된 책상이 있었고, 그 위에 닥터 유진이 쓰러져 있었다. 그의 얼굴은 평화로웠지만, 가슴 한가운데에는 섬뜩할 정도로 정확하게 박힌 얇고 날카로운 메탈 스파이크가 박혀 있었다. 주변에는 혈흔조차 거의 없었다. 마치 정교하게 세팅된 전시품 같았다.
“사인(死因)은 메탈 스파이크에 의한 심장 관통입니다. 현장에서 즉사했겠죠. 부검 결과, 독극물이나 다른 외부 요인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외부로부터의 침입 흔적도 없고, 사망 시점까지 모든 보안 시스템은 정상 작동했습니다.”
수진이 덧붙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절망에 가까웠다.
“더 기이한 건, 닥터 유진이 착용하고 있던 개인 생체 센서가 사망 직전까지도 심박수, 체온 등 모든 생체 신호가 정상이었다는 겁니다. 갑작스러운 사망 충격도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아무런 예고 없이, 마치 시간의 흐름을 멈춘 듯 사망했습니다.”
이안은 시체 주변을 천천히 돌며 시선을 바닥에서 천장, 그리고 벽면으로 옮겼다. 그의 시선은 그 어떤 탐정들도 주목하지 않을 법한 미세한 부분들에 머물렀다. 먼지 한 톨 없는 듯한 강화 유리 바닥, 정교하게 짜 맞춰진 벽면 패널의 이음새, 그리고 천장에 박힌 작은 환기구의 격자무늬까지.
그는 죽은 닥터 유진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평온한 얼굴. 그러나 이안은 그 평온함 속에서 무언가 불쾌한 부자연스러움을 감지했다.
“죽음 직전까지 아무런 고통도, 위협도 느끼지 못했다는 건가요?” 이안이 조용히 물었다.
“네, 기록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합니다. 강도나 보복 살인이라면 최소한의 저항이나 공포 반응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이안은 시선을 바닥에 고정했다.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강화 유리 바닥. 하지만 이안의 시선은 한 점에 멈췄다. 너무나 미세해서 일반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아주 작은 얼룩. 혹은 스크래치.
그는 주머니에서 초소형 현미경을 꺼내 바닥에 엎드렸다. 수진은 혀를 내둘렀다. 저 작은 것을 어떻게 찾아내는 것일까.
현미경 화면에 나타난 것은 핏자국이 아니었다. 먼지도 아니었다. 그것은… 아주 작은, 투명한 결정 조각이었다. 마치 설탕 결정처럼 빛났지만, 현미경으로 확대하자 불규칙한 각을 가진 인공적인 파편으로 보였다. 마치 정교한 기술로 만들어진 극소형 조각 같았다.
“이게 뭘까요?” 수진이 옆에서 물었다.
이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결정 조각에서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천장의 환기구를 향했다. 환기구는 완벽하게 닫혀 있었고, 먼지조차 없었다. 하지만 이안의 눈에는 그곳에 닿아 있는 보이지 않는 선이 연결된 듯 보였다.
“밀실 살인이라…” 이안은 작게 중얼거렸다. 그의 눈빛은 고요했지만, 그 안에는 이미 거대한 퍼즐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기 시작하고 있었다. “아니요, 경감님. 이것은 밀실이 아닙니다. 완벽한 연극 무대죠.”
수진은 이안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연극 무대라니? 이 완벽하게 봉쇄된 방에서 대체 무슨 연극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이안은 더 이상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는 그 작은 결정 조각을 조심스럽게 채취한 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연구실의 문을 향했다.
“살인자는 피해자와 함께 이 방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이곳에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싸늘한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수진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완벽한 밀실에서 어떻게? 살인자가 아직 방에 있다면, 그들은 왜 그를 발견하지 못했을까? 이안은 대체 무엇을 본 것일까?
이안은 이미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의 천재적인 두뇌 속에서, 보이지 않는 장막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하고 있었다.
